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과학 교사들과 만난 조지 스무트 교수
"교사 스스로 배우고 노력하면 자연히 학생 중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게 됩니다."
2006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무트 UC버클리 교수는 25일 서울 지역 과학 교사 15명과의 대화에서 '잘 가르치는 법'이란 주제로 열변을 토했다.
"가난했던 제 어머니는 대학도 못 갔지만, 어린 저를 탁아소에 맡기면서까지 공부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교사, 중학교 교사를 거쳐 교장까지 되셨어요. 끊임없이 발전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저도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어머니의 제자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인생의 목표입니다. 선생님이 최고가 되면 아이들도 최고가 됩니다."
서울 종로구 서울과학고 항공과학실에서 열린 대화에서 그는 "중·고교 과학 교사가 미래 과학기술을 이끌어가는 힘"이라는 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잘 가르치는 비결을 묻는 교사들에게 노벨상 석학의 대답은 교사 스스로 최고가 되라는 것이었다.
◆옛날 얘기 들려주듯 과학을 가르쳐라
그는 이날 자신의 애플 노트북을 프로젝션과 연결해, 직접 제작한 은하계 촬영 사진들을 칠판에 띄워놓고 우주의 미스터리를 설명했다. 닷새 전 플랑크 우주망원경으로 막 촬영한 사진도 있었다.
"이 사진 오른쪽 위 은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와 비슷합니다. 따라서 생물체가 산다면 지구 생물체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스무트 교수는 "학생들도 마음속으로 '생물체는 어떻게 생겨날까' '태양이 없는 은하도 있나' 등 궁금증이 생기는데 이것을 선생님이 밖으로 끌어내 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
- ▲ 조지 스무트 교수는 25일 과학교사들에게“교사는 교과 과정만 공부해선 안 된다. 최 신 이론까지 스스로 즐기며 공부해야 학생들 흥미를 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그의 교수법(敎授法)의 핵심은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라는 것이었다. 복잡한 수식을 보여주기 전에 재미있는 그래픽 자료를 보여준다.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면 궁금한 게 생긴다. 교사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면서 관련 이론을 가르친다. 이론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기보다, 학생이 재미있어하고 궁금해하는 쪽에 맞춰 설명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과학을 공부라 생각하지 않고 부모님이 들려주는 옛날 얘기 정도로 쉽게 이해한다.
스무트 교수의 발표가 끝나자, 과학 교사들이 고민하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서울과학고 신학수(46·물리) 교사는 "학생들이 빅뱅이론 같은 최신 이론에 관심은 많은데 과연 어떻게 빅뱅이론에서 물리 과목의 온도나 에너지 개념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스무트 교수는 "우주 공간도 물리 법칙이 통용되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며 "공간이 팽창하면서 온도가 낮아지는 현상 등을 관측된 그래픽으로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고 답했다.
◆교사의 열정이 노벨상을 만든다
"교사가 첨단이론을 배우고 수업에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명일여고 고효선(46·생물) 교사의 질문에는 버클리 우주물리학센터 홈페이지(http://bccp.lbl.gov)를 추천하면서 "GTA(국제 교사아카데미) 한국지부를 통해 '재교육'의 기회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교과 과정과 상관없는 최신이론을 우리가 배워서 뭐하냐"는 교사들의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학 선생님들은 모두 어린 시절 수학·과학을 재미있어하는 모범생 아니었습니까. 과학 선생님들이 재미있게 공부하지 않으면, 어느 누가 과학을 재미있어하겠어요. 선생님들은 모두 자격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믿으세요."
스무트 교수의 연구분야인 초기우주론에 관심이 많았다는 강석철 교사(47·지구과학)는 "첨단 이론과 중·고등학교 과학 수업을 연결해 사고하는 강의가 매우 재미있었다"며 "큰 자극이 되었다"고 말했다.
스무트 교수의 결론은 '교사하기에 달렸다'는 것이었다.
