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보다 빛나는 럭셔리 아랍 Arab |
‘세계화 시대’라는 말은 이제 싫증 날 만큼 익숙하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를 사는 우리는 과연 세계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올 한 해 아랍 국가들은 한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호화롭게 빛나는 숱한 이슈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아랍의 이야기가 우주탐사보다 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면? 지금이 바로 유서 깊은 문화의 힘과 엄청난 재력, 막강한 추진력이 있는 아랍을 당신이 바라보는 ‘세계’에 꼭 포함시켜야 할 때다. 진정한 럭셔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지구촌 전체를 꿰뚫는 균형 있는 시각도 반드시 지녔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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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인류 4800년 역사를 주도한 문명의 보고
‘아랍’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언뜻 중동, 이슬람, 테러, 오일 머니 정도가 생각날 뿐 우리와는 상관없는 세상 같다. 세계를 주무르는 부호가 아랍에 몰려 있다고 해도 땅 투기 대신 석유로 치부한 졸부쯤으로 간주할 뿐이다. 하지만 몰라도 그만이라고 여기기에 아랍의 저력은 너무나 막강하다. 그들의 문화 파워는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그리고 우리 일상 곳곳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순면cotton 타월towel로 몸을 닦은 후 오렌지orange 한 개, 캐비아caviar를 올린 샌드위치 하나와 커피coffee 한 잔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출근했다. 종일 해외 업무를 처리하며 관세tariff 문제로 고민하다가 결국 외화 수표cheque를 보내 마무리했다. 점심에는 사프란saffron을 넣은 카레를 즐기고, 아이스 티 한 잔에 설탕sugar 대신 시럽syrup을 넣어 마셨다. 창가에 앉아 조용히 음악music을 듣고 있으니, 창밖의 튤립tulip과 라일락lilac이 오늘따라 더욱 청초해 보인다. 퇴근 후에는 욕조bathtub에 몸을 담그고 하루의 피로를 푼 다음 부드러운 모슬린muslin 파자마pajamas로 갈아 입고 침대에 누워 어제 읽던 책 <연금술alchemy사>를 마저 읽었다. 알코올alcohol 증류법과 알칼리alkali 같은 화학chemistry적인 내용은 물론 철학philosophy, 천문학astronomy, 물리학physics, 대수학algebra 등 폭넓은 지식을 담은 책이다.
가상 일상을 그린 위 글에서 영어로 표기한 단어에서 공통점을 찾는다면 무엇일까? 바로 ‘아랍’이다. 음식, 생활용품, 학문까지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이들 단어는 아랍어가 어원이거나 그 자체가 아랍 문화권에서 유래했다. 중세 아랍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과 학문을 발전시켰다. 수학에서는 인도의 영향을 받아 아라비아 숫자를 탄생시켰고 영(0)의 개개념을 확립했다. 천문학에서는 경도와 위도 그리고 자오선의 길이를 측정했고 천체 관측 기구를 만들어 지구 구체설을 증명했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는데 예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음력은 이슬람 역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의학에서는 예방의학은 물론 외과 수술도 이루어졌으며 대표적인 이슬람 의학자 알-라지Al-Razi와 이븐 시나Ibn Sina의 저술은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같은 유럽 명문 대학에서 오랫동안 의학 교재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우리 일상과 지식에 다양한 영향을 끼쳤지만 아랍은 낯설고 뒤처진 문화로만 비친다. 테러와 전쟁이라는 중동 지역의 이미지 탓이다. 하지만 부정적 이미지로 얼룩진 중동 지역은 인류 문명이 최초로 시작된 곳이다. 나아가 인간의 지혜와 지적 유산을 전파하고 발전시켜 인류 사회에 공헌한 지혜의 산실이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이 중동에서 시작됐고,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발생한 영성의 고향이기도 하다. 인류 역사를 5000 년으로 본다면 적어도 4800년간 인류 문명을 주도해온 지역이 중동을 비롯한 아랍 세계다.
고대 문명부터 현대 일상까지
수메르에서 시작한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문명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히타이트, 아시리아, 헤브라이, 바빌로니아, 페니키아 같은 오리엔트의 수많은 고대국가를 탄생시켰다. 이후 오리엔트와 이집트 문명을 받아들인 크레타를 중심으로 그리스 로마 문화가 꽃피고 오늘날 서양 문화의 뿌리가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오리엔트 문명을 계승한 중동 지역에서 기원전 6세기에는 페르시아가 로마에 앞선 세계 최초의 제국을 건설했고, 8세기부터는 이슬람 제국이 세계를 호령했다. 1258년 이슬람의 아바스 제국이 몽골에게 멸망한 뒤에는 터키인 이슬람교도가 오스만 제국을 건설했다. 오스만 제국은 20세기에 들어서기까지 600년간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세 대륙을 석권하며 동서양 문화를 서로 녹이는 용광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역사를 배경으로 중동 지역에서 북아프리카 서쪽으로 이어지는 광대한 아랍 문화권에는 무려 1000년을 지속했던 로마 제국과 인류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큰 영역을 통치한 오스만 제국이라는 엄청난 용광로 속에서 융화한 다양한 문화의 자취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오늘날까지 200년간 우리는 서구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지만, 그 이전 4700년간 번성하며 전 세계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 아랍 문화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오른쪽) 카타르 도하의 이슬람 양식 건축물
이슬람의 등장은 아랍의 문화 지형을 근원적으로 바꾼 대사건이었다. 7세기 서양에서는 비잔틴 제국과 중동의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이 300년간 전쟁을 벌였고, 중동 전역에는 경제적 파탄과 세기말적 혼란이 팽배했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이슬람이란 새로운 종교 사상이 등장한 것은 역사적으로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는 우상숭배를 타파하고 ‘알라’라는 유일신 사상을 설파했다. 무함마드는 아담과 이브에서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까지 그들에게 주어진 복음서를 인정하고, 그들을 선지자로 추앙했다. 이슬람 정권은 합리적 조세 제도와 토착민들의 종교와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정치로 큰 충돌 없이 주변 지역을 복속시킬 수 있었다.
