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 다녀온 사진을 정리하는 도중 김진숙의 시집 ‘미스킴라일락’을 부쳐왔다고 집사람이 갖고 들어온다.
지난 1월말 제주작가회의에서 베트남에 다녀왔는데 김진숙 시인이 부군(夫君)과 동행했었다. 부부는 비행기를 타고 오가는 긴 시간은 물론 자투리 시간에 준비해간 책을 열심히 읽으며 메모하고 나서 그 내용을 나누며 즐기는 걸 보았다. 그렇게 열심이더니, 이번 시집에 참한 글을 많이도 썼다.
요즘 내가 백내장으로 오른쪽 눈이 부실하여 사진을 찍어도 눈에 비치는 것처럼 흐릿하다. 그래도 배경이라도 되라고 나은 걸로 몇 장 골라 작품과 같이 싣는다.
♧ 김진숙은
1967년 제주 성산읍 시흥리 출생 1990년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2004년 제주시조지상백일장 당선 2006년 <제주작가> 신인상 2008년 <시조21> 신인상 현재 제주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 미스킴라일락
들리네요, 화분 속에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
눈물로 피고 지던 기지촌의 꽃밥 한 술
미스 킴 혼혈의 언니 라일락이 웃네요.
---------- * 미스킴라일락 : 해방직후 식물채집가 미러교수가 북한산에서 수수꽃다리 종자를 채집, 미국으로 건너가 개량하여 만들어진 꽃
♧ 소나기
내 몸을 훑고 지났다
토란 잎 우산 쓰고
지금 누군가 울음을 뚝, 그친 것 같다
싸늘히 놓쳐버린 손 치자꽃이 또 진다
♧ 따뜻한 초승
어둑한 귀갓길이 초승달 따라 간다 오래 뜬 별 하나가 전조등을 켜놓은 하늘가 한 뼘의 거리 은비늘이 반짝인다.
고모댁 불 꺼진 방 안부 살피던 이웃처럼 복사꽃 청상의 그늘 혼잣말을 엿듣다가 발걸음 차마 떼지 못하고 그렁그렁 뜨는 밤.
제주 바다 물속 어디 당신 몸 뿌리셨나 배고픈 아우 찾아 떠먹이던 숟가락 열아홉 한 술의 온기 초승달이 떠 있다.
♧ 오리 날다
나, 이제 병든 계절을 지우려 한다
무심히 벚꽃 나리는 버스 정류장 근처, 낮부터 취기 오 른 편의점 간이 탁자에 부르튼 꽃잎 한 장을 잔 속에 얹 다 말고, 잠이 든 중년 남자의 움푹 파인 계절 속으로 때 절은 오리털 파카 그의 기록을 훔쳐본다. 뼈죽이 실밥 사 이로 갓 부화한 오리들과 노숙에 익숙한 꽃들이 깃털 한 장씩 내보이며, 서둘러 꽃을 지우려 한다. 붙임성 없는 봄날,
난만히 세상 밖으로 날갯짓 저 오리 떼
♧ 곱사등의 시
꽹과리 북장단에 제주 오름 들썩인다
가둔 채 울지 못하는
꽃을 위해 너를 위해
알오름 하얀 피로 울어 등이 휘는 억새야
♧ 뜨거운 추상(抽象) 2
눈으로 읽히지 않는 어둠 속 한 페이지
생머리 찰랑거리며 오월 햇살 건너도 파란불 신호 앞에서 걸음 떼지 못한다
나, 언제 어둠의 안쪽 들여다 본 적 있었나
길을 놓치지 않으려 호루라기 부는 여자
성당 앞 횡단보도에 맹인 부부 서 있다
♧ 달
고단한 밤의 안쪽으로 가만 뜨는 섬이네
무른 꽃 진자리 습관처럼 감추고 온
조금씩 지워내야 할 고해(苦海) 속의 저 배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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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김창집
첫댓글 아름다운 시와 풍경이 잘 어울립니다. 다시 축하축하요~~
회장님, 애쓰셨습니다. 시와 사진 배경이 잘 어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