71년생 김지수가 88세 이어령 선생님을 매주 화요일 찾아가서 나눈 이야기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죽음 혹은 삶에 대해 묻는 이 애잔한 질문의 아름다운 답이다. 더불어 고백건대 내가 인터뷰어로서 꿀 수 있었던 가장 달콤한 꿈이었다.'
PS. 선생님은 은유가 가득한 이 유언이 당신이 죽은 후에 전달되길 바라셨지만, 귀한 지혜를 하루라도 빨리 전하고 싶어 자물쇠를 푼다. (감사하게도 그가 맹렬하게 죽음을 말할수록 죽음이 그를 비껴간다고 나는 느꼈다.) '
2005년, 현대수필 특강에 초대해서 가까이 뵈온 일이 떠오른다. 그 반듯한 용모와 카랑카랑한 음성이 선하다.
"세월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우리 엄마 말도 떠오르고.
선생님은 암에 걸렸는데 전이된 것을 알고 받아들이고 있다. 암, cancer는 라틴 말로 게란 뜻이란다. 몸은 갯벌이 되고 암은 게가 되어서 온 몸을 헤집고 다닌다. 게와 싸우지 않고 같이 살려고, 고통을 겪는 것까지 내 몫이니 관찰하는 것까지 자신의 몫으로 받는다.
유난히 포스트잇이 많이 붙여졌다. 부드러운 도끼가 머리를 쿵, 쿵 친다. 울림이 깊다.
과하지 않은 감성으로 선생님과 대화를 이어간 김지수,
구절구절 스미게 전하는, 김지수의 다른 책이 궁금해진다.
* 죽음은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내게 덤벼드는 일
- 글로 치면 모든 영역에서 거의 다 백전백승하지 않았습니까?
"아니라네 난 매번 KO패 당했어. 그래서 또 쓴거지. 완벽해서 이거면 다 됐다. 싶었으면 더 못 썼을 거야.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는 갈매기 조나단의 생애를 쓰고 자기 타자기를 바닷속에 던져 넣었다잖나. 그걸로 다 썼다는 거지. 난 그러지 못했네. 내가 계속 쓰는 건 계속 실패했기 때문이야. 정말 마음에 드는 기막힌 작품을 썼다면, 머리 싸매고 다시 책상에 앉았을까 싶어." (29쪽)
* 발톱을 깎다가
눈물 한 방울
너 거기 있었구나, 멍든 새끼발가락
어떤가?
- 눈물이 납니다
내 작은 잔디밭
날아온 참새 한 마리
눈물 한 방울
- 왜 매번 눈물 한 방울입니까?
" 늙으면 한 방울 이상의 눈물을 흘릴 수 없다네. 노인은 점점 가벼워져서 많은 것을 담을 수 없어. 눈물도 한 방울이고, 분노도 성냥불 획 긋듯 한 번이야. 그게 늙은이의 슬픔이고 늙은이의 분노야. 엉엉 소리 내 울고 피눈물을 흘리는 것도 행복이라네. 늙은이는 기막힌 비극 앞에서도 딱 눈물 한 방울이야." (69쪽)
* "꿈이라는 건, 빨리 이루고 끝내는 게 아니야. 그걸 지속하는 거야. 꿈 깨면 죽는 거야. 내가 왜 남은 시간을 이렇게 쓰고 있겠나? 죽고 나서도 할 말을 남기는 사람과 죽기 전부터 할 말을 잃은 사람 중 어느 사람이 먼저 죽은 사람인가? 유언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거라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네."
- 10년 전에 할 말 다하고 동어반복하는 사람은 유언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죽음 전에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라고, 스승은 일갈했다. 목이 마른지 그가 물을 한잔 들이켰다. 나는 머리통에서 식은 땀이 나는 것 같았다. '존재했어?'라는 질문만큼이나 '죽음 전에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 인중에도 땀이 고였다. 코밑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176쪽)
*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
"... 성인군자의 아들도 나쁜 짓을 해. 아버지의 선한 피를 받았는데도 교화가 안 되지. 공자님은 아들을 가르치지 않았어. 가르칠 수 없는 거지. 가장 가까운 피붙이조차 가르칠 수 없어. 결국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엉터리라네.
남을 가르칠 수도 없고 남에게 배울 수도 없어. 인간이 그런 존재야. 거기로부터 시작해야 하네. 그게 실존이야. '나는 혼자다'라는 걸 모르는 사람과는 얘기가 통하지 않아. 군중은 남이 이 말 하면 이리로 가고, 남이 저 말하면 저리로 가지. 휩쓸려 다녀. 자기가 없으니까 자꾸 변하는 거라네."
- 자기라는 게 뭔가요?
"자기는 남에게 배울 것도 없고 남을 가르칠 것도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나'라고 할 수 있지." (235쪽)
* - 젊은이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는지요?
"딱 한 가지야.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그리스 사람들은 진실의 반대가 허위가 아니라 망각이라고 했어요. 요즘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잊어서 그래요. 자기가 한 일을 망각의 포장으로 덮으니 어리석어요. 부디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
(316쪽)
*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침대에서 깨어 눈 맞추던 식구, 정원에 울던 새, 어김없이 피던 꽃들..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 돌려보내요. 한국말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죽는다고 하지 않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320쪽)
첫댓글 선배님 또 좋은 책 소개해주셨네요.
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지난번 소개해준 박노해 걷는 독서는 너무나 큰 선물이었어요.
머리맡에 두고 보고 또 보게 되어요.
짧은 글 속에 응축된 수없이 많은 언어를 유추하며 가슴에 새기고 있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참으로 대단한 분이세요.
마지막수업도 읽고싶어지네요.
선배님 늘 감사합니다.
저를 벌써 반성 모드로 몰아세웠답니다. ^^
기대 이상으로 편안하고 고마운 말씀이 많네요. 무력한 마음이 생길때마다 열어보려고요.
다시 펼쳐봅니다.
" 이 대화가 노동이 될래? 예술이 될래? 그게 자네에게 달려 있네. 책 나와보면 알겠지.
자네가 노동한 건지, 예술 한 건지. 쫄지마.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말을 나눴어.
내년 3월이며 나는 이 세상에 없을 거야. 그때 책을 내라고. 살아 있을 때는 내지마.
살아 있을 때 내면 내가 멋쩍잖아. " (182쪽)
3일 동안 제주도 여행하고 왔는데
그곳에 소심한 책방이 있더라고요.
거기에서 이어령 <마지막 수업>을 안고 왔습니다.
천천히 꼭꼭 새기며 읽으려고요.
선배님, 늘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산옥 잘 했어요. 제주 여행 좋았겠어요. ^^
@노정숙 함께한 동행자들이 좋아서 그런지 정말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이명진 샘이었어요.
얼마나 잘해주시던지 행복 1포인트 더 큰 행복을 누렸습니다.
@김산옥 여행에서 중요한 게 동행자죠. 이명진 샘이 게스트하우스를 하는군요. ^^
나는 죽을때 아름다운 지구를 놓고 죽는게 아쉬웠어요.
모든 행복됨을 다시 돌려 주려는 이어령교수님의 따뜻한마음.
반성중 반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