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자본주의의 파괴 충동을 끝낼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무엇인가?
자본주의는 사적인 자본가 대신에 국가 관료들이 운영한다고 해서 또는 그 자신을 녹색으로 칠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자본은 이윤은 실현하기 위해 임노동의 착취와 판매를 위한 생산에 기반을 둔 전 세계적인 계급 관계이다. 그 상품 판로의 끊임없는 모색으로 인해 세계 시장의 지배를 놓고 민족 국가 사이에서 가차 없는 경쟁이 출현한다. 그리고 이 경쟁은 모든 민족 국가들이 팽창하거나 사멸할 수밖에 없는 것을 요구한다. 지구의 맨 끝 가장자리까지 침투하고 무한히 성장하는 것을 더는 추구하지 않는 자본주의란 존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는 모든 이전의 기후 정상회담과 규약의 처참한 실패가 이미 보여주듯이, 환경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적인 규모로 협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다.
자연 파괴의 뿌리에는 인간의 필요와 무관한 이윤 사냥이 놓여 있고 이것은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래 진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역사를 갖고 있고, 거의 백 년 전에 진보적인 요소이기를 멈추고 심오한 역사적 위기로 돌입했다. 그것은 한계 없는 성장을 강제당하는 경제적 기반으로서 영구적인 경향의 과잉 생산의 위기를 창출하는 쇠퇴하는 문명이다. 세계대전과 20세기의 ‘냉전’이 보여 주었듯이, 이러한 쇠락 과정은 자본의 파괴 충동을 오직 가속할 수 있을 뿐이다. 전 세계적인 자연 대참살이 분명해지기 전에 이미 자본주의는 그것의 끊임없는 제국주의적 충돌과 전쟁을 통해 인류를 절멸하려 위협하고 있었고,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파키스탄과 인도까지 지구 전역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러한 충돌은 점점 줄어드는 자원을 놓고 민족 국가들이 경쟁하면서 환경 위기에 의해 오직 더 첨예화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 점점 더 악몽 같은 무기의 생산, 그리고 특히 그 사용을 놓고 벌이는 경주는 지구를 더 오염시킬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황폐화의 사악한 조합은 이미 지구의 일부를 불모지로 만들어 수백만 명을 난민으로 내몰고 있다.
코뮤니즘의 필요성과 가능성
현 체제는 경제 위기나 환경 위기, 전쟁 충동을 극복할 수 없다. 그래서, 현재의 행진과 항의를 조직하는 모든 그룹이 요구하는 것 같이 전 세계의 정부들이 ‘힘을 모아 함께’ 지구를 구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인류를 위한 유일한 희망은 현 체제를 파괴하고 새로운 사회 형태를 창조하는 데 있다. 민족 국가가 없고 노동의 착취가 없으며 시장과 돈이 존재하지 않는, 전 세계적 규모로 그리고 인간의 필요 충족을 유일한 동기로 하여 모든 생산이 계획되는 그런 사회, 이것을 우리는 코뮤니즘이라 부른다. 이러한 사회는 중국이나 북한 또는 쿠바나 이전의 소련과 같이 국가가 운영하는 자본주의 형태와 어떤 공통점도 갖지 않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진정한 코뮤니즘은 인류와 그 이외의 자연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확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기초이다. 그리고 이것은 공상이 아니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이미, 과학과 기술의 발전 그리고 모든 생산 활동의 상호 의존성과 같은 물질적인 토대를 세웠기 때문에 가능하다. 전자, 즉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현 체제 아래에서의 왜곡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고 후자, 즉 생산 활동의 상호 의존성은 자본주의의 경쟁과 국가 간의 적대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그러나 특히, 잃을 것이라고는 족쇄밖에 없는 계급, 착취에 저항하고 그것을 극복하는데 이해관계를 갖는 계급인 국제 노동자계급, 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를 형성하는데 자본주의가 기반을 두기 때문에 코뮤니즘은 가능하다. 이 계급은 작업장에서 착취당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노동 시장에서 자리를 찾기 위해 공부하는 이들과 자본에 의해 일터에서 내쫓아 쓰레기더미에 내던져진 이들도 포함한다.
시민들의 항의냐 노동자의 투쟁이냐?
그래서 바로 특히 여기에서, 기후 행진 뒤에 놓인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이 체제에 저항해 투쟁할 수단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기여한다. 그 이데올로기는 보기를 들어서, ‘더 나이 든 세대’가 너무 많이 소비하는 데 익숙해져서 세계가 엉망이 되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러나 세대 ‘일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사회가 두 개의 주요 계급, 즉 모든 권력을 갖고 있는 자본가 계급, 부르주아지라는 한 계급과 심지어는 가장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모든 결정 권력을 박탈당한 채 착취당하는 다른 훨씬 더 큰 계급으로 분할되어 있는데 문제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자본의 비인격적인 메커니즘이 우리를 현재의 궁지로 몰아넣었지, 개인의 사적인 행위나 이전 세대의 탐욕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역량으로서의 ‘민중’이나 ‘시민’에 관한 모든 논의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대립적인 계급 이해관계를 덮어버리는 의미 없는 범주에 불과하다. 한 계급의 다른 한 계급에 의한 착취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체제로부터의 탈출은 계급투쟁의 부활을 통해서 가능할 뿐이고, 그 시작은 경제 위기에 대한 반응으로, 그리고 환경을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점점 더 정당화하면서 모든 정부와 모든 자본가들이 노동자의 생활 조건과 노동 조건에 부과하는 공격에 대항해 노동자들이 자신의 가장 기본적인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것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이야말로 노동자계급은 이미 멸종한 종이라고 우리에게 말하는 모든 거짓말에 대항해 노동자계급이 그 자체의 존재감을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초이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경제 위기와 전쟁과 생태계 대재앙 사이의 연관을 발견하고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전 세계적인 혁명뿐임을 알아채고 경제적 정치적 차원을 융합하는 계급투쟁의 유일한 기초이다.
제1차 대전 발발 즈음 수십 만 명이 평화 시위에 참여했다. 그들은 평화로운 자본주의가 가능하다는 환상을 유포한 ‘민주주의적’ 지배계급에 의해 고무되었다. 오늘날은 녹색 자본주의가 가능하다는 환상이 널리 유포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선량한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평화주의는 러시아혁명과 러시아혁명이 지배계급을 강제해서 전쟁이 재빨리 종결되도록 했던 것에서 증명된 것처럼 오직 계급투쟁만이 전쟁을 진정으로 반대할 수 있음을 은폐한다. 평화주의는 전쟁을 결코 중단시킨 적이 없다. 그리고 현재의 생태주의 캠페인은 기후 대재앙에 대해 잘못된 해답을 유포하기에 그 진정한 해결에 걸림돌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2019년 8월 28일
국제코뮤니스트흐름
카페 게시글
★코뮤니스트★
[코뮤니스트 10호] 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자본주의의 파괴 충동을 끝낼 수 있다
국제주의자
추천 0
조회 161
19.09.06 13:27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