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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행복한 책 세상의 등대지기' 북코스모스에서 제공하는 도서요약본을 복사한 것 입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현대문학 / 2007년 11월 / 576쪽 / 13,500원
▣ 저자 할레드 호세이니
1965년, 카불에서 태어났지만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후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망명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의사로 활동하는 틈틈이 소설을 써 2003년, 첫 소설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그의 작품은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매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학작품에 수여하는 푸시카트 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2007년 5월, 소련 침공, 내전, 탈레반 정권, 그리고 미국과의 전쟁 등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인 현대사와 그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 남겨진 여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그의 두 번째 소설로 출간 전 예약판매를 시작하면서부터 아마존닷컴 종합 베스트 1위를 차지하며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자신이 쓴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이야기에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는 호세이니는 독자들에게 그처럼 비참한 처지에 놓인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하고 있으며, 현재 난민들을 돕기 위한 NGO 단체(www.UNrefugees.org)에서 활동 중이다.
▣ 역자 왕은철
전북대학교 영문과 교수이며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문학평론가이다. 이어하트 재단, 케이프타운 대학, 풀브라이트 재단 등의 펠로Fellow였으며 케이프타운 대학과 워싱턴 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고디머의 『거짓의 날들』, 브링크의 『메마른 계절』, 응구기의 『한 톨의 밀알』, 쿳시의 『추락』, 『어둠의 땅』, 『야만인을 기다리며』, 『철의 시대』,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페테르부르크의 대가』, 『마이클 K』, 하진의 『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 『남편 고르기』, 『니하오 미스터 빈』, 『광인』을 비롯한 다수의 역서와 『J. M. 쿳시의 대화적 소설』(문화관광부 우수도서) 등의 저서가 있다.
▣ Short Summary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여성들의 삶.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작품으로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피워낸 두 여자가 만들어내는 인간드라마를 탄탄한 구성과 흡인력 강한 문체로 그려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아프가니스탄은 왕정이 무너지고 소련 침공과 군벌들 간의 내전, 탈레반의 집권이 이어지면서, 자연환경도 점차 파괴되어 푸른 숲과 샘이 흐르던 땅이 급속히 사막화되어 간다. 폭격과 화염, 포연이 휩쓸고 간 자리에 몇 년째 계속되는 가뭄은 카불을 비롯한 주변 도시들을 아무리 땅을 파도 더 이상 샘이 터지지 않는 불모의 땅으로 바꿔놓았다. 국제평화유지군이 들어오던 때와 같이하여 가뭄이 그치고 본격적인 재건이 시작되었지만, 오늘날까지도 민둥산에 끝없이 나무를 갖다 심어야 할 정도라고 하니, 인간이 타락할 때 자연도 신음한다는 말은 그냥 있는 말이 아닐 것이다.
전란의 소용돌이에 남겨진 두 여자, 마리암과 라일라. 무자비한 한 남자의 아내로 있게 된 두 여자는 남편이라는 휘호 아래 갇힌 짐승 같은 삶 속에서도 사랑과 우정으로 그의 폭력과 가난을 헤쳐 나간다. 죽음의 땅에서 새로 태어난 생명을 지키기 위한 두 여자의 끈끈한 사랑과 노력은 인간 이상의 것을 향한 위대한 사랑에 도달한다. 이 소설의 두 주인공처럼, 한 남편을 가진 두 여자임에도 갈등을 이겨내고 우정을 싹틔울 수 있고, 끝내는 상대방을 위해 자기 목숨을 주기까지 사랑하며, 다음 세대를 위한 밑거름이 되기 위해 기꺼이 떠나는 모습은 악하고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을 붙들게 한다. 마치 한 장면 한 장면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 속에서 책장을 넘겼던 이 소설은 반갑게도 실제로 곧 영화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우리에게 테러와 납치가 밥 먹듯 일어나는 낯설고 위험한 땅일 뿐,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은 전무하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인권을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살고 있으며, 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한다. 버릴 수도 떠날 수도 없는 불모의 땅에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고 있는 그들의 현재 모습은 그래서 더욱 모든 인간의 삶을 새롭게 하는 깊은 울림을 준다.
▣ 차례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현대문학 / 2007년 11월 / 576쪽 / 13,500원
1부
주인공 마리암과 그녀의 엄마 나나 둘만이 살고 있는 굴 다만의 개간지 오두막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등신같은 하라미 년아.” 나나에게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마리암은 다섯 살이었다. 그 말의 부당함을 이해하고, 죄가 있는 건 하라미(후레자식)를 만든 사람들이지 태어난 죄밖에 없는 하라미가 아니라는 걸 알기엔 너무 어렸다. 말투로 보아, 하라미는 나나가 늘 욕을 하며 오두막 밖으로 쓸어내는 벌레처럼 추하고 역겨운 것인 모양이었다. 나중에 나이가 들었을 때 마리암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이 사랑, 가족, 가정, 애정 등 다른 사람들이 갖는 것들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가질 자격이 없는 불법적인 존재라는 뜻임을.