이슬람 제국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출발해 북아프리카 모로코와 스페인 남부,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인도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이슬람의 유산을 남겼고, 1000년의 대제국 시대를 거치면서 인류 문명이 성숙하는 데 공헌했다. 뿐만 아니라 중세에 이르러 유럽이 암흑 시기에 잠들어 있을 동안 그리스 로마의 지적 유산을 번역하고 재해석하여 유럽에 전해주었으며,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는 데 결정적 모티프를 제공했다. 전 세계로 퍼져 나간 아랍 문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 중 하나가 이슬람 건축 양식이다. 많은 현대건축가들이 지구촌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사적 예술 건축으로 인도의 타지마할과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을 꼽는다. 공교롭게도 두 유적 모두 이슬람 건축 양식을 따랐다. 우상숭배를 막는 종교적 금기 때문에 사람이나 동물을 형상화하거나 조각할 수 없는 이슬람 예술가들은 아라베스크라는 독특한 문양을 창조했다. 꽃과 식물의 형상을 코란의 문자와 절묘하게 조화시켜 아름다운 기하학 문양으로 완성한 아라베스크는 카펫은 물론 이슬람 건축의 문과 벽면, 바닥과 천장에 장인들의 최고 기량과 투혼으로 표현되었다.
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세상에 흩어져 있던 다양한 신화와 설화를 묶어 1000일 하고도 하룻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집대성한 <아라비안 나이트>는 ‘융합’이라는 아랍 문화의 특징을 대표하는 아랍 문학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많은 서구 문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각국에서 오늘날까지 널리 읽힌다.
통일신라와 아랍 세계의 만남
아랍 문화는 통일신라 시대 이후 한국 상류사회에도 깊숙이 침투했다. 8세기경 콘스탄티노플에서 유행하던 장신구와 패션, 유행과 트렌드는 실크로드를 따라 6개월이면 한반도까지 도달했고, 통일신라 시대 성골, 진골, 육두품 등 귀족과 왕실, 상류사회를 매료시켰다. 1200년 전에도 한국과 비잔틴 제국은 패션에서 거의 동시대를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콘스탄티노플의 왕족이 사용하던 장식품이나 의상, 바그다드 일대로부터 전해진 페르시아 카펫, 모직 말안장, 아라비아의 유향과 몰약, 옥빗과 에메랄드, 유리 공예품, 금속 공예품 등이 중국 창안長安을 거쳐, 또는 아랍 상인과 직거래로 신라 수도 경주까지 활발하게 전달되었다. 외국에서 들여온 고가의 사치품이 신라 사회에 얼마나 많이 범람했으면, 834년 흥덕왕이 사치품 수입 금지 칙령을 내리고 왕족의 등급별로 사치품 사용 허가 품목을 지정해주었을까. 경주 고분의 다양한 출토품과 <삼국사기>의 기록 등이 위와 같은 접촉과 문화 교류를 증명한다. 특히 아랍인의 모습인 경주 괘릉의 무인석상, 아랍 상인으로 알려진 처용의 등장 등도 아랍인들의 신라 진출을 보여주는 증거다. 뿐만 아니라 <고려사>의 기록에 훨씬 DB앞선 이슬람학자들의 저술에도 아랍인의 신라 진출과 신라의 위치, 자연환경, 산물 등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왼쪽) 차도르를 두른 두바이의 여인들
9세기부터 15세기 사이에 이슬람 역사학자, 지리학자, 여행가들이 남긴 20여 권의 책에서 신라에 관한 언급을 찾을 수 있는데, 신라의 아름다움을 극찬했으며 일부 아랍인들은 신라에 정착했다고 전한다. 아랍 역사학자 이드리스가 1154년에 편찬한 세계지도도 주목할 만한데, 신라를 5개의 큰 섬으로 묘사한 이 지도는 한국을 기록한 세계 최초의 지도로 추정된다. 당시 아랍 상인들은 중국의 항저우杭州에서 뱃길로 신라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우리 사료에는 11세기 초에 비로소 대식 상인으로 불리던 아랍 상인이 한반도를 왕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100여 명의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고려로 와서 왕실과 교역했다. 조선 시대에도 교역은 이어졌다. “15세기 어느 화창한 봄날, 세종대왕께서 경회루 근정전에서 문무백관이 도열한 자리에서 옥좌에 않아 이슬람교 지도자가 낭송하는 코란 구절을 들으며 지그시 눈을 감고 계시다.” 왕을 알현한 이슬람교도라니, 게다가 코란 구절을 들려주다니! 요즘 유행하는 팩션faction의 한 장면 같지만 실은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대목이다. 고려 말에 우리나라에 정착한 대규모 이슬람 집단은 조선 초기까지 이어졌다. 그들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이슬람 과학을 전파하면서 세종의 역법과 천문 과학 기기의 발명에 중요한 브레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역사에 분명히 기록된 그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고려 말 한반도에 정착해 살던 이슬람교도들은 회회인回回人으로 불렸으며, 왕실과 특수한 관계를 유지하며 경제 활동을 하여 부를 축적했고 상당한 사회적 지위도 누렸다. 나아가 자신들의 고유한 풍속, 언어, 종교 등을 보존하면서 모스크까지 짓고 살았다. 그러나 이슬람교도가 150년간 지속할 수 있었던 종교적 자치권과 민족적 정체성은 1427년에 발효한 왕의 칙령으로 금지되고 말았다. 그리고 결혼을 통해 한국 사회에 점차 동화되어갔다.
