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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겨울 새벽을 껴안은 아이
조원
흰 눈을 밟는다. 새벽을 밟는다. 밤새 흰눈이 쌓이고 새벽에는 가벼운 어둠이 남았다. 정원에는 아직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소녀는 초롱한 눈망울로 새벽 하늘을 올려다 본다. 소녀의 앵두 입술 사이의 생생한 숨결은 하얀 그리움으로 하늘에 걸려간다.
소녀의 발은 살엄음 위에 살짝 얹어 놓은듯, 물을 밟듯 조심조심하는 작은 호기심 하나 하나를 눈밭에 찍어간다.
눈은 소녀의 빨간 구두의 목을 넘을 정도가 아닌 살짝 구두등을 덮어줄 만큼의 적당량인것 같다.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가로수 가지들이 떠이고 있던 눈이 부르르 떨어진다. 더러는 땅으로 더러는 살랑 불어오는 새벽 바람에 소리없이 일어나는 날개처럼 파드득 날려가듯 하였다.
소녀는 첫눈이 내리는 날, 바로 오늘 아침에 문득 깨여났던것이다. 언제라도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기 위해 머리 맡에 준비해 두었던듯 핑크빛의 외투, 빨강 모자, 빨강 목도리, 빨강 장갑이랑 순식간에 챙겨서는 밖으로 나섰던것이다.
첫번째 해의 첫눈 내리는 날, 소녀는 광장의 우물가로 나가고 싶을걸 겨우 참았었다. 소녀는 아빠와 엄지 손가락을 맞대서 도장도 찍고, 손바닥에 싸인도 하고, 코딩까지 한 약속을 쉽게 무산시킬수 없었던것이다.
광장의 중심에는 사안정(四眼井)이라는 말라버린 우물이 있다. 소녀는 홀로 다녀가본적이 없다. 삼복 더위를 쫓는데는 귀신이야기가 특효라 하면서 아빠트 단지내의 이야기군 할미는 물귀신에 잡귀신에 온갖 귀신이야기에 신명을 올렸었는데 배경은 번마다 사안정이였다.
“씨이~ 하필이면 왜 우물가인감? ”
소녀는 토달달거리며 정원을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돌려 나란히 붙어있는 약국과 슈퍼를 지난다.
광장은 남향으로 강을 바라고있고 강 건너편 가까운 곳에는 야트막한 산이 배경이 되여 서있다. 광장까지는 시내뻐스로 두 정거장 사이의 거리인데 뒤똥대똥 소녀의 오리걸음 속도로서는 이십분은 족히 소요되는 거리다.
그러나 소녀는 새벽에, 한적한 새벽에 첫눈을 발견한것에 감사하고있었다. 혹 남들의 눈을 피해서 아빠가 나타나지 않을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
소녀는 잠자리에서 없어진 자기를 발견하고 기절초풍할 엄마를 떠올리며 키리릭 웃어버렸다.
엄마와 아빠는 소녀가 학교에 입학할 무렵 잠자리를 갈라주었다. 그것도 두층으로 되여있는 침대를 말이다. 밑층은 자그마한 책상과 책궤가 딸려있고 윗층은 침대로 되여있는 깜찍한것으로 준비해주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절대 옆방으로 가지 않는다고 앙앙 떼를 부리던 소녀는 침대 하나가 좋은 미끼가 되여 베개며 이불을 들고 홀랑 자리를 옮겼던것이다.
소녀는 아직도 기억하고있다. 첫날, 높다란 침대위에 올라가서 눈을 꼭 감고 누웠었는데 정말로 무섭다는 생각을 했었다. 눈을 반쯤 뜨고 천정을 쳐다보면 와그르르 무너져 내려 덮칠것 같았고, 고개를 틀어서 밑으로 내려다 보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것 같았다. 그래서 눈을 꼭 감고 엉엉 울어대기도 했다. 옆방에서 엄마도 아빠도 달려왔다. 아빠가 소녀를 안아서 옆방으로 데려 가려하니 엄마는 기어이 버릇을 잘 들여야 한다면서 아빠에게 반기를 들고 나왔다. 결국에는 소녀와 엄마는 매일 저녁 이층 침대에서 비비고 누웠고 새벽에 일찍 깨여서 소녀는 또 옆방으로 울면서 뛰여가길 반복했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나서야 소녀는 완전 독립을 할수 있었다.
아빠가 자리를 비우고 간 뒤, 오히려 엄마가 소녀를 끼고 자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소녀는 소녀 대로 엄마의 품에 안겨서 자는척 하다가는 다시 자기 침대로 와서야 잠을 청할수 있었다.