그러나 아버지 잘릴은 그런 식으로 마리암을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잘릴은 그녀가 자신의 어여쁜 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녀를 무릎에 앉히고 얘기해주는 걸 좋아했다. 그는 마리암이 1959년 태어난 곳인 헤라트 시가 한때는 페르시아 문화의 요람이었고 시인과 화가와 수피교도들의 고향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몸을 기울여 마리암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거기에 피스타치오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밑에 위대한 시인인 자미가 묻혀 있단다. 자미는 5백 년도 더 전에 살았던 시인이란다. 언젠가 너를 바로 그 나무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지. 너는 그때 너무 어려서 기억이 안 날 거다.”
그건 사실이었다. 마리암은 그 일이 기억에 없었다. 그녀는 헤라트까지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15년이나 살았지만 그 유명한 나무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잘릴이 이렇게 얘기해줄 때마다 황홀경 속에서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세상에 대해 아는 게 많은 잘릴을 흠모했다. 그러한 것들을 알고 있는 아버지를 뒀다는 자부심에 몸이 떨렸다. 그러나 잘릴이 떠난 후, 나나는 말했다. “그건 허풍이다! 부자는 허풍을 떠는 법이지. 그는 너를 어떤 나무에든 데려간 적이 없다. 그가 하는 말에 현혹되지 마라. 네가 사랑하는 아비는 우리를 배반했다. 그는 우리를 내쳤어. 그는 우리가 그에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화려한 저택 밖으로 내쳤다.”
마리암은 그 말을 공손하게 듣기만 했다. 그녀는 감히 나나가 잘릴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자신이 얼마나 싫어하는지 얘기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마리암은 잘릴과 있으면서 자신이 하라미라고 전혀 느끼지 못했다. 매주 목요일, 잘릴이 만면에 다정한 미소를 띠고 선물을 사들고 한두 시간씩 그녀를 보러 올 때, 마리암은 자신도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마리암은 잘릴을 사랑했다. 아버지를 다른 이들과 공유해야 했을지라도. 잘릴에게는 세 아내와 아홉 명의 아이들이 있었고, 적법하게 태어난 아홉 명의 아이들 모두가 마리암에게는 남이었다. 잘릴은 헤라트에서 가장 부유한 남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마리암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영화관을 가지고 있었다.
나나는 손님이 오는 걸 싫어했다. 사실, 그녀는 사람들을 대체로 싫어했다. 하지만 예외인 사람들이 몇 있었다. 그 중 마리암이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잘릴을 예외로 치면, 마을의 코란 선생인 늙은 파이줄라 선생이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마리암에게 일일기도와 코란을 가르쳐주었다. 읽기를 가르쳐준 사람도 파이줄라 선생이었다. 보통 그는 혼자서 왔으나 이따금 아들 함자를 데리고 오기도 했다. 때때로 그들은 개울을 따라 산 쪽으로 걸어 갈색 낙엽과 오리나무 숲 사이에서 산책을 했다. 파이줄라 선생은 자신도 코란에 쓰여 있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때가 더러 있다고 마리암에게 실토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혀가 구르면서 만들어내는 아랍어의 매혹적인 소리가 좋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위안이 되고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마리암, 그게 네 마음도 편하게 해줄 거다. 필요할 때 불러내면 어김없이 네게 찾아올 거야. 신의 말씀은 너를 저버리지 않을 거다.”
파이줄라 선생은 얘기도 잘 했지만 남의 얘기도 잘 들어줬다. 마리암이 얘기할 때 그는 한눈을 판 적이 없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갈망하던 특혜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고마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마리암은 나나에게 감히 할 수 없는 얘기들도 파이줄라 선생에게는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마리암은 산책을 하다가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진짜 학교 말이에요.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싶어요. 우리 아빠의 다른 자식들처럼요.” 파이줄라 선생은 걸음을 멈추고 부드럽고 물기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 엄마한테 허락해줄 것인지 물어봐주랴?” 하지만 나중에 그가 그 문제를 꺼냈을 때, 나나는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너 같은 계집애를 학교에 보내 어디다 쓰려고? 너나 나 같은 여자한테 필요한 기술은 학교에선 가르치지 않는다. 타하물(참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다. 알겠느냐?”
