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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의 장미(I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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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좌 스크랩 30강 사도행전 (18) - 에베소서 2
최재구 추천 0 조회 10 11.08.09 09: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에베소서 1장 15절 이하 보겠습니다.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가장 장기간 정성을 쏟았던 교회죠? 거기서는 단지 그저 한 교회만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교회들을 개척했고, 또 그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성경을 강론해서 두 해 동안 했다는 것을 볼 때, 일반 성도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사역자들을 길러냈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쩌면은 최초의 신학교와 같은 그런 곳이 바로 이 두란노 서원이었어요.

 

 

사실은 여기 우리가 이 모임을 할 때, 처음에는 경상대학의 교실을 빌려가지고 두란노 아카데미, 두란노 서원 이렇게 이제 했는데, 하용조 목사가 서울에서 크게 또 해버리니까, 지방에선 또 그냥 들어가야지 어쩝니까. 그 뒤에 이제 생각다 못해가지고 에스라 성경연구원이라고 했더니, 성서 유니온에 계시던 윤종하 장로님이 에스라 성경연구원 대학원 대학교를 또 만들어버렸어요. 지방은 또 뭐 서럽지 또 뭐 들어가야지 어떡합니까 또. 또 양보하고 그래 이제 에스라 성경학교로 하려니까, 바로 학교법에 저촉된다는 거예요. 에스라 성서학원 하면 또 학원법에 또 걸려요 또.

 

그런데 하우스는 괜찮답니다 하우스는. 하우스는 뭐 비닐하우스부터 화이트하우스까지 다 있으니까, 그래 에스라하우스라고 했는데, 그 때는 이제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ezrahouse.org라고 하는 도메인을 갖다 확보하고, 그래 이제 에스라하우스, 에스라하우스 하다보니까, 이제는 뭐 에스라하우스는 누가 가로채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특허청에 이제 등록을 했습니다. 에스라하우스라는 이름을 아무도 쓰지 못하게. 그리고, 에스라성경강좌라는 것도 쓰지 못합니다 아무도. 등록을 해놨어요. 제가 또 뭐 촌사람이 등록할 줄 알게 또? 모르니까 가만히 있었는데, 특허청의 사람들이 내려 왔어요. 와가지고 여기 참여하고는 은혜 받고는 노 목사님 하는 것 보니까, 결국 다 뺏기겠다는 거예요 보니까. 하다가 다 뺏기고 다 뺏기고. 그러니까 특허청 직원이 와가지고 여기서 은혜 받고 가가지고 자기가 경비 내가지고 등록해 놨어요. 그래서 에스라하우스하고 에스라성경강좌는 등록이 돼 있고, 또 제가 지금 강의하는 이런 내용도 지금 뭐 특허 신청을 해놨을 겁니다. 아무도 이런 내용을 가지고 제 꺼라고 해서 팔아 먹거나, 이런 내용을 배워서 강의는 할 수 있는데, 자기 것처럼 해가지고 팔아먹는 그런 일은 못하게 해야 돼요. 그렇게 수속을 밟고 있어요. 어떤 사람이 여기서 배운 걸 갖다가 토시도 안 틀리게 그대로 해가지고 거금을 받고 팔아 먹는데 뭐라고 팔아 먹느냐, 자기가 독일 가서 배워왔다고 그러면서 팔아 먹어. 아주 홈페이지도 거창하게 만들어 가지고. 내가 독일 가서 한 번도 강의 한 적이 없는데. 그래서 참 씁쓸해서 세상이 좀 그렇구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여기 바울이 에베소라는 지역에서 일한 후에 떠난 지가 제법 됐죠. 그래서 15절 보면은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듣고,'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고, 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어야 되겠고, 사람이, 이 세상 사람이 죄인도 있고, 허물도 있고, 죄도 있고, 실수도 있고 하지만요 그래도 사람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을 너무 못 믿으면은, 인간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요 일 못해요. 그래서 저는 살아가면서 몇 번을 사람을 너무 믿었다가 뭐 속은 거죠. 속고 이제 참 피해도 입고 했는데, 그래서 참 까딱하면은 사람을 못 믿겠다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겠더라니까 보니까. 그런데 그렇게 되면 내가 더 비참하고 내가 더 불행해질 것 같아요. 속을 때 속더라도 믿어야 되는 거지. 사람을 믿지 않거나, 사람을 사랑하지 않거나 하면은 우리가 정말 비참하게 됩니다. 믿어야 돼요 사람도.

 

여러분, 하나님도 우리 인간이 얼마나 약하고 얼마가 죄가 많고 허물투성이고 그렇지만은 하나님이 인간을 믿어준다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믿었기 때문에, 내 양을 치라고 한 거 아니에요? 실수하고 뭐 예수님을 배반하고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아 이렇게 했던 사람인데, 예수님 또 믿어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속을 때 속더라도 믿어주고, 여러분, 믿어야 사업도 하고, 믿어야 결혼도 합니다. 결혼도 같은 것도 못하는 게 상대방을 못 믿겠다는 거야. 내가 너를 어떻게 믿냐, 그럼 평생 혼자 살아야지. 사람을 못 믿으면 비행기 못 타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을 못 믿으면 KTX 그 빠른 걸 어떻게 타 그거. 그러니까 사람을 믿어야 사람이 만든 기계도 믿고 사람 목숨을 맡기는 건데, 그러다가 뭐 속을 수 있습니다 속는데. 그런데 그래도 믿어야 돼 그래도. 속을 때 속더라도 믿어야 되는 거요. 그래서 믿음과 사랑, 여러분, 사람이 믿음이 없고 사랑이 없다면은 전혀 행복할 권리가 없어요. 그래서 뭐 인생을 이만큼 살고 나서 내린 결론인데, 사람은 사람 세상이, 뭐 인간 세상이 다 원죄로 말미암아 오염되고 타락 되었지만, 그래도 사람을 믿어야 되고, 또 사람을 사랑해야 돼요.