아빠가 자리를 비우고 나서 일년이 지나서 엄마는 거의 잠을 자는것 같지 않았다. 소녀가 잠들때마다 항상 침대 곁에 왔었고 어떨때는 엄마가 소녀의 침대로 비집고 올라와 옆에 눕기도 하였다. 몆번은 밤중에 오줌누러 일어났다가 소녀는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엄마를 보고 놀라서 비명을 질렀던적도 있었고 깨여나서 일어나 보면 엄마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러나 소녀는 잘 알고있다. 엄마가 자리에서 없어진 자기를 발견하고 기절초풍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것이라는것을. 지금 이 시간대는 엄마의 최상의 수면시간이라는것을 소녀는 잘 알고있다. 소녀가 잠들어 있는 시간은 엄마가 깨여있는 시간이고, 지금은 지치고 지쳐서 깊은 잠에 빠져들어있을 시간일것이다. 더구나 요즘은 방학기간이라 아침 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다.
“착한 설아, 이 새벽 무섭지도 않냐? 어디로 가는거야?”
엄마와 함께 자주 다니는 빵집 앞을 지날때 소녀는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빨간 털모자끈의 끝에 달린 토끼 꽁지 모양의 실뭉치를 달랑거리며 소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실장갑을 낀 두손으로 소녀는 입과 코를 감싸쥐고 올롱한 눈으로 사위를 둘러보아도 은빛의 백색 세계일뿐이다.
소녀는 다시 발걸음을 재우쳤다.
뽀드득 뽀드득, 신선하고도 흐릿한 빛으로 아직 남아있는 새길에는 소녀의 빨간 구두에 밟혀지는 눈소리가 새벽 공간의 정적을 깨뜨린다.
“설아, 빨리 걸어.”
소녀의 발밑에 밟혀지는 눈이 소녀를 재촉하고있었다.
소녀는 차츰 긴장을 풀어간다. 발걸음에 날개가 돋친듯 한결 가벼워 지고 눈소리의 리듬에 따라 우쭐우쭐 걸어가는 동화속의 빨간 공주가 되여 가는 느낌이다.
뽀득 뽀드득, 소녀는 엄마가 욕조에서 가슴을 밀어주던 소리를 떠올린다. 아빠가 까글까글한 턱수염으로 이마를 부벼주던 감촉을 떠올린다. 아빠가 출국하기전, 함께 가족 사진을 찍었던 사진관을 왼쪽으로 해서 카프해서 돌고 화랑도 스쳐지난다.
아빠가 두번째 첫눈 내리는 날, 우물가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었다. 빨간 삽 하나를 선물로 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삽으로 눈사람을 만들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엄마한테는 복숭아 목걸이를 선물한다고 했다. 소녀는 엄마 먼저 아빠에게 받아서 엄마한테 넘겨주는게 스릴이 있을것 같았다.
혹시 오늘 엄마가 잠결에 눈 내린 바깥을 쳐다보고 광장의 사안정으로 나오실수도 있을지 모른다. 소녀는 엄마 먼저 우물가로 가야 한다. 소녀는 발걸음을 재우쳤다. 얼마 걷지 못하고 소녀는 발랑 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진곳은 크리스마스 소나무를 세워둔 종탑 앞이였다.
“이씨~”
소녀는 얼얼해나는 엉뎅이에 묻은 눈을 털어냈다.
“설아, 내 이름은 고슴도치야, 땍대그르 굴러 다니며 널려있는 행복들을 줍는 고슴도치야. ”
크리스마스 소나무가 말하고 있었다. 당금이라도 소나무끝잎에서 빨간 앵두라도 뚤렁 떨어져 눈밭에 빨간 하트모양을 그릴것 같았다.
소녀는 이미 당근처럼 잘 완숙되여 버린 코끝을 실룩거리며 다시 종탑을 우러렀다.
암갈색 폭포가 쏟아질것 같은 종탑의 몸체를 따라서 종탑의 꼭대기까지 눈길이 갔다. 은빛의 꼭대기에서 소녀는 엄마가 말해주던 왕자가 요술방망이를 들고 거기에 우뚝 서있는것을 보고야 말았다.
“설아, 빨리 걸어. 너는 오늘 착한 일을 하게 생겼구나.”
왕자가 소녀에게 말했다.
멀리 있으면서도 소녀는 왕자의 몸에서 풍기는 딸기향 아이스크림 향을 맡을수 있었다. 소녀는 팔을 흔들어서 자기를 알렸고 종탑을 에돌아 광장과 가까워지는 월계수 숲 가까운 곳, 대리석으로 깔려있는 바닥에서 소녀는 진한 베일로 싸여있는 왕자를 감싸안았다. 소녀는 거대한 왕자의 육체를 조금 맛보았다. 그리고 소녀는 월계수 숲에서 떨어져 나와서 광장에 다달았다.
