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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애~~ 삼척핵발전소
향린교회는 세상의 아픈 곳을 찾아 갑니다.
2012년 4월 21일(토욜)은 강원도 삼척을 찾았습니다.
종일토록 봄비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삼척의 반핵촛불집회는 매주 수요일 저녁에 하기 때문에 함께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삼척의 핵발전소 반대 시민단체의 이끔이의 안내를 받아
현장을 돌아보고 연대의 뜻을 전하려 먼 길을 나섰습니다.
생태기행도 하구요,
[우리 여행을 함께한 버스]
동해를 끼고 있는 삼척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동쪽 강원도를 영동(嶺東), 또는 관동(關東)이라 부릅니다.
중심 도시는 강릉(江陵)이죠.
강릉엔 관동대학교도 있고 영동대학도 있답니다.
삼척(三陟)은 강원도의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면 강릉 남쪽에 있는 고장입니다.
삼척에서 더 남쪽으로 가면 경상북도 울진(蔚珍)입니다.
울진도 해방 후 까지도 강원도 땅이었다가 지금은 경상북도가 되었습니다.
대게의 명성도 영덕에 밀린 울진은 핵발전소가 지역의 이미지로 떠오르는 고장입니다.
땅이름은 변합니다.
삼척은 실직(悉直)이라 불렸던 때도 있었습니다.
신라가 반도를 차지한 다음에야 삼척이라 불렀습니다.
고려시대엔 척주(陟州)라고 부르다가 조선에 와서 다시 삼척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삼척도호부였으니 큰 고을이었다는 얘기죠.
허균, 허목 같은 사람이 삼척부사를 지낸 때도 있죠.
아는 척, 있는 척, 잘난 척.
인간은 물론 공룡도 살기 이전인 고생대(5억7천만년전~2억4천5백만년전)에 삼척은 얕은 바다였습니다.
퇴적이 계속되어 늪이 되었다가 지금은 육지가 된 땅입니다.
그 증거가 석회암과 무연탄이죠.
삼척의 돌들은 고생대의 퇴적암들이랍니다.
일제시대.....
이 땅에 근대 공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삼척의 석회암을 원료로 오노다시멘트 삼척공장이 세워졌죠. 지금의 동양시멘트입니다.
태백산 주변(태백시)과 오십천 계곡(삼척시 도계읍)에서 무연탄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오십천을 따라 기찻길이 놓였습니다.
해방 후,
사람들은 탄광으로 몰려왔습니다.
무연탄은 기차를 이용해 묵호항으로 운반되었습니다.
삼척은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군(郡)이 되었습니다.
강릉 북쪽 양양엔 철광산이 있었습니다.
철광을 삼척 북평으로 실어와 제철공업이 시작되었죠.
바다엔 정어리도 참 많이 잡혔습니다.
정어리 기름을 가공하는 공장이 정라진에 세워졌습니다.
정어리가 없어지자 공장도 문을 닫았습니다.
공장의 흔적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삼척은 공업도 광산도 사양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태백시가 삼척에서 분리된 데 이어 삼척의 북평읍과 강릉의 묵호읍이 합쳐 지금의 동해시(동해시)가 되었습니다.
삼척의 넓이는 더욱 줄었습니다.
아쉽게도 야당이 선거에서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동해·삼척 선거구입니다.
여기자 성추행으로 유명했던 인물이 무소속으로 나와도 당선시켜 주었습니다.
이승휴, 공양왕, 허목이 살던 땅
이승휴(李承休)는 고려 말 사람입니다.
관료로 잘 나갈 때도 있었지만 안되면 고향으로 돌아와야죠.
두타산 무릉계곡에서 풍류를 즐기기도 했고 삼척 관아의 파티가 있으면 죽서루(竹西樓)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겠죠.
천은사(天恩寺, 삼척시 미로면)에 틀어박혀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썼죠.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공양왕(1345~1394)......
모든 왕조의 마지막 왕이 그렇듯 그도 비운의 왕입니다.
이성계가 왕을 하라고 해서 45살의 나이에 왕이 되었습니다.
