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지역의 역사적(歷史的) 명소(名所)
13. 튀르키예의 전승(傳承) 문화
터키의 명물들 : 그랜드 바자르(Bazar) / 스파이스 바자르 / 벨리(Belly) 댄스 / 세마춤(수피파)
나는 튀르키예를 여행하면서 여러 가지 놀라운 이곳 문화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너무도 신기하여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r)와 스파이스 바자르(Spice Bazar).....
튀르키예의 얼굴이라고도 불리는 그랜드 바자르는 대규모의 시장인데 15세기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한다. 이곳 대 시장(市場) 그랜드 바자르는 높다란 돔(Dome) 천정으로 덮여 있는데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길을 잃기가 쉬워 관광객들은 들어가기는 쉽지만 나오는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스파이스(Spice) 바자르는 글자대로 양념(Spice) 시장인데, 알록달록한 색깔의 가루들과 이름 모를 조미료들을 좌판 그득 벌여놓고 파는 곳으로, 그랜드 바자르 버금가는 규모를 자랑한다.
구조는 그랜드 바자르와 마찬가지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미로(迷路)로 얽혀있다.
튀르키예의 영화 ‘테이스트 오브 스파이스(Taste of Spice)’ - 영화에서 주인공 할아버지는 우주 행성들의 운항, 인생살이의 모든 것도 조미료(양념)로 설명하던 그 심미안(審美眼)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덧붙여 케밥(Kebap)을 소개하면, 튀르키예는 엄청나게 다양한 음식과 기막힌 맛으로 몇 번이나 감동했지만, 특히 길거리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케밥이 매우 신기하고도 맛이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돼지고기, 양고기 등을 켜켜로 얇게 잘라서 쇠기둥에 꽂아 양념을 칠하며 불 옆에서 빙글빙글 돌리고 굽는데 손님이 주문하면 칼로 겉 부분 익을 것을 잘라 양념하여 주는데 기가 막힌 맛이다.
벨리댄스(Belly Dance)는 튀르키예를 대표하는 춤으로 글자로 보면 ‘배꼽춤’이지만 배 부분도 움직이기는 하는데 아랫부분인 엉덩이를 빙글빙글 돌리는 춤으로 너무나 섹시(Sexy)한 환상적인 춤이다.
또 이슬람(Islam)교의 한 분파(分派)인 신비주의파인 수피파(Sufism)의 세마춤(Sema Sufi Whirling Dance) 또한 환상적인데, 흰 수도복에 둥근 모자를 쓰고 손을 벌린 후 머리를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인 다음 눈은 반쯤 감고 끝없이 빙글빙글 도는 춤이다. 이 춤을 추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환상의 세계, 신의 경지에 들어서게 되는 춤이라고 하는데 일종의 기도(祈禱)라고 해야 할까?
신기한 것은 보통사람이라면 어지러워서, 혹은 중심을 잃어서 바로 넘어지겠는데 관중들 앞에서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눈을 감고 빙글빙글 한도 끝도 없이 도는 수십 명의 수피파 무용수(?)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빙글빙글 끝없이 계속하여 돌아가니 보는 사람들이 감동할 수밖에 없다.
14. 튀르키예(Türkiye)의 고고학(考古學) 명소들
튀르키예 각 지역 / 보스포루스 해협 / 하늘을 나르는 니케(Nike)여신<Efes/에베소>
튀르키예는 우리가 지금까지 터키공화국(Republic of Turkey)으로 불렀는데 일명 토이기(土耳其)라고도 불렀다. 위치는 아시아의 서쪽 끝으로 유럽에도 국토 일부(이스탄불)가 속해있는 나라이다.
수도는 앙카라(Ankara)인데 튀르키예(Türkiye)는 위 지도의 보스포루스(Bosporus) 해협을 건너면 유럽대륙인데 유럽 지역에 튀르키예의 대도시인 이스탄불(Istanbul)이 있고 예전에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라고 불렀다. 이스탄불은 BC 8세기, 그리스(Greece)인들이 비잔티움(Byzantium)제국을 세우고 수도로 정하였던 곳이며 AD 4세기에는 로마(Rome)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1세가 동로마제국의 수도(首都)로 삼았던 도시이다.
이스탄불(Istanbul)은 당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라고 불렀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이며 인구가 1,500만이 넘는 대도시이다.
이곳은 다시 AD 15세기, 투르크(Turk) 족이 세운 오스만(Osman)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가 1923년에 터키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수도를 앙카라(Ankara)로 옮기고 도시 이름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Istanbul)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스탄불은 위치상 흑해(黑海:Black Sea) 입구 삼각형 모양의 반도(半島) 요충지에 있으며 보스포루스 해협을 끼고 동양과 서양을 잇는 통로로 옛 실크로드(Silk Road)의 종착지이기도 하였다. 튀르키예(터키)는 다양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페르시아(Persia), 아랍(Arab), 비잔틴(Byzantine), 오스만(Osman) 및 서유럽 문명 등 다양한 문화가 꽃피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중심부는 광활한 아나톨리아(Anatolia) 고원이 펼쳐져 있는데 이곳의 역사를 잠시 되짚어 살펴본다.
BC 7,000년 이전에 정착민들이 자리 잡았던 이곳은 BC 1,900년경에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히타이트(Hittite)인들에 의해 점령되었는데 이집트(Egypt)의 왕 파라오(Pharaoh-람세스 2세)와 전쟁(Qadesh 전쟁 등)도 자주 있었다. 이후, 페르시아(Persia) 제국이 BC 6세기에 이 지역을 차지하여 찬란한 헬레니즘(Hellenism)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BC 1세기경에 로마(Rome)제국이 차지하게 되는데, 로마 황제인 콘스탄티누스(Constantius) 대제(大帝)가 수도로 삼고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이라 하였으며 비잔틴 제국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가 13~14세기 들어 오스만(Osman) 제국이 자리를 잡는데 이후 다시 튀르키예 공화국이 들어서게 되고 그 후 1, 2차 세계대전의 시련을 겪은 후 1952년에는 NATO에 가입하고 1950년 우리나라에서 6·25전쟁이 터지자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한국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 튀르키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혈맹(血盟)이다.
튀르키예의 근대화를 이끈 선구자는 튀르키예 공화국의 아버지로 칭송되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 1881~1938)로 일명 케말 파샤(Kemal Pasha),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이라고도 부르는데 아타튀르크(Atatürk)의 의미는 ‘투르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