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라고 해서 두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 삼호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58)도 총으로 위협하는 해적에게 들키지 않게 엔진오일에 물을 섞고 배를 갈지자로 몰아갈 때 겁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해적들에게 뼈가 부러질 만큼 두들겨 맞으면서도 공포에 굴복하지 않았다. ‘아덴 만 여명작전’의 최대 공로는 목숨을 걸고 ‘퍼펙트 작전’을 수행한 청해부대와 해군 특수전 부대(UDT) 요원들에게 돌아가야겠지만 석 선장은 또 한 사람의 영웅으로 기록될 만하다. 인질로 붙잡힌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황에서 용기와 희생정신을 발휘한 그가 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
석 선장의 오랜 꿈은 바다였다.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해군 부사관으로 복무한 후 이등항해사 일등항해사를 거쳐 선장이 됐다. 바다에서 만난 무수한 폭풍우가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도 외국인과 대화하려고 영어공부를 했다. 이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그는 해적들과 영어로 소통하며 청해부대 최영함의 작전을 도울 수 있었다.
석 선장은 1차 작전이 끝난 다음 날에는 선박을 아예 소말리아의 반대 방향으로 이동시키기도 했다. 해적들이 눈치 채고 그를 무자비하게 폭행했지만 최영함이 작전을 펼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벌어준 뒤였다. 해적들은 구출작전이 본격 개시되자 “모든 것이 선장 때문”이라며 석 선장의 복부 엉덩이 옆구리에 세 발의 보복 총격을 가했다. 석 선장의 행동은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기업의 해외 진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우리 기업과 국민이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빈번하다. 지난해 12월 방글라데시 치타공의 한국 의류업체 영원무역에서 공장 근로자들의 폭력시위가 발생했다. 최근 리비아의 한국 건설업체 공사현장에서는 주민 폭동이 터졌다. 정부 역할에 한계가 있는 만큼 기업들도 현지 근로자와 주민에게 반감을 사는 일이 없도록 인사와 경영을 합리화, 현지화해야 한다.
글로벌 산업 현장에서 뛰는 크고 작은 조직에 석 선장 같은 사람이 많으면 근로자들의 안전이 확보되고 우리의 국력도 더 커질 수 있다. 석 선장 같은 영웅이 우리가 평소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 든든하다. 역경과 위기가 영웅을 만든다는 생각도 든다. 천안함 사태 때는 한주호 준위가, 이번에는 석 선장이 나왔다. 그가 혼수상태에서 하루빨리 깨어나 우리 곁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