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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433 고전 30회 <독신과 결혼의 은사와 사명 7>
거룩하게 되어가는 성도의 소명 (고전
* 이번 주 설교는 동영상을 올리지 않습니다.
<본문: 사역>
39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있을 때는 매여 있어왔다. 그런데 만약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가 원하는 대로 시집갈 것이지만, 다만 주님 안에서 하라.
40 그러나 나의 권고를 따라 그대로 남아 있으면 정말 더 복되다
그런데 또 나는 하나님의 성령을 가지고 있으면서 판단을 내린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도로 불러 주셨습니다. 거룩할 성, 무리도, 거룩한 무리, 거룩한 백성, 거룩한 삶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성도로서 거룩하게 되어 가고 거룩하게 살아갑니다. 성령님은 고린도 전서 7장에서 결혼 문제를 이렇게 길게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남편을 먼저 보낸 자매의 재혼에 대해서 말하면서 결혼에 대한 가르침을 끝냅니다. 저는 결혼 이라는 이 문제에 대해 말씀을 준비하면서, “성도들이 좀 지겹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저는 깊이 반성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교회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셔서 고린도 전서도 쓰셨고 결혼 문제에 대해서도 이렇게 길게 말씀하시는데, 내가 뭐라고 건방스럽게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때 우리는, “예배, 기도, 성경읽기” 이런 것에 대한 가르침만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위 좁은 의미에서의 경건생활을 배우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 종교 개혁자들은 “오직 성경으로”라 말했는데, 그것은 “전체 성경”이라고 칼빈 목사님은 말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깊으신 뜻 가운데서 주신 말씀이니, 우리 스스로 이것은 중요하고, 저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또 이번 설교는 마음에 와 닿으니 좋고, 지난 번 설교는 감동이 없어서 별로다” 그런 생각을 버립시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과 설교된 말씀을 평가하고 하나님을 판단하는 자리에 가지 맙시다. 주신 말씀은 모두, “아멘”하면서, 전체 성경을 자세히 배워서 우리의 전 삶이 주님이 원하시는 참으로 거룩한 삶이 되어 갑니다.
결혼 혹은 독신생활에서 거룩하게 사는 법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시범교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잘 깨달으면, 같은 가르침을 따라서, 직업이나 공부, 정치와 시민생활, 모든 세상의 삶에서 거룩하게 사는 법을 깨달을 수 있고 충성할 수 있습니다. 결혼과 일상생활에 대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움에서 벗어나고, 결혼의 거룩함에 대해 무시하는 사상이 옛날에도 우리 시대에도 많이 일어나는 것을 아시고 이렇게 길게 설명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과 가정도 도전하는 배교, 바른 가르침을 배반하는 가르침에 대항하여 우리를 무장하여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도록 오늘도 이 말씀을 겸손히 들읍시다.
오래 전 2 천년 전 사도를 통해 성령님은,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반대로 가르치는 배교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가르침이 이단인가 아닌가” 그런 식으로만 경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가르침이 이단으로 간 것은 암과 같습니다. 암적인 가르침이 있기 전에, 간염, 간경화 처럼 건강하지 못한 가르침, 그 배교를 교회는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게 하는 미혹하는 세력, 배도하는 일이 있다고 하셨지요?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가르치는 자들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제가 교회의 선생으로 존경하는 김홍전 목사님은 1973년의 설교에서 이미 한국에서 배교의 세력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고 경고했는데, 38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교회에 배교의 세력은 더 강하게 흐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들리지 않게 이 결혼에 대해서 깨닫고 모든 삶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배교의 세력은 바른 것을 가르치는 것 처럼 가르치고, 또 기적을 일으키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내리시는 심판입니다.
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단의 역사는 능력과 표적과 기적, 예수님과 사도들이 행했던 기적을 행하지만, 그러나 거짓 기적입니다. 진짜로 기적은 일으키지만 가짜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기적이 아니라 귀신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한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이름을 훔쳐서 쓰지만, 전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된 믿음을 파괴하는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 그 거짓에 넘어가고, 결국은 멸망당하는 이유는, 성경적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거짓이 일하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자를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배교를 사용해서 교회 안의 불신자를 가려 내어 사단에게 넘겨 주어 교회를 정화하십니다.