 

여러분, 사랑을 받아서도 행복하지만은 사랑해야 행복합니다. 사랑 받는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행복해요. 어떤 때는요 비록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라도 사랑을 해야 행복해요. 옛날에 누구 시가 있죠, ‘사랑하였음으로 행복하였네’라 그런 시가 있지요. 누구의 시죠? 아, 또 시를 또 안 보는구나, 성경을 안 보려면 시라도 봐야지 그래. 영화도 안 보고, 성경도 안 보고, 시도 안 보고, 뭘 보는 거예요? 도대체가. 사랑하였음으로 행복하였네라,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받아서가 아니고, 사람 혼자 짝사랑만 해도요,

 

사실은 하나님도 여태까지 짝사랑이야 거의 다. 인간들이 뭐 하나님 사랑을 알아야 말이지. 그냥 하나님은 그냥 짝사랑해요. 그래서 저는 뭐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아무도 믿지 않는 것보다 속을 때 속더라도 사랑하고, 믿고 그렇게 살아야 돼요. 여러분, 결혼한다는 것은 사실은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랑은 아직 시작도 안 해봤어요 그거는. 믿는 거야, 믿는 거, 믿고 그냥 결혼하는 거예요 처음에. 믿고 결혼해가지고 그 때부터 사랑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사랑은 평생을 해도 다 못할 정도로 엄청난 일이예요 그게. 어떤 분의 말에 사랑은 종합계약서라는 거야. 사랑한다는 거기에 뭐 빨래하는 것도 다 들어있고, 밥 해주는 것도 다 들어있고, 그거 여러 가지 다 종합계약서입니다 그게. 그러니까 결혼하기 전에 사랑하는 게 아니고 믿는 거야, 믿는 거. 믿고 그 다음에 이제 결혼해가지고 사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하기 때문에가 아니고 사랑하기 위하여 결혼한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 듣네 보니까.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그래서 ‘그 성도를 향한 사랑,’ 여러분, 이 교회가 성장하는 데는요 다른 게 없습니다. 사랑하면 성장해요. 여러분, 우리가 너무 인정과 사랑이 메말라버렸기 때문에, 거기에 사람이 오지 않습니다. 사랑 없는 곳에 사람이 오지 않아요. 그래서 사랑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다가오고, 끌려오고 하는 거죠. 그리고 사랑의 향기를 발산하지 않으면요, 어떤 사람도 다가오지 않습니다. 사랑의 향기를 발산해야만 나비가 날아오든지, 벌이 오던지, 뭐 오는 거죠.

 

그래서 사도바울이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걸 보고 아 이건 진짜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사랑과 믿음은 진짜다 하고 이제 감사하기를 마지 않는 거야.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믿는 것도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기독교의 신앙이라는 것은 적극적인 사고방식, 뭐 할 수 있다, 이런 게 아닙니다. 맨날 할 수 있다 하신 이여 어쩌고 하는데 할 수 있다는 게 아니고, 관계예요 관계. 인격적 관계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신앙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인격적 관계이기 때문에, 인격적 신뢰로써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고, 그 관계의 완성은 사랑으로 완성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있다 하면서도 사랑이 없다는 것은 그건 믿음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에요.

 

1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이라고 하는데 정신이 아니고 원문을 보면요 영입니다 영.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려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야만, 지혜와 계시의 영이 성령이죠? 영을 주셔야만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는 거야. 또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래 상당히 이야기가 영적이죠? 전부 다.

 

육체의 눈이 아니고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이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여러분, 만물 위에 교회가 있고 교회 위에 교회의 머리로 예수님이 계시다는 거죠.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그래서 바로 이 에베소서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다루는 그런 편지죠.

 

다시 한 번 그 은혜를 한번 소급해서 생각해 볼 때, 2장입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 그 때는 이제 그리스도의 밖에 있을 때,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거기 줄을 그어 봐요. 이 세상 풍속을 좇아가면 안 됩니다. 얼마 전에 뭐 정월대보름이라고 잡곡밥하고 뭐 나물 뭐 해먹고 해 먹었죠. 우리는 일부러 그런 거는 그리 안 합니다. 딴 때 해먹어버려요. 동지에 보통 팥죽을 끓여 먹는데, 우리는 다른 때 끓여 먹습니다 일부러. 그런 풍속 거기서 자유하려고. 그리고 추석에 송편 안 먹고, 설에 해 먹어요. 거꾸로 해버려요. 그래서 우리 집 애들이 학교 가서 시험 문제를 틀린다니까. 풍속, 그런 모든 세상 풍속은 냄새도 싫어하니까. 그래서 미풍양속이 없습니다. 대부분 풍속이라는 것은 다 그 풍 자가 바람 풍(風) 자인데, 그 풍자가, 프뉴마라는 게 다 영이예요 영. 어떤 악령들이 만들어낸 그런 그 풍속들은 따라가면 안 돼요.