학교를 오갈때 시내뻐스의 창으로 바라던 광장 아침의 모습은 항상 소란스러울 정도로 정열적였지만 눈 내린 새벽의 광장은 휑덩그레하였다. 눈이 내려져 시끌벅적대던 사람들의 발자국을 묻어버렸고 그냥 원초적인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있다.
“왜 광장 중심에는 우물이 있어요?”
엄마에게 물었던 한두번의 질문이 아니다.
그러나 번마다 엄마는 그냥 절레절레 머리만 흔들뿐이다. 그래서 소녀는 무지하게 박식한 어른들 세계에도 모르는것들이 있다는것도 깨우치게 되였다.
“왜?”
하고 물어보면 엄마는 해박한 지식으로 뭐든지 소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면 소녀는 머리를 까딱거리며, 아니면 박수를 짝짝 쳐대며 즐거워 했다. 그러면서 뭐든지 다 알고 있는 슈퍼맨 같은 엄마와 아빠가 자랑스럽기 까지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홀로 거실 쏘파에 앉아서 “절대 용서할수 없어.” 하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중얼거리곤 하였다.
“왜?”
소녀는 누구를, 무엇을 용서할수 할수 없다고 하는지를 모르면서도 엄마에게 캐묻군 하였다. 사실 소녀는 용서라는 말 자체의 뜻도 모르고있었다. 그냥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멋있고 아름다운 말들 뿐이라는것만 알고있기 때문이다.
“이제 크면 알게 될거다.”
엄마는 무가내하게 박씨같은 이를 내보이면서 일축해버리군 하였다.
“아빠는 지금 뭐 하실가요?”
소녀는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은 일들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몰라…”
엄마의 입에서 가느다란 탄식과 함께 “몰라” 하는 말이 새여져 나올때면 소녀는 무지 우울해지는 날이다. 소녀의 인상속의 엄마는 뭐나 다 잘 알고있는데 아빠에 대해 물어보면 “몰라” 하고 말해버리군 하였다. 소녀는 우울해지는 자신과 함께 흐려지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엄마가 모르고있는 부분들의 질문을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문득 문득 입이 절로 열려지는것을 주체 하기 힘들었다.
광장에 또박또박 발도장을 찍어갔다. 우물가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우물가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아빠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 거기서 기달려야지. “
소녀는 내처 광장으로 걸어간다.
거의 우물가로 다달을 무렵, 광장의 맞은편 거리로 시꺼먼 트럭이 부르릉 소리를 내며 스쳐지나고 있었다. “위험물질 접근 금지” 라는 글씨를 빨갛게 쓴 트럭위에는 우루룩 가스통들이 실려가고 있었다. 가스통이 툴툴 거리는것 같다. “어디 우리를 건드려 보라구, 세상 한번쯤 왈칵 뒤집어 놓을수도 있다.” 하는 배짱으로 트럭에 실려서 눈내린 새벽에 어디론가 실려가고있었다.
소녀는 트럭이 토해낸 매연에 눈쌀을 찌프리다가 “혹시?” 하면서 우물가로 마구 뛰여갔다. 다른데도 아니고 굳이 우물가로 장소를 정한 아빠이고 보면 깜짝쇼가 있을수도 있었다. 우물안에 숨어있을수도 있었던것이다.
내처 달리던 소녀는 인차 김빠진 공처럼 나른해지고 만다. 언젠가 딱 한번 광장으로 나왔다가 아빠의 손에 이끌려 우물안을 쳐다봤을때는 우물은 들여다 볼수 없을 정도로 촘촘한 철사 그물망으로 차단되여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아빠가 숨을수 없음을 소녀는 뛰는 사이에 자각하고 말았던것이다.
우물가에 다달은 소녀는 숨을 몰아쉬면서 우물을 들여다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우물을 등지고 허리를 기대였다. 딱딱해야 할 우물벽이 꿈틀꿈틀 움직이는것 같았다.
소녀는 화들짝 놀라서 탁구공이 되여 튕겨서 돌아서버렸다. 금방 자기가 기대고 있던 곳은 별로 다를바 없이 흰눈이 덮여있었다. 그러나 다른 부위보다 눈발들이 더욱 보송보송하고 반들거릴것 같았다. 엄마가 좋아하는,기분좋게 입천정에 달라붙는다는 카프치노의 생크림 같기도 하였다.
소녀는 실장갑을 벗어 외투 호주머니에 넣고 손을 대보았다. 소녀는 숨이 딱 멈추어버리는것 같았다. 촉감은 아빠가 선물했던 털세타처럼 보송보송했고 따뜻한 온기가 서려있었다.