화려한 부흥, 21세기 아랍 우리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아랍은 21세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중동 산유국들은 막대한 오일 달러로 사회 간접 시설 투자를 늘리고 국가 개조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북서부 아프리카의 아랍 국가들도 풍부한 자연 자원을 바탕으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엄청난 담수화 시설로 이미 밀 수출국으로 변모했으며 채소와 과일을 자급자족할 뿐 아니라 낙농업도 시작했다. 리비아도 대수로 공사를 완공하고 식량 대국으로 거듭날 꿈을 꾸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는 석유 위주 산업에서 탈피해 금융과 관광, 물류 허브로 눈부신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두바이가 높이 818m에 이르는 170층짜리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두바이 완공을 서두르자 이웃 산유국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도 뒤질세라 1000m 이상의 초고층 빌딩 건설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들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아직까지 우리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얼마 전부터 우리 대중문화가 그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이란에서는 드라마 <대장금> 시청률이 90%를 넘고, 이집트에서는 <겨울연가>가 인기리에 몇 차례나 방송되었다. 한국산 자동차를 비롯해 가전제품, IT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거의 모든 아랍 시장에서 일본 제품을 누르고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면서 그들은 한국과 문화 교류도 희망하고 있다. 이제 그들은 스스로 아랍 그리고 이슬람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아시아와 새로운 관계 증진으로 화려한 중세의 영광을 다시 한번 꿈꾸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다가갈 차례다.
(오른쪽) 두바이의 호텔 버즈 알 아랍 내부
* 이 글을 쓴 이희수 교수는 우리나라 최고의 중동 문화 전문가로 ‘중동・이슬람 바로 알기’ 전도사로도 불린다. 그는 터키 국립이스탄불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를 역임했으며, 터키 외에도 튀니지,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10년간 중동・이슬람 문화를 연구했다. 현재 한국중동학회 회장으로 <이슬람: 9.11 테러와 이슬람 문명 이해하기>, <한・이슬람 교류사>, <어린이 이슬람 바로 알기> 등 다수의 저서를 발표했다.
INSPIRATION FROM ARAB 선명한 원색과 눈부신 황금빛, 화려하고 정교한 문양과 장식, 신비로운 모스크의 실루엣…. 아랍의 강렬한 숨결은 동시대의 바다와 대륙을 지나 퍼져 나갔을 뿐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전해졌다. 그리고 건축, 인테리어, 패션 등 여러 분야에 스며들었다. 아랍이 선물한 다양한 아름다움을 만나보자.
둥그스름한 돔과 예리한 첨탑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형태는 이슬람의 대표 건축 양식. 건축물의 벽면과 천장을 장식한 화려한 색채의 문양과 조각도 빼놓을 수 없다. 이슬람 제국은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북아프리카와 유럽 이베리아 반도, 인도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세력을 떨쳤다. 인간이 완성한 최고의 건축 예술로 꼽히는 타지마할과 알함브라 궁전은 각각 인도와 스페인에 위치하지만 이들 건축물에 이슬람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는 것은 그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1 1913년 까르띠에 뉴욕에서 전시한 아랍풍 주얼리 컬렉션. 2 첨탑에 이슬람 건축 양식이 그대로 드러난 스페인 세비야의 대성당. 3 레옹 박스트가 디자인한 의상을 입은 <셰에라자드>의 니진스키. 4 겔랑에서 1910년 출시한 향수 ‘무어리시Moorish’. 화려한 문양에서 아랍의 정서가 느껴진다. 5 타지마할의 실내 벽면을 장식한 화려한 아라베스크 문양. 6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 더글러스 페어뱅크스가 주연한 1924년 영화 <바그다드의 도둑The Thief of Bagdad>. 당시 할리우드에는 아랍 관련 소재가 대유행했다.
