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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RPG의 등장인물이나 사건은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려는 의도가 아니며 이를 통해 불쾌감을 느끼게 할 의도가 일절 없다는 것을 알립니다.
이 RPG에서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지명, 국가, 회사 또는 단체, 그 밖에 모든 명칭, 사건과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유사한 예가 있더라도 이는 해당 사건이나 인물 등을 비하하거나 정치적으로 가치판단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을 밝힙니다.
이 RPG는 허구적 창작물로서 특정한 사상, 이념, 정치체제, 인권 탄압과 폭압적 정치질서를 옹호, 미화하거나 찬양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어느 (자본주의) 정부도 파시즘을 근본적으로 없애려 애쓰지는 않는다. 부르주아들은 자신이 권력을 잃고 있다고 직감할 때, 비로소 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파시즘을 꺼내들기 때문이다.“
-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1936년
21. “정상화(Нормализация)”
1950년 11월 4일, 소련 장관회의 제1부주석 니콜라이불가닌과 중국 국무원 총리 탕성즈가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의 방한 소식은 대외적으로 꽁꽁 숨겨져 있었으나, MiG-15 편대가 요란하게 경호하는 이들의 비행까지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원래 박헌영을 지지하던 선전부장 임화는 중앙청 출입기자들에게 “중소 고위급 대표단이 정치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급거 방한했다”는 사실을 시인했고, 대중들은 곧바로 이 방문이 노골적 내정간섭을 위한 것이 아니냐면서 동요했습니다.
붉은 군대가 한반도에 진주해 이번에야말로 정말 총독부를 세울 것이라는 공포가 감돌자,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 곳곳에는 “우리식 사회주의 이룩하자!”, “노동자 자주관리로써 인민해방 대동세상 달성!”과 같은 현수막이 내걸립니다. 공식 회의 전날인 11월 5일 저녁, 여운형 중앙집행위 주석과 일행들은 소련의 ‘저승사자’들을 만나기에 앞서 중국 부대표 뤄루이칭 인민무장경찰 판공청 주임 일행을 접견했습니다. 뤄루이칭은 “소련군이 수풍댐만 점령해도 한국의 산업이 전부 멈출 것”이라며 한국측이 소련에게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줄 것을 조언했죠.
기독교 계열 온건파인 박현우가 “지구상 모든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운운하자, 한국 정부 내에서 가장 온건한 박현우마저 세계혁명을 부르짖는 모습에 대단한 감명을 받은 뤄루이칭은 한국이 정말로 인도차이나 파병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넘겨짚었습니다. 6.25 사태 이후 민족혁명당에 합류해 이제는 통일사회당의 평의회주의자들과도 제법 쿵짝이 잘 맞는 이범석 역시 “아예 국제적 반제투쟁군을 조직하자“며 동조했고, 허경훈은 한술 더 떠 아예 88여단 출신자들이나 콤그룹계를 보내자고 제안했죠. 중국 대표단과의 협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직도 명목상 중화민국 영토일 뿐 사실상 소련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태인 만주를 다시 중국의 품으로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한국에게 장연지역(간도)을 할양해줄 수 있다는 조건까지 제시되었습니다.
다만, 한국은 소련에게 “만주를 내줘도 문제없을 만한”, 즉 소련이 정말 혹할 만한 조건을 제시해야 했습니다. 소련 군사고문단을 받아들이자거나, 청진-나진항을 조차해주자거나, 소련파에게 일부 지분을 양보하자는 등의 안건이 제시되었지만, 결국 소련측 부대표 알렉세이 코시긴을 혹하게 한 것은 인도차이나 파병안으로 드러난 한국의 왕성한 반제국주의 투쟁 의지였습니다. 사실 동남아시아에 별 관심도 없었던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유사파시스트 정권의 용병 역할을 자임하던 것은 다름아닌 구 일본제국군 잔당들이었기에, 코시긴은 정말 아무런 의심 없이 한국인들이 반제투쟁의 열정에 가득찼다고 믿어버렸습니다.
깜빡 속은 코시긴은 이참에 서울을 반제반파쑈투쟁의 수도로 삼자면서, 이미 계획중이었던 집단안보기구를 서울에 설치하자는 야심찬 제안까지 꺼냈습니다. 주아문이 “중국은 반제반파쑈투쟁의 가장 중요한 축이므로 만주를 반환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코시긴은 내심 한국이 영토 욕심에 이렇게 전향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지 잠시 의심했지만, 허경훈이 ”중국이 산업화하는 것은 어차피 시간문제이며, 솔직히 강대국 중국과 척지고 싶지는 않다”며 조선인 다수 거주지역인 장연지역만을 요구하자 코시긴 역시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치밀한 외교술로 요나라로부터 강동 6주를 얻어낸 서희를 연상시키는 외교적 성과를 얻어낸 것입니다..