다시 유심히 쳐다보니 눈속에 머리를 박고있는 흰 토끼 한마리였다. 동화속에서나 애니매이션에서나 볼수 있었던 생생히 살아있는 흰 토끼 한마리가 거기에 옹크리고 앉아있었다.
환희와 공포속에서 소녀는 흥분되였다. 어쩜 아빠가 선물한 토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소녀가 다시 토끼의 등에 손을 갖다댈 때, 토끼가 귀를 쫑긋 세우고 앞다리를 모아쥐고 소녀를 쳐다보았다.
“귀엽다. 귀여워.”
소녀의 입에서는 탄성이 연속 터져나왔다.
그러나 토끼의 빨간 눈동자에 서려있는 우수를 쳐다보며 소녀는 인차 걱정에 싸여갔다.
“ 어디 아프기라도 하는걸가? ”
소녀는 가슴이 알짝찌근 해나면서 감히 토끼에게로 접근을 하지 못했다. 비여버린 동공으로 소녀를 쳐다보던 토끼는 다시 고개를 돌려 우물안을 드려다보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앞발로 눈가를 비비작거렸다. 다시 고개를 돌려 소녀를 쳐다보았다.
소녀는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토끼의 애원의 뜻을 모르고있었다.
토끼는 다시 우물을 내려다보며 낑낑 소리를 냈다. 소녀는 토끼에게로 다가가서 토끼와 나란히 서서 우물을 내려다 보았다.
아빠와 함께 내려다 보던 우물을 덮고 있던 철사 그물망은 어디로 가버리고 으슥한 우물안에서 뭔가 반짝이고 있었다. 밝은데서 어두운데로 내려다보는것도 한동안 초점을 맞추어야 시력이 회복될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였다. 복숭아 모양의 뭔 물건이 거기서 반짝반짝 하고 있었다. 토끼는 소녀의 옆에서 끼잉 끼잉 하면서 울고있을 뿐이고.
좀더 다시 초점을 맞추어갈 때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하트모양의 물체가 어떤 재빛 물체와 함께 꿈틀거리였다.
“우~ 우~”
이어서 괴이적은 소리가 우물안에서 울려왔다. 소녀가 눈을 부비며 다시 확인을 했을때는 재빛 개 한마리가 거기서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
소녀의 입에서 탄성이 튀여져 나갔다. 토끼의 애원이 바로 우물안의 개를 살려달라는 애원이였으리라.
소녀는 고패에 감겨있는 우물통을 우물안으로 내리뜨리며 웨쳤다.
“물통안에 들어앉아. 그러면 올라올수 있는거야.”
소녀는 재빛 개가 물통에 앉길 기다렸다가 힘껏 고패를 돌렸다. 그러나 소녀는 얼마 돌리지 못하고 고패는 소녀의 손에서 미끌어져 내렸고 물통은 다시 우물안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소녀는 체조시간에 배웠던 동작대로 기지개를 켜고 심호흡을 하고 발을 탕탕 구르고 난 뒤, 우물벽에 발을 딱 대고 힘껏 고패를 돌렸다
물통과 함께 재빛 개는 끝내는 끌려올라왔다. 재빛 개는 머리를 틀어박고 우물통에 옹송거리고 앉아서 추워에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밤새 우물안에 갇혀서 얼고있었는지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체를 련상시키기에 족했다. 여태껏 보아왔던 개들보다 꼬리가 엄청 길고 축 처져있었고 털도 부숭부숭해 있었다.
흰 토끼는 소녀와 재빛 개를 번갈으면서 눈에서는 광채가 일어났다. 앞발을 싹싹 비벼대는양이 소녀에게 고맙다는 답례를 올리는것 같았다. 토끼의 마음은 해바라기처럼 소녀를 향하는것 같았다. 소녀는 토끼의 빨간 눈동자에 비쳐진 자기의 빨강 모자에 달려있는 영롱할수 밖에 없는 이슬방울을 볼수 있었다.
소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토끼에게 발씬 웃어주었다. 백미터 달리기라도 하듯 몸이 후끈후끈해났다. 소녀는 빨간 목도리를 풀어헤쳤다. 그리고는 머리를 떨구고있는 개를 껴안아서 물통에서 겨우 끌어냈다.
웬걸?
주둥이가 무지하게 앞으로 삐쭉 튀여져 나왔고 귀가 빨쭉한것이 지금껏 보아왔던 개의 모습이 아니였다.
“아~”
소녀의 손에서 힘이 빠져버릴것 같았고 당장이라도 품에 있는 승냥이를 내다버릴것 같았다. 한마리의 승냥이였던것이다.