배교의 세력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고린도 7장에 나와 있는 결혼에 대한 긴긴 말씀을 자세히 주의해서 배워야 합니다. 진리로 굳게 무장해 있으면 사단이 오면, “잘됐다” 하고 싸우면서 강해집니다. 이미 초대 교회 시대에 딤전
“1절,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무슨 가르침? 귀신의 가르침입니다. 가르치고 있는데, 예수님에 대해, 구원에 대해 말하고 천국과 지옥에 대해 말하고 지만 내용은 성경과 다른 것을 가르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성령의 가르침인 것 처럼 고상하게 가르칩니다. 삼위일체나 천국을 부인한 가르침은 아니지만 배교의 가르침입니다.
“3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고상해 보이는 가르침입니다. “혼인을 금하라” 무슨 뜻이지요? 네, 결혼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식물을 폐하라 무슨 뜻일까요? 식물은 음식입니다. 죽지 않을 정도로 밥만 먹으라는 것입니다. 결혼도 하지 말고,음식도 절제하고 검소하게 살아라고 가르칩니다. 이거 불교 가르침과 비슷합니다. 스님들은 결혼도 안 하고, 밥도 적게 먹습니다. 세상을 피해 절로 들어 갑니다. 불교와 비슷한 사상이 초대 교회 시대에 있었습니다. 결혼도 하지 말고 음식도 절제하고, 세상을 버리고, 영적으로 살겠다는 운동입니다.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것, 얼마나 경건해 보이고 존경스러워 보입니까?
그러나 그 가르침을 죽 거슬러 가면 귀신이요 마귀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3절,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무소유로, 결혼도 말고, 음식도 죽지 않을 정도로 먹으라는 그 사상의 바탕에는 결혼과 육체 그리고 음식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것임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선한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으니, 나쁜 것이 나올 수 있습니까? 창조된 모든 것이 선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악한 것은 사단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좋은 세상을 악하게 만들고 놓고는, 세상, 혼인과 육체, 음식은 원래 악한 것이라고 거짓말합니다. 창조주 성부 하나님을 부인하니 이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이 작용한 사상입니다. 이런 사단의 세력을 따르는 가르침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해, 성령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고린도 전서 7장에서, 이렇게 길게 40절이나 혼인에 대해 많이 가르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가르침의 혼란 가운데서 사도 바울에게 편지로 물어 왔습니다. “결혼한 사람이 경건하게 살기 위해서는 침실 생활을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
사도를 통해 성령님을 무엇이라고 가르쳤습니까? 결혼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결혼생활은 좋은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고린도의 교인들은 독신으로 사는 것만이 제일 좋은 길인 줄 알았어요. 불교 스님 처럼 사는 것이 좋은 길인 줄로 생각했습니다. 성령님은 결혼해라 권유했습니다. 다만 사도 바울 처럼 하나님께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혼자 살면서, 온 교회를 몸으로 섬기고 주님의 일을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고리도 교인들 중에는 완전히 반대 경향도 있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안에서 자유함을 얻었다, 이제 성령님을 통해 새로운 영적 세계를 경험했다 하면서, 창녀들에게 가면서도 그리스도인은 자유함이 있다고 교만했습니다. 사도는 “창녀에게 가는 것은 귀신과 몸을 합치는 것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 받은 바 성령님이 계시는 거룩한 성전이다”고 가르쳤습니다. 결코 결혼 바깥에서 성적인 접촉을 하지 말라.