 

그래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그리고 풍속을 좇아갔는데 알고 보니까 풍속 위에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그게 누구죠? 마귀야 마귀. 그래 알고 보니까 우리가 마귀를 따라 살았다는 거죠.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서,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 본질 자체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여기 괄호에 있는 이야기는요, 더 이전 사본에는 괄호 안에 있는 것은 없는 거야. 그래 이건 자꾸 후대에다가 후대 사본에서 이런 게 나오는데, 이 사본 만든 사람이 이게 너무 감격스러워가지고, 거기 괄호 열고 그러니까,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하고 그 말이다 하는 것으로 깨달은 걸 지금 거기 조금 노트를 했는데, 그것까지 본문에 끼어 들어버렸어.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거기 줄을 그어 봐요,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이라고 하니까 어때요? 예수님 재림이 많이 멀어졌죠? 벌써 이 바울의 문체 속에 아 예수님 재림의식이 바울에게서 아마 가물가물하게 멀어져 갔구나 하는 것을 이제 본문을 정밀히 보면 느껴진다는 거야. 한두 번 봐서 안 보입니다. 여러 번 보고, 또 여러 번 보고 자꾸 보고, 또 보고, 계속 보고, 자주 보고 이렇게 해야, 이제 이게 보이는 거야. 한두 번 봐서 이거 안 보여요 이런 게.

 

너희가, 8절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 뭐 우리의 능력이나 무슨 뭐 우리 공로나 이런 게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거예요.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가 뭐 착한 일 많이 해가지고 구원을 받은 그런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 받은 것, 아무도 자랑치 못하게 하려고 한다는 거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선한 일을 했기 때문에가 아니고, 선한 일을 위하여. 그래서 이제는요 예수님을 믿어서 내가 하나님의 선택함을 입었고, 하나님께로부터 예정돼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면, 그 아들답게.

 

자 이거 봐요. 앞을 보세요. 사람이 자기가 누구냐고 하는 그 정체성에 따라서 자기 인식에 따라서 그 행동과 말과 의식과 행동과 이 뭐 전체가 달라져야 돼요. 내가 만약에 거지 아들 같으면요 거지 같이 살면 됩니다 그냥.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대통령 아들이라면요, 좀 조심해야 되요 그렇죠. 대통령 아들이라면 조금 조심해야 되겠죠. 거기다가 만약 하나님 아들이라면 어때요? 예. 굉장히 조심해야죠. 우리가 보통 분의 아들이 아니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그래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은 자들이라. 그 때에,’ 계속 바울이 그 때를 이야기 하고 이제를 하는데,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어때요. 그 때는 그랬죠? 그거는 그때고 이제는 어때요?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이 둘로 하나를 만든다는 것은 유대인과 우리 사이는 전혀 이게 하나가 안될 사이인데, 예수님께서 그 피로 우리를 가까워지게 한 거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너희도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래서 이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래서 앞을 보세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면은 그 구약시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순간에, 운명하시는 순간에 성소 휘장이 쫙 찢어졌다는데 그 이전까지는 돌로 만들어진 그런 전을, 그런 성전을 하나님께서 자기 성전 삼으시고 거기에 이름을 두셨는데, 이제는 돌로 만든 곳에 하나님이 거하고 싶지가 않고 무엇으로 만든 집에 거하고 싶냐하면요, 사람을 가지고 만든 집. 사람을 가지고 만든 집에 하나님이 거하고 싶으시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뭐냐하면요, 예수님이 모퉁이 머릿돌이고 우리가 전부 산 돌, 우리가 전부다 하나 하나가 살아있는 돌, 리빙스톤이죠. 살아있는 돌로 연결되는 거예요 우리가. 이 한사람 한사람이 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반석이시고, 그 위에 베드로가 또 돌 중에 돌인데, 페트‘로스’라는 것은요 반석이 아닙니다. 반석은 예수님이 반석이야, 페드‘라’. 페드‘라’가 반석이고, 페트‘로스’는 돌입니다 돌. 그 예수님이 반석이고, 그 반석 위에 페트로스가 돌이고, 우리도 다 같은 돌이 되어서, 쭉 연결되어가지고 살아있는 돌, 우리 모두가 다 살아있는 돌로써 연결되어서 성령이 거하실 만한 집이 되어 가는데 그 집이 교회라는 거예요 교회.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무나 돌로 된 이런 집안에 거하시는 게 아니고, 교회라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 신령한 집. 사람 사람이 연결돼 가지고 예수님이 모퉁이 머릿돌이 되시고, 그리고 베드로는 그 안에 또 돌이 되시고, 이렇게 이루어진 이런 집, 이런 그 모임 중에 하나님이 거하고 싶다는 거야.

