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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원래 포스팅으로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포스팅으로 올려주시니 참고가 많이 되었습니다.
제가 인지하고 있는 작례와 거의 비슷하게 파악하고 있군요
제가 몰랐던 작례도 있고요...
또한 상층기단 갑석의 반전을
1.부연 + 반전 + 물매
2.부연 + 반전
3.반전 + 물매
로 구분하시는 형님의 내공은 역시 한국석탑의 최고봉 답습니다.
아래 포스팅은 애매한 작례와 중복된 것은 제외하고 언급하지 않으신 석탑의 작례만 추가합니다.
다음에 모든 작례를 묶어 소논문으로 작성 계획이 있습니다,
상주 북장사 삼층석탑 (875~880경)
(북장사 석탑의 반전)
북장사 삼층석탑 상층기단 갑석 상면 모서리에는 반전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반전은 미약한 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기단부 반전석탑의 전파를 2가지 흐름으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안동 평화동 삼층석탑에서 시작되는 기단부 반전석탑은
1.안동(평화동 삼층석탑) - 예천(동본동 삼층석탑) - 상주(북장사 삼층석탑) - 영동(영국사 삼층석탑 ) - 김천(청암사 수도암 동서 삼층석탑) - 고령(대가야박물관 삼층석탑1) - 합천(해인사 삼층석탑,청량사 삼층석탑) - 산청(대포리 삼층석탑,삼장사지 삼층석탑) -광양 (중흥산성 삼층석탑) - 순천 (동화사 삼층석탑, 선암사 삼층석탑, 금둔사 삼층석탑)- 곡성(태안사 삼층석탑) -정읍(남복리 오층석탑)
2.안동(평화동 삼층석탑) - 의성 (만장사 삼층석탑)- 영천(화남동 동 삼층석탑) - 경주(도림사지 폐탑재) - 울산(석남사 삼층석탑) - 밀양 (소태리 오층석탑)- 김해(안곡리 삼층석탑)
의 흐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위의 계보가 석탑의 조성시기와 맞물리는 것은 아닙니다.
지역적인 흐름입니다.
북장사 삼층석탑은 반전석탑중 위의 1번에 해당하는 석탑이며
이 석탑은 상주를 거쳐 경남지방으로 유입되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석탑입니다.
밀양 소태리 오층석탑(1109년)
(소태리 오층석탑의 반전)
소태리 오층석탑은 기단부 반전석탑 중 유일하게 절대연도를 알 수 있는 명문(1109년)이 새겨져 있어
기단부 반전 석탑이 12세기 초반까지 유존함을 알 수있는 소중한 석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석탑을 기단부 반전석탑의 마지막 계보에 있는 석탑으로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단부 반전석탑을 추적하던 중 또 하나의 석탑을 찾았습니다.
김천 제석리 석탑 기단갑석의 반전 (12세기 후반경)
현재 제석리 석탑 기단갑석은 불망비인 "김천제석리영사비"의 덮개돌로 사용하고 있으나 기단갑석이 확실합니다.
기단갑석 상면에 1단 각형인 탑신괴임과 모서리에 합각선이 표현되었으며 어느정도 물매가 있습니다.
부연은 생략되었습니다.
이 석탑재의 조성시기를 추정하기 위해서 아래의 특징을 주목해 보았습니다.
1.아주 두터운 기단갑석(단층기단 갑석으로 추정됩니다. 이중기단 석탑은 저렇게 두텁게 조성되는 예는 별로 없습니다.)
2.기단갑석이 4매로 조성된 점(현재 부재는 4매중 1매로 추정됩니다)
3.부연이 생략된 점
4.모서리에 합각선 표현된 점과 상면에 물매가 있는 점
5.모서리에 반전이 있는 점
이 석탑재와 친연관계가 있는 석탑은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입니다.
봉업사지 오층석탑은 단층기단이며 기단갑석이 두텁게 4매로 조성되었으며 부연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봉업사지 오층석탑은 11세기 후반 특징이 많은 석탑입니다.
또한 제석리 석탑재는 1109년에 조성된 소태리 오층석탑과도 친연관계가 있습니다.
단층기단이며 기단갑석 모서리에 반전이 있는 점이 같습니다.
제석리 석탑재는 봉업사지 오층석탑이나 소태리 오층석탑 보다도 후행의 모습입니다.
12세기 후반경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제석리 석탑재는
기단부 반전석탑의 계보가 12세기 후반까지 유존했음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작례로 추정됩니다.