우리 교회 성도들은 이런 귀신의 가르침에 빠지지 않고 든든히 서 있음을 감사합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13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14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저도 우리 성도들을 인해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처음부터 우리 성도들을 택하사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혼인과 결혼은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인 줄 알고 거룩하게 결혼생활 해 온 성도들을 인해 감사합니다. 음식과 경제활동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것인 줄 알고 열심히 직장에서 거룩하게 일해 온 성도들을 인해 감사합니다. 지식과 인생도 좋은 것인 줄 알고 열심히 공부하며 거룩한 삶으 살아 온 성도들을 인해 감사합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는” 열매를 보고 이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교회 강단에서 진리를 선포하도록 은혜 주셨고, 우리 성도들은 진리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멘 하고 순종했습니다. 귀신의 가르침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머물러 있어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복음으로 우리를 소명의 길로 불러 주셔서, 앞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큰 영광에 참여하는 이 길로 들어서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믿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성도들, 우리들의 앞길은 예수님의 큰 영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저는 50년 동안 만 고생하면 됩니다. 그렇게 오래 살지는 못하겠고, 한 49년 (!) 만 고생하면 됩니다. 어린 성도들은 앞으로 100년만 고생하면 됩니다. 그 뒤에는 100년의 백만배, 백만 백만배,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영광스런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 거대한 배교의 세력에 떠밀리지 않고, 깨끗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영광스런 삶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진리를 믿음으로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7장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읽고 또 읽어 마음에 깨닫고 새겨야 합니다. 말씀을 잘 배울 때,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깨닫고, 결혼에서 거룩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거룩함으로 일하고, 거룩함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음란물을 보거나, 결혼 전이나 결혼 후에, 주님이 주신 배우자 아닌 사람과 침실을 같이하는 일이 없도록 이 가르침으로, 성령님으로 무장합시다. 또 아주 경건해 보이지만 결혼을 악하게 생각하고 종교생활만 하려는, 귀신의 가르침으로부터 우리를 지킵시다. 진리의 복음 말씀을 믿은 우리 성도들은 성령님께서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여 구원을 얻게 하심을 압니다. 결혼이나 직장, 시민생활에서 거룩한 소명으로, 성도로 불러 주신 하나님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모습으로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거룩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II. 결혼과 온 삶에서 거룩하게 되어 가는 성도의 소명을 다하자
이제 오늘 본문을 통해, 고린도 전서 7장 전체의 가르침 세가지를 요약하여 들으면서 거룩의 길을 배웁시다. 첫째로, 결혼 독신 생활, 또 직장 모든 삶에서 거룩함은, 교회의 거룩함의 한 부분이고, 인류역사가 예수님의 영광스런 재림과 천국으로 성장해 가는 한 과정입니다. 둘째, 우리의 은사대로 소명을 잘 발견합시다. 셋째, 소명의 자리에서 자기를 부인하며 수고합시다.
1. 나의 소명은, 교회의 거룩함의 한 부분, 하나님 나라가 재림의 영광으로 나가는 한 과정
1) 거룩한 교회의 한 부분으로서 개인의 거룩의 소명
첫째로, 결혼 독신 생활, 또 직장 모든 삶에서 거룩함은, 교회의 거룩함의 한 부분이고, 인류역사가 예수님의 영광스런 재림과 천국으로 성장해 가는 한 과정입니다.
그래서 고전
교회 공동체를 향한 축복 속에 우리 한 명 한 명, 우리 각 가정의 축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숙명적으로 교회의 지체로서 평화와 축복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큰 구원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구원 안에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죄에서 씻음을 받아 깨끗하게 되고, 더 거룩하게 되고, 역사의 마지막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영광에 참여하는 이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그 영광의 날이 오기 까지 우리에게 주신 소명은 거룩하게 해 주신 그 삶에 머무는 것,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직장에서 승진하겠다 그런 야망만을 가지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의 이 거룩의 능력을 세상에서 펼치겠다는 거룩한 야망을 가지십시오. 제발, 일이 잘못되면 어떡하나,실수하면 어떡하나, 죄를 지으면 어떡하나, 그런 저차원적인 생각에서 벗어납시다. 고린도 교인들 처럼 “아이고, 결혼하면 죄짓는 것이 아닌가?” 그런 유치한 생각을 버립시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이미 다 용서해서 깨끗하게 해 주셨으니, 우리도 어떻게 하면 주님의 거룩함을 나타낼 수 있을까, 주님 나라와 교회가 원래 가진 거룩을 이 세상에서 나타낼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의 마음에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려고 하다가 죄를 지으면, 주님 덮어 주시니까, 제발 죄 지으면 어떻게 하나, 그런 유치한 생각을 좀 버리세요.