 

여기까지 이야기하다가 3장에 보세요. ‘이러하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하고는 점점점점 이렇게 되어 있죠? 왜 이렇게 되어있냐면 바울은 하고 계속 불러줄 줄 알았는데 안 불러주는 거예요. 그래서 한참 받아쓰던 사람이 쳐다보니까, 바울이 얼굴에 눈물이 콱 차올라가지고 말을 잊지 못해가지고 한참 자기를 추스르고 있는 거야. 그래서 이제 기록하는 사람이 볼펜 뱅뱅뱅뱅 돌리고 앉았다가, 이럴 땐 어떻게 하는가 하고 있다가 점점점점을 찍어 놓고, 바울이 눈물이 다 이렇게 좀 마를 때까지, 한참. 바울이 직접 기록했으면 이 글자 다 버린 건데 직접 기록하지 않고 비서가 썼기 때문에, 점점점 이렇게 돼 있는 거예요. 얼마나 감격하면서 쓴 거야.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다.’ 이렇게 계시로서 이런 비밀을 알게 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앞을 보세요. 이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교회라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이야. 무슨 비밀이냐.

 

잘 보세요. 오늘 저녁에도 이게 참 유감스럽게 달이 밝아가지고, 달빛이 너무 밝아서 별이 안 보일 것 같은데, 언제 여름이나 언제 한번 오면요, 달이 없을 때 집회를 하게 되면은 별이, 그야말로 이건 참 주먹만한 별들이 막 바로 머리 위에 있는 것 같아요. 하늘이 맑아가지고. 요즘 제가 그런 별을 보러 안 나가는데, 전에는 참 별을 보러 많이 나갔어요. 여름 밤 하늘에 제가 저녁을 먹고 나서 그 때는 동네에 전기도 안 들어왔을 때니까, 등잔불 뭐 방에 켜놔 봐야 뭐 전혀 빛이 안 새어 나오니까, 들판 쪽에 낮 동안 뜨뜻하게 데워진 그 바위에 등을 대고 있으면요.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어요. 시원한 게. 그렇게 누워서 밤하늘을 보면은 그렇게 별이 많은 거야. 그 많은 별을 보면서 저 별 너머 별, 별 너머 별, 또 저기 저 넓은 광대무변한 세계는 어떠한 세상이 있을까 하고 끝없는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펴는 거죠. 한편 그렇게 또 깊은 어둠 속에 그 큰 산, 바로 이제 뒤에 지리산이죠? 그 큰 산 깊은 골, 깊은 밤 속에는 무슨 일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하고, 또 한없이 상상의 나래를 펴고 그러다가 잠이 들고, 그러는 거죠. 그래서 그 별들의 세계를 나중에 이제 어려서부터 이제 별에 관심이 있어가지고, 결국은 천문학 쪽으로 관심이 있어. 이런데 또 책을 보게 되고 그래 보니까, 이게 뭐 어마어마한 우주라는 게, 여러분, 우리가 은하계라고, 우리 지구라는 별이 태양계가 있고, 태양계는 또 은하계 안에 속해 있는데, 은하계가 얼마나 크냐. 은하계가 이렇게 있으면요, 은하계 이 직경을 가로지르는 데 10만 광년이야. 이야~ 여러분, 말이 1초에 33만 킬로미터 나가는 빛의 속도로 10만년 날아가야 돼. 그런데 그러한 우주가 그 은하계에는 여러 수천억 개의 별들이 있는데, 그런 우리 은하계만한 이런 은하가 또 이 우주 안에 또 수천억 개가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게 많은 별들을 창조하신 그 크신 하나님이 그 많은 별들을 다 운행하시고, 천군천사가 다 동원되고, 그리고 구약시대에 그렇게 예언자들이 목숨을 바쳐서,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열 두 사도 중에 열 한 사도가 다 순교하면서, 수많은 선교사가 순교하면서까지, 어떤 또 무슨 목사가 또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이렇게 성경을 가르치고 뭐 이렇게 해가지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려고 하는 그 우주적, 궁극적 목적이 뭐냐, 질문이 너무 큰가요? 그래 그런 고민을 안고 이제 성경공부를 하는데 답이 주어졌는데, 그 답이 뭐냐 하면요, 교회를 세우는 거야.

 

아까 이야기 했죠. 그 많은 별들, 그 광대무변한 우주세계 다 운행하고, 천군천사가 다 동원되고 그 예언자들이 그렇게 구약시대에 일생을 다 바치고 순교하고 독생자가 피를 쏟아 붓고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역사하셔가지고, 사도들이 다 순교하고, 그 많은 선교사들이 피땀 흘려서 그렇게까지 해서 이루시려고 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이명박 장로님이 대통령이 됐는데, 대한민국 정부도 물론 뭐 중요하죠. 중요한데.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나, 미국 정부나, 유엔이나 그것보다 훨씬 크고 영원한 것이 교회라는 거예요 교회. 그리고 이 정부라든지 아니면 국회라든지, 사법부라든지 이런거는 뭐하러 있느냐. 이거는요, 하나님께서 그 궁극적으로 성취하려고 하시는 이 교회, 교회가 완성될 때까지 인류의 역사 가운데 질서가 유지 되어야 하고, 행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임시로 있는 것입니다. 전부 이거 정부라든지 이런 거 다 임시입니다 임시. 임시고, 영원한 것은 교회 밖에 없어요. 모든 나라는 다 임시야 임시. 그리고 영원한 나라는 우리 하나님의 나라, 곧 바로 교회죠 교회. 땅에 있는 하늘나라, 교회. 그래 이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행정이 필요하고 질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가 있고 국회가 있고, 그리고 사법부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제가 요즘은 뭐 제가 좀 그리 못 했는데, 어떤 교회 집회를 가면요, 장로님들 명함부터 싹 가져오라 그래요. 그래서 받아가지고 전부 제가 집회 기간에 다 고치라 그래요. 그래 명함에 앞면, 앞면, 전면 칼라 페이지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샤론교회 목사, 장로, 집사, 교사 뭐 누구누구 이렇게 하고. 자기 직장은 뒤에 흑백으로 이제, 부업으로 뭐 삼성에 나간다든지. 교회에서 맡은 직분이 우선이고, 그 교회에서 맡은 직분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세상에서 여러 이런저런 경제활동도 한다. 이렇게 돼야 정상이야. 여러분 그러니까 여러분, 교회에서 맡은 지극히 작은 그 직분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우주적 궁극적 목적에 우리가 동참하는 거야.