1974년 봄, 마리암이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생일이었다. 세 사람이 오두막 밖의 버드나무가 드리운 개울가에 앉아 있었다. “생일선물로 뭘 받고 싶은지 알았어요.” 잘릴은 어서 말을 해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마리암은 잘릴에게 만화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2주 전 잘릴은 자신의 영화관에서 미국 만화영화가 상영되고 있다고 했다. “아빠, 저를 영화관에 데려다주세요. 장난감 인형 소년이 사람이 되고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온다는 그 만화영화 말이에요.” 잘릴은 쓸쓸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일 정오에 이곳에서 만나요. 됐죠? 내일이에요.” 그러나 잘릴은 마리암을 아주 오랫동안 껴안고 있을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나나는 이죽거리는 소리로 말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년이구나!” 그리고 이번에는 마리암의 죄의식에 호소했다. “제발 나를 떠나지 마라. 네가 가면 나는 죽을 거야.” 마리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리암, 너도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걸 알잖아.”
다음날 아침, 마리암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크림색 드레스와 면바지를 입고 머리에 녹색 히잡을 썼다. 그녀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나가 어디 있는지 궁금했다. 밖으로 나가 찾아볼까 생각해봤지만 그녀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대하기가 겁났다. 나나는 자기를 배반했다고 몰아치면서, 마리암이 허황된 생각을 하고 있다며 빈정거릴 것이었다. 마리암은 그들이 전날 약속했던 개울가로 가서 기다렸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마리암은 다리가 뻣뻣해질 때까지 서있었다. 이번에는 오두막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는 무릎까지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개울을 건너 난생처음으로 헤라트를 향해 언덕을 내려갔다. 그녀는 마차를 몰고 가는 노인에게 영화관 주인인 잘릴이 어디에 사는지 물어 집 앞까지 찾아갔다.
그러나 밤새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잘릴은 집에 없다고 했다. 그녀는 잘릴의 집밖에서 밤을 새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마리암의 어깨를 흔든 건 잘릴의 벤츠 운전사였다. 오두막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틈을 박차고 집안으로 들어갔을 때, 정원에 있던 몇 초 안 되는 순간, 그녀의 눈길은 연못 너머의 위층 창문에 있는 사람의 얼굴에 멎었다. 그것은 잠깐이었지만, 그 사람의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잘릴의 얼굴은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고 커튼이 쳐졌다. 그때, 두 손이 마리암의 겨드랑이 속으로 들어왔고, 그녀의 몸이 위로 들렸다. 마리암은 발버둥을 쳤지만 운전사는 강제로 그녀를 차에 태웠다. 그녀는 뒷자리에서 몸을 들썩거리며 울었다. 그것은 슬픔과 분노와 환멸의 눈물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깊고 깊은 치욕의 눈물이었다.
얼마 후, 그들은 헤라트와 굴 다만 사이에 있는 가파른 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잘못을 빌어야 할지, 어떻게 나나의 얼굴을 대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운전사가 앞을 가로막고 마리암의 눈을 가리려 했다. “돌아서! 안 돼! 보지 마! 돌아서!” 하지만 마리암은 보고 말았다. 한줄기 돌풍이 불면서 버드나무의 늘어진 가지를 갈라놓았다. 마리암의 눈에 나무 밑에 있던 의자가 뒤집혀져 있는 것이 얼핏 보였다. 높은 가지에 늘어진 로프, 그 끝에 매달려 있는 나나.
장례를 치르던 날, 파이줄라 선생의 홀쭉하고 구부정한 모습이 오두막의 문간에 나타났을 때, 마리암은 그날 처음으로 울었다. “오, 마리암.” 그는 곁에 앉아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그래, 마리암, 어서 울어라. 창피할 것 없다. 하지만 ‘그 손에 왕국이 있고, 모든 걸 관장하시며, 죽음과 삶을 만드시는 그분이 너를 시험하실 수 있다’는 코란의 말씀을 기억하거라. 얘야, 코란은 진실을 말한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는 모든 시련과 슬픔에는 뜻이 있는 거란다.” 하지만 마리암은 신의 말에서 위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날은 아니었다. 그때는 아니었다. “네가 가면 나는 죽을 거야. 나는 그냥 죽을 거다.” 그녀의 귀에 들리는 건 나나가 했던 말뿐이었다. 마리암이 할 수 있는 건 울고 또 울면서, 파이줄라 선생의 앙상한 손에 눈물을 떨구는 것뿐이었다.