소녀는 승냥이라는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소녀와 요즘은 아예 놀아도 주지 않았다. 소녀가 엄마에게 칭얼거리면 엄마는 티비를 켜서는 애니매이션 채널을 돌려주었던것이다. 방학이라 애니매이션 채널에는 언제든지 <<씨양양과 후이타이랑>>을 만날수 있었다. 애니매이션을 보면서 <<나쁜 놈, 나쁜 놈…>>하고 재빛 승냥이를 욕하길 반복을 했었던 소녀였던것이다. 그러니 금방 승냥이를 알아볼수 있었다.
그러나 소녀는 눈을 거슴츠레 반쯤 뜨고 고통속에 빠져있는 승냥이를 쳐다보면서 감히 내칠 용기를 내지 못하였다.
소녀의 눈이 새록새록 빛을 발했다. 승냥이의 목에는 복숭아 모양의 은목걸이가 걸려져있었던것이다. 소녀가 내내 마음속으로 그리던 아빠가 엄마에게 선물하게 될, 바로 상상속의 은목걸이가 승냥이의 목에 걸려있었다.
소녀는 은목걸이를 만지고 싶었다. 소녀는 승냥이를 왼손으로 있는 힘껏 부둥켜 안은채 오른손으로 은목걸이에 손이 가져져 갈때 불뚝 승냥이가 발악이라도 할듯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러나 이내 기진해버린채 머리를 떨구어버렸다.
소녀는 승냥이가 머리를 번쩍 들었을때 승냥이의 눈에서 발하는 범접못할, 그러나 악의적이지 않고 공포적이지 않는 거부의 눈길을 의식하고 말았다. 은목걸이에 담겨져있는 어떤 마력을 소녀는 느끼고 주춤하고 서있었다.
소녀는 조금전의 망설임 같은건 헌신짝처럼 버렸는지 목도리로 승냥이의 몸을 칭칭 감기 시작했다. 승냥이의 몸을 녹여주어야 하는것이 급선무였던것이다.
우물가에 승냥이를 내려놓고 목도리를 감아주는 사이에 토끼도 소녀와 함께 공포의 눈빛을 하고있었다. 뒤걸음질 치던 토끼는 다시 발볌발볌 승냥이에게로 다가갔다. 축 처져서 기진해있는 승냥이에게로 토끼는 주춤주춤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온갖 두려움을 감지하면서도 큰 결의라도 내린듯 그렇게 기여가고있었다
소녀는 멍청히 토끼의 거동을 보고만 있다. 토끼가 눈밭위에 찍어가는 발자욱이 떨리는것을 소녀는 보고있다. 승냥이가 몸의 한기를 쫓기 위해서인지 부르르 떨자 토끼는 이내 전진을 포기하고 한참 정지해있었다.
토끼는 소녀를 다시 쳐다보았다. 지극히 친밀을 표시하는 눈길로 소녀를 쳐다보았다. 소녀는 이미 애니매이션의 어느 한 장면을 보고있었다. 겁기와 바램, 놀라움과 환희가 썩여있는 그런 장면이다.
승냥이가 벌떡 일어나 토끼에게 다시 덮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을 차며 토끼의 거동을 제지시키려는데 토끼는 끝내 승냥이의 옆에 다가가서 복숭아 은목걸이에 입을 댔다.
고개를 떨구고있던 승냥이가 불현듯 천둥이 치는 소리를 들은것처럼 삐죽 나온 입을 약간 벌렸다. 그 서슬에 토끼는 팔짝 놀래버리며 뒤로 발랑 넘어져서 땡때그르 눈덩이처럼 눈밭에 굴러가버렸다.
승냥이는 버둥대기 시작했다. 소녀가 감싸놓은 목도리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승냥이의 눈에 하얀 눈빛이 부딪쳐 그 빛이 튀는것 같았다. 노여움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고 광기라고나 할가?
승냥이는 어디에서 힘이 솟구쳤는지 머리를 번쩍 틀어서 입을 짝 벌려서 순식간에 목도리를 풀어헤치고는 펄떠덕 일어서버렸다. 소녀는 돌발 사건앞에서 어쩌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러대기만 했다.
눈밭에 굴러버린 토끼는 강가 방향으로 도망을 하기 시작했다. 승냥이가 그 뒤를 쫓고 소녀가 또 그 뒤를 쫒기 시작했다. 강 건너편으로 야트막한 산이 보이고 있었다. 조금씩 작아지려고 한다. 승냥이도 토끼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거야.”