훗날의 일이지만, 반제반파쑈투쟁의 첨병을 자처하기로 한 결정은 그 빛을 발했습니다. 1958년 기어이 일본 수구정권이 무너지고 진짜 제국주의 파시스트들이 쿠데타로 집권하자, 한국과 중국은 군사기지 묵인을 조건으로 미국과 밀약을 맺고 일본열도를 불바다로 만들었습니다. 3개월만에 일본을 무릎꿇린 한국은 대마도를, 중국은 타이완 섬을 가져가는 데 성공했죠.
Epilogue
후일 소련 전연방공산당 총비서를 역임한 알렉세이 쿠즈네초프는 한반도가 사회주의의 실험실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즈다노프와 그 후계자들은 서울조약기구 창설 이후 한국을 ‘민주진영’의 실험장, 또는 쇼윈도로 써먹었습니다. 대부분의 기업을 노동자 자주관리 제도로 운영하고 정치체제 면에서 상향식 평의회민주주의가 그럭저럭 작동하는 한국의 사례는 동구권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에게도 상당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1955년부터 여운형의 뒤를 이어 국가주석직에 오른 민족혁명당의 김성숙은 허경훈, 주아문 등과 함께 “한국의 사회주의는 특수하되 보편적인 발전경로“라며 세계무대에서 거듭 주장했고, 실제로 폴란드, 헝가리 등이 한국식 사회주의의 몇몇 요소들을 차용하며 이 주장은 현실이 되는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1958년 일본제국의 숨통을 끊어버린 대아대전 이후, 묘한 흐름이 한국 사회주의를 휘감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가 공고화되며 특유의 경직성과 폭력성으로 악명높았던 전대협은 공중분해되어 모진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이내 중국발 극좌사상과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허무주의적 경향을 흡수한 끝에 한국사회주의학생총연맹(한총련)이라는 거대조직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사상적으로는 거의 아나키즘에 가까운 급진성을 보이며 극심한 반미 경향을 지닌 한총련은 소련과 중국이 “충분히 반미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대사관에 방화를 시도하는 등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고, 비슷한 시기 유고슬라비아의 좌파공산주의자들처럼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마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민립서울대학, 아니 경성제국대학 설립 이래 최초로 (사실상 군조직인) 인민무장경찰이 학내에 투입되는 초유의 사태 이후, 육군본부 헌병감 김재춘 소장을 중심으로 한 ‘혁명군부’가 대두한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이들은 ”한국 사회주의 혁명은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에, 극좌맹동주의나 극우민족주의로 타락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한 혁명적 무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리로 자신들의 정치군인화를 정당화했습니다. 그때까지도 국방부장에 재임중이던 주아문은 어떻게든 이들의 군내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1962년 ‘혁명군부’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박정희 상장에게 국방부장직을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허경훈이 야심차게 제안한 권력구조 개헌안이 1964년 허경훈 본인의 급사로 인해 “노동자 소비에트에서 선출하는 상원”이라는 요소만 남긴 채 미완의 개혁으로 끝나자, 제도가 보장하는 민주주의는 더없이 공고해졌으나 그 민주제도를 잠재적으로 해치려는 이들 역시 민주주의의 방법론을 배웠습니다. 맹목적 무력투쟁만을 외치던 이상이가 그 대표격으로, 그는 1965년 동아반일전선 과격파와 함께 일본열도 내 미군기지를 박살내버리자던 한총련을 “반일종족주의자“라는 신박한 용어로 비판하며 문필전을 이어갔습니다. 이상이의 위험성을 직감한 김성숙이 그의입을 막으려 했지만, 동아반일전선 ‘온건파’ 및 세계 ‘수정혁명주의자’들과 결탁해 외국에서만 활동하는 그를 조용히 만들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긍정적인 점은, “반일종족주의” 운운이 1968년 한총련과 혁명군부의 극한대결을 잠재우는 데 톡톡한 쓰임새를 다했다는 것입니다. 한때 자신들이 모든 권위를 거부하는 투사라고 자임하던 학생들은 방대하고 복잡한 평의회민주주의 제도를 관리하는 얌전한 관료계층으로 편입되었고, 그 후배들 역시 이미 완성된 체제 하에서 보수화된, 여운형과 정백, 허경훈의 뒤를 이었다는 ’평의회파‘의 관료 정치인이 되거나, 아예 박현우와 권가연의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하거나, 아니면 근로인텔리겐치아 계층으로서 지식노동에 종사했습니다.
이런 경향은 그리 생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68혁명의 여파를 강하게 겪은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 역시 당 청년조직(콤소몰 등)에서 양성된 붉은 엘리트들에 의해 운영되는 기술관료정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이미 수립된 체제가 지키기만 하는 이들은 1970년대의 김희성, 1980년대의 김시형과 박남기, 1990년대의 김윤환, 2000년대의 장기표, 김민석 등 정권으로 이어졌습니다. 얄궂게도 ‘평의회파’의 장기집권을 끝장낸 것은 이들이 “무질서한 엉터리 민주주의 국가“라고 비판했던 중화민국과 친한 민족혁명당, 그리고 권가연-박현우의 ‘엇나간 제자’들인 신좌파 녹색사회노동당이었습니다. 2012년 기어이 평의회파의 황태자 김문수를 권좌에서 쫓아낸 이들은 “한국 사회주의는 영원히 발전해야 하며, 이는 역사 보편의 법칙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인민대중 그 자체의 동학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누군가의 발언을 슬로건으로 삼았습니다.