화려함과 섬세함의 정수, 아라베스크 아랍계 이슬람교도인 무어인이 건설한 알함브라 궁전은 곳곳의 정교한 문양과 조각은 물론 빛과 그림자가 절묘한 구도를 이루는 건물 구조가 압권이다. 그 명암의 조화는 차도르 자락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랍 여인을 연상시킨다. 우윳빛 대리석이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의 왕 샤자한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지은 궁묘宮墓로, 완벽하게 대칭을 이룬 그 모습은 인간의 솜씨라고 믿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답다. 천장과 벽면을 화려하게 수놓은 문양은 꽃을 비롯한 식물, 문자, 기하학적 모티프가 어우러진 환상적인 아라베스크 무늬다. 창조주 하느님만이 인간이나 동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코란의 내용을 근거로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가 인간이나 동물을 형상화하지 말라고 권한 까닭에 아랍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독특한 문양이 발달했는데 그 섬세함이 감탄을 자아낸다. 아라베스크 무늬는 모스크와 궁전 등 건축물뿐 아니라 카펫과 도자기, 유리 공예품에도 활용되었으며 고대부터 중세 르네상스 시대, 근대의 아르데코, 그리고 현대의 각종 디자인에도 꾸준히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도 카펫의 귀족으로 불리는 페르시아 카펫은 양모와 비단 실을 화려하고 다양한 색조로 염색해 손으로 짠 것으로 아라베스크 무늬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 화려한 패턴은 중세 유럽 사람들을 매료시켰는데 아랍에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베네치아에서는 페르시아 카펫을 창문에 드리우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16세기 초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한스 홀바인Hans Holbein은 자신의 그림에 기하학 문양의 카펫을 자주 표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랍의 숨결, 패션에 혁신을 일으키다 20세기 초 서구 사회에서 아방가르드 예술과 이국 정서exoticism가 유행하고 오트 쿠튀르 산업이 태동하며 여성들의 패션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전의 부드러운 색상과 과장된 곡선 대신 강렬한 색상과 홀쭉하면서도 직선적인 실루엣이 유행하게 된 것. 특히 발레단 발레뤼스의 창설자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j Dgilev는 1909년 러시아 황실 발레단의 <클레오파트라> 공연을 감독하고, 1910년 발레뤼스의 초연 레퍼토리로 <셰에라자드>를 선보이는 등 이국적 분위기로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여기에 러시아 화가 겸 디자이너 레옹 박스트Leon Bakst가 선보인 황금빛과 청록색, 빨간색이 화려하게 어우러진 아랍풍 무대 의상은 당대 패션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랍의 미적 요소를 유럽에 소개한 이는 프랑스 디자이너 폴 푸아레Paul Poiret다. 코르셋으로 S 커브를 만들어 과장된 곡선을 연출하던 관습에서 탈피해 실루엣을 날씬하고 헐렁하게 바꾸었으며 이국 정서를 디자인에 한껏 반영했다. 그는 1910년 스커트 밑단이 좁아지는 호블 스커트, 1912년 램프 갓 모양의 미나레트(minaret: 이슬람 모스크의 첨탑을 의미) 스타일을 발표했으며, 반짝이는 금사와 기하학 패턴, 깃털로 장식한 터번 등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며 최고의 쿠튀리에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후에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술탄의 가운과 터번,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옴직한 하렘 팬츠, 아랍 여인들의 차도르 등에 착안한 요소를 컬렉션에 반영했다. 지아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도 아랍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디자이너로, 1980년대 초 드레이프를 살린 헐렁한 팬츠와 금사 태슬 등을 활용해 아랍과 인도풍을 가미한 디자인을 다수 선보였다. 이번 시즌 루이비통의 마크 제이콥스, 이브 생 로랑의 스테파노 필라티 등의 디자인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눈에 띈다. 의상뿐 아니라 주얼리에서도 신비한 아랍의 터치를 발견할 수 있다. 주얼리 명가 까르띠에는 1913년 뉴욕에서 힌두, 페르시아, 중국 등 동양 문화를 반영한 작품 50점을 전시했는데 그중 아랍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은 기하적이고 눈부신 디자인으로 특히 눈길을 끌었다. 1922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 Howard Carter가 이집트 투탕카멘 왕의 무덤을 발굴하면서 미술, 패션, 문학, 영화 등에서 이집트 문명이 중요한 모티프로 떠올랐고, 이집트 중심의 아랍풍 유행은 한동안 계속됐다. 흑요석과 유리를 덧붙여 섬세하게 세공한 황금 마스크를 비롯해 황금빛으로 가득한 묘실 안의 호화로움은 세계를 매료했으며 까르띠에 역시 이집트를 비롯한 고 대 문명의 문양을 본격적으로 디자인에 반영했다.
황금빛으로 고대 아랍의 영광을 재현하다 황금으로 뒤덮인 고대 이집트 왕의 묘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황금이 모였던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은 번쩍이는 황금을 아랍 문화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로 만들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 황금빛 아랍의 영감이 넘실댄다. 생전 패션 디자인에도 이국적인 아랍의 분위기를 많이 반영했던 베르사체가 오스트레일리아 골드 코스트에 남긴 팔라초 베르사체 호텔은 고대 아랍의 영광을 재현한 듯 빛나는 대리석과 찬란한 금장, 선명한 원색과 다채로운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그 화려함을 자랑한다. 돌체 앤 가바나가 밀라노에 오픈한 골드 레스토랑은 아랍의 영감을 한층 모던하게 표현했다. 인테리어에 금박과 유리, 스틸, 거울 등을 활용한 이곳은 이름처럼 사방이 금빛으로 반짝인다. 아라베스크 문양을 재해석한 기하학 패턴의 금빛 벽 장식, 황동과 금박을 입힌 유리로 만든 계단은 호화로움의 절정을 보여준다. 멀게만 느꼈던 아랍은 이처럼 지금도 수많은 분야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마치 불사조 아라비안 버드Arabian Bird처럼.