엄마의 말씀이 달려온다. 언젠가 엄마가 소녀의 곁에서 중얼거렸었다. 소녀는 엄마의 말소리에 살며시 눈을 떴고 자신의 몸에 박힌 엄마의 눈길에서 무엇인가를 보는듯 했다.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엄마는 자신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하고 잠든 소녀를 찾아와 지키고 있는듯 했다.
소녀의 눈에서 멀어지려고 한다. 토끼와 승냥이가.
엄마의 말씀대로 정말 토끼와 승냥이가 눈에서 멀어지면 자신에게 멀어질가고 소녀는 잠간 생각해본다. 하지만 미처 답을 찾기도 전에 주먹만큼 보이던 토끼와 승냥이가 야산에 올라서면서 하나의 점으로 보이려고 했다.
“이젠 쫓아가야 해.”
소녀는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야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지나면 승냥이에게 토끼가 잡히거나 아니면 승냥이도 토끼도 소녀의 마음에서 멀어질것이다. 허나 마음은 잡아야 한다고 하지만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광장우물가에서 아빠랑 함께 눈사람을 만들자.”
아빠의 약속을 소녀가 어길수는 없다. 귀여운 토끼를 잃는다는것도 아프지만 첫눈이 내리는 날을 소녀는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토끼를 위해서, 혹은 승냥이가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리유로 아버지와 약속을 어길수는 없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소녀는 눈에서 가까워지면 마음에서 가까워진다고 믿고있다. 마음에서 어떻게 멀어지고 가까워지는지를 아직 소녀는 알수 없지만 멀어진다는것은 잃어버린다는것처럼 두렵게 느껴지고있었다.
아빠가 돌아오면 엄마도 더 이상 한숨을 쉬지 않고 밤이면 편히 주무실것이다. 소녀는 다시 자신의 보금자리인 침대로 돌아갈수 있고 엄마도 밤이면 아빠랑 편히 주무시고 아침이면 맛나는것을 해줄것이다.
소녀는 엄마를 위해서 아빠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눈사람을 위해서는 토끼와 승냥이와는 멀어져야 한다.
“호~”
소녀의 입에서 기이인 입김이 흘러나올 때 토끼와 승냥이는 마침내 한점 빛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늘에도 빛 하나가 걸린다.
그 빛은 마침내 소녀의 주위에 수천수만개의 빛을 만들었다.
어둠은 어느새 토끼와 승냥이처럼 사라지고 게으른 태양이 하늘에 걸린것이다. 눈을 보니 눈이 부시다. 금방 소녀는 그 빛속에서 자신이 산산히 부서지는듯한 착각에 빠져본다.
엄마가 이제 곧 깨여날것이다. 엄마는 빛을 싫어한다. 어둠만큼 빛을 싫어하고있었다. 아빠가 금방 떠났을 때에는 소녀는 아침에 깨여나면 창가에 서있는 엄마를 자주 보았었다. 소녀가 엄마나 아빠를 기다릴 때처럼 창가에 서서 엄마도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모습이였다.
하지만 용서라는 소녀가 알수없는 말들만 반복하면서부터 엄마는 빛을 싫어했다. 한낮에도 창가에 카텐을 꽁꽁 치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빛을 막아버렸다.
엄마는 자신이 찾는 누군가의 모습을 창가에서 보지 못하니 마음에서 멀어져서 그런것일가?
소녀는 뺨의 감각을 잃어갔다. 그러나 소녀는 뺨이 아닌 발을 굴렀다. 발도 어느새 뺨만큼은 얼어서 감각을 잃고있다. 손으로 뺨을 쓸면서도 소녀는 야산을 쳐다보고있다. 토끼와 승냥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고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녀는 토끼와 승냥이를 찾고있다. 눈에서 멀어졌지만 소녀의 마음에서는 멀어지지 않고 토끼를 걱정하고있다. 그리고 승냥이도 언 볼을 어루쓸지나 않을가 걱정한다. 토끼와 승냥이처럼 소녀에게서 아빠는 멀어졌지만 소녀는 한번도 아버지를 잊은적이 없다. 아빠가 그리웠고 아빠가 다시 돌아올거라고 믿었기에 두번째 첫눈을 기다렸던것이다.
아빠는 엄마에게 사올 목걸이도 금방 본 승냥이의 목거리처럼 이쁜것일가?
아빠는 소녀에게는 눈사람을 뺀 또 다른 선물은 갖고 올가?
문득 소녀는 흠칫 몸을 떨었다. 바람에 날려온 눈이 소녀의 얼굴을 핥고 간것이다. 소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금방 바람에 날린 눈을 소녀는 다시 내리는 눈이라고 착각한것이다.
다행이도 하늘에는 태양이 걸리고 땅에는 그 빛들이 부서져 있을뿐 눈이 내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호~”
소녀의 입에서 다시 긴 입김이 포물을 그으면서 흘러나왔다.
