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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계(品階)는 관리 개개인의 '등급(官品)'입니다. 현대 공무원 제도의 '계급'에 해당하는데, 이
품계는 '직급'이라고 할 수 있는 '직질(職秩)'과 유기적으로 연결 및 운영되었습니다. 품계가 있어야 비로소 관직에
임명될 수 있었으며 관직에서 물러나더라도 품계는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여, '품계'가 곧 관직에 임명될 수 있는 '자격'을
나타냈습니다. 단순한 파직(罷職)이나 좌천(左遷)보다 강도가 높은 문책으로, 일정 이상의 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관직
사령장인 '고신(告身)'을 추탈(追奪)하여 품계를 1-4등급 강등하기도 하였으며(경국대전 형전 추단조), 그보다 중징계
처분의 경우에는 삭탈관작(削奪官爵:삭탈관직)이라 하여 고신을 모두 회수하거나(회수된
고신은 통상 2년 후에 환급), 사판(仕版:관원 명부)에서 삭직(削職)하여 아예 이름을 삭제한
후 영원히 등용을 금지하는 영불서용(永不敍用:임용 금지)을 처벌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품계는
'18품(品) 30계(階)' 체계로 되어 있었습니다. 9품을 정품(正品)과 종품(從品)으로 나눠 18품으로 하고, 정1품부터
종5품까지를 다시 상하(上下)로 세분하여 전체적으로 30계가 되도록 하였는데, 이들 30계 품계를 당상관(堂上官), 당하관(堂下官),
참상관(參上官), 참하관(參下官), 대부(大夫), 사(士) 등으로 크게 구분하여 각각의 신분과 지위, 승진, 예우, 복식에
차등을 두었습니다(통상 업무상으로는 '직질'을, 의례나 예우상으로는 '품계'를 기준으로 함).
당상관은 정3품
상계(上階) 이상으로, 국정 주요 사안을 책임지는 고위 관직이었습니다. 1품은 정치 및 행정 전반(의정부)을, 2품은
특정 부문(육조)을, 정3품 당상관은 특수직 또는 보조직 위치를 담당했는데, 이들 당상관의 승진이나 임명은 일반적인
인사 고과나 평정이 아닌 국왕의 명령에만 의거했습니다. 즉 임기를 채운다고 무조건 승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외로
큰 흠이 없고 뚜렷한 공적이 있어야만 정3품 당상관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또 일단 당상관이 된 후에도 품계 승진이나
직책 임명에 있어 내내 그렇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당하관은 정3품 하계(下階)부터 종9품까지 관리의 통칭으로, 당상관과 달리 근무일수와 인사
고과, 평정 결과에 따라 승진하였습니다. 당하관은 다시 종4품과 정5품, 종6품과 정7품의 경계를 기준으로 그
지위가 구별되었습니다.
종4품 이상을 '대부(大夫)'라고 하였으며(무관은 '장군'), 관직 임명시에
양사(兩司:사헌부와 사간원) 대간(臺諫)의 서경(署經:심사)를
면제하고 그 사령장인 고신도 왕의 교지(敎旨)로 내렸습니다. 조정에서 예우하는 것에도 차별이 있어, 4품 이상은
어떤 사건에 연루되더라도 (정직성 및 도덕성에 바탕을 두고) 바로 하옥하거나 고문하지 않고 서면 신문으로 대치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또 불효(不孝), 불충(不忠:역모)가 아닌 이상은 죽일 때에도 목을 베
참수하지 않고 사약을 내려 사사(賜死)하였습니다. 종4품 이상 대부와 정5품 이하 사를 합쳐 (전현직 관직자를
의미하는 좁은 의미의) 사대부(士大夫)라는 단어가 됩니다. 정5품 이하 사(士)에는 문관 계열의 랑(郞)과 무관
계열의 위(尉)를 포함되었습니다.