 

거기 쓰임 받는다 하고 생각하니까, 바울이 감격해 가지고. ‘이러하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하면서 말을 잊지 못했다니까. 그래서 4절에 보면,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이런 비밀을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한 적이 없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이런 이방인들까지도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유대인과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이거는 뭐 바울이나 되니까 이런 말을 하지 일반 유대인들로서는요,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방인은 부정한 짐승인데 무슨 소리야 하고 이렇게 나올 텐데, 바울이 다 깨져버렸어요.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나니까, 제가 이런 걸 볼 때, 바울은 제대로 그 계시를 받은 사람이에요. 진짜 참 하나님 말씀 바로 들은 사람이죠.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여러분, 구경꾼이 되지 말고 일꾼이 돼야 합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우리가,’

 

보세요. 우리가 우리 행위나, 우리 업적이나 이런 걸 가지고는 참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가지를 못해요. 뭐 해놓은 게 있어야 말이지. 여러분, 혹시 뭐 여러분 교회가 예배당을 크게 짓는다고 큰 소리 치고 싶으면요, 비행기 타고 올라가서 내려다 봐. 성냥통 만해. 성냥통 만해. 하나님께서 볼 때 그런 거는 너무 하찮은 거예요 그게 다. 그런 거 업적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궁극적 그런 계획에 동참하는 자로 우리가 하나님께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한 것을 알기 때문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거예요.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은 사도바울이 지금 뭐 갇혔다 하는 것, 이게 뭐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영광스럽다는 거야. 그리고 찬송하리로다 한 거 봤잖아요. 첫 마디부터. 이러하므로 내가, 14절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아이고 문장이 얼마나 긴지. 신약성경 중에 문장이 제일 문장이 긴 게 바울의 문장들이에요. 이 바울은요 걸어 다니는 성경이라 그냥. 성경 제조기. 걸어가면서 그냥 말을 불러주면 성경이 되버린다니까. 얼마나 충만한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앞을 보세요. 여기까지가 교회론의 이론편입니다 이론. 교회론의 이론편이고 4장부터 그러므로 하면서 실천편으로 넘어갑니다.

 

자, 그렇게 우리가 예정을 입어서 교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동참되는 사람이라면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느냐, 어떤 생활이 따라야 하느냐, 어떠한 실천이 이어져야 하느냐, 이런 이야기를 이제 4장부터 다루는 거야. 여러분, 제가 볼 때, 앞을 보세요. 제가 볼 때 에베소서 같은 걸 가지고 설교하거나 강의하는 건요, 지금 제가 하는 정도로 하면 딱 돼요. 이것보다 더 짧으면 너무 그냥 부실한게 될꺼고, 더 길면 그야말로 참 짜증나는 거야. 편지를 읽어주면서 이런 정도 읽어주는 것이지, 이걸 갖다가 에베소서 가지고 6개월씩 하고 그리 하는 게 아닙니다 그거는요. 제가 일부러 지금 편지를 읽어준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하고 지금 모범을 한번, 시범을 보인 겁니다.

 

4장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거 행한다 하는 데에 줄을 그어 보세요. 행한다 할 때 제일 행함에 성도의 삶의 맨 기본자세가 있는데, 그게 뭐냐면요 겸손과 온유야. 그런 건 정말 줄을 그어야 되겠죠?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그 다음에,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그러니까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사랑, ‘그리고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그 은사를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그 예수님께서,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 여기 목사라고 번역했는데 이건 의역입니다. 포이메나 라고 하는 헬라어는 목사가 아니고 목자. 목자. 양떼를 지키고 돌보는 사람 정도데, 우리가 이제 기독교에서 지키고 돌본다 하는 것으론 미흡하다 그래서 교사직을 갖다 좀 보태야 되지 않겠느냐, 지키고 돌볼 뿐 아니라. 이게 정말 동물 같으면 뭐 지키고 돌보면 되는데, 이거는 가르친다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목자에서 목사로 이렇게 만든 거예요. 그 다음에 이제 교사를 주셨다는데,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몸이 곧 교회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러니까 우리 사도나 선지자나 복음 전하는 자나, 목사나 교사가 다 하는 일은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거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서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서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또한 스스로 세우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여러분, 이제 우리 생활이 말이요, 좀 달라져야 돼.

