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 속을 걷다 뒤돌아 보니 멀리 함열 방향에 겨울해가 미지근하게 떠오르고 있다.>
함께 걷는 길(11)
* 2008.1.19(토, 함열 --> 논산 약 20Km, 9시간 소요, 누적거리 169Km)
* 함열 --> 강경 --> 논산
<농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소하천을 만나 용안면으로 가는 포장도로를 탔다.>
발목에 이상이 있어 2주간을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오늘은 전라북도 익산
북쪽에 있는 함열에서 시작한다. 아침 7시 30분 열차에서 내려 성당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걸어나가는데 너무 춥다.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포장도로를 피해 시멘트 포장된 농로길을 걷는다. 아직 어스름이 걷히지 않아 날이
약간 어둡다. 성당 마을을 왼쪽으로 끼고 곧게 뻗은 농로길을 주욱 걸어 나아간다.
겨울 벌판 한 가운데를 남녀가 털모자를 눌러쓰고 추위에 떨며 걸어가는 모습이
스스로 기괴하게 느껴진다. 얼마나 걷고 싶었으면 이리도 멀리 기차를 타고 달려와
추위에 떨며 걸어가고 있는가? 우리는!
<용안면 소재지를 향하여 걷는다. 들판보다 한결 포근하다.>
<닭장 속의 저 닭들은 용케도 추위를 잘 견디고 있다.>
춥다. 귀가 시려 털모자를 깊이 내리덮어도 춥다. 목덜미 왼쪽이 굳는 듯하고,
왼손 새끼손가락 쪽이 굳어오는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추운 날을 택한
것 같아 약간 무리라는 생각도 든다. 해가 뜨고 낮이 되면 조금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계속 걸어나간다. 한 시간 가량 걷다가 함열 쪽을 뒤돌아보니
날은 흐리고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것 같았으나 우리의 얼어붙은 몸이
도움을 받기엔 너무 미지근해 보인다.
<겨울 들판, 산북천에 이르기전의 들판 모습>
곧게 뻗은 길고 긴 농로길이 끝나고 소하천이 나타난다. 1/50,000 지도를 살펴
보니 산북천으로 나와 있다. 금강으로 흘러가는 하천이다. 그 제방에 올라서
포장도로로 들어선다. 우리의 발걸음은 용안면 소재지로 향한다. 들판 한 가운데
를 걷는 것보다 훨씬 따뜻하고 포근하다. 용안중학교를 지나서 소재지가 끝나는
곳에 삼세오 유적지가 있다. 그냥 지나친다. 그곳에서 다시 들판으로 들어선다.
농로길을 선택해 나아가다 멀리 화산리의 천주교 성지인 나바위 성당이 보인다.
조그만 야산 옆에 자리잡은 화산천주교회는 우리나라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님이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서양의 선교사와 함께 처음으로 전교의 발을 내디딘
곳이다. 그래서 카톨릭 신자인 우리는 오늘 꼭 성당에 들러 우리들의 신을 만나고
가기로 한 것이다.
<이 길 오른 쪽 언덕에서 삶은 달걀 다섯 개가 우릴 얼마나 행복하게 했던지....>
<금강은 단번에 길동무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다.>
다시 왼쪽으로 강변 제방이 보인다. 우리는 들을 가로질러 제방으로 올라선다.
아! 금강! 금강이다. "와! ~"하고 탄성이 터진다. 무거운 발을 끌며 힘들게 걷던
길동무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지면서 일시에 여로가 화안해진다. 길동무가 활력을
얻어 생기를 얻으니 나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따뜻한 마음이 울렁거린다. 얼었던
온몸이 마치 봄을 맞은 것 같다.
<저 건너 동산 오른 편에 화산천주교회가 보인다.>
우리는 그동안 지도에서만 보았던 아름다운 금강의 유유하고 시원한 물결을 바라
보고 걷는다. 강둑길 저 멀리 강경이 보인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너른 금강
줄기는 그 폭을 반으로 갈라 저 건너 편은 충청남도이고 이 쪽은 전라북도이다.
강물이야 어디 도계를 상관하겠는가. 충청도 물, 전라도 물이 왔다갔다 하면서
사이좋게 흐르고 있을 터이다. 물고기들도 경계를 두고 서로 다투지는 않을 터이다.
다만 우리 인간만 서로 마음에 경계를 두고 스스로를 구속하고 괴로워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화산천주교회, 나바위성당이라고도 부른다.>
<성당 앞 성모상, 그 앞에서 나는 언제나 따뜻하고 포근해진다. 성모송을 바치고......>
분위기는 이제 완연히 행복한 시간으로 반전되었다. 무겁던 발길도 훨씬 가벼워
진다. 신나게 걷던 길동무가 좀 쉬어가잔다. 제방 바깥 쪽의 양지바른 곳에 앉아
우리는 삶은 계란 다섯 알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다. 달걀 다섯 알을 사이좋게 서
로 권하면서 까먹는 사이에 '좋다!', '행복하다!'라는 말을 몇 번도 더한다. 좋다.
정말 좋다. 이 피로! 이 배고픔, 그리고 삶은 달걀 몇 알의 소박한 간식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아마도 제방 너머에서 유유히 흐르던 금강도 알고 있었을 터이다.
