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는 잠자코 밥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밥은 반도 먹지 않고, 상을 물려 버렸다.
이튿날 성기가 책전에 있으려니까, 그 체장수 딸이 그의 점심을 이고 왔다.
집에서 장터까지래야 소리 지르면 들릴 만한 거리였지만,
그래도 전날 늘 이고 다니던 "상돌엄마"가 있을 터인데
이렇게 벌써 처녀티가 나는 남의 큰애기더러 이런 사환을 시켜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 쪽에서는 그러한 빛도 없이,
그 꽃송이같이 화안한 두 눈에 웃음까지 담은 채, 그의 앞에 밥함지를 공손스레 놓고는,
떡과 엿과 참외들을 팔고 있는 음식전 쪽으로 곧장 눈을 팔고 있었다.
"상돌엄만 어디 갔는듸?"
성기는 계연의 그 아리따운 두 눈에서 흥건한 즐거움을 가슴으로 깨달으며,
그러나 고개는 엉뚱한 방향으로 돌린 채, 차라리 거칠은 음성으로 이렇게 물었다.
"손님이 마루에 가뜩 찼는듸 상돌엄마가 혼자사 바삐 서두닝께
어머니가 지더러 갖고 가라 했어요."
그동안 거의 입을 열어 말하는 일이 없었던 계연은,
성기가 묻는 말에, 의외로 생경한 전라도 쪽 토음(土音)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 가