 

‘이제부터는 이방인들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이 이방인들은 총명이 어두워지고,’ 멍청해지고, 미련해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으면 그게 죽음이에요 죽음. 그 결과는 ‘저희가 감각 없는 자가 되어서 양심이 마비돼 가지고 양심이 화인 맞아서 감각 없는 자가 되어서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런 식으로 배우지 아니하였다’는 거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면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옛 풍속,’ 풍습 좀 다 벗어버려야 돼. 완전히.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의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러니까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을,’ 뭐 사람이 분을 낼 수 있지만은 죄를 짓는 데까지 가면 안되고, 또 해가 지도록 분을 품고 있으면 안돼. 왜냐면 그렇게 하면 마귀가 틈을 타니까.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막 어떤 사람은요, 자다가 흑~흑~허~~ 서러워가지고 막. 그러면 곤란해. 그럼 딱 귀신 들기 좋은 거야. 귀신 들어가기, 그게. 빨리 풀어야 돼 그거.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뭐 우리가 우리 주제에 분수를 생각하면 그거 서러워 할 것도 없어요. 사실요. 그러니까 어지간하면은 그런 분을 안 내면 좋고, 분을 내도 죄를 짓지 말고, 또 밤이 맞도록 밤이 새도록 분을 품고 잠을 자거나 그러면 곤란해. 그럴 때 아주 영적으로 위험합니다.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지나치게 노하거나, 지나치게 놀라거나, 이런 절제를 넘어섰을 때 이런 감정에 충돌이 오는데, 이건 아주 위험합니다. 그래서 이 절제한다는 것은 자기 감정을 잘 처리해야 돼. 너무 슬퍼하거나, 너무 놀라거나, 너무 화를 내거나 이런 건 어렵다는 거야. 그러면 아주 어려워져요.

 

그 다음에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지금 우리 보고요 하나님을 본받는 자 되라는 거예요 지금. 수준이.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어디까지 왔다 할지라도 이만큼이면 됐다 이런 것 없습니다. 이만하면 됐다가 없고 어디까지 왔든지 계속 앞으로 전진해야 돼. 우리의 목적은 예수님 만큼 되는 거니까.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간단하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 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여기 세월을 아끼라는 말이요 기회를 되찾으라, 기회를 속량하라, 기회를 사라, 이런 말이예요.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그러니까 우리가 결혼한다는 이 자체가 신학 중에 신학이야. 부모를 떠나서 남자가 자기 아내와 합하여서 한 몸을 이룬 것처럼 예수님께서 교회와 한 몸을 이루는 것하고 유비가 있다는 거죠. 그 안에 그런 아날로기가 있다는 거죠.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자 여기 보세요, 그 어떤 분에게 내가 들었는데 이런 말을 해요. 결혼해가지고 평생을 살았는데, 한 번도 남편이 존경이 안 됐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존경이 되지 않는 사람하고 살아보니까, 그 남편으로부터 오는 사랑이 사랑으로 이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야 이게. 그래서 제가 보통 교만이 아니다 이게. 그런 생각도 들고. 또 남편들이 아내에게 존경 받도록 살아야 돼요. 그러니까 남편이 아내의 사랑을 받는 것은 존경 받도록 삶으로써 아내의 사랑을 받게 되는 거야. 존경과 사랑 이렇게 묶여져요.

 

그 다음에 반대로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으려하면요 순종과 사랑이야. 이게 굉장히 아주 절묘한 조화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에게 바치는 사랑은 남편이 정말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아서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 그게 정상적인 사랑이고, 또 반대로 그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요, 그런 그 순종과 사랑을 해야 돼. 이게 안 되고, 지금 요즘 부부들은요, 전혀 이런 개념이 없어가지고 무조건 남녀 평등이니까, 왜 아내만 순종해야 되느냐, 그러면서 계속 맞서고 대들고 이제 하다가 이제 여자가 입을 가지고 또 계속 봉사하면, 남편은 주먹으로 봉사하고 이렇게 하면 곤란한 거야. 그래서 저는 그런 면에서 그 남편하고 아내 사이는 좀 차이가 나는 것이 좋겠어요. 너무 비슷비슷하게 해가지고 맞서려고 하니까, 남은 건 싸움밖에 남을 게 없어요. 도저히 싸움이 안 되게, 하나님께서는 그 부부 간에 싸우지 못하게 만들었어요. 보니까요. 남자를 좀 세게 만들어서 여자를 좀 약하게 만들어 놓으니까, 싸우면 한 놈이 죽어버리거든요. 그러니까 싸움이 안되게 만들어놨는데 그래도 싸워. 그래 왜 싸우냐, 여자가 담대해진 거야. 간댕이가 커져가지고. 안 때려죽일 줄 알고 그냥 맘 놓고 대드는 거죠. 그건 미련한 여자죠 그런 여자가.