지난 주일에 우리 교회의 유행어가 하나 생겼습니다. “애 처럼 그만 징징거려라. 그만 징징짜라, 앵앵 거려.” 미국 청소년들끼리 싸울 때 놀리는 말 중에, “You are wining baby”라는 말이 있습니다. “앵앵 웽웽거리는 아기와 같다” 아기와 같은 태도를 버립시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 또 하나는 “이러다가 벌받는 것 아닌가” 그렇게 두려워 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이 주신 생각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에게 물려 받은 미신적인 마음입니다. “조상 묘 잘 못쓰면 조상 귀신이 벌내린다. 동네 마을 앞에 고목 나무 잘못 건드리면 벌받는다” 귀신의 마음에 굴복하는 겁니다. 예수님 그렇게 째째한 분이 아닙니다. 우리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까지 희생적으로 사랑하신 분인데, 우리 조금 잘못한다고 매들고 때리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뻑 하면 매를 드는 성질 나쁜 선생님 같은 분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 좋은 선생님들 말고요.)
우리가 잘 하려고 하다 넘어지면, “잘하려다가 한 것이 괜찮아” 우리를 거룩의 능력을 나타내도록 거룩한 전사로 불러 주신 분에게, “죄를 지으면 어떡하나, 벌받으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만 하고 있으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겁니다. “얘들이 말이야, 나를 뭘로 아는 거야” 하나님이 기분 나쁘실 거예요. 우리는 거룩의 길에서 땀흘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계속 뒤를 돌아보고, 지난 번에 죄 지은 것 어떻게 하지, 다사 그렇게 죄 지으면 어떻게 하지 선생님 한데 혼 나면 어떻게 하지, 엄마한데 혼 나면 어떡하지. 그것은 성령님이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악한 영이 일으키는 마음입니다. 우리 가정생활도, 직장생활도, 학교 공부도,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지체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의 능력을 나타내는 소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2) 거룩의 두 가지 측면, 예배와 삶, 하나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사랑함
우리가 거룩한 교회의 지체로서 거룩함을 나타낸다고 할 때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성도의 거룩은 예배에서도 나타나고 삶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는 1-4장에서 복음 말씀을 듣고 믿어 우리 영혼이 거룩하게 된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서 오셔서 우리에게 “지혜, 즉 의와 거룩함과 구속”이 되셨습니다 (고전
둘째로, 거룩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거룩으로 나타납니다. 예배할 때도, 하나님을 향해 이웃을 향해 거룩함이 나타납니다. 삶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서로를 향해 거룩함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향한 거룩함은 온 정성을 다해 예배하는 것이고, 서로를 향한 거룩함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3) 영광의 재림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서의 거룩의 부르심
거룩하게 사는 성도의 소명은 하나님의 나라가 천국의 완성으로 나가는 과정입니다. 주님의 날이 더 가까이 오고 이 세상의 것들은 지나갑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혼 생활이나 직장생활은, 하나님의 독립 왕국과 교회의 거룩을 드러내는 한 부분을 감당하는 것으로 알고 감사합시다. 하나님의 교회가 이 땅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하는 이 땅의 수고는 영광스런 천국으로 나가는 한 과정임을 알고 감사합시다.
2. 나에게 주신 은사대로 소명을 찾아 간다.
둘째, 우리는 각자에게 주신 은사대로 소명을 찾아서 일합니다.
17절, “각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대로, 그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예수님이 각각 나누어 주신 것이 사람마다 달라요. 하나님이 불러 주신 부르심이 성도 마다 달라요. 내가 뭘 받았는가, 어디로 불러 주셨는가, 이것을 잘 깨달아 결혼생활을 해야 돼요.
39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있을 때는 매여 있어왔다. 그러나 만약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가 원하는 대로 시집갈 것이지만, 다만 주님 안에서 하라.
40 그러나 나의 권고/판단을 따라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정말 더 복되다
첫째, 결혼해 있는 성도들은 소명의 문제로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지금의 남편과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십계명도, 예수님도 이혼하지 말라고 했으니, 죽으나 사나 내 남편 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이 주신 거룩한 소명입니다. 독신의 소명을 받고 독신에 헌신한 성도도 고민할 필요없이 열심히 주님의 교회와 주님 나라를 섬기면 됩니다.