결국 부모 두 사람 모두에게 버려진 마리암은 열다섯 나이에 먼 도시 카불에 사는 구두장이 라시드라는 남자와 강제 결혼을 하기에 이른다. 잘릴은 마리암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인들의 뜻에 따라 그런 결정을 내리고 만다. 마흔 다섯 살의 라시드는 부인과 아들을 잃은 상처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따라간 카불에서의 생활은 낯설고 외로웠지만 점차 적응이 되어 갔고, 그의 아기까지 가졌을 때는 다정하게 보살펴주는 라시드의 품에서 행복감 비슷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기가 유산되고 이후로도 임신과 유산이 반복되면서 기다리는 아기를 얻지 못하자 라시드는 점점 야비하고 포악해져 갔다. 남편의 폭력이 심해지면서 마리암의 삶은 또다시 비참해졌다. 이웃 누구와도 사귀지 못하고 집안에서만 파묻혀 지내던 마리암은 하루하루를 처절하게 견뎌내며 라시드의 몸종으로 살아간다.
2부
새로운 주인공 라일라의 이야기. 1987년 봄, 카불. 아홉 살이 된 라일라는 아침이 되면 늘 그랬듯이, 타리크를 그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래층에서는 그녀의 부모가 싸우고 있었다. 늘 되풀이되는 싸움, 고분고분하게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아빠, 아빠는 또 하루를 살아남은 모양이었다. 오빠 아마드와 누르가 소련군과의 전쟁에 나가기 전에는, 그러니까 아빠가 그들이 전쟁에 나가도록 허용하기 전에는, 엄마 파리바도 책을 좋아하는 아빠의 습관을 좋아하고, 건망증과 맹한 성격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아빠 바비는 카불에 있는 빵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한테 해고를 당하기 전에는 고등학교 선생이었다. 바비는 라일라가 어렸을 때부터, 라일라의 안전 다음으로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그녀의 교육이라고 말했다.
“너는 아주 예쁘고 영리한 아이야. 원한다면 뭐든지 될 수 있어. 나는 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전쟁이 끝나면 아프가니스탄은 남자들만큼이나 여자를 필요로 할 거야. 어쩌면 더 필요로 할지도 모르지. 여자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면 사회는 성공할 수가 없는 거다. 암, 그럴 수가 없지.” 그날 아침도 바비는 라일라를 자전거 뒷좌석에 태우고 학교까지 데려다 주었다. 라일라는 그 같은 아빠를 뒀다는 게 너무 좋고, 아빠가 자기를 그렇게 생각해주는 게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지난 2년 동안 해마다 최우수학생에게 주어지는 우등상을 받은 라일라는 대학까지 교육을 계속 받기로 결심한다.
학교가 끝났지만 데리러 오기로 한 엄마는 또 나타나지 않았다. 먼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녀가 사는 동네로 들어섰을 때, 아침에 학교 갈 때 보았던 청색 벤츠가 아직도 라시드와 마리암의 집밖에 주차되어 있는 게 보였다. 양복을 입은 나이 든 남자는 이제 지팡이를 짚고 자동차 옆에 서서 그 집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라일라는 전쟁에 나가 전사한 오빠들만 생각하며 자기에게는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엄마에게서 마음의 상처를 받으며 자라지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 주고, 가잘(시)과 수학, 과학을 가르쳐 주며, 그녀와 타리크를 데리고 유적지를 여행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유산에 대해 느끼게 해주는 아빠가 있기에, 그리고 소련군의 폭격 때 다리 하나를 잃고 절름발이가 되었지만 그녀 옆에서 헌신적으로 그녀를 지켜주는 타리크가 있었기에 구김살 없이 예쁘게 자란다.
라일라가 열네 살이 되던 1992년, 마침내 소련군은 모두 물러가고 그토록 고대하던 무자히딘의 저항군이 10년간의 산악 생활을 끝내고 카불로 들어왔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은 내분에 휩싸여 다시 한 번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라일라는 파쉬툰 군인들이 하자라 족의 집안으로 들어가 처형을 하듯이 모든 가족을 사살하고 있으며, 하자라 군인들도 파쉬툰 족 남자들을 납치하고 여자들을 강간하며 무분별하게 살인을 일삼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매일 나무에 묶여 있는 시체들이 발견되었다. 때로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린 시체였다. 종종 머리에 총을 맞고 눈알이 빠지고 혀가 뽑힌 상태였다.