1, 2 1910년 까르띠에에서 선보인 아랍 스타일 목걸이와 그 스케치. 3 알함브라 궁전 곳곳을 장식한 네 잎 클로버 문양을 모티프로 1975년 탄생한 반클리프 아펠의 빈티지 알함브라 컬렉션. 4 황금빛과 기하학 패턴으로 실내를 장식한 돌체 앤 가바나 골드 레스토랑. 5 호화로운 아랍 왕국이 연상되는 팔라초 베르사체 호텔. 6 기원전 10세기 이집트 유물인 세크메트 여신상을 보석으로 장식한 까르띠에 브로치. 이집트 모티프가 한창 유행한1925년 작품이다. 7 2008 F/W 시즌 루이 비통 컬렉션에서도 아랍의 숨결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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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aradiseS of Arab 세 명의 아랍 국가 대사가 고국의 눈부신 풍광, 찬란한 문화에 관해 직접 이야기한다.
압둘라 무함마드 알마이나 대사는 1971년 아랍에미레이트의 교육부 공무원을 지낸 뒤 주오만 아랍에미레이트 대사관 3등 서기관과 2등 서기관을 지냈다. 1977년 1등 서기관으로 승진한 이래 리비아, 튀니지, 스페인, 일본 등의 대사관에서 재직했으며 2005년 주한 아랍에미레이트 대사로 부임했다. 올해 7월 1일부터는 북한과의 교류도 책임지고 있다.
세계 최고의 판타지 국가, 아랍에미레이트 주한 아랍에미레이트연방 대사 압둘라 무함마드 알마이나 대사관 로비와 대사 집무실에는 금장을 두른 세 개의 초상화 액자가 걸려 있다. 액자 속 주인공은 아랍에미레이트(United Arab Emirates: 이하 UAE)가 세계 속의 강국이 되는 것을 처음으로 꿈꾸고 그 열망을 이어받아 현실로 실현한 이들, 즉 UAE의 초대 대통령 셰이크 자예드, 현 대통령 셰이크 칼리파 빈 자예드 알 나흐얀, 그리고 UAE의 부통령이자 두바이 통치자인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이다. 이 세명의 ‘가슴’에서 UAE의 기적은 시작되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통치자에 대한 국민의 충성심과 애정은 대단하다. 압둘라 무함마드 알마이나Abdulla Mohammed Al-Maaina 대사는 “우리 국민 모두는 통치자의 리더십을 매우 존경한다. 인기도 대단하다. 사람들은 지도자들의 국정 운영과 리더십을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최고의 ‘모델’로 인식한다. 그들의 현명한 통치 덕분에 나라 전체가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특히 UAE가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음을 꿈꾼 셰이크 자예드는 ‘바바Baba’(아랍어로 아버지란 뜻)라고 부르며 추앙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과 거래가 오가는 중동의 부국은 이제 ‘판타지 제국’이 되었다. 해저 호텔, 디즈니랜드보다 8배 더 큰 두바이랜드, 장 누벨, 자하 하디드 등 초특급 건축가가 총동원돼 짓는 문화 예술 지구, 세계 지도 모양의 인공 섬 ‘더 월드’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문화 프로젝트는 차라리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3년 전 취재차 두바이 일대를 일주일간 보고 왔다”고 말하는 기자에게 대사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또 바뀌었다. UAE는 매일매일 바뀐다”라고 말한다.
(왼쪽) 압둘라 무함마드 알마이나 대사가 소중히 여기는 코란 경전. (오른쪽) 2001년 사업 계획을 발표하자마자 전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던 주메이라 팜 아일랜드 프로젝트의 조감도.
총 4개의 인공섬이 건설되고 있는 이곳에는 세계적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별장도 있다.
UAE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속도가 빠르고 미래적인 문화 파라다이스 지구다. 지구를 통틀어 가장 스케일 크고 휘황한 프로젝트는 모두 이곳에서 발아돼 현실이 된다. 대사는 “우리는 우리 고유의 문화를 가꾸고 보살펴야 할 최고의 가치 중 하나로 받아들인다. 아부다비의 사디얏 Saadiyat에 문화 지구를 짓고, 루브르 박물관과 소르본 대학의 분관을 건설하는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가꾸고 업그레이드해 전 세계적 문화 강국으로 자리 매김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우리 문화를 지키고 알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라고 말한다. 단지 국가 재정 수입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적 문화 아이콘을 ‘이식’함으로써 동시에 자국의 문화를 보호하고 성장시키는 고도의 전략을 펼치는 셈이다. 대사는 “우리에게 문화적 강국이 된다는 것은 다른 문화로부터 우리 고유의 문화를 보호하는 것 역시 포함된다”라고 말한다. 어마어마한 비용과 인력이 투입되는 수많은 문화 프로젝트는 사실 누구나, 어느 나라나 계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사는 “최고를 경험한 이가 최고를 만들 수 있다”고 명쾌하게 말한다. 상상력과 창의력에도 고유의 스케일이 있어 ‘진짜 최고’를 경험하지 않고는 최고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세계 경제를 덮친 금융 위기로부터도 UAE는 건재하다. “우리 경제는 아마도 전 세계적 금융 위기에도 가장 영향을 덜 받는 곳 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 세계적 신용 평가 기관 중 한 곳이 UAE의 경제 전망을 발표했는데 올해도, 내년도 걱정 없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투자자는 UAE의 미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UAE는 앞으로도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의 땅’이 될 것이다.”