종6품 이상을 참상관 또는 참내(參內)라고 하고 정7품 이하를 참하관
또는 참외(參外)라고 하였는데, 참상관과 참하관은 관직 교체나 승진에 필요한 근무일수에 차이가 있었습니다(참상관은
900일, 참하관은 450일). 또 경관직을 기준으로 참상관은 5번 평정(1년에 2회 평정으로 총 2.5년 소요)에서 3번 이상
상(上)의 점수를 받아야 가계(加階:품계 승진)된 반면, 참하관은 3번 평정(1.5년 필요)에서
2번 이상 상을 받으면 품계가 올랐습니다. 이렇게 근무일수에 의해 승진하는 것을 순자법(循資法)이라고 하는데, 문관
관원이 평정에 따른 승진만으로 종9품(장사랑)에서 시작해 정3품 당하관(통훈대부)까지 오르려면 아무리 순조롭더라도
약 41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참상관이 되는 것을 출륙(出六) 또는 승육(陞六)이라 하였는데, 참상관이
되어야 실무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고 지방관(수령)으로 임명될 수 있었으므로 그만큼 높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또 조참(朝參), 상참(常參) 등의 조회(朝會)와 윤대(輪對), 차대(次對) 등의 모임에도 참석할 수 있는 최소 자격이
바로 종6품 참상관 이상이었는데, 참상관이라는 명칭 자체가 이러한 행사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관직이라고 해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당상관은 주요 정무를 처리하는 대청(堂)에 오르거나 임금 가까이에 위치할 자격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말입니다.
조선조 품계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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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계 |
구분1 |
구분2 |
구분3 |
구분4 |
세종실록 |
경세유표 |
중국 |
| 국왕(國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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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후왕(諸侯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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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왕(王爵) |
| 세자(世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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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王世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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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품(世子) |
| 정1품 |
대부 |
당상 |
참상 |
공(公) : 삼공(三公) : 의정(議政) |
상대부 |
공 |
3품 |
| 종1품 |
고(孤) : 삼소(三少) : 찬성(贊成) |
고 |
| 정2품 |
상대부(上大夫) : 정경(正卿) |
중대부 |
상대부 |
4품 |
| 종2품 |
중대부(中大夫) : 아경(亞卿) |
중대부 |
| 정3품 상(上) |
하대부(下大夫) |
중대부 |
하대부 |
하대부 |
5품 |
| 정3품 하(下) |
당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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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부 |
| 종3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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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4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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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上士) |
상사 |
6품 |
| 정종5품 |
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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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사(中士) |
7품 |
| 정종6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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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사 |
8품 |
| 정종7품 |
참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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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下士) |
9품 |
| 정종8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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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 |
| 정종9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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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표는 품계 등위별 호칭 및 신분 구분입니다. '구분1'부터 '구분3'까지는 정식 제도상 구분이며,
'구분4'는 문헌상에서 확인되는 통례적 구분, '세종실록(世宗實錄)'은 1424년(세종6) 9월 17일 사헌부의 보고에서 언급된
구분(세종실록 권25.), '경세유표(經世遺表)'는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관제 개편
주장 내용에 의거한 구분입니다. '중국'은 명(明)과 청(淸) 조정의 품계와 비교입니다. 조선은 중국의 제후국을 자처했기
때문에, 조선 국왕은 중국 친왕(親王:황제의 적자), 조선 세자는 중국
친왕세자(親王世子:친왕의 적자) 또는 1품관에 상당하는 예우를 받았습니다.
* 문반과
무반, 종친, 의빈은 해당 문반, 무반, 종친, 의빈의 관직에만 임명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어디까지나 원칙이었을 뿐
예외가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관이 보직 대기 또는 정치적 상황이나 본인 과실(좌천)에 따라 무관 관직에 임명되기도
하였고 무관이 중앙 관청이나 지방 수령직을 수행하기 위해 문관 관직에 임명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교차 임명될 때에는
품계도 그에 따라 임명되는 관직 계열로 (일시) 전환되었습니다.
* 관직 없이 품계만 있을 수 있는데, 이를
산계(散階) 또는 산관(散官), 산계자(散階者), 문산계(文散階), 무산계(武散階)라고 하였습니다. '통사랑 아무개', '병절교위
아무개' 등이 그것으로, 공로가 있거나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가자(加資:품계 승진) 혜택을
내리는데, 정3품 당하관 최고 품계인 통훈대부, 절충장군 등을 지칭하는 '계궁(階窮)' 및 '자궁(資窮)' 이상에게는 그
별가(別加:특별 승진) 혜택을 제한하고, 대신 자식이나 사위, 동생, 조카 등에게
대가(代加:대신 승진)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이를 통해 품계를 받고 승진한 경우입니다. 이렇게
보유한 품계라도 나중에 과거나 천거를 통해 정식 출사하면 그 지위가 그대로 인정되었습니다(통상 해당 품계보다 낮은
관직부터 차차 임명됨).