바비는 카불을 떠나자고 설득하려 했지만 엄마는 듣지 않았다. “그들이 해결책을 찾을 거야. 이 싸움은 일시적인 거라고.” “파리바, 이 사람들이 아는 것은 전쟁밖에 없어. 그들은 한 손에 우유병을 들고 다른 손에 총을 잡고 걸음마를 했던 자들이야.” 그러자 엄마가 쏘아붙였다. “당신이 대체 뭐길래 그런 소리를 해? 지하드에 참여해 목숨을 걸어봤어? 무자히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소련군의 종일 거야. 그걸 기억해야지. 당신은 지금, 그들을 배반하자고 말하고 있어.” “파리바, 배반을 하는 쪽은 우리가 아니야.” “갈 테면 당신이나 가. 당신 딸을 데리고 도망치라고. 평화가 오고 있어. 나는 그걸 기다릴 거야.” 그러나 엄마가 기다리는 평화는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거리가 너무 위험해지자 바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그는 라일라를 학교에서 자퇴시켜 버렸다.
그 즈음 타리크는 어느새 라일라보다 30센티미터쯤 더 커졌고 어깨는 벌어져 있었다. 라일라는 로켓탄이 발사될 때마다 기도를 하며 거리로 달려나갔다. 이번에는, 분명히 이번에는, 타리크가 부서진 벽돌 밑에 깔려 있을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라일라는 타리크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산란했다. 머릿속에는 타리크의 도톰한 입술, 그녀의 입술에 와 닿던 그의 뜨거운 숨결, 그의 담갈색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얼마 전 나무 밑에서 입을 맞춘 이래 두 번 더 그와 입을 맞췄다. 타리크가 담배를 피우던 침침한 골목에서였다.
1992년 8월, 후덥지근한 오후였다. 그들은 라일라의 집 거실에 있었다. 타리크는 떠난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데?" “우선 파키스탄으로 가나봐. 그 다음에는 나도 몰라." "얼마나 오래?" "모르겠어." "언제 가는데?" "내일" "내일이라구?" "우리 아버지 때문이야. 싸우고 죽이고 하는 걸 더 이상 못 견디시겠대." 라일라는 얼굴을 손에 묻었다. 두려움의 물결이 밀려왔다. 이런 걸 예상했어야 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짐을 챙겨 떠났으니까. "나한테 미리 얘기했어야지." 라일라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버린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타리크는 그녀의 일부가 아니었던가. 모든 기억 속에서 그의 그림자는 그녀의 그림자 옆에 있었다. 어떻게 그런 그가 그녀를 버릴 수 있는가? 그녀는 타리크의 뺨을 때렸다. 그가 그녀의 팔을 잡을 때까지 때리고 또 때렸다. 그러다 그들의 이마와 이마, 코와 코가 닿았다. 그녀는 그의 뜨거운 숨결을 자신의 입술에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그의 몸이 쏠렸다. 그녀의 몸도 그랬다.
라일라는 양탄자에 세 방울의 피가 묻어 있는 걸 보았다. 그녀의 피였다. 수치심과 죄책감이 몰려왔다. 시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라일라의 귀에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그것은 계속해서 내리치며 형을 선고하는 재판관의 의사봉 같았다. 타리크가 말했다. "나하고 같이 가자. 라일라, 나는 너와 결혼하고 싶어." 그러나 라일라는 무자히딘처럼 완강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엄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보따리를 싸서 달아나는 것은 아들들이 희생한 것에 대한 모욕이요 배반이라고 믿는 엄마. 또 그녀는 오래 전부터 체념을 하고 엄마의 독설을 받아내는 바비에 대해 생각했다. 바비는 이렇게 말했었다. "라일라, 때때로 너는 내가 가진 것의 전부라는 생각을 한단다." 이런 것들이 그녀가 처한 상황이었다. 회피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럴 수 없어." 라일라가 말했다.
타리크를 떠나보내고 라일라는 그와의 기억을 되살리려 안간힘을 썼다. 그가 떠난 지 두 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그가 했던 말이 정확히 어떤 말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아프게 하는 거야?" "이렇게 하면 아파?"라고 했던가? 무슨 말을 했었지? 갑자기, 그걸 아는 것이 중요한 일처럼 느껴졌다. 라일라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집중을 했다. 몇 년이 지나면 그를 잃어버린 걸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게 될 날이 올지 몰랐다. 그 순간은 지나가 버릴 것이었다. 라일라는 그가 “이렇게 하면 아파?” 하고 말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녀는 그 말을 되뇌이며 그걸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때, 바비가 계단 위에서 그녀를 불렀다. "엄마도 동의했다. 우리는 떠나는 거야, 라일라. 우리 셋이서 말이야. 카불을 떠나는 거다." 흥분감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바비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만을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라일라는 바비가 책꽂이를 바라보면서 슬픈 표정으로 서재에 서 있는 걸 보았다. “하루 종일, 카불에 관한 한 편의 시가 머리에 떠돌더구나. 사이브에타브리지라는 시인이 17세기에 썼던 시지.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네.’ 전에는 전체를 다 외웠었는데 지금은 두 줄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구나.” 그가 울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아빠, 우리는 다시 돌아올 거예요. 알라신의 뜻이라면, 우리는 카불에 다시 올 거예요. 두고 보세요.” 그러나 떠나기 전날 밤, 그녀의 집으로 날아든 폭탄은 엄마와 아빠를 그 자리에서 즉사하게 했고, 그 와중에 라일라도 파편에 맞아 정신을 잃는다.