라바 하디드 대사는 모잠비크, 콜럼비아, 터키 주재 알제리 대사를 거쳐 2005년 10월 주한 알제리 대사로 부임했다. 1985년에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부의장 그리고 1994년에는 유엔 개발계획회의 의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아프리카 발전 기구NEPAD 운영위원회에서 알제리 대표로도 활동했다.
알제리, 모든 것을 포용하는 진정한 세계주의 주한 알제리민주인민공화국 대사 라바 하디드 프랑스 문호 알베르 카뮈의 고향이자 소설 <이방인>의 무대…. 우리 언론에서 알제리 관련 기사를 소개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설명이다. 라바 하디드Rabah Hadid 대사는 알제리에 대한 이런 단편적 시선을 안타까워했다. “카뮈는 위대한 작가이며 그가 알제리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카뮈의 시선을 통해서만 바라본다면 알제리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오랜 투쟁 끝에 1962년 독립하기까지 알제리는 100년이상 프랑스의 식민 통치로 고통을 받았다. 한국도 우리와 역사적으로 유사한 면이 있지 않은가.” 알제리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수단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나라다. 우리나라의 약 24배나 되는 광활한 땅은 북쪽 지중해 연안에서 국토의 5분의 4를 차지하는 남쪽의 사하라 사막으로 이어진다. 인구는 대부분 바다를 따라 형성된 도시에 거주하며, 사막은 엄청난 천연자원의 보고다. “지중해와 맞닿은 알제리의 기후는 완벽에 가깝다. 신의 선물이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 국가 원수 최초로 알제리를 방문했을 때 아름다운 날씨와 풍광에 깊은 감명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림 같은 지중해부터 불모지 사하라까지 풍광이 다채롭듯 고대 로마 제국부터 오스만 제국 그리고 이슬람, 거기에 근대 유럽까지 다양한 문화의 흔적이 곳곳에 자리한다. 라바 하디드 대사가 알제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은 이는 기독교 사상가이자 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 ‘이해의 신앙’을 주장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포용력은 시대를 초월한 알제리 사람들의 공통 성향인 것일까? 국교는 이슬람교지만 수많은 기독교 유적을 보존하며 자랑으로 여긴다. 고대 기독교 유적만이 아니다. 수도 알제Alger의 노트르담 성당은 19세기에 건설한 것이다.
(왼쪽) 아나바Annaba는 고대 로마 시대에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주교를 지낸 곳이다. (오른쪽) 수도 알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막의 오아시스에 자리 잡은 부사다Bou-Saada의 모스크.
“대부분의 한국인이 아랍 하면 떠올리는 중동뿐 아니라 마그레브(Maghreb: 서방을 뜻하는 아랍어로 모로코・알제리・튀니지 등이 자리한 아프리카 북서부를 의미)도 이슬람・아랍 문화권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랍, 아랍과 아프리카를 잇는 교량이자 통로다. 로마 시대의 유적만도 제밀라Djemila, 티파사Tipaza, 팀가드Timgard 등 수없이 많다. 세 곳 모두 1982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그는 알제리에 대해 소개하며 “직접 가서 봐야 한다”는 말을 거듭했다. 말로만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알제리를 막연히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 다녀온 사람 가운데 알제리에 간 것을 후회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사하라 사막은 어떨까?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을 바라보는 기분을 라바 하디드 대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무한 앞에 있다는 느낌이다. 정말자신의 존재가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일상에서 아득하게 멀어지는 느 낌, 고요…. 저절로 사색에 빠져든다. 그런 사막을 경험한 사람은 사소한 일에도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게 된다.”아름다운 자연과 유적을 간직한 알제리는 한동안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지만 1990년대 들어 세계 각국과 교류하며 현대 산업 인프라를 빠르게 구축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매년 5% 이상의 경제성장을 기록하며 아랍 세계의 역동적 경제 흐름에 한몫하고 있다. 보석은 모든 이가 만질 수 있을 때보다 소수에게만 알려졌을 때 더욱 그 가치가 돋보인다. 알제리는 이미 알려진 것보다 앞으로 알게 될 부분이 훨씬 많기에 더욱빛나는 아랍・아프리카의 보석이다.
무스타파 카마리 대사는 대학에서 저널리즘과 역사, 지리학을 공부했다. 1975년부터 2003년까지 튀니지의 유력 일간지 <르 탕스Le Temps>와 프레스 그룹 <다 에사바Dar Essabah>에서 기자로 일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는 튀니지 국영방송사 ERTT의 사장직을 지냈다. 아랍어,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하며 2007년 12월에 주한 튀니지 대사로 부임했다.