<금강과 황산대교, 저 다리는 온전히 충청남도에 속한다. 부여로 가는 다리이다.>
강경은 점점 가까워지고 금강의 푸른 물결과 우리가 친해져서 하나가 될 쯤 길동
무가 내게 바짝 다가와 팔짱을 끼더니, "나는 당신을 정말 잘 만난 것 같애!"라고
쇼킹한 고백을 한다. 내가 행복해 하면서 미소하자 길동무는 몇 걸음도 가지 않아
연거푸 같은 말을 두 번이나 더 반복한다. 정다운 길동무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내가 근 30년을 내 모든 봉급봉투까지 바쳐가면서 듣고 싶어했으나 별로 들어본
기억이 없었던 참으로 근사한 말을 금강의 물결을 따라 걸으면서 듣게 된 것이다.
한 두번도 아니고 세번이나....아! 자연의 위대한,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금강의
풍경이 내 사랑하는 길동무의 마음을 얼마나 강렬하게 사로잡아버렸는지 그 위력
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 충청도로 들어섰다.>
<젓갈의 고장, 강경땅을 알려주는 홍보 안내판>
우리는 화산천주교회에 들러 기도드리고, 100여 년 역사를 숨쉬면서 순교 성인의
신앙을 호흡해본다. 사무장님이 타주는 따뜻한 차 한잔 씩을 마신 우리는 강경에
들어선다. 젓갈의 고장 강경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충청남도 땅으로 들어선다.
그동안 광주를 출발하여 전라북도를 거쳐 드디어 충청도 땅에 도착한다. 자장면
으로 점심을 마치고 황산대교 입구에서 오른 쪽으로 금강 유원지 강변을 따라 걷
는다. 금강을 가까이에서 따라 걸으며 우리는 다시 강경대교에 이른다.
<논산으로 가는 천변길>
<강경에서 논산으로 가면서 금강 제방에서 바라본 겨울 들판>
다리거리에서 길동무도 나도 주저앉는다. 이곳에서 부여로 가기에는 길이 너무
멀다. 우리는 지도를 살피다가 논산 쪽으로 뻗어있는 하천을 발견하고 진로를
바꾸고 만다. 제방길을 걸어서 논산으로 향하기로 한다. 논산에서 내일 서울행
KTX를 예약해 놓았기 때문이다. 오후 5시가 다 되어서야 우리는 논산에 도착
취암동에 있는 조용한 숙소에 든다. 따뜻한 물로 씻고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 둘다
꿀맛같은 잠에 빠지고 만다.
<저기가 논산인데, 다리가 아프다.>
눈을 뜨니 저녁 식사시간이 지나고 있다. 숙소 앞에 자리잡은 '다정식당'에서 밥과
손칼국수를 먹는다. 손칼국수를 직접 반죽하고 밀대로 밀어서 손으로 썰어 요리한
일품요리이다. 정말 맛이 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꿈같은 휴식을 취한다. 무엇
인가를 더 얻고 획득하여 얻은 성취감이 아니라, 우리들 육체와 정신 속에 가득차
있는 무거운 온갖 것들을 끝없이 걷고 걸어서 모두 소진시켜버린 후 다시 채워넣는
이 담백하고 시원한 휴식의 맛! 우리는 이 맛으로 걷고 또 걷는 것 같다.
<손칼국수집 다정식당 전애경 씨와 모데스타 씨(왼쪽)>
<다정식당, 손칼국수 맛이 일품이다.>
일요일 아침 늦잠을 즐기고 아침 겸 점심으로 우리는 또 예의 그 식당에서 칼국수
와 백반으로 식사를 마친후 논산역에 도착 열차로 용산을 거쳐 노량진에서 큰 아이
를 만나 수산시장의 맛있는 저녁을 즐긴다. 사육신 공원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서로
가 가족임을 확인하고 또 헤어져 광주로 향한다. KTX 참 빠르다. 평택을 지날 때는
시속 299Km를 달리더니 청원군을 지날 때는 303Km까지 모니터의 계기가 올라간다.
참 빠르다. 광주에서 논산까지 200Km도 못되는 거리를 열흘도 넘게 힘들었지만 행
복하게 걸었는데 서울에서 광주까지 300Km가 다 되는 거리를 2시간 50분에 정확히
주파해낸다. 난 KTX를 어제 오늘 처음 타봤다. 시속 1200Km가 넘는 속도로 날던
비행기보다 이 열차가 더 신기하다.(다음 까페, '마음의 고향, 후곡')
<이 논산역에서 처음으로 KTX를 타고 서울로, 그리고 광주에 도착했다.>
<노량진 사육신 공원에서 한강의 야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가족임을 확인했다.>
***THE END***
* 다정식당(041-736-9110, 논산시 취암동 , 전애경)
* 백반 4,000원
* 손칼국수 4,000원
첫댓글 염선생님 그간 안녕하신지요?넓은 들판길 함께 걷고싶지만 부러움만 간직 하렵니다.바쁜 시간 속에서 종교 생활도 하시고 손 칼국수가 일미...건강 하세요.
아 한빛 사장님! 안녕하세요! 이 산골까지 방문해 주셔서 고마워요!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