3년 뒤 나라도 내놓고 임금 자리도 내놓았습니다.
공양왕의 무덤은 두 곳에 있습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신동에 공양왕릉이 있습니다.
개성을 나온 공양왕 부부는 고양시 고봉산 자락에 숨어 지냈답니다.
먹을 것부터 걱정해야겠죠.
가까운 절에서 먹을 것은 몰래 주었나 봅니다.
그 절 때문에 식사동(食寺洞)이라는 땅이름이 생겼습니다.
삶의 슬픔을 이기지 못한 공양왕 부부는 연못에 빠져 죽었답니다.
주인의 죽음을 안 삽살개는 하염없이 짖어대고......
고양시의 공양왕릉 앞엔 돌로 만든 삽살개가 세월을 지키고 있습니다.
또 다른 얘기.
공양왕은 조선 태조의 조상이 살았던 삼척까지 숨어들었다네요.
왕이 사는 집이 궁입니다.
몰락한 왕이 허름한 집에 살아도 궁이죠.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宮村里)에도 공양왕릉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 진짜죠?
[추암 촛대바위]
텔리비전 방송의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애국가가 나오죠.
'동해물과 백두산이....'
그 가사와 함께 나오는 배경이 바로 이 곳, 추암의 일출입니다.
해안선에서 육지가 바다로 나온 곳이 곶(串)이죠.
반대로 바다가 육지로 들어간 곳이 만(灣)입니다.
파도의 힘이 강한 곶은 침식지형이 나타나고 약한 만은 퇴적지형이 나타납니다.
추암(湫岩)은 곶에 해당합니다.
불순물이 많은 석회암이 녹고 깍여 절벽을 이루고 기이하게도 촛대모양의 바위로 남았습니다.
지형학의 용어로 절벽은 해식애(海蝕崖, sea cliff), 시스택(sea stack)이라 합니다.
옛 사람들은 낮은 이 산 위에 정자를 세우고 '능파대(凌波臺)'라고 이름을 붙였죠.
'파도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정자'라는 뜻이겠죠.
얼마전 텔리비젼 '1박2일'에서 엄태웅이 이곳 일출 사진 찍으려다 실패한 곳이죠.
[시스택]
파도의 끊임없는 침식으로 단단한 부분만 남아 있습니다.
바닷물의 높이가 변하지 않은 채 계속 파도가 친다면
언젠가는 이 시스택도 없어지고 말겠죠.
봄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날,
바닷새가 날지도 못하고 시스택 위에 앉아 있습니다.
[추암의 암석 해변]
파도의 끊임없는 침식은 조그마한 야산을 침식해 흙을 없애버렸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모양의 암석만 남겨 놓았습니다.
불순물이 많은 석회암이었습니다.
절리(joint)를 따라 더 패인 암석들입니다.
[아픈 삶의 모습]
점심을 먹으러 정라진으로 갔습니다.
정라진은 삼척도호부의 외항이었습니다.
정라진 항구의 어부와 삼척공업단지의 노동자들이 산기슭에 몸을 누일 집을 지었죠.
삶이 나아지지 못한 이들이 아직도 낡은 집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핵발전소 세우려는 꼼수가......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
핵은 위험하다고 느끼지만 원자력은 그런 느낌이 적죠?
언어가 주는 묘한 뉘앙스입니다.
머리는 괜찮지만 대가리는 기분 나쁘게 들리는 것처럼요.
일본은 1945년에 두 개의 핵폭탄을 경험했죠.
2011년엔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죠.
결과는 둘 다 참혹했습니다.
이웃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시대인 1971년에 부산과 울산사이의 바닷가 ‘고리’에 핵발전소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1978년엔 본격적인 상업 발전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전남 영광에 6기, 부산 고리에 5기, 경북 경주(월성)에 4기, 경북 울진에 6기, 모두 21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입니다.
그리고 고리(신고리)에 4기, 월성에 2기, 울진에 2기가 건설 중입니다.
신고리와 울진에 모두 4기를 더 세우려는 예정도 하고 있습니다.
2007년 기준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36%가 핵발전입니다.