지금 취직해 있는 직장이 바로 소명의 자리입니다. 21절에, 그리스도인 노예는 자기의 노예신분 때문에 주님을 섬기는 데 힘들다 해도 걱정하지 말고 거기서 머물러 있으라고 하지 않습니까? 노예가 주님께 하듯이 주인에게 충성하듯이, 성도는 직장 상관에게 매여서 순종하고, 직장 사람들을 사랑하며 섬기며 일의 성과를 냅니다. 어린이 성도, 청년 성도들은 잘 먹고 운동 잘 하고 건강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배우고, 자신의 품성을 바르게 성숙하도록 하고, 미래의 직업을 준비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 소명입니다.
둘째, 미혼인 성도, 배우자를 사별한 성도는 한 남성과 여성에게 매이지 않은 자유상태에서, 내가 매여서 섬겨야 할 소명의 자리를 찾아갑니다. 배우자를 사별했다고, 무조건 재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은 아닙니다. 일단은 “자유”상태입니다. 이 자유는 자기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19절). 거룩하게 살아라는 소명,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매여서 살아갑니다.
거룩하게 살도록, 나에게 주신 은사는 무엇인가? 계속 혼자 살도록 부르셨는가, 재혼하도록 부르셨는가, 재혼 한다면 어떤 배우자를 원하시는가? 생각하며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서, 소명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독신과 결혼에 대한 인도하심을 빨리 받아서 어느 길이든지 소명의 길로서 충성해야 합니다. 청년들은 독신으로 부르셨는지를 점검하고, 독신의 은사가 없으면 결혼할 사람을 주시도록 기도하고 찾아야 합니다. 어린이들도 앞으로 자라면서 결혼 혹은 독신으로 하나님이 은사를 주셨는가, 불러 주셨는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냥 이것도 저것도 결정하지 않고, 여기도 저기도 헌신하지 않고, 그냥 자유롭게 있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하여 한 사람을 평생 사랑하며 종노릇 할지, 아니면 결혼하지 않고 온 교회 성도들을 몸으로 섬기고 사랑하며 종노릇을 할지를 결정하십시오.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성령 안에서 결심한 성도에게 때가 되면 배우자를 실제로 주실 것을 믿고 바라고 나가십시오. 혹은 온 교회를 아름답게 섬기는 모습을 그리면서 앞으로 나가십시오.
셋째, 결혼과 독신 둘 다 은사를 주셨다고 생각하면, 독신의 부르심으로 나가십시오.
“40절, 그대로 남아 있으면 더 복됩니다”
혼자된 성도가 재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남아있으면 더 복되다고 합니다. 재혼하는 것은 복된 길입니다. 그러나 재혼하지 않고 온 교회를 섬기는 것은 더 복됩니다. 독신이 더 복된 이유는 교회 전체와 그 자신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교회 전체에 복됩니다.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24절에 “하나님과 함께 ” 남아있는 것입니다. 독신 성도는 영혼 뿐 아니라 몸도 다 주님께 바쳐서 하나님과 동행, 주님이 하라는 대로, 교회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큰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독신의 은사로 소명에 응답했기 때문에 세계 교회를 굳게 세우는 큰 일을 했습니다. 둘째, 독신생활은 그 자신에게 더 복됩니다. 이 세상의 즐거움이 길지 않습니다. 천국에서는 결혼이 없지만, 어떤 멋있는 침실 보다 어떤 멋진 결혼 보다 저 좋은 깊은 교제, 성삼위 하나님과 전인격적인 교제,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성도와 신비하고 전인격적인 교제가 있습니다. 세상의 결혼에 비할 수 없는 거룩한 쾌락이 있습니다. 독신성도는 결혼한 성도보다 더 온전히, 천국의 복을 누립니다. 물론 그렇다고 독신성도가 결혼한 성도보다 더 거룩하거나 헌신된 것이 아니고, 결혼이나 독신이나 거룩함도 동등하고 헌신도 동등하지만, 다만 그 성도가 누리는 복은 독신 쪽이 큽니다. 그런데 이 복을 탐내서 독신의 은사가 없는 성도가 독신으로 사는 것은 탐심의 죄를 짓는 것이요, 그 결과 복 대신에 하나님의 벌과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사도는 독신이 더 복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교회에서 독신에 헌신한 사람들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 같습니다. 저도 우리 교회에 독신의 소명을 가진 사람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한 명이라도 나오면, 아, 사례비 안 드리고 전도사 한 명 쓸 수 있잖아요! 결혼한 사람은 자손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가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합니다. 독신인 사람은 자기가 낳지 않은 사람들을 섬기고 전도하여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은 반드시 지금 미혼인 상태로 그대로 수동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사 주신 대로, 소명의 길을 찾아가는 역동적 과정입니다. 7절에서 “각각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이러하고, 저러하고”는 “그대로”와 같은 단어 입니다. 지금 있는 대로가 아니라, 은사 그대로 라 할 수 있습니다. 결혼 혹은 독신의 은사를 발견하고 소명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넷째, 그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의 은사와 소명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40 그러나 나의 권고/판단을 따라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정말 더 복되다
그런데 또 나는 하나님의 성령을 가지고 있으면서 판단을 내린다.