세계 1위의 관광지, 튀니지에 있다
주한 튀니지 대사 무스타파 카마리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북쪽 끝에 위치한 튀니지는 그리스나 스페인 못지않은 세계적 휴양지다. 무려 1300km 이상 이어지는 해안선을 품고 있어 마그레브 국가 중 면적은 가장 좁지만 풍광은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양한 문화와 문명, 색깔이 모자이크처럼 어우러지는 풍취도 매혹적이다. 튀니지를 가리켜 ‘머리는 유럽에, 가슴은 아랍에, 발은 아프리카에’라고 말하는 것은 튀니지가 지중해 국가이기도 하고, 아랍 국가이기도 하며, 동시에 원색의 아프리카이기도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튀니지의 북쪽과 동쪽은 지중해를 향해 열려 있어 특히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제르바 섬이 유명하다. 아름다운 해변 30km를 따라 최고급 리조트와 호텔이 보석처럼 박혀 있는 이곳은 프랑스 작가인 구스타브 플로베르가 “제르바를 두고 죽기가 억울하다”라고 했을 만큼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다. 무스타파 카마리Mustapha Khammari는 말한다. “한 해에 튀니지를 찾는 관광객이 약 700만 명이다. 그중에서도 제르바는 최고의 여행지로 명성이 높다. 세계적 여행 에이전시인 ‘트립 어드바이저Trip Adviser’가 2008 세계 최고의 여행지로 이곳을 택했을 정도다. 또한 지중해를 끼고 있는 연안 마을에서는 사하라 사막의 입구에 쉽게 닿을 수 있다. 튀니지 쪽의 사막은 아름다운 오아시스로 더욱 눈부시다. 튀니지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각광받는 스파&의료 휴양지이기도 하다. 진흙 마사지와 바닷물 요법으로 유명한 탈라소테라피Thalassotherapy 센터가 35개나 된다.”
(왼쪽) 구시가지를 뜻하는 메디나에서는 채색 도기를 어디에서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갤랠라는 채색 도기 산지로도 유명하다. (오른쪽) 원색의 아프리카이기도, 눈부신 물빛의 지중해 국가이기도 한 튀니지의 풍광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세계적 관광 국가인 북아프리카의 아랍 국가는 여성 인권 부문에서도 탁월한 면을 보인다. 튀니지의 초대 대통령 부르기바는 정권을 잡음과 동시에 일부다처제와 여성 히잡 착용 의무를 폐지했다. 벌써 수십 년 전이다. “튀니지에서 여성은 모든 부분에서 남성과 동등하다. 6세가 되는 99% 이상의 소녀가 학교에 가고, 국가 전체를 통틀어 여학생의 비율이 59%를 넘는다. 국회의원 비율이 22.7%에 이르며 법조계와 의학계에서도 여성 비율이 각각 29%와 42%를 차지한다. 저널리스트도 34%가 여성이다.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는 것은 튀니지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히잡을 쓰는 것도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할 뿐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 오히려 ‘여성 상위’로까지 보이는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튀니지의 도시는 아랍 국가가 아닌 파리 또는 뉴욕 같은 메트로 폴리탄으로 비친다.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의 애칭은 ‘북아프리카의 파리’다. 지금 튀니지에는 각종 매머드급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다. 대부분 휴양 시설을 짓는 것으로 총 500억 달러를 투입한다. ‘센추리 시티Century City’와 ‘메디터레이니언 게이트Mediterranean Gate’가 대표적이며 또 하나의 ‘파라다이스’에는 최고급 호텔과 리조트, 각종 휴양 시설이 들어선다. 무스타파 카마리 대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관광 대국 튀니지의 위상을 세계에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게 할 것이다. 백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창출될 것이며, 경제성장률은 연 6%를 상회할 것이라 기대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비단 튀니지만의 것이 아니다. 지중해 유역, 걸프 만, 마그레브 지역, 아프리카와 아시아, ‘안전한 천국’을 찾는 수많은 투자자가 다같이 참여할 것이다.” 그는 덧붙인다. “근면하고 따뜻한 사람들, 삶에 대한 열정,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 등 튀니지와 한국은 많은 점이 비슷하다. 심지어 우리나라엔 깍두기와 거의 똑같은 토르시란 음식도 있다. 서로에 대해 더 많은 흥미를 갖는다면 양국 모두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것이다.”