소녀는 이젠 눈을 더 기다리지 않을것이다. 아니, 눈이 올가봐 두려워하고있다. 간밤에 내린 눈이 첫눈이라면 이제 내리는 눈은 두번째 눈이 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 아빠는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게 되는것이다.
아빠는 약속을 어기지는 않을것이다. 간밤에 첫눈이 내렸고 지금쯤 아빠도 첫눈을 밟으면서 소녀를 향해 오고 있을것이다.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신용이 없는 사람이고 그러니 사귀지 말라고 아빠는 늘 말씀하셨다. 그 신용이란것이 어떤것인지도 소녀는 용서만큼 리해할수 없지만 결코 좋은 말은 아니란것을 아빠의 표정에서 이미 읽었었다. 그러니 아빠는 떠나면서 하신 두번째해 첫눈이 내리는 날을 잊지 않고 있을것이다.
“아빠.”
소녀는 가만히 아빠를 불러보았다. 추위가 조금은 가시는듯 싶다. 소녀는 “아빠, 아빠”하고 부르면서 선자리에서 퐁퐁 뜀을 뛴다. 아빠가 있을 때 눈사람을 만들다가 발이 시리면 아빠와 함께 그렇게 뛰여 발에 온기를 다시 찾은 기억은 아직도 아스라히 남아있었던것이다.
뜀을 뛰니 발의 취위는 가셔지지만 손은 여전히 얼어 있다. 아빠의 커다른 손이 그리워진다. 아빠랑과 함께 눈싸움을 하고 언 손은 언제나 아빠의 가슴에 넣어서 녹였다. 허나 지금은 아빠가 없다. 그러니 발은 온기를 찾아도 언 손은 녹일수 없다. 하지만 소녀는 실망하지 않는다. 이제 아빠가 오면 금방 자신의 언 손과 볼을 녹여줄거라는 확신이 서있었다.
눈위에서 뜀을 뛰던 소녀는 문득 집 방향을 향해 멈춰섰다.
소녀의 집은 소녀의 가시도 범위내에 있는것도 아닌데 소녀의 눈앞에는 두터운 카덴이 내려져 있는 집의 창문이 떠오른다. 아직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것이다. 빛을 차단하지만 엄마는 잠잘 때 카텐과 한낮의 카텐을 구분하고있었다. 아직 엄마는 깨여나지 않았을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곧 깨여날것이고 깨여나면 소녀가 없어졌다고 무척 당황하거나 화를 낼것이다.
소녀의 눈은 다시 하늘에 걸린 태양에 멈춘다.
아빠가 빨리와야 하겠는데 태양만 걸음을 재촉하고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소녀가 세번째로 긴 입김으로 포물을 만들려고 할때쯤 사라졌던 토끼와 승냥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개미만큼 작게 보여서 무엇인가 눈위에서 뒹군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씩 자신과 가까워지면서 그것이 승냥이와 토끼란것을 알아볼수 있었다.
승냥이가 토끼를 잡아먹기 위해서 쫓은줄 알았었는데 강을 건너 소녀를 향해 오는 승냥이와 토끼는 이상한 모습을 하고있었다. 승냥이는 토끼를 입에 문것이 아니라 자신의 등에 업고 조심스럽게 강을 건너 우물을 향해오고있었다.
“호~”
소녀의 입에서 입김이 새여나갔지만 그건 그렇게 긴 포물을 그리지 못했다.
“씨양양과 후이타랑”을 보면서 승냥이를 나쁜놈이라고 욕만 하던 자신이 생각난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보이는 승냥이는 토끼랑과 친구를 하고있다. 승냥이는 소녀가 생각한것만큼 나쁜 놈은 아니였다.
토끼와 승냥이가 가까이 왔을 때, 소녀는 토끼의 목에서 반짝이는것을 보았다.
아, 목걸이?
승냥이의 목에 걸렸던 목걸이가 지금 토끼의 목에 걸려있다. 승냥이는 자신의 목걸이를 욕심내는 토끼에게 그것을 선물하려고 뛰여갔고 그런 승냥이의 마음을 모르는채 토끼는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한다고 도망했을것이다. 토끼에게는 목걸이를 걸기 전까지는 승냥이가 정말 그렇게 무서운 존재였을가?
목걸이를 걸고 승냥이의 등에 업혀 의기양양한 토끼를 보던 소녀는 문득 언젠가 집에서 훔쳐본 사진이 떠오른다.
그랬다.
