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선 가수. 노래 강사. 전국연예인문화예술봉사협의회 부회장
임은선 씨는 카자흐스탄에서 25년을 살아낸 카자흐스탄 진출 한인 제 1세대 중에서도 많은 유학생들에게 대모 같은 사람이다. 임은선 씨가 준비하는 ‘집 밥’은 언제나 특별했다. 아마 알마티 알마르산 자락 아래에 위치한 임은선- 강인희(제 7, 8대 카자흐스탄 한인회장, 2018년 세계한인회장협의회 의장) 자택에서 밥 한 끼 나누지 않은 알마티 한인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알마티에 사는 동안 ‘밥 덕’을 베푸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임은선 씨는 늘 손님이 함께 해서 즐거웠던 추억, 정성어린 ‘집 밥’으로 매일이 파티 같았던 카자흐스탄에서의 삶을 기억한다. 2010년 경 훌쩍 한국으로 가 가수로 다양한 활동하던 임은선씨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만났다.
- 카자흐스탄은 어떻게 오게 되셨는지요? 낯선 곳으로 이주해서 사는 게 두렵지는 않으셨나요?
“1992년 소연방 해체 후에 LG전자가 중앙아시아 순회 전시 프로젝트인 ‘세계 전자쇼’에 남편이 전시관을 만드는 일에 합류하여 모스크바에 이어 알마티를 방문하게 되었지요. 그때 알마티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당시 초대 LG전자 지사장이었던 이승조(현 우즈베키스탄 한인회 부회장) 씨 부부와의 좋은 인연 덕인지, 알마티가 주는 좋은 인상 덕분이지 알마티에 정착하고 싶어 하던 남편이 ‘LG전자 중앙아시아 서비스 센터’를 오픈하면서 자리를 잡게 되었지요.
깜깜한 밤에 내린 알마티의 첫인상은 칙칙했어요.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이니 낮에도 누가 벨만 눌러도 놀라기도 했지요. 그러나 처음 살던 집이 카자흐스탄국립대학교 앞에 방 하나 거실 하나의 작은 아파트였지만 항상 손님이 찾아왔어요. 초기부터 좋은 분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주변에 유학생을 비롯해서 지상사 분들, 그리고 현지에서 만난 한인들이 항상 함께 해서 외롭거나 두려울 틈이 없었어요. 아침 점심 저녁, 혼자 밥 먹어 본 적이 거의 없었어요.”
- 여성이라서 카자흐스탄 생활이 더 힘들었던 것도 있었는지요?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남자 분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밖에서 일하느라 늘 바쁘지요. 여자들은 한국과 다르게 대외활동이 위축되고 집에만 있으면 우울해지기도 하죠. 저마다 극복하는 방법이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집에서 ‘손님상 차리기’를 하며 어려운 시기를 넘긴 것 같아요. 밥하다 인생이 다 간 거지요! (웃음). 한국에 다녀 올 때마다 100킬로 이상씩을 공수해 주변에 있던 유학생, 지상사 파견 근무자들을 집에 불러 밥을 해서 함께 먹고 집에 오는 사람들한테 가족처럼 최선을 다했어요. 고향 떠나온 한국 사람들이 한식으로 위로받을 수 있었으면 했어요. ‘밥 덕?’(웃음)을 베풀면서 남편의 거의 모든 손님을 집에서 대접한 것 같아요. 새벽 4시에도 술 한 잔씩 한 남편 일행이 같이 오면 그 새벽에 누룽지라도 끓였지요. “당신은 다 내가 키운 거야!”라고 농담 삼아 가끔 말하곤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내조를 하려 했어요.
집에는 언제 누가 오더라도 30분 이내에 상을 차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지요. 주부로서의 전문성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음식 하는 게 좋았고 그 음식을 나눠 먹는 게 또 좋았지요. 전문 한식당이나 호텔 경영을 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남편은 ‘절대 반대‘하였고 ’집 밥‘을 나누며 맺은 좋은 인연이 ’돈‘보다 훨씬 값진 것 같았어요. 번 돈은 ’모두‘ 먹고 함께 하는데 썼던 것 같아요.(웃음) 명품보다 먹거리 사는 걸 더 좋아했어요(웃음). 자식들 건강하고 남편 건강한 것은 이렇게 밥을 해댄 ’밥‘덕인가 싶어요.
자식 교육에 대해서는 ‘쿨’했지요. 자유방임이랄까, 스스로 행복하면 된다는 생각이에요. 부모의 삶에 맞춰서 억지로 끌고 가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현지 적응을 위해 현지 학교로 보냈고, 억지로 무엇을 꼭 해야 된다거나,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 같은 것으로 스트레스를 준 적이 없어요. 그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좋아 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입시를 앞두고 있을 때에도 기상 시간에 맞춰 깨운다거나 하지 않았죠. 자연스럽게 성장했고 모두 자기 몫을 하며 살고 있어요. 가끔 딸이 농담 같이 “극성 엄마였다면 우리가 뭔가 더 많은 것을 성취하지 않았을까?”하며 아쉬움을 보이기도 하지만 책임감 있게 잘 컸다고 생각해요.
인생에 만족은 없잖아요. 욕심은 끝이 없고요. 만족하는 삶을 살려면 남 탓을 하지 말아야 해요. 또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위해 미리 걱정하고 속을 끓이지 말아야 하고요. 인간도 자연의 하나이니 할 수 있으면 하고 아니면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살면 된다는 생각대로 아이들을 교육했던 것 같아요.”