공장, 빌딩, 가정에서 절약의 노력 없인 대안도 찾기 힘듭니다.
영광, 고리, 경주, 울진에 더 이상 핵발전소를 세울 곳이 없어지자 정부는 새로운 땅을 찾고 있습니다.
그 대상지가 경상북도 영덕과 강원도 삼척입니다.
경북 영덕에는 이번 총선에서 녹색당 후보가 열심히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영덕, 삼척 모두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삼척 시민들 중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비율이 더 높답니다.
그러니 국회의원, 시장이 문제겠지요. 마음이 무겁습니다.
삼척 시민들이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촛불집회'는 매주 수요일 저녁에 가진다고 합니다.
수요일 저녁의 집회는 서울에 사는 우리가 참여하기 힘듭니다.
토요일에 삼척을 찾은 이유는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삼척시민에게 연대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리려 함이죠.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 '원전백지화 기념비' 앞에서]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
정부가 핵발전소를 세우려 하는 장소입니다.
1999년. 삼척시민단체의 끈덕진 반대로 정부가 백지화를 선언했습니다.
시민들은 그걸 기념해 기념비까지 세웠죠.
그런데 정부가 이 약속을 뒤집었습니다.
울진핵발전소의 넓이는 신울진까지 합쳐서 100만평입니다.
삼척핵발전소의 부지는 울진의 두 배인 200만평이랍니다.
20기의 핵발전소가 들어설 수 있는 넓이죠.
덕산리 전체를 바라 볼 수 있는 곳도 마땅하지 않고 비까지 내려 핵발전소 예정부지를 보지 못함이 아쉽습니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함이 아쉽기만 합니다.
삼척 시민들과 연대의 힘도 느껴보고
핵발전소 예정부지 전체를 보고 왔으면 바랄 것이 없겠죠.
이곳은 미래의 강정마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정부와 시민단체의 충돌이 예상되는 곳입니다.
[황무지가 되어버린 삼척의 소방방재시설 유치 계획 터]
삼척시장은 근덕면 부남리, 광태리 일대에 대규모 소방방재센터를 유치하기로 했나봅니다.
시설의 인프라는 삼척시가 해야죠.
그래서 1,000억원을 들여 산을 깍고 부지를 만들었습니다.
이곳에 올 기업을 신청 받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삼척시는 1,000억원의 빚과 황무지 같은 대책없는 땅만 남았습니다.
안내한 시민단체의 말에 따르면 이 빚을 갚으려고 핵발전소 부지를 늘렸다고 합니다.
울진 핵발전소 부지가 100만평인데 삼척 핵발전소 예정부지는 그래서 200만평이 되었답니다.
조만간 지자체의 파산도 걱정입니다.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 줄게 무얼까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훼손해놓은 자연과 부채 뿐일겁니다.
우린 부끄러운 선조가 될 겁니다.
[준경묘 가는 산길]
솔숲이 좋은 준경묘
이양무는 누구일까요?
‘이양무가 이안사(李安社, 穆祖)를 낳고,
이안사는 이행리(李行里, 翼祖)를 낳고,
이행리는 이춘(李椿, 度祖)를 낳고,
이춘은 이자춘(李子春, 1315 ~1361, 桓祖)를 낳고,
이자춘이 이성계(李成桂, 1335~1408, 太祖)를 낳았습니다.
이안사의 얘기 한 번 들어 보실래요?
그는 고향 전라도 전주에서 좀 놀았죠.
20살의 청년 이안사는 관직이 낮은 별감이었답니다.
그런데......
예쁜 기생이 문제였죠.
요즘으로 말하면 한참 높은 상관의 애인에게 들이댄 거죠.
이안사가 살 길은?
부모님을 모시고 야반도주였죠.
170명이 따랐다네요.
전주를 도망쳐 새로이 정착한 곳이 삼척이었습니다.
삼척에서 이안사의 부모(이양무 부부)는 죽었습니다.
무덤이 있었겠죠.
그런데 운명은 모릅니다.
이안사는 삼척에서 살 줄 알았는데 바로 그 사람이 척주(삼척)의 부사로 온 거죠.