소녀가 본 아빠의 사진 옆에 서있던 녀자도 목에 토끼와 꼭 같은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이모에게서 소포가 왔고 소포를 헤쳐 소녀는 옷을 찾아 입고있을 때 엄마는 무슨 사진인가를 들고 넋잃고 바라보면서 소녀의 생에 처음 듣는 욕들만 골라서 했었다. 그리고 용서가 없다는 말을 그때 처음 했었다.
엄마의 무서운 얼굴 때문에 소녀는 감히 사진을 보자는 말을 하지 못했고 며칠후 엄마가 잠든 뒤에 몰래 찾아서 봤었다. 그건 아빠와 어떤 낯선 아지미가 찍은 사진이였다. 아빠에게 무엇인가를 먹여주는 모습이였다. 아빠도 웃고 그 아지미도 웃고있었지만 아지미의 얼굴은 이상하게 곰보가 되여있었다. 늦게야 소녀는 아지미의 얼굴은 엄마가 바늘로 찔러서 생긴 곰보자국이란것을 알았지만 감히 그것도 묻지 못했었다.
토끼와 승냥이는 마침내 입깁이 느껴질만큼 소녀와 가까이 다가왔다. 소녀는 토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토끼는 소녀를 외면한채 승냥이의 등에 가만히 볼을 댔다.
소녀는 진한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무작정 토끼를 잡을수 없다. 승냥이의 눈이 소녀는 두려워지고있다.
씨양양에서 나오는 후이타랑처럼 살기가 어렸다면 소녀는 차라리 용감히 승냥이와 싸웠을것이다. 그러나 토끼를 업은 승냥이의 눈길은 살기가 아닌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
소녀는 다시 “호”하면서 입김으로 포물선을 그리려고 한다. 그러나 소리는 그대로 입안에서 멈춘채 포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빛은 어느새 소녀의 입김마저 삼켜버리고있었다.
토끼를 업은 승냥이는 우물을 향해 용감히 전진했다. 소녀는 팔을 내밀어 저지하고 싶다. 그러나 소녀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다.
소녀는 차라리 눈길을 다시 집 방향으로 돌린다. 여전히 무거운 카텐에 가려 있을 집은 첫눈이 내린 광장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을 그리고 있을것이다. 창가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이라도 보이기만 하면 도움이라도 청하련만 빛을 싫어하는 엄마가 창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을것이다.
소녀가 도움을 포기하고 다시 승냥이와 토끼를 더듬을 때 승냥이는 우물위에 서있었다.
“안돼.”
소녀는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승냥이와 토끼는 그런 소녀를 왁살스럽게 묵살한체 서로 눈을 마주치고있다.
사랑이 넘치는 승냥이의 눈길을 받는 토끼의 눈도 목에 걸린 목걸이만큼 빛나고 있다. 한동안 둘의 눈길을 마주치고 있다가 마침내 승냥이는 토끼를 업고 우물로 뛰여들었다.
“아, 안, 돼.”
소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우물위에 올라섰다.
우물안에서 토끼와 승냥이를 더듬으려고 하였다. 손에 들린 드레박이 떨리고있다. 그러나 아무리 훑고 핥고 해도 우물안에서는 승냥이와 토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소녀가 뛰여오는 사이에 우물안 어디에 자취를 감췄을가?
승냥이의 눈빛이 소녀의 머리를 파고든다.
소녀는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서 부서지던 빛이 어느새 희뿌옇게 색조를 잃고 있다. 금방까지 쾌청하던 하늘에서는 언제 다시 눈이 쏟아질지 모른다.
소녀는 하늘이 두려워 다시 우물안에 눈길을 준다. 그때 수천수만개의 승냥이의 눈들이 소녀를 향해 벙긋거리고있었다.
“아~”
소녀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흘러갔다.
집에 드리웠던 카텐이 서서히 걷히고 있음을 소녀는 직감으로 느끼고 있지만 고개를 돌리지는 않는다.
문득 승냥이의 눈빛이 사라지면서 아빠가 엄마의 목걸이를 들고 소녀를 향해 손짓한다. 아빠의 옆에 세워진 작은 삽도 보인다. 승냥이의 사랑이 넘치는 눈빛으로 만든 삽이 소녀를 유혹한다.
“어서와.”
아빠가 손짓한다.
“ 아빠~”
소녀는 마침내 잃었던 포물을 다시 그리면서 아빠를 향해 날아간다.
광장 우물위에는 마침내 뿌연 하늘에서 수많은 빛들을 만들어 뿌려준다. 아빠의 약속과 용서할줄 모르는 엄마와 카텐으로 가려졌던 침대와 목걸이를 건 토끼와 토끼를 향해 사랑의 눈빛을 만들어가던 승냥이와 소녀와 우물이 하나가 되여 산산히 부서지고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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