2016년, 총 8번의 크고작은 헌법 개정을 거친 대한민국은 관료정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트롱맨 통치’에 접어든 소련 및 여타 동유럽 국가들과 달리 기본적인 체제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는 평의회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소련의 영향력이 점차 사그라든 대신 중국의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거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정면으로 마주한 탓에 정말로 ‘모든 면에서 자주적’인 국가라고 볼 수는 없지만, 여러 위기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까지 해낸 것은 첫 단추를 그럭저럭 잘 꿰었기 때문이겠지요.
목표 달성도.
- 자주적이고 (7/10) 🟩
- 민주적이며 (10/10) 🟦
- 평등한 공화국 (10/10) 🟦
총평 : 준수한 성공.
약 두달동안 진행된 RPG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더 참신한 소재와 매끄러운 진행으로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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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들어 홍차야 제가 혁명과 도덕의 적이라고 공격했던게 아직 기억에 남는군요...
@E.E.샤츠슈나이더 일단 호소카와의 다른 버전(?)이니까, 그때 실패한 제안(한일 의정서나 제1차 한일협약 수준까지의 자치)을 그대로 주장할 듯 합니다. 물론 조선 독립세력이 돈을 좀 찔러주면 태도가 바뀔 읍읍
제국헌법 완전적용 주장도 끌리긴 하는데, 그쪽은 사실 사회진화론자들과 얽혀있어서, 캐릭터로 만들기 찜찜하네요(드술리 만들어놓고 이러는것도 무양심이긴 한데(?))
@렌지파일 ㄷㄷ 동화정책이 아니라 자치론…
이케다-사토의 굉지회가 이쪽 라인이긴 한데, 부패했으니 다나카와도 잘 맞겠네요(?)
@렌지파일
@렌지파일
@E.E.샤츠슈나이더 근데 황도파 플레이도 가능한가요? 전직 빨갱이가 타락해서 기타 잇키식 국가개조론을 주장하는 식으로...
@렌지파일 약간 쑨유얀...?
@차들어 홍차야 그 느낌도 있습니다. 쑨유얀을 무척 재밌게 했었거든요 (...)
+ 저는 좌익에서 전향한 캐가 아니라, 정반대로 그냥 청년극우(파쇼도 아니고 진짜로..)였다가 돈맛을 보고 이상하게 전향?한 캐릭터 컨셉입니다.
@E.E.샤츠슈나이더 이중 신분으로 활동하는 혼혈 출신의 아나키스트는 현실적이진 않겠죠.....?
@E.E.샤츠슈나이더 저는 부라쿠민 출신 형평운동가나 나카오카 겐의 아버지 같은 캐릭터를 생각중입니다.
@로콘 아무래도 소재가 2차대전 후에도 살아남은 파쇼 일제(..)다보니까 너무 극단적인 캐릭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별개로 전직 공산주의자 / 현직 파쇼 권력자는 여기 일본에 발에 채일 정도로 많습니다.
@dnjdss 혼혈... 하니 안 좋은 생각이 나는군요.
@로콘 이노 하루야도 전직 마르크스주의자가 됬으니 국가개조론자로 조금만 손보면 되지 않을까요?
@렌지파일 1965년이면 어떨까 하고 인물군을 잠시 봤는데, 도조 측근인 삼간사우 일곱명 중 다섯명이나 살아있고(사형 안 당했다면 77세일 기무라 헤이타로 포함), 도조 내각과 그 이후 내각 당시의 군인 장관들도 아직 바글거리고, 기도 고이치나 가야 오키노리 등도 아직 살아있을 시기네요..
@E.E.샤츠슈나이더 좀 온건한(?) 황도파로 노선을 틀어야겠군요...
@렌지파일 와..... 라인업만 봐도 숨막히는 조합.... 저 인사들을 없애야하는 느낌적인 느낌이네요....
@렌지파일 ??? 2030 중에서 부유한 청년은 극우분자다!
@E.E.샤츠슈나이더 조선, 만주를 독립시키고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무역으로 부유하게 살자는 소일본주의자는 가능한가요? 나카오카 가족이나 이시바시 단잔 같은...
@차들어 홍차야 가능한데, 진짜로 아무 준비 없이 독립시키면 부산항에 소련 미사일기지같은 거 들어옵니다(…)
@E.E.샤츠슈나이더 국제주의 소련의 공포.....
@E.E.샤츠슈나이더 생각해보니 연속혁명론을 외치는 소련이였죠 참....
@E.E.샤츠슈나이더 그건 여기서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차들어 홍차야 하필 상대가 트로츠키주의 소련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