우리는 홀로 되거나 청년 신분에서 자유롭게 결혼인지 혹은 독신인지 결정하여 주님을 섬기고 서로를 섬기는 일에 매입니다. 마찬가지로 직업에서도 매이는 가운데 자유를 누립니다.신체의 장애나 질병이 있을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하고 땀을 흘려 일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명은 매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부르심을 따라 결혼에, 직장에 매임입니다. 독신으로 사는 것도 주님께 매이고, 주님의 교회에 매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사랑으로 매여서 잘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소명의 자리를 발견한 후, 주님과 함께 인내로 머무는 것이다.
크게 셋째로,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소명을 발견한 성도는, 바로 그 자리에서 끝까지 머물면서, 십자가를 지고 인내하며 수고합니다. 자신의 은사를 따라 소명을 따라 거룩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어디든지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 줍니다. 성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흘러 넘칩니다. 소명의 성도가 있는 직장은 복됩니다. 직장 상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욕을 하려 하다가도, “예수님 알겠습니다” 하고 직장 상관에게 순종합니다. 힘든 프로젝트 맡아도 끝까지 완수합니다. 그 자신도 복됩니다. 다른 사람의 직업이나 연봉을 부러워 하지 말고, 나에게 주신 것을 감사하며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이 땅에서 복이 있을 뿐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이 주실 복을 향해 나갑니다. 그렇게 일하는 성도가 있는 교회는 이 땅에서 든든히 세워 질 것이고, 그런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하나의 교회가 칭찬받고 복음이 확장될 것입니다.
은사를 따라 소명으로 거룩함으로 공부하는 성도는 복됩니다. 학생인 성도도 역시 주님 때문에 순종하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내가 상상하는 대로 수학이 만들어 지던가요? 내가 그 수학논리를 이해하며 따라가는 것은, 수학의 원리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수의 질서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용합니다.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은 미래의 남편과 아내, 미래의 자녀, 미래의 직장과 국가에, 지구촌에 복입니다. 좋은 학생 성도가 있는 교회는 복됩니다.
