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맛은 만드는 과정에 따라 달라진다. 부모 뒤를 이어 유기농으로 차를 재배하고 직접 가공까지 하는 ‘꽃차 하늘바라기’의 권상준 씨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봤다.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덖는 일이다. ‘물기가 조금 있는 재료에 물을 더하지 않고 타지 않게 볶아서 익히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차를 만들 때 기준은 조금 달라진다. 전통 방식에 따라 무쇠가마솥에 꽃을 넣어 열을 가한다. 무쇠가마솥을 통해 전달되는 뭉근하면서도 강렬한 열기가 꽃을 말리고, 맛과 향이 꽃 안에 잘 보존되도록 익혀준다. ‘꽃차 하늘바라기’의 모든 꽃차는 이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꽃마다 덖는 온도와 시간이 다른데, 보통 섭씨 100~250도에서 다섯 번 덖는다. 이토록 뜨거운 온도에서 보드라운 꽃이 타 사그라지지 않는 것이 참 신기하다.
덖기 외에도 꽃차를 만드는 방법은 서너 가지가 더 있다. 먼저 자연 건조로, 채취한 꽃을 가정에서 소량씩 먹고자 할 때 적합하다. 또한 프라이팬에 한지를 깔아 꽃을 말리고 익히거나 건조기를 사용해 꽃을 말리는 방법도 있다.
꽃차에는 세 가지 맛이 있다. 눈으로 맛보는 차의 색, 코로 들이마시는 차의 향, 입으로 즐기는 차의 맛이다. 만드는 과정에서 균형을 잃은 꽃차는 이 세 가지 맛을 갖지 못한다. 특히 색과 향만 있고 맛을 갖지 못한 차가 많다. 싱겁고 밍밍하거나, 잡맛이 많이 나거나, 뒷맛이 텁텁한 경우다. 좋은 꽃차는 찬물에 담가 오랫동안 우려내도 그 매력이 여전하다. 또한 두세 번 우려내도 은은한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꽃차는 카페인 성분이 없어 누구든 마실 수 있고 상시로 먹어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모든 식물에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독한 성분이 들어 있지만, 꽃차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중화돼 오히려 몸에 좋은 약성이 남게 된다.
꽃차 중 마음이 동한 세 가지만 꼽아본다. 맨 먼저 당아욱꽃차다. 이름도 낯선 이 꽃은 제비꽃처럼 보랏빛이 진하고 곱다. 바닷가에서 자라는데 ‘금규’라고도 부른다. 꽃에 따뜻한 물을 떨어뜨리면 화사한 향이 금세 퍼지고, 꽃잎이 점점 하얘지면서 찻물은 푸르러진다. 향이 깃든 감미로운 맛이다. 푸른 차에 레몬이나 자몽을 한 조각 넣으면 핑크빛으로 변한다. 당아욱꽃차를 두 번째 우려내면 투명한 연두색이 나면서 또 다른 맛을 선사한다.
그다음은 매화차다. 매실 먹기도 아까운 참에 매화, 그것도 봉오리를 채취해 차를 만든다니 놀랍다. 매화차는 맛보기 힘들고 귀하며 작은 알에서 피어나는 향이 또렷하고 오래간다. 맛은 담담하고 깨끗하다.
마지막은 홍화차다. 홍화차는 앙증맞고 풍성한 꽃잎과 탐스러운 알맹이가 그대로 살아 있다. 큼직한 찻잔에 한 알 담가 우려내면 살구색이 은은하게 퍼진다. 홍화씨 기름이 유명한데, 차에서도 윤택하고 기름진 맛이 고소하게 난다. 홍화는 쉽게 풀어지지 않기 때문에 찻잔에 귀여운 꽃을 내내 담가두고 보면서 마실 수 있다.
물처럼 두고 수시로 마시고 싶다면 목련, 국화, 감국차가 맛과 향이 부드러워 적합하다. 계절이 바뀌는 요즘에는 구절초, 목련, 생강나무꽃, 뚱딴지꽃차를 따뜻하게 마시면 된다. 손님을 초대한 자리에는 당아욱꽃, 매화, 홍화, 진달래, 복숭아꽃, 아카시아, 맨드라미, 해당화처럼 조금 특별한 꽃차를 준비해 이야기꽃을 피워보면 좋겠다.
조선 후기 고승이자 차(茶)에 일가견이 있던 초의(草衣)선사가 지은 ‘동다송(東茶頌)’에는 ‘차에는 아홉 가지 어려움과 네 가지 향이 있는데 심오하고 미묘하게 쓰인다’는 글귀가 있다. 아홉 가지 어려움은 만드는 것, 분별하는 것, 담는 것, 불을 지피는 것, 물, 굽는 것, 마무리 짓는 것, 달이는 것, 마시는 것이다. 네 가지 향은 비 오기 전의 신이함 같은 참향, 불기가 고르게 닿은 난향, 딱 맞춤하게 익은 청향, 한결같은 순향이라고 했다. 아홉 가지 가운데 달이고 마시는 것 외에 일곱 가지는 덜어낼 수 있다. 네 가지 향은 자신의 몫이다. 그나마 꽃차는 잎차에 비해 어려움이 적은 편이다. 좋은 차와 물, 같이 마실 사람만 있으면 조금 어설프게 우려내도 우아하게 세 가지의 아름다움(색, 향, 맛)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꽃차를 맛있게 우려내는 방법은.
“좋은 꽃차에는 알맞은 물이 필수다. 생수를 사용하면 차의 맛과 향이 훨씬 생생해진다. 생수가 없다면 수돗물이나 정수한 물을 가만히 뒀다 웃물만 떠서 차를 우려낸다.”
꽃차를 더 다양하게 즐기고 싶다면.
“꽃차도 블렌딩이 가능하다. 특히 매화차가 유용하다. 당아욱꽃차와 매화차를 섞으면 굉장히 독특하고 매력적인 차가 완성된다. 부드럽고 순한 목련차와 매화차를 섞어도 좋고, 녹차와 매화차도 아주 잘 어울린다. 장밋과의 찔레꽃과 은은한 진달래를 섞어 차를 우려내면 맛이 한결 깊어진다. 차를 섞을 때는 일대일 기준으로 맛을 보고, 취향에 따라 비율을 달리한다. 꽃차는 찌꺼기도 곱다. 백설기에 넣거나 음식을 장식할 때 쓰는 것도 아이디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