"오늘 보여준 우주 사진 중 상당수가 한국고등과학원 연구자료입니다. 미국 대학에서는 젊은 연구자가 계속 나오려면 중·고등학교가 살아나야 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선생님들이 직접 노벨상을 타기는 어렵겠지만, 미래의 수상자는 선생님들이 만드실 겁니다."
충주고등학교 찾아간 루이스 이그내로 교수
"큰 꿈과 희망을 가져라"
21세기 노벨상 꿈꾸는학생들에 애정어린 조언
노벨상을 꿈꾸는 지방 고교의 과학도들이 그토록 동경하던 노벨상 수상자를 만났다. 학생들은 노벨상의 비결을 알고 싶어했다. 수상자가 말해준 비결은 '내가 아니라 남에게 도움되는 연구를 하라'는 것이었다.
25일 충북 충주고 1층 과학실. 교실 중앙의 흰 탁자 주변으로 과학반 학생 8명과 루이스 이그내로 UCLA 의대 교수(199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건국대 석학교수)가 마주했다. 학생들 표정은 잔뜩 상기돼 있었다. 이 남학생들은 노벨상을 꿈꾸는 과학 동아리인 '노벨21' 회원들이었다. 36명의 동아리 학생 중 영어 회화가 가능한 8명이 참여해 통역 없이 진행됐다.
충주고 '노벨21' 학생들은 최근 4년간 전국 단위 실험·발명대회에 나가 장관상·최우수상 등을 잇달아 따내며 주위를 놀라게 해왔다. 대회 때마다 인근 건국대(충주캠퍼스) 실험실을 빌려 쓰고, 공장들을 돌면서 기자재·부품들을 빌려올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도 과학을 향한 열정에 푹 빠진 학생들이었다.
"교수님이 우리 미래의 꿈이에요(You are our future dream)."
이그내로 교수 옆자리에 앉은 김현우(3년)군이 "나는 21세기 노벨상을 꿈꾸는 '노벨21' 동아리 학생"이라고 소개를 하자, 노(老)교수는 환하게 웃으며 "함께해 내가 더 기쁘다"고 답했다.
이그내로 교수가 이날 학생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실패와 좌절을 부둥켜안고 꿈과 희망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한 내 얘기를 들려주고, 무언가 이루기를 열망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말해주러 왔다"며 시작했다.
"우리 부모님은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로 학교 문턱을 밟아본 적이 없어요. 나는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까지 영어를 제대로 못했어요. 당연히 성적도 나빴죠. 그런데 노벨상을 받았어요(웃음)."
초등학교 때 자기 나라 말도 못한 사람이 노벨상 수상자라니? 학생들 두 눈이 커졌다.
이그내로 교수의 얘기는 이어졌다. "아버지는 목수 일을 했는데, 가난했죠.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많이 배우고 큰 꿈을 갖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재미를 느끼던 과학에 매달렸어요."
아이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어 궁금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영어 공부는 어떻게 하셨나요?" "노벨상을 목표로 연구했나요?" "노벨상 받으려면 뭘 해야 하나요?" "노벨상 받으면 공부 더 안 해도 되나요?"
-
- ▲ 25일 충주고 과학동아리‘노벨21’학생들과 오진택 교장이 노벨상 수상자 이그내로 교수(가운데)와 함께 교정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은 이그내로 교수에게 몰려들어 사인을 받았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1시간여 동안 이어진 대화에서 이그내로 교수는 시종 진지했다.
"난 노벨상을 받은 연구에 30년을 매달렸어요. 인체에 해롭다고 알려졌던 산화질소가 건강에 이로울 수 있다는 걸 증명해냈죠. 애초부터 노벨상이 목표였다면 30년간 한 가지 연구에 매달리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연구를 성공시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까'만 고민했다"면서도 "그러나 연구가 성공한 것을 확인한 순간, 노벨상이 갑자기 떠오르더라"며 웃었다.