은사를 따라 소명으로서, 거룩함으로 살아가는 성도인 시민이 많은 나라는 복됩니다. 참 성도는 법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지킵니다. 참 성도는 지방정부-의회의 공직 출마자 중에서 별 인물이 없다고 생각되어도, 그 중에 가장 나은 사람을 골라서 투표하는 수고를 다합니다. 우리 중에는 공직으로 부름을 받은 성도도 있습니다. 결혼으로 부름 받은 사람도 있지만, 독신으로 부름을 받은 성도는 온 교회를 섬기듯이, 공직으로 부름 받은 성도는 국가의 일을 섬깁니다. 공직자의 소명과 부름을 받은 성도가 시험을 쳐서 공직자가 됩니다. 거룩한 성도가 선거에 출마해서, 시의원과 시장이 되고,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되는 나라는 복됩니다. 각자 은사대로 부르심 대로, 보통 시민으로서 국가를 거룩하게 섬기든지 아니면 공직자로서 섬기든지 둘 중 하나를 향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십시오. 좋은 그리스도인 공직자를 배출한 교회는 참으로 복됩니다. 예수님 다시 오셨을 때 참으로 복된 삶으로 인도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참으로 혼인을 가볍게 여기는 시대입니다. 결혼에서 소명이라는 개념을 잃은 시대입니다. 자신의 쾌락에 대한 생각이 온 마음을 채우고 있습니다. 자기 아내 나이가 들어 피부가 쭈굴 쭈굴해 지니까 조강지처를 버립니다. 자기 보다 20살 40살이 적은 딸 같고 손녀 같은 여자를 아내로 삼으면, 부끄러워 해야 할 텐데, TV에 나와 자랑합니다. 연예인들도 이혼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자랑하는 악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단의 가르침 귀신의 가르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결혼의 법을 무시합니다. 그게 더 나가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분명한 이단이 됩니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배교가 교회 안에 점점 퍼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목사님이 이혼하지 말라고 설교하기가 참 힘듭니다. 이미 교인들 중에 이혼한 사람이 많이 있고, 장로 중에도 목사 중에도 이혼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앞으로 절대로 이혼은 안 됩니다. 우리 어린이들 잘 들어야 돼요. 결혼한 번 하면 죽을 때 까지 끝까지 사랑합니다. 결혼을 한 하려면 안 하든지,결혼을 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이혼하면 안 됩니다. 그걸 알고 결혼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아주 멋있고 미스코리아, 큰 회사 사장들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까? 교회를 위해 돌아가셨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돌아가셨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돌아가셨고, 부자를 위해서도 돌아가셨고, 여기 있는 우리들을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는데,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긴장해야 돼요, 정신차려야 해요. 제가 우리 성도들한테 혼내는 것이 아니고 이 시대가 위태하다는 것입니다. 곳곳에서 사단의 가르침에 떠밀려 가고, 교회가 떠밀려 가고, 교회가 약해 가지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군인과 같습니다. 군인이 나가서 전쟁터에서 싸워야 할 텐도, 조금 다쳤다고 군대 야전병원에 입원하고, 조금 아프다고 울어서야 되겠습니까? 한 시간 울고, 하루 울고, 한달 울고, 일 년 울고 그러면 끝내야 되는 거예요. 자, 주님께서 부활하셨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거룩한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시고 확장하고 있습니다. 온 땅에 그 나라의 영광이 가득하게 하도록 오시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오시는 주님을 믿고, 이 번 한 주간도 큰 일 생각하지 말고,작은 일, 나에게 맡기신 일, 나에게 시키신 일, 그것이 소명의 자리입니다. 아빠 엄마가 하라고 한 것이 바로 소명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것, 할 수 있는 일, 그 소명의 자리에서 충성합시다. 어려운 영어 문제 풀지 않더라도 쉬운 문제 푸는 것이 주님이 불러 주신 것입니다. 서울대 못 가고 하바드 대 못 가고 그런 것 안 따집니다. “너는 왜 성실히 안 했냐? 왜 내가 시킨 것 안 했냐?” 그것을 따집니다. “너는 왜 열심히 직장 찾지 않았냐, 왜 땀흘려 노력 안 했냐?” 이것을 따집니다. 주님은 은혜로우신 분이니까 계속 따지지 않습니다. 그 은혜를 바랍시다.
말씀 433 고전 30회 <독신과 결혼의 은사와 사명 7>
거룩하게 되어가는 성도의 소명 (고전
* 말씀을 요약하여 생각해 보고, 순종할 것을 순종합시다.
* 이번 주 설교문은 길어서, 앞 부분만 II-1까지 읽고서 가족이 함께 생각해 봅시다.
I. 배교의 시대에 말씀을 바로 깨달아 거룩한 삶을 살자.
II. 결혼과 온 삶에서 거룩하게 되어 가는 성도의 소명을 다하자
1. 나의 소명은, 교회의 거룩함의 한 부분, 하나님 나라가 재림의 영광으로 나가는 한 과정
1) 거룩한 교회의 한 부분으로서 개인의 거룩의 소명
2) 거룩의 두 가지 측면, 예배와 삶, 하나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사랑함
3) 영광의 재림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서의 거룩의 부르심
2. 나에게 주신 은사대로 소명을 찾아 간다.
3. 소명의 자리를 발견한 후, 주님과 함께 인내로 머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