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목. 가을풍경, 사마귀, 아무르장지뱀
맑은 가을아침이다. 공기가 건조하다. 숲의 잎사귀들 부딪치는 소리도 달라졌다. 어느새 감지 했는 지 콧속 점막도 금방 말라 머프를 올려 코를 감쌌다.
이제 자주빛 싸리꽃들이 더 이상 피지 않고, 마르기 시작한다. 정상 오르는 길가엔 늦여름부터 피기 시작한 사철쑥 꽃이 절정이고, 오늘은 뺑쑥, 참쑥 꽃들이 새로 보인다. 싸리꽃 시절은 참으로 길고 길었다. 5월부터 시작해 8월까지 꼬빡 넉 달이다. 백일홍보다 더 길게 피는 셈이다. 하지만 벌 한 마리는 아쉬운 듯 마른 꽃송이를 여기저지 방문한다.
원효산 정상은 며칠 사이 은빛 억새바다로 바뀌어 있다. 역시 빠르다. 상정의 시계과 달력은 지상에 비해 항상 빠르고 짧다. 기름나물이나 송이나물 같은 여름꽃들은 며칠 사이 부쩍 말라가고 한창힌 개미취 외에 새롭게 미국쑥부쟁이와 미역취꽃이 올라오고 있다. 이제 참취꽃은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런데 보라, 한여름 남들 다 피고 진 뒤 늦게 핀 기린초와 꿩의비름이 있었다. 제 나름의 사연이 있다는 듯. 그래서 늦꽃은 더 정겹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정상 지역을 거닐다보니 고요하지만 눈부시게 일렁이는 억새가 세상을 바꾸었음을 실감한다. 억새바다는 너무나 눈부셔 사진을 찍으니 곧 바래져버렸다.
정상도 그렇고 화엄벌 언덕도 그렇고 야영객이 다녀간 흔적이 있다. 팻말이 모두 뽑히고 엎어져 있다. 화엄벌은 심지어 돌로 눌러놓았다. 억새철임을 실감한다. 등산객들이 부쩍 늘더니 이제 평일에도 야영객들이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하는가보다. 야영금지 팻말 앞에 야영을 하려니 꺼림직 해 팻말을 뽑아 엎어놓은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야영을 하고 떠나며 왜 원래대로 복구시켜 놓지 않을까? 일종의 개인적 항의와 저항의 표시일까? 그보다는 귀찮아서 일 것 같다. 자연에 대한 낭만을 맘껏 누리고 멋진 사진을 찍고 떠나며 아예 잊었을 지도 모른다. 야영을 할 수는 있지만 몸에 벤 공공의식을 조금이라도 갖추고 있다면 팻말은 원래대로 복구했을 것이다. 사람들의 이런 행태를 보면 그저 아쉬운 생각이 든다. 경상도에서 몇 년 살아보니 이곳 사람들의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은근 이들의 자존심을 자극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가 살던 서울의 산의 문화와 비교하면 자연과 생태에 대한 의식과 공공에 대한 감각이 아직 아쉬운 점이 많다. 농촌과 공단이 혼합된 메갈로폴리스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리라. 즉 천성산을 둘러싼 부산, 김해, 양산, 울산은 전근대와 근대와 현대가 복합된 곳이고 그에 따르는 여러 모순이 응축된 곳이기도 하다. 현대적 메갈로폴리스권을 형성하고 있는 서울 중심의 경기도와는 상황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표면적으로 섣부른 비교를 하는 것도 잘못이다.
말뚝을 다시 박고 주변을 정돈했다. 그러나저러나 10월이 되면 정말 산불 주의를 해야 한다. 이곳은 억새가 발달하고 바람이 많은 편인데도, 아직도산악인들이 코펠로 음식을 해먹거나 버젓이 담배 피는 문화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재작년에는 건너편 능선에 산불이 나 아직 불에 탄 소나무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산에 올라와 라면이나 어묵탕에 막걸리 한잔 하는 것이 등산의 맛이라고 여기니 취향의 문제를 어찌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르는 의식변화가 필요하다.
화엄벌 펜스 길에서는 사마귀를 만났다. 사마귀가 살짝 긴장해 몸을 사리고 올려다 본다. 눈에 검은 점이 모아져 자기를 바라보는 존재를 바라본다. 세모난 얼굴에 콧잔등에는 초록의 줄무늬가 보이고 쥐처럼 뾰족한 주둥이는 날카롭다. 며칠 전 사마귀가 자주색 뻐꾹채꽃 밑에 매달려 사냥한 벌을 아삭아삭 씹어 먹는 것을 보았다. 벌의 육즙 때문인지 분비된 침 때문인 튼튼한 턱으로 우적우적 씹어 먹는 주둥이가 흥건했다. 그렇지만 사마귀는 아름답다. 복잡한 유기체일수록 감각과 기능을 통합하기 위한 의식의 영역이 발달하는데 사마귀도 역시 그렇다. 곤충들을 보면 곤충들에게도 곤충 나름의 의식이 느껴진다.
이윽고 연둣빛의 아름다운 사마귀는 몸을 움직여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당랑권법을 하듯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초소에 들어와 문을 열어두니 아무르장지뱀 한 마리가 들어왔다. 잠시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볕을 쬐며 졸다가 갔다.
인기척을 느끼면 뚱그렇게 눈을 뜨고 긴장을 한다. 눈을 보라. 살아 있는 눈. 아무르장지뱀의 또렷한 눈은 잠시 반짝였다가 다시 고요해지면서 눈꺼풀이 스르르 올려진다. 반수면상태로 가는 것 같았다.
햇볕으로 몸이 깨어났는지 아니면 충분히 쉰 탄인지, 잠시 후 초소바닥을 천천히 기어서 나갔다. 엷은 곤충과 아무르장지뱀의 의식을 느끼니 공감의 느낌이 든다.
또한 오늘은 아기다람쥐도 봤다. 어른다람쥐의 절반 정도다. 하지만 아기다람쥐도 다람쥐였다. 도토리를 부지런히 먹고 살찌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