3부
라일라가 정신이 들었을 때 마리암과 라시드가 그녀를 맞이한다. 라시드는 폭격의 충격으로 쓰러진 라일라를 자기 집으로 데려왔고, 마리암에게 돌보게 한다. 그러나 라일라가 몸을 추스르자 교묘한 속임수로 타리크가 죽었다고 믿게 만든 라시드는 오갈 곳 없는 라일라를 자신의 후처로 삼으려 한다. 자신이 타리크의 아이를 가졌음을 감지한 라일라는 어쩔 수 없이 라시드에게 몸을 맡긴다. 그 후 이어지는 두 여자의 갈등,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비슷한 운명과 처지를 연민으로 받아들이고 마치 친정어머니와 며느리처럼 라일라가 낳은 딸 아지자를 함께 기르며 모성애를 촉매제로 우정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아지자가 자기 자식이 아님을 직감한 라시드의 비열한 행동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한 탈출이 실패로 돌아가고, 세 사람에 대한 라시드의 폭력은 극에 달한다.
1994년 10월, 칸다하르 군벌들을 무너뜨리고 도시들을 점령해 들어오던 탈레반은 1996년 9월, 마침내 카불까지 들어왔다. 이들은 소련과의 전쟁이 벌어질 때 가족들이 파키스탄으로 피신했던 젊은 파쉬툰 남자들로 조직된 게릴라들이라고 했다. 대부분은 파키스탄 국경에 설치된 난민수용소에서 성장했고 일부는 거기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들은 율법학자들로부터 샤리아(이슬람법)를 배웠는데, 그들의 지도자는 오마르라는 이름의 신비하고 문맹인 애꾸눈 은둔자였다. 그는 스스로를 신심이 깊은 사람들의 지도자라 일컫고 있었다. 탈레반은 마을로 들어오자 곡괭이를 휘두르며 몰려가 카불박물관을 파괴했고, 대학교의 문을 닫았다. 라일라는 바비가 그걸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들은 코란을 제외한 책들을 수북이 쌓아놓고 불에 태웠다. 서점들은 문을 닫고, 수많은 시인들의 시집이 연기로 사라졌다. 그들은 노래와 춤, 연날리기, 책을 쓰고, 영화를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금지했고, 여자들이 남자 없이 혼자 다니다가 걸리면 곤장에 처해진 후 귀가시켰다. 계집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고 여자는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라시드에게 종처럼 유린당하며 살던 라일라는 라시드의 아들 잘마이를 낳는다. 아이를 낳은 다음 해인 1998년 시작된 가뭄은 이듬해까지 계속되면서 멀리서 물을 길어다 먹어야 할 정도가 된다. 돈까지 떨어져 배고픔이 그들의 삶에 어둠을 드리우기 시작하자, 굶어 죽는 것이 갑자기 현실이 되었다. 라시드의 끈덕진 강요로 아지자를 고아원에 맡길 수밖에 없었던 라일라와 마리암은 아지자가 보고 싶을 때마다 고아원을 찾아간다. 어느 날 아지자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 낯선 남자가 문 앞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다가오는 걸 보자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타리크였다!
눈물겹도록 처절했던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된 두 사람은 다음날 오후에 아지자를 보러 가기로 하고 헤어진다. 그러나 그날 저녁, 잘마이가 자기가 낮에 본 것을 아버지 라시드에게 말해버린다. 그는 라일라와 마리암을 노려보더니 잘마이를 위층으로 올려 보낸 후 극악스러운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살기등등한 눈으로 라일라의 목을 조르던 그는 숨통을 끊어버릴 태세였다. 라일라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눈이 뒤집어졌다. 마리암은 공구실로 가서 삽을 움켜쥐고 나왔다. 마리암은 라일라가 더 이상 몸부림을 치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았다. ‘죽일 작정이구나. 정말로 죽일 작정이구나.’ 마리암은 삽자루를 단단히 잡았다. 그리고 치켜올렸다. 그녀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라시드.” 그녀는 그가 바라봐 주길 바랐다. 그가 올려다보았다. 마리암이 삽을 휘둘렀다.