* 과거에 급제하면 성적에 따라 종6품(장원), 정7품(갑과), 정8품(을과), 정9품(병과)
등의 품계를 받았는데, 관직 역시 그에 상응하는 직질의 자리에 임명되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습니다. 문과에 장원 급제하면
종6품 선무랑의 품계를 받고, 관직도 교서관의 종6품직 별제에 임명된다는 식입니다. 이렇게 '어떤 관직(某官)은 어떤
품계(某階)이다'라고 하는 것은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비롯한 중앙 법전에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문과 을과와
무과 갑과 제2인 이하 급제자는 우선 '권지(權知)'로 분속(分屬)되는 견습 과정을 거쳐야 했고, 최종적인 정직(正職) 진출
여부도 본인 능력이나 가문 배경, 정치적 상황 등에 따라 상이하였지만...
* 품계와 직질을 일치시키는 당품(當品)
임명을 기본으로 하였지만, 부득불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는 행수법(行守法)을 적용하였습니다. 품계가 직질보다 높으면
행직(行職)이라 하여 관청명 앞에 '행(行)' 자를, 반대로 품계가 직질보다 낮으면 수직(守職)이라 하여 관청명 앞에 '수(守)'
자를 붙이도록 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숭정대부(종1품)가 예조참판(종2품)에 임명되면 '숭정대부 행예조참판'이라고
쓰고, 가선대부(종2품)가 예조판서(정2품)에 임명되면 '가선대부 수예조판서'이라고 쓰는 식입니다. 행직에는 제한이
없었지만 수직에는 참상관은 3계, 참하관은 2계 이상을 넘을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경국대전 이전 경관직조 규정).
*
궁궐 안의 내명부(內命婦)와 세자궁(世子宮)을 제외한 여자들은 남편의 지위에 따라 (일종의 작위 내지 칭호인) 외명부(外命婦)
봉작명(封爵名)을 받았습니다. 남편의 관직이 의정부의 영의정(정1품)이면 부인인 처(妻)는 정경부인(정1품), 예조판서(정2품)면
정부인(정2품)이 되는 식입니다. 서녀(庶女:첩의 딸)와 재가(再嫁:남편이
살아 있을 때 다른 남자와 혼인), 개가(改嫁:남편이 죽은 후 다른 남자와 혼인)한
경우에는 봉작을 주지 않거나 칭호를 박탈했으며, 왕비의 어머니와 세자의 딸, 2품 이상 종친의 처는 봉작명 앞에
읍호(邑號:본관 고을명)를 붙였습니다. 청양부부인(靑陽府夫人), 언양군부인(彦陽郡夫人) 등이
그 일례입니다.
* 각 가문에 전해지는 족보, 문집, 고문서 등을 보면 품계가 통훈대부, 절충장군(이상 정3품 당하),
통덕랑(정5품), 무공랑(정7품)에 그친 경우가 유독 많은데, 이는 그만큼 당상관, 대부, 참상관의 경계를 넘어 승진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가제(代加制)에 의한 품계 또는 관직
획득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음을 또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가를 통한 승진 한계가 바로 통훈대부 또는 통덕랑이었기
때문입니다. 1623년(인조1) 9월부터는 통덕랑까지만 대가를 허락하고, 광해군 즉위년인 1608년 이후의 종4품 이상 대가를
모두 삭제하였습니다.
* 품계나 관직 앞에 '증자헌대부 이조판서'와 같은 식으로 '증(贈)' 자가 있으면 죽은 후에
증직(贈職) 또는 추증(追贈)된 것을, '수통정', '노직가선'처럼 '수(壽)'나 '로(老)' 자가 있으면 노인직(老人職), 일명
노직(老職) 또는 수직(壽職)이라 해서 장수한 사람에게 예우상 준 '명예적 품계 또는 관직'을 말합니다. 통상 전현직 관원은
80세 이상, 일반 백성은 90세 또는 100세 이상이면 노인직을 받을 자격이 되었습니다. 납속(納粟)의 경우에는 직함 앞에
'납속'이라 표시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이처럼 '노직'이나 '납속' 등을 표기해야 하는 관련 규정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상은 조선 후기에 가속된 신분제 동요와 연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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