 

여기 여자가 그런 게 아니고, 여기 고린도 여자가 그래요 고린도 여자가. 에베소 여자가 그렇고. 그 저 쪽에 가면, 다시 말하면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이런 쪽에는 여자가 항상 큰 소리를 쳐요. 남자는 별 볼일 없습니다. 거의 다. 거기 가서 보면 좀 불쌍해. 프랑스도 좀 그래요 프랑스도요. 프랑스 여자들은 뭐 남편에게 밥도 안해 주고 맨 그저 뭐 놀러 다니고 뭐 직장 가버리고 그러니까, 점심시간 되면요 파리에 가보면요. 그 왜 파리바게트라고 있죠. 파리바게트. 몽둥이빵 있잖아. 아이고, 프랑스 그 사내 자식들이 그 몽둥이빵 하나 매고 점심시간에 이리 다녀. 골목에. 아이고 저거 하나 뜯어먹고 때우는가 보다. 등신아 한국에서 태어나지 그래. 그게 93년이었는데, 지금은 뭐 한국 여자도 다 직장 가고 애도 안 낳고, 밥도 안 해주고 엉망이라 지금 한국 여자도. 애도 안 낳고 엉망이죠.

 

하여튼 저는, 우리 아버지하고 어머니는 열 살 차이거든요. 그런 우리 아버지가 열 살 차이인데,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 보고, 이 여자야 하는 말도 안 해봤대요. 참 너무 아름다운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87세까지 향수하셨고, 우리 어머니는 81세 까지 사셨는데, 거의 그냥 얼마 사이 안 나게 돌아가셨죠. 두 분 다. 그래서 어떻든 간에 우리 어머니가 그러하더라고. 나는 너희 아빠한테 이 여자야 하는 말도 한 번 안 들어봤다. 또 우리 어머니가 아주 미인이었어요. 그 때 미스 조선 정도 될 정도로. 진짜 아름다웠어요 진짜. 66세에 이제 결혼 50주년 금혼식을 하는데, 그 때 어머니 나고 나서 처음으로 화장을 해봤어요. 화장을 했는데 66세인데도요 정말 아름다운 거예요. 결혼 50주년. 금혼식. 그리고 그 이후에 10년 더 지나서 결혼 60주년 지냈거든요? 얼마나 우리 그 어머니가 아름다운지, 그런 66세가 되어도 아름다운데, 처녀 때 우리 어머니 열여섯 살 때 결혼했거든요? 열여섯? 원조교제가 아니고 진짜 정식 결혼이라니까. 그래 나이가 차이가 나니까, 우리 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겠죠.

 

그래서 저는 뭐 여자 아내가 다섯 살쯤 아래였으면 좋겠어요. 다섯 살에서 열 살 정도. 그리고 이제 결혼을 빨리 해야 되요. 대개 뭐 여자는 한 열여섯 살. 중학교 졸업하고 결혼하면 제일 좋고. 고등학교를 졸업해 버리면 좀 늙어버리죠. 늦어도 고등학교 졸업하면 결혼해야 되고 아무리 늦어도 22살 넘어가면 안 돼. 여자들의 최고의, 최고 한껏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의 나이를 22살로 봐요. 아무도 안 믿는 눈치네 보니까. 믿거나 말거나. 그러니까 자녀들 기르면서 괜히 뭐 공부 시킨다고 딸들 대학을 보내는데, 대학은 무슨 대학을 가 글쎄. 갈라면 그저 결혼해가지고 갈라면 가라 그래. 그냥 빨리 결혼시켜요 빨리. 여러분, 우리 어머니가 초등학교 문턱도 안 가봐도 7남매를 낳아가지고 아들 목사 둘이나 만들어 내놨잖소. 위대한 분 아니요 그래도. 아이고 둘이서 하나밖에 못 낳아가지고, 그런 사람들은 천국 가면 혼나는 거예요 혼나. 여러분, 사람을 기르는 것이 하나님 기업인데, 하나님의 기업이 사람을 기르는 건데, 두 개 심어가지고 하나밖에 안 나온다면, 만약에 감자 두 개 심었는데 감자 하나 밖에 안 나왔다, 그러면 종자 값도 안되잖아. 그래가지고. 그래 말도 안 되는 거예요 말도 안돼. 우리 교회에서는 아예 4명 이상 낳기로 서약을 해야 각서를 써야 주례 해줍니다. 이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뭐 항상 그래 항상. 그것도 왜 네 명을 표준 삼았냐, 제가 네명 밖에 못 낳아서 그래요. 그래서 많이 낳는 건 상한선 없습니다. 아무리 많이 낳아도 그건 관계 없어요. 제가 알아 보니까 아이를 계속 낳으면요, 50, 60 되어도 갱년기가 없어요. 계속 낳으면 계속 해서 여자 노릇하는 거야. 음식을 이제 우리가 구약성경 있는 대로 레위기대로 잘 가려서 먹고 하면요 그래 건강합니다. 파키스탄 훈자마을 여성들은요, 100세까지 사는데 생리가 계속 있는 거야.