삽은 그의 관자놀이에 정통으로 맞았다. 그 충격으로 그는 라일라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라시드는 손바닥으로 머리를 만졌다. 그는 손가락에 피가 묻은 걸 보고, 다시 마리암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들 사이에 뭔가가 오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려침으로써 어쩌면 그의 머리에 뭔가를 일깨워줬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이 부드럽게 풀렸다. 그녀가 그의 눈에서 본 것은 존경심이었을까? 아니면 후회일까? 하지만 그때 그의 윗입술이 악의적인 미소를 띠며 뒤틀렸다. 그 순간 마리암은 그것을 끝내지 않는 것이 소용없는 짓이며, 어쩌면 무책임한 짓일지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지금 그를 놔둔다면, 그는 위층으로 올라가 총을 가져올 것이었다. 그가 자기만 쏴 죽이고 라일라는 죽이지 않는다는 확신만 있다면, 마리암은 삽을 내려놓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라시드의 눈에서 그녀는 그들 두 사람을 향한 살기를 보았다. 마리암은 삽을 높이 치켜들었다. 날카로운 삽날이 직각을 이루게 세웠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으로 자신의 삶의 행로를 결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과 함께, 마리암은 삽을 내리쳤다. 이번에는 그녀가 갖고 있는 모든 걸 거기에 쏟아 부었다.
결국 마리암은 살인죄로 총살을 당하고 만다. 그녀가 눈을 감을 때, 그녀에게 엄습해온 건 더 이상 회한이 아니라 한없이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그녀는 천한 시골여자의 하라미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쓸모없는 잡초 같은 존재로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친구이자 벗이자 보호자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어머니가 되어, 드디어 중요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마리암은 이렇게 죽는 것이 그리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 나쁜 건 아니었다. 이건 적법하지 않게 시작된 삶에 대한 적법한 결말이었다.
마지막 마리암의 생각은 코란의 한 구절 앞에 멈췄다. 그녀는 그걸 나직하게 웅얼거렸다. “신은 진실을 갖고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신은 밤이 낮을 가리게 하시고, 낮이 밤을 따라잡도록 하신다. 신은 해와 달을 소용이 되도록 만드셨다. 해와 달은 정해진 주기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신은 위대하시고 용서하시는 분이다.” 마리암은 탈레반이 시키는 대로 무릎을 꿇었다. “오, 신이시여! 용서해주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당신은 가장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4부
마리암의 희생 위에 피어난 고귀한 평화. 타리크와 함께 파키스탄의 무르리에 와서 새로 시작한 생활은 서로를 사랑으로 배려하는 눈물겹게 행복한 시간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것이 쉬운 행복은 아니다. 고통이 없는 행복은 아니다. 밤에 라일라는 잘마이를 껴안고 바발루 기도문을 같이 낭송한다. 잘마이가 물으면, 그의 아빠는 여행 중이고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또다시 거짓말을 한다. 라일라는 앞으로도 거짓말을 수없이 해야 될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라일라에게는 타리크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러한 불안감은 이겨나갈 만한 가치가 있다. 그들이 사랑을 할 때, 라일라는 안정감을 느낀다.
고국에서는 다시 폭탄이 떨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의 폭탄이다. 911사태 이후, 부시는 군벌들에게 무기를 제공했고 탈레반을 쫓아내고 빈 라덴을 찾기 위해 북부연합의 협력을 얻어냈다. 무르리에서 그들의 삶은 편안하고 평온하다. 호텔 청소 일도 힘들지 않다. 괜찮은 삶이다. 고마운 삶이다. 2002년 7월 어느 따스한 밤, 그녀와 타리크는 침대에 누워 아프가니스탄의 변화에 대해 낮은 목소리로 얘기한다.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연합군이 탈레반을 주요 도시로부터 국경 너머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에 있는 산악지대로 밀어냈다. 국제평화유지군이 카불에 파견되었다. 하미드 카르자이가 임시 대통령이다.
라일라는 지금이 타리크에게 얘기할 때라고 생각한다. 일 년 전이었다면, 그녀는 카불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라면 팔 한쪽이라도 기꺼이 내줬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달 동안, 그녀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 단순한 향수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카불에 새로 학교가 지어지고 도로가 다시 포장되고 여자들이 일터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최근에는 머릿속에서 바비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라일라. 나는 너를 안다. 그리고 나는 전쟁이 끝나면 아프가니스탄이 너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가장 절박한 이유는 마리암 때문이다. 마리암이 이걸 위해 죽었나? 물론 라일라와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기만 하다면 마리암에게는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라일라에게는 아니었다. 그녀가 말한다. “타리크, 나는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당신도 원할 경우만 그렇다는 거야.” 타리크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말한다. “나? 라일라, 나는 이 세상 끝까지 당신을 따라갈 거야.”