* 하층기단 갑석 반전 석탑 추가
김해 안곡리 삼층석탑에서 보입니다.
김해 안곡리 삼층석탑(11세기 중반)
(안곡리 삼층석탑의 하층기단 반전)
아래는 안곡리 삼층석탑에 대한 제 글입니다.
2016년 새해 첫 답사를 김해 안곡리 삼층석탑으로 결정했다.
원래는 2015년 마지막 날 답사를 계획했으나 종무식이 예상보다 늦어져 새해 첫 답사로 변경되었다.
김해 안곡리 삼층석탑은 찾아가기가 어려운 석탑중의 하나이다.
교행하기 힘든 좁은 도로 사정과 네비를 쳐도 똑바로 안내하지 않는 석탑이다.
주소는 경남 김해시 한림면 안곡리 164번지인데 휴대폰 네비는 비교적 잘 안내하는 편이지만
차량용 네비는 엉뚱하게 안내하니 조심하길 바란다.
만일 경남 김해시 한림면 안곡리 164번지를 치고도 네비가 잘 안내하지 않으면
아래 주소를 검색해서 찾아가면 수월하게 찾아갈 수 있다.
신주소 : 김해시 한림면 안곡로 492번길 45를 치면 사진과 같이 주식회사 기성(技星) 김해 제 3공장이 나온다.
여기서 직진해서 10m만 올라가면 왼쪽에 한우축사가 나오며
한우축사 바로 위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이때는 반드시 오른쪽 길로 가야한다.
오른쪽 길로 약 20m 가다보면 다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
이때는 약간 경사가 있는 왼쪽 길로 가야한다.
왼쪽 길 좌측에 작은 저수지가 보인다면 잘 찾아온 것이다.
이 길을 계속 직진하면 사진과 같이 제석궁이 나온다.
이 제석궁 안으로 진입해서 시멘트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회전하면
곧바로 안곡리 삼층석탑으로 진입이 가능하다.
승용차는 바로 탑까지 갈 수 있으니 주저하지 말고 끝까지 올라가면 된다.
안곡리 삼층석탑이다.
김해지역에 몇 안되는 석탑중의 하나이며 높이는 2.1m로 소형탑이다.
예전에는 사진처럼 초층옥개석 위에 초층탑신석이 올려져 있었고
상층기단 중석과 이층과 삼층 탑신석이 유실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 후 보수가 이루어져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상 약간 노란색을 띠는 석재는 모두 후보물이다.
이탑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1. 지대석에 물매(경사)가 드러나게 치석하였으며 모서리에 합각선이 표현되어 있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렇게 지대석에 물매와 합각선이 있는 석탑은 13기(개인자료) 존재하며
화엄사 사사자석탑(750경)과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850경)을 제외하고
모두 고려시대에 등장한다.
그래서 고려시대 특징으로 지칭해도 무방하다.
이중 가장 빠른 시기에 등장하는 석탑은 10세기 초반경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김제 청도리 삼층석탑이며 주로 11세기에 많이 나타난다.
그런데 지대석에 물매와 합각선이 있는 석탑은 반드시 2가지 법칙이 있다.
하나는 이중기단 일 때는 지대석이 하층기단 저석과 같은 역할을 하며 (단층기단일 경우에는 기단 저석의 기능을 같이한다.)
또 하나는 하층기단 갑석과 상층기단 갑석에 물매와 합각선이 같이 표현된다는 점이다.
해서 지대석 물매와 합각선 석탑은 상,하층기단 갑석의 물매와 합각선을 같이 나타나는 것이다.
지대석은 4매로 조성되었으며 양쪽에 긴 장대석을 두고 좌우에 짧은 장대석을 끼워놓은 구조로 감입식으로 치석되어 있다.
2. 하층기단 저석 중석 갑석이 통돌로 일석으로 치석되어 있다.
이 석탑의 2번째로 큰 특징이다.
이렇게 하층기단이 통돌로 일석으로 조성된 석탑은 20여기(개인자료) 존재하며
895년에 조성된 해인사 길상탑이 그 최초의 석탑이지만 기념탑이라 제외하는 것이 좋다.
그 후 11세기 초반에는
부여박물관 동사리 오층석탑
서천 수암리 삼층석탑에서 볼 수 있으며 11세기 이후에 간간히 보인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하층기단 저석을 아주 작고 낮게 표현해 놓았으며 하층기단 갑석의 물매가 무척 가파르다.
3. 하층기단 갑석 네 모서리에 반전이 표현되어 있다.