- 많은 유학생들의 대모 역할과 한국과 카자흐스탄을 오가는 사업가들의 쉼터 같은 역할을 하셨는데 그 때 만난 인연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2001-2년도 이니야스(알마티 외국어 대학)에 한국의 교환학생들이랑 같이 공부하러 다닐 때 학생들 빨래거리를 다 받아와서 밤새 세탁해서 아침에 학교 갈 때 가져다 주고, 김치 한통씩이랑 반찬도 많이 해서 싸다 주고… 그 친구들 모두 어느 곳에서 큰일을 하고 있을 것에요. 그때 사비로 장학금을 만들어 장학금 전달을 하기도 했었지요. 좋은 기억만 남았어요. 인연은 돌고 돌아 그 시절, 우연하게 우리 집에서 며칠을 묵고 간 한국 사람을 얼마 전에 타슈켄트에서 만났는데, 아주 고마웠다고 기억하며 밥을 사더군요.(웃음) 작은 베풂도 돌고 돌아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는데, 은혜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좋게 기억되었다면 감사할 일이지요.
그 중에서 좋은 인연을 계속 이어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LG 공장을 처음 세운 안성덕 법인장과는 그때 이후에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알마티 국제공항에 도착한 한국인들이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에서 계속 보던 LG 광고가 남편 회사에서 한 것이었죠. 적극적인 광고로 LG 가 삼성보다 가전 매출이 높았던 곳은 세계적으로 알마티뿐이었다고 하네요. 지금 생각해도 기분이 좋아요.
또 손영훈 (현 한국 외대 중앙아시어과 학과장), 매일 눈만 뜨면 같이 오던 정재욱(현 오스템 알마티 지사장)과 이송현은 부부가 되어 알마티에서 아들 둘을 낳고 잘 살고 있고요. 20 명씩 모여서 밥 먹고 고스톱도 치고 놀고,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형제간의 우애 이상의 진한 정을 나눴지요.
기억에 남는 일화 중에 하나는 남편이 크리스마스 때 산타 복장을 하고 집집마다 선물을 주러 다녔던 일이에요. 방문 약속을 한 집에서는 불을 끄고 아이들을 재우려고 할 때 벨을 누르고 산타할아버지가 등장하니 아이들은 진짜 산타인 줄 알고 엄청 기뻐했지요. 그때 선물을 받고 기뻐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대기업에 취직해 과장급으로 일하고 있어요.
우리 집에서 남편이 부인들 발레공연 보러 가라고 아이들을 맡아서 저녁먹이고 놀아주던 일, 알마르산에 야유회를 함께 가서 생일인 사람을 위해 초코파이에 야생화를 꺾어 성냥 꽂고 생일 축하하던 일, 남자들은 8시간씩 차를 타고 가고, 여자들은 헬기로 1시간 걸려 이슥쿨로 가서 놀던 기억. 좋고 아름다운 추억들만 생각납니다.”
- 이제 65세를 넘기셨는데, 한국으로 돌아가서 노후를 보낼 생각은 없으신지요? 그리고 지금 우즈베키스탄은 어떻게 오시게 되었고 어떤 일을 하며 지내고 계신가요?
“인생의 한치 앞을 모르겠네요.(웃음) 한국으로 가서 노후를 보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2010년경에 한국과 알마티를 오가다 점점 한국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그동안 꿈 꿔왔던 노래강사 자격도 따고 가수로 정신 등록해서 활동을 시작했지요. 전국연예인문화예술봉사협의회 부회장직도 맡고 전국으로 봉사 활동 다니면서 노래 강사도 하면서 재미있게 지냈어요. 2013년에는 제 47회 가수의 날에 ‘사회봉사’상도 받고 부부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산들산들’과 고려인들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그리운 내 고향’은 곡을 받아 음반도 냈지요. 이 노래들이 저의 대표곡이에요. 이렇게 한국에서 활동하다가 2018년 말에 우즈베키스탄으로 오게 되었어요. 남편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게 되어 남편을 따라 와서 살다보니 카자흐스탄은 카자흐스탄대로 좋았고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베키스탄 나름대로 좋네요.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뭘 하고 살까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고려문화협회의 고려 노인들을 위한 노래 교실과 연결이 되어서 노래 봉사를 하고 있어요. 마음으로 항상 도움이 되고 싶던 고려인분들에게 제가 좋아하는 노래로 다가갈 수 있게 되어 참으로 좋습니다. 한참 전부터 남은 생은 재능기부를 하면서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는데 우즈베키스탄에서 마침 인연이 닿았습니다. 60세 이상 되신 고려인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고려문화예술의 집‘에 오십니다. 1시간 30분 동안 수업을 하는데 훌쩍 2시간이 넘어가기도 하지요. 새로운 노래를 가르치고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며 그분들과 함께 율동과 합창을 하다보면 어르신들의 ’나이 듦‘도, 저 자신의 ’나이 듦‘도 모두 잊고 즐거운 마음이 됩니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처럼 중앙아시아에서 ‘소풍’ 같은 재미로 고려인과 어울리는 임은선 씨는 카자흐스탄에 이어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새로운 나눔으로 ‘소풍’같은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 쌀쌀한 바람 속에서도 꽃들이 봄을 재촉하고 있는 타슈켄트, 자신에게 허락된 것을 아낌없이 나누며 재능 기부를 하다 보니 세월도 비껴가는지, ‘고려인문화예술의 집’에서 만난 임은선 전국 연예인문화예술봉사협의회 부회장은 봄꽃보다 더 화사하다.
김숙진 (전 한인신문 편집장)카자흐스탄한인회에서 발행하는 한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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