이안사는 함경도의 함흥으로 도망쳤습니다.
이안사의 후손이 이성계입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니 이안사는 죽어서 왕(목조)이 되었습니다.
해동 육룡이 나라샤......
육룡은 목조, 이조, 도조, 환조, 태조, 태종 임금이죠.
이안사는 조선의 첫 용(龍)이 되었죠.
그러나 이안사의 아버지 이양무는 이름도 무덤도 잊혀졌습니다.
조선 후기에 고종 임금은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가 되었습니다.
황제는 더 조상까지 찾아야죠.
그래서 이양무의 무덤을 찾아 준경묘가 되었고 이양무 부인의 무덤은 영경묘가 되었습니다.
5백여년이 지나 찾았다는 조상의 무덤입니다.
장소의 정확성보다 무덤의 상징성이겠죠.
준경묘에는 솔숲을 보러 갑니다.
피톤치드의 폭풍을 느껴보세요.
보은의 ‘정이품송’이 나이가 들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후손을 남기는 일이 급해졌죠.
‘씨받이 콘테스 트’에 당선된 소나무가 준경묘의 소나무 중 한 그루입니다.
그 팔등신 소나무도 봐야죠.
길옆에 있는 게 아니라서 30분 정도 솔숲을 걸어야 합니다.
[준경묘 솔숲]
금강송의 군락입니다.
사진의 아랫부분에 사각형의 보호 시설이 되어 있는 소나무가 정이품송 신부소나무입니다.
나이는 100살이 넘었답니다.
[준경묘]
고종 임금 때에서야 되살린 무덤입니다.
아들(이안사)은 죽어 임금으로 높여주었지만 이양무는 아닙니다.
그래서 릉이 되지 못하고 묘가 되었죠.
이안사의 무덤은 함흥에 있습니다.
죽어서 임금으로 높여졌기에 덕릉(德陵)이란 이름이 붙여졌답니다.
우리가 준경묘를 찾은 이유는 이양무의 얘기보다 솔숲을 보러 온겁니다.
이 시원한 솔숲의 눈맛이죠.
[삼척핵발전소 반대 시민단체 관련자 분입니다.]
첫댓글 배선생님, 비오는 날 고생 많으셨습니다. 핵발전 반대하기 위하여 먼 길 나들이 가셨군요. 햇빛발전소 연수하는데에서 향린교회에서 오신 분(이름 기억은 없습니다. 얼굴만 떠오르는데, 그 분이 배선생님 말씀을 하시더군요.)이 향린교회 신도들이 삼척 핵발전소 현장 방문을 가셨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햇빛발전소 연수를 언제 하셨죠? 누굴까??? 향린교회는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에 있는 들녘교회에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했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서요. 나도 아주 쬐끔 투자했죠. 이익금 중 일부는 북한 어린이에게 돌아가고 일부는 들녘교회에, 일부눈 투자자에게 배당해 준답니다.
향린은 지금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에 전력을 쏟고 있죠. 재능교육 노동자를 위한 집회도 매주 목요일 하고 있죠. 핵발전소 반대에도 온 힘을 다하고 있는데...... 크지 않은 교회가 이 사회의 모든 문제에 나서려니 힘이 딸린답니다.
배기봉선생님의 자상한 안내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느낌입니다.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조만간 삼척 투어를 진행해야만 할 것 같은 예감! ^^
5월 26일 출발하는 여행 말인가요?
빙고! 5월 26일에 내성천-울진-삼척으로 1박2일 행사를 추진하는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배선생님께서 동행하시면 금상첨화이겠지요.^^
삼척 반핵 기행과 준경묘 생태 기행문이 참 좋습니다.
향린교회는 참으로 어마어마한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교회와 성당에서 단 10%라도 현실과 환경의 문제에 동참하고 힘을 모아주면 참 좋을 것을...
안타깝네요. 그만큼 향린이 우뚝 솟아 거룩한 느낌이 듭니다.
좀 지친듯 하신데, 힘 내시고 미래를 낙관하시기 바랍니다.
결국은 우리가 마음먹은대로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