THE LUXURY MAP OF ARAB 세계적인 자연 풍광과 문화 유산이 곳곳에 가득한 아랍. 최근에는 수백 억 달러의 비용이 투입된 거대한 프로젝트까지 경쟁하듯 발표하면서 세계의 문화 지도를 연일 다시 그리고 있다. 새로운 문화 제국으로 떠오른 아랍의 문화 아이콘을 한데 모았다. 글 정성갑 기자 | 일러스트 최익견
1 모로코 페스 모로코 페스는 세계 최초의 신학대학과 정신병원이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던 도시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중세 방식 그대로 가죽을 염색한다. 가죽 제품 외에도 도자기, 모자이크, 카펫 등 많은 제품을 수공예로 제작해 수공예 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2 알제리 타실리 나제르 세계 최대 사막인 사하라 사막에 펼쳐지는 불가사의한 암벽화다. 높이 20m의 바위산을 지나면 약 2만 여 점의 암벽화가 그려진 기암절벽과 마주한다. 춤추는 사람들, 동물 등의 그림이 기호처럼 새겨져 있는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 미술관’이다. 3 레바논 안자르 유적 장 누벨이 랜드마크를 짓는 베이루트에서 56km거리에 있다. 100년 넘게 번성한 우마이야 왕조가 8세기경 세운 도시로 아랍 고대 도시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4 이집트 피라미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지상 최고의 미스터리 건축물이다. 하나당 무게가 2.5톤에 이르는 돌 250만 개로 축조한 이 고대의 ‘성’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등 수많은 건축물의 영감이 되었다. 5 이라크 하트라 기원전 312~364년경에 세워진 고대 원형 도시로 아랍식 건축 양식과 태양신을 섬기던 신전 등이 있어 문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6 요르단 페트라 아랍계의 유목민인 나바테아인이 해발 950m 산악 지대에 건설한 암벽 도시. 20~30m의 바위산이 도시 전체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며 뛰어난 색감과 기술로 세운 건축물과 수로가 남아 있어 미술가나 건축가 등이 영감을 얻기 위해 많이 찾는다. 7 사우디아라비아 알 하람 그랜드 사원 사우디아라비아가 자랑하는 세계적 성지다. 특히 라마단(이슬람력에서 9월은 천사 가브리엘이 무함마드에게 <코란>을 가르친 신성한 달로 일출에서 일몰까지 의무적으로 금식하고 날마다 다섯 번의 기도를 드린다)이 끝나는 날엔 수천만 명의 이슬람 교도가 한꺼번에 모여 들어 최고 사원의 위용을 뽐낸다. 8 예멘 시밤 고대 성곽 도시 400여 채의 흙집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사막의 맨해튼 또는 인류 최초의 고층 빌딩 숲으로 불린다. 모든 집은 철근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흙으로 만든 벽돌만을 사용해 지었다. 9 오만 바흐라 요새 벽돌과 돌로 쌓은 성벽과 탑이 인상적인 곳으로 고대 아랍 요새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준다. 곳곳이 허물어지고 붕괴되었지만 한 번도 개조를 하지 않은 덕에 연구 가치가 높다.
1 튀니지 메디터레이니언 게이트 지중해 연안에 호화 리조트와 호텔, 빌딩, 레스토랑이 들어선 휴양지 하나를 통째로 개발한다. 두바이 회사인 두바이 홀딩스의 자회사 사마 두바이와 튀니지 정부가 함께 추진한다. 2 레바논 더 랜드마크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이 레바논 베이루트 중심부에 짓고 있는 주상 복합 건물이다. 도시 안의 도시를 컨셉트로 빌딩 안에는 호텔, 아파트, 쇼핑 센터, 피트니스 센터 등이 들어선다. 3 이집트 수중 박물관 지난 9월 발표한 최신 프로젝트다. 알렉산드리아 만과 인근의 아부키르 만 등에서 발견한 고대 유물을 전시하기 위한 최초의 수중 박물관으로 고대 7개 불가사의 중 하나인 파로스 등대의 유물, 4세기 지진으로 수장된 클레오파트라 궁전에 있던 보물, 1990년대 고고학 수중 탐사팀이 발견한 수천 점의 유적을 전시한다. ● 사우디아라비아 더 마일 하이 타워 현재 건설 계획 중인 세계 초고층 빌딩 프로젝트 중 가장 높다. 무려 1620m! 곧 세계 최고층 빌딩으로 등극할 버즈 두바이보다도 2배나 높다. ● 쿠웨이트 무바라크 타워 높이 1001m의 빌딩으로 쿠웨이트 시티에 올라간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 중인 마일 하이 타워, 두바이에서 진행 중인 알버즈(1050m)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빌딩이다.
4 두바이 해저 호텔 20m 깊이의 푸른 바다에 두둥실 떠 있는 세계 최초의 해저 호텔이다. 비행기 창문에 사용하는, 수십 센티미터 두께의 특수 강화 아크릴을 사용해 객실 통유리 밖으로 바다 속 풍경을 볼 수 있다. 낮과 밤을 지상에서와 똑같이 느낄 수 있는 인공 기상 조절 시스템도 갖췄다. 하룻밤 숙박료가 1인당 800만 원에 이를 전망이다. 5 두바이 타워 크리스털로 만든 거대한 황소 뿔 4개가 하늘을 향해 뻗쳐 올라간 형상이다. 비틀리고 휘어지며 곡선 미학의 절정을 보여준다. 57~94층의 4개 동으로 구성되었다.
6 아부다비 사디얏 문화 프로젝트 아부다비가 무려 270억 달러를 쏟아 붓는 초대형 문화 프로젝트다. 자하 하디드는 공연 예술 센터를, 안도 다다오는 해양 박물관을, 장 누벨은 루브르 박물관을, 프랭크 게리는 구겐하임 현대 미술관을 짓는다. 모두 혁신적이고 미래적 디자인으로 오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시간 차를 두고 완공된다.
7 버즈 두바이 2009년 말이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약 800m 높이로 빌딩 안에는 최고급 스파, 호텔, 오피스 등이 들어선다. 8 카타르 두바이 타워 in 도하 카타르 도하에 올라가는 초고층 빌딩으로 439m의 높이를 자랑한다. 2009년 완공 예정이다. 9 카타르 더 펄 프로젝트 두바이 ‘팜 아일랜드’와 마찬가지로 바다 한가운데 각종 휴양 시설이 들어선 인공 섬을 건립하는 프로젝트다. 여의도 면적의 절반 크기로, 3개의 메인 섬과 8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다. 이미지 제공 Ateliers Jean Nouvel, Sama Dubai, Jacques Rougerie Architect | 이 지도는 미국 텍사스 대학 도서관의 최근 자료를 기초로 그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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