버스가 무르리를 떠날 때, 그녀의 머릿속에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안전함을 뒤로하고 떠나다니 바보 같은 짓은 아닐까? 그때, 기억의 어두운 저편으로부터 바비가 카불에 작별을 하려 할 때 암송했던 두 줄의 시가 떠오른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네.” 라일라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대며 눈물에 젖은 눈을 깜빡인다. 카불이 기다리고 있다. 카불이 필요로 하고 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건 잘하는 짓이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작별인사가 있다.
헤라트에서부터 물어물어 찾아들어간 마리암이 살던 오두막은 아직도 거기에 있었다. 15년! 이런 곳에서 15년을 살았다니! 라일라는 눈을 감고 잠시 앉아 있었다. 파키스탄에서는 마리암의 얼굴을 떠올리는 게 때로 어려웠다. 그러나 이곳에 와 있으니 마리암을 떠올리는 일이 쉬워진다. 라일라는 마리암의 부드러운 무릎에 볼을 대고 누워 있을 수도 있고, 코란 구절들을 암송하며 앞뒤로 몸을 흔드는 마리암을 느낄 수도 있다. “마리암, 잘 있어요.” 오랜 시간 작별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을 때, 그녀를 안내해 주었던 파이줄라 선생의 아들 함자가 아직도 바위 위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돌아갑시다. 당신에게 줄 게 있어요.”
“제 아버님은 이걸 열어보신 적이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여는 것이 신의 뜻인 모양입니다. 잘릴 한이 돌아가시기 한 달쯤 전에 제 아버님께 이걸 주셨습니다. 그분은 마리암이 찾으러 올 때까지 보관해달라고 하셨습니다.” 함자에게서 타원형 주석상자와 함께 열쇠를 받은 라일라는 호텔로 돌아와 망설임 끝에 상자를 연다. 안에는 세 개의 물건이 들어있다. 하나는 봉투이고, 다른 하나는 삼베자루이고, 다른 하나는 비디오카세트다. 영화는 디즈니에서 만든 <피노키오>다. 라일라는 이해할 수가 없다. 봉투 속에는 편지가 들어있다. 마리암을 보러 카불로 찾아갔을 때 만나주지 않았던 마리암에게 다시 한 번 용서를 빌면서 자신이 주지 못했던 행복과 평화와 사랑을 신의 손길에 맡긴다고 쓴 애절한 편지. 라일라가 타리크에게 삼베자루에 들어 있는 돈을 보여주며 울기 시작하자 그는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껴안아준다.
2003년 4월, 가뭄이 드디어 끝났다. 며칠 동안 비가 내리고 카불 강이 다시 흐르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는 다시 카불이 푸르러지길 원해.” 라일라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침 나마즈를 위해 그녀를 흔들어 깨운 건 아지자였다. 라일라는 아지자가 기도에 집착하는 건 마리암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서라는 걸 안다. 타리크는 지뢰를 밟았다가 살아난 사람들과 다리가 잘린 사람들에게 의족을 맞춰주는 프랑스 NGO에서 일을 하고 있다. 라일라는 카불에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도시는 변해 있다. 사람들은 날마다 묘목을 심고 집에 페인트를 칠하고 새 집을 지으려고 벽돌을 나른다. 라일라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아서 이렇게 변한 모습을 보았으면 싶다. 하지만 잘릴이 편지에서 썼던 것처럼, 카불의 참회는 너무 늦게 왔다.
라일라는 길을 가다가 마음이 산란하다. 군벌들이 다시 카불로 돌아왔다는 것이 라일라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든다. 부모의 살인자들이 장․차관 행세를 하며 번쩍번쩍한 방탄용 차를 타고 가는 모습이 그녀를 괴롭힌다. 하지만 라일라는 분노에 무력해지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결국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것과 희망. 그들이 카불에 처음 왔을 때, 라일라는 탈레반이 마리암을 어디에 묻었는지 몰라 괴로워했다. 그러나 라일라는 이제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안다. 마리암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그녀는 이곳에 있다. 그들이 새로 칠을 한 고아원의 벽, 그들이 심은 나무, 아이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담요, 그녀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페르시아어 교과서와 연필 속에 그녀가 있다. 그녀는 아지자가 암송한 시편, 중얼거리는 기도 속에 있다. 하지만 마리암은 대부분, 라일라의 마음속에 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천 개의 태양의 눈부신 광채로 빛나고 있다.
라일라의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있다. 저녁식사를 하며 그들은 아기의 이름 짓기 놀이를 한다. 하지만 이 놀이에서는 남자 아이의 이름만이 거론된다. 딸의 이름은 라일라가 이미 지어놓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