 

6장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앞을 보세요, 우리 육체를 길러주시는 어머니 아버지께 효도하고 공경하면은요 땅에서 장수한다는 거야. 반대로 우리 영혼의 아버지,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를 공경하고 사랑하면요, 장수가 아니고 영생하는 줄 믿습니다.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거야.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알면은 존재할 가치가 있어요. 그러니까 오래 사는 거죠. 은혜를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면 그건 죽어야 돼요 그거는. 그런 건 존재할 이유가 없어요. 그거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여러분, 부모들이 자녀를 까닥하면 화나게 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화나는 거죠? 잔소리 너무 많이 하면 화나는 거야. 그렇죠? 그러니까 절대 잔소리 너무 많이 하지 않도록. 맞는 말이지 그래.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며,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우리 에스라하우스 자주 오시고 하는 그런 교수님 한 분이 계시는데, 아 이 분은 이름이 최정상이야. 근데 정말 그 이름대로 이름 값을 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경주하는 분인데. 뭘 하냐면 산업공학을 전공하는 그런 공대 교수인데, 실제 하는 일은 기업체 경영혁신 특강, 기업들의 어떤 그 기업 경영혁신 컨설팅을 하는 그런 특강을 하는데, 그런 특강 강사가 한국에서 열 명이 이렇게 딱 그렇게 조직되어 있어요. 열 명. 그래 삼성하고 엘지하고 국가정보원하고, 하여튼 최일류 기업 이런데 가서 그런 특강을 하는데, 그 열명이 강의를 다 하고 나면은 강의 들은 사람들에게 설문지를 돌려가지고 어느 강사의 강의가 유익했는지 강의 만족도 조사를 한다는 거야. 근데 조직돼가지고 제일 첫 번째 강의 나가서 2위를 했대요. 2위. 2위를 하고 그 다음부터는 1등을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답니다. 강의 만족도 1위야 1위. 그러니까 그야말로 한국에서 최정상이야. 그 비결이 뭐냐 하면 이 구절이예요 이 구절. 에베소서 6장 7절.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모든 일을 주님께 하듯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기업의 경영혁신 컨설팅 그런 강의를 하면서 눈물로 해요 이 양반이. 그러니까 그야말로 최정상이 된 거죠.

 

9절,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법이 없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 화전은 불화살을 소멸하고. 그러니까 이 디아볼로스 이 악한 마귀가 항상 우리들 마음속에 불화살을 쏘아댑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나의 사정,’ 사정은 사적인 정황은,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 에베소 사람입니다 원래. 두기고가 이 편지를 로마에서 또 에베소로 가져 가는데요.

 

‘두기고가 구두로 너희에게 알게 할 것이다,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찌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찌어다.’ 자 이 구절도 참 놀라운 구절인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찌어다 하고 했는데, 나중에 요한계시록 가서 보면요. 이 에베소 교회가 예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지 못하고,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게 돼요. 그래서 책망을 받습니다.

 

그리고 여기 에베소는 앞을 보세요. 에베소는 사도 바울이 3년씩이나 길게 사역을 해서 제일 아는 사람이 많은 곳인데, 어째서 여기 아무에게도 문안하라는 말이 없느냐, 이것 때문에 또 이제 학자들이 참 고민을 했고, 반대로 로마는 가보도 않았는데, 자기가 개척한 교회도 아니고 가보도 안했는데, 웬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냐, 해가지고 그 로마서 뒤에 있는 그 16장에 있는 그 그것이 에베소서 뒤에 있는 쪼가리가 날아가 가지고 거기 붙은 게 아닌가. 그게 파피루스가 쭉쭉 잘 찢어지고 떨어져가지고 이렇게 굴러다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얘기를 한참 했어요. 진짜로 성경학자들이. 그래 나중에 이제 그게 아니고, 그건 거기 있는 것이 맞고, 여기는 없는 게 맞다. 에베소서에는 없는 게 맞다, 왜 없느냐 하면은 사적인 정황이나 인사는 두기고가 구두로 한다는 거야. 왜냐면은 이때 이 편지는 단지 에베소 한 교회만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회람 문서야. 회람. 이 교회에서 읽고 옆에 교회 가서 또 읽고, 또 옆에 교회 돌려 돌려 그렇게 읽어갈 모든 교회가 다 읽어야 돼. 그래서 맨 앞에 에베소에 있는 모든 그 성도들에게 라고 할 때, 그 에베소 하는 칸을 비워놨다가, 여러분 교회의 이름을 넣어가지고 읽어야 되는 거야. 마산에 있는, 뭐 산청에 있는 이런 식으로, 회람 문서라는 거야. 그래서 이제 아 그러니까 개인적인 문안 같은 거는 뺐구나. 개인적인 정황은 두기고가 구두로 전하는 것이고.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여러분, 학자들이 뭐 이런 거 다 고민했죠. 옛날에. 에베소서는 이런 책입니다.

 

제가 목이 좀 안 좋아서요. 내일 우리가 그 요한계시록을 해야 되는데, 요한계시록 할 때 동영상을 좀 볼 건데, 제가 목을 조금 쉬는 시간에 지금 좀 보고, 내일은 그 시간을 좀 벌기 위해서 이렇게 하겠습니다. 너무 먼 데 있는 분들은 뭐 조금 앞으로 와도 괜찮아요. 뭐냐 하면은요 지구상에 이 지구상에 언젠가 별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요한계시록 6장 12절 이하에 있는 내용인데, 그걸 지금 동영상보는 시간이 거의 한 30분, 40분 걸릴 건데, 제가 조금 쉴 수 있도록 보겠습니다. 네. 떠들지는 말고 조용히 하세요.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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