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의 자동차 페티시] 고성능 SUV에 회의감이 있다. 아니, 있었다. SUV의 미덕과 고성능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굳이, 왜. 빠르게, 짜릿하게 달리려면 그에 합당한 형태가 있다. SUV는 어쩔 수 없이 공기역학에서 손해다. 공기를 찢는다기보다 뭉개면서 가야 한다. 게다가 키가 높은 형태라 기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다시 굳이, 왜. 다다익선의 관점에서 보면 좋기야 하겠지만.
시중에 군림하는 고성능 SUV는 꽤 있다. 포르쉐 카이엔,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 그리고 빼놓으면 아쉬울 BMW와 벤츠의 M과 AMG 모델들. 각 고성능 SUV마다 내 선입견을 재조정하기 충분했다. 그중에서도 X6 M을 손꼽고 싶다. X6 M은 SUV에 고성능이라는 ‘잉여’를 투여했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 알려줬다. 생김새부터 거동, 감각까지 새로웠다.
X6는 알다시피 BMW가 내놓은 쿠페형 SUV다. 멋을 챙기기 위해 뒤를 깎았지만, 솔직히 멋지진 않다. 대신 보다 다부져 보인다. X5의 덩치를 훈련하고 훈련해 지방을 쏙 태웠달까. 뒤가 깎여 더 탄탄한 근육질로 느끼게 한다. 울룩불룩한 전면과 이어지면서 험상궂은 들짐승이 떠오른다. 멧돼지나 뭐 그런. 이건 비아냥이 아니다. 멧돼지가 별로면 코뿔소. 강인한 생김새에 차체 크기도 꽤 크니 그 자체로 위압적인 까닭이다. 가족적인 SUV는 X6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X6에 M 배지가 붙었다. M 배지의 의미는 허투루 볼 수 없다. 역동적인 BMW가 자체 검증한 달리기 능력을 손에 넣은 거다. 그러니까 X6 M은 BMW에서 (외모나 성능으로) 가장 과격한 모델이란 뜻이다. 타기 전이라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과격함이 어떤 식으로 운전자를 쥐고 흔들까? 고성능 SUV의 존재 이유를 깨닫는 단초일 수 있다.
X6 M은 품이 무척 넓다. SUV로서 쾌적한 시야와 넉넉한 공간이 있다. 그럼에도 폭발적으로 튀어나가는 박력도 넘친다. 흡사 도로를 접으면서 달려 나가는 축지법이라도 쓰는 듯하다. 그런데 실내에선 지극히 편안하다. 밖에선 괄괄한 배기음이 도로에 울리겠지만, 실내는 고요하다. 두 가지 상충되는 느낌이 동시다발적으로 온몸을 휘감는다. 덕분에 뭐든 할 수 있을 듯한 자신감이 솟는다. X6 M 속에선 도로를 호령하는 장군이라도 된 듯하다. 고양감이 솟는다.
X6 M을 타면 느낀 고양감의 근원은 어디일까? 그것이 아마 고성능 SUV의 장점이자, X6 M의 매력일 테다. 하나씩 조합해보면 위용이 아닐까 싶다. 생김새에 느껴지는 위용, 달릴 때 전해지는 위용, 그 안에서 운전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위용. X6 M은 생김새부터 과격하고, 달릴 때는 그 과격함 못지않은 흉포함을 표출한다. 그러면서 강렬함을 부리는 당사자는 지극히 편안하다. 강렬한 무언가를 손쉽게 휘두를 때 느끼는 감정이라니. 그 모든 것이 위용이라는 단어에 스며들어 운전자를 만족시킨다. 단순히 출력이 높고 덩치가 큰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마치 ‘치트키’라도 쓰는 듯 모든 게 수월하다. X6 M을 운전하면 그런 기분이 든다. 강력한 거대 기계를 조종한다는 특별함마저 들게 한다. 이런 점은 SUV를 타는 것만으로는 느낄 수 없다. 꼭 고출력이 밑바탕에 깔려야 한다. 고출력을 쉽게 부릴 수 있는 기술력 또한. 스포츠카와 SUV의 장점만을 뽑아 버무리면서도 그들과는 다른 감각을 형성했다. 고성능 SUV, 특히 X6 M이 제공하는 매력이다. 도로를 호령하려면 단지 빠르기만 해선 부족하니까.
SUV에 굳이 M 배지를 붙여야 할까 싶던 게 사실이다. 과잉일 거라 생각했다. 아니, 라인업을 위한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사람의 욕망은 만족할 수 없다. 한 발짝 더 내디디니 세계의 폭이 넓어진다. X6 M을 타보면 브랜드의 선택 혹은 시도에 흡족해진다. X6만으론 줄 수 없는 세계로 인도한다. X6의 외모도 M 배지를 달고 나니 더 어울린다. 이제야 외모가 산다.
지금도 가끔 X6 M을 탄 순간을 떠올린다. 시동을 걸고 도로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일련의 과정들. 자동차가 줄 수 있는 다양한 감각을 한데 그러모아 전달하는 넉넉한 품. 그 감각에 도취돼 한껏 달린 기억들. 각 극단이 조합되면서 형성된 위용이라는 비일상적 단어. X6 M은 분명히 누구에게나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걸 매일 타는 사람이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