아이들도 함께 웃었다. 그는 "노벨상을 받으려면 독창성(originality)과 함께 인류에게 어떤 도움을 주느냐가 중요하다. 대부분 학자들이 독창성에는 성과를 거두지만 인류에 대한 기여에서 한계에 부딪힌다"고 덧붙였다.
이국에서 온 '노벨상 할아버지'에게 학생들은 자신들의 진로 고민도 털어놨다. 김현우(3년)군이 "교수님 같은 과학자가 되려면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하나요"라고 묻자 이그내로 교수는 "꼭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일이란 없어요. 우선 지금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해야지요.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굳건한 목표를 기억한다면 다시 도전할 수 있어요."
예정된 시간보다 20분이 더 지났다. 이그내로 교수가 마지막 인사를 했다.
"노벨상 받을 때까지 30년간 연구하면서 실패했던 실험이 절반을 넘어요. 여러분, 삶은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습니다. 실패와 좌절을 끌어안고 가는 거예요. 그러나 '내가 인류를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라는 큰 꿈과 목표를 갖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이 있을 겁니다. 내가 약속할게요."
이그내로 교수가 과학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박진수(3학년)군이 노트와 볼펜을 들고 쫓아갔다. 사인을 받으면서 진수는 "오늘 교수님을 만난 것이 내 인생의 큰 기회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이그내로 교수가 진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조지 스무트 교수
"빠르게 변하는 세계에 맞춰교육의 방법·과정 달라져야"
조지 스무트(George F Smoot) 교수는
1945년 미국 플로리다 유콘에서 태어나 MIT에서 소립자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UC 버클리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초기 우주와 별의 기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빅뱅이론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우주배경복사(宇宙背景輻射· cosmic background radiation)를 증명해 200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은 산업국이면서도 발전동력이 될 만한 천연자원이 거의 없는 나라이다. 지난 20~30년간 응용과학분야와 이 분야에 적합한 인력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경제적으로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웃국가와 경쟁하며 계속 발전하기 위해선 최고의 교육이 계속 강조돼야 한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려면 교육의 현대화가 중요하다. 이를 위한 몇 가지 조건을 제언한다.
우선 한국에 필요한 1등급 교육은 단지 사실 주입식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를 길러주는 것이다. 수백만 가지 사실을 학습했다고 제대로 교육됐다고 말 못한다. 학생이 어떻게 생계를 꾸려갈까에 초점 맞추지 말고 어떻게 삶을 더 낫게 변모시킬 것인가에 초점 맞춰서 교육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를 변모시킬 수 있는 돌파구적인 성과를 낼 수 있게 된다.
빠르게 변하는 세계에 맞춰 교육의 방법이나 과정도 달라져야 한다. 물론 지금 만족할 만큼 대학 교육 등이 변하지는 못하고 있다.
현대 기술의 위력도 빼놓으면 안 된다. 기술이 주는 교육의 변화는 이미 이뤄지고 있다.
한명의 교사가 여러 명의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의 교사와 여러 명의 학생이 동시에 학습할 수 있는 등 가르치는 방식도 변화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 신기술을 빠르게 학습할 수 있는 것도 기술의 힘이며, 지속적 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기술이다. 교육에 현대기술은 빠르게 접목되고 있다.
세계적인 커뮤니티와 연계, 세계적 협업과 교류가 이뤄지는 교육도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어떤 연구가 진행 중이며,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즉시 교류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사회적 목표가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목표는 사람들이 방향을 정해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사회적 목표를 고등과학원이나 세계수준 연구중심대학(WCU) 육성 프로젝트 등에 맞춰 설정하는 등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어 많은 기대를 갖고 있다.
노벨포럼 방송으로 보세요
비즈니스& (5월 30일 土 낮 2시 30분. 재방송 5월 31일 日 저녁 7시 50분), KTV (본방송 5월 30일 土 낮 12시 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