이 석탑의 3번째로 중요한 특징이다.
이렇게 기단부에 반전이 표현되는 경우는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a.하층기단 갑석 반전석탑
b.상층기단 갑석 반전선탑
c.하층기단 상층기단 갑석 같이 반전하는 석탑
으로 나눌 수 있다.
a의 예는 영동 영국사 삼층석탑(900경)을 시작으로 3기의 작례가 있다.
b의 예는 안동 평화동 삼층석탑(850경)에서 시작하며 20여기의 작례가 있다.
c의 예는 해인사 삼층석탑과 영천 화남동 삼층석탑(10세기 초)을
필두로 2기의 작례가 있다.
모두 합치면 25기(개인자료)의 작례가 있다.
따라서 안곡리 삼층석탑은 a에 해당하며 그 작례가 매우 희귀한 석탑으로 분류할 수 있어 그 희소성의 가치가 있는 석탑인 것이다.
4. 하층기단 중석에 넓은 우주와 넓은 탱주가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우주와 탱주가 넓게 조성되는 최초의 석탑은 10세기 후반경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진주 묘엄사지 삼층석탑에서 시작하며 그 후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이 된다.
5. 하층기단 갑석 상면에 각호각 3단의 괴임이 마련되어 있고 각호각 사이에 돋을대가 표현되어 있다.
현존하는 석탑중에서 각호각 3단의 괴임이 표현되는 석탑은
이중기단 석탑에서는 순천 선암사 동서 삼층석탑(9세기 후반)에서 시작하고
단층기단 석탑에서는 879년에 조성된 문경 봉암사 삼층석탑에서
삼중기단 석탑에서는 867년에 조성된 봉화 축서사 삼층석탑에서 나타난다.
그 후 고려시대에 이어져 11세기 경에 많이 유행한다.
그런데 안곡리 사층석탑 하층기단 상면에는 특이하게도 3단의 각호각 괴임과 합각선 사이에 돋울대가 표현되어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경주 마동 삼층석탑(8세기 후반경)에서 먼저 보인다.
6. 상층기단 중석은 후보물이다.
7. 상층기단 갑석 아래에 부연이 안쪽으로 깊이 새겨져 있으며 낮은 편이다.
이렇게 부연이 안쪽으로 깊이 낮게 치석되는 시기 또한 11세기 이후에 많이 보인다.
모두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이다.
8. 상층기단 갑석의 물매가 현저한 편이며 각호각 3단의 탑신괴임과 합각선이 표현되어 있다.
상층기단 갑석의 물매가 현저하게 나타나는 시기는 선산 죽장동 오층석탑(7세기 후반경)에서 처음 보이며
법광사지 삼층석탑(828년), 실상사 서탑(828년경)으로 이어지며 9세기 후반 석탑에서도 간간히 보이지만
11세기 이후 석탑에서 많이 보여 11세기 양식으로 보는 것이 좋다.
9.초층탑신석에 넓은 우주가 표현되어 있으며 4면에 모두 문비가 마련되어 있다.
문비는 모두 2조의 돋울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로로 길게 구성되었고 자물쇠의 모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문비가 중앙에 위치하지 않고 아래로 조금 내려서 조성되어 있다.
10.옥개석 하면 층급받침은 모두 4단이며 4단의 층급받침과 바로 붙어서 절수구가 마련되어 있다.
석탑의 절수구는 옥개석 하면, 처마선 하단과 층급받침 사이에 조성하는게 일반적이지만
이 탑에서는 층급받침과 바로 붙어서 절수구를 표현해 놓았다.
이러한 절수구의 표현은 넓은 절수구를 나타낼 때 쓰는 기법이며
9세기 후반 경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울진 구산리 삼층석탑에서 먼저 보이며
이후 고려시대 석탑에서 많이 나타난다.
11.옥개석 낙수면은 급한편이며 옥개석 처마는 안쪽으로 사절되어 있으며 상 처마선의 반전이 심한 편이다.
12.옥개석 정상에는 2단 각형의 탑신괴임이 마련되어 있다.
13.이층과 삼층 그리고 상륜부는 모두 후보물이다.
"
위의 특징으로 보아
김해 안곡리 삼층석탑은 상한선 11세기 중반, 하한선 11세기 후반
해서 11세기 중후반에 조성된 석탑으로 추정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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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논문이 아니라 완벽한 논문을 쓴다면, 한국석탑에서 이러한 특징을 종합적으로 언급한 최초의 논문이 될 것입니다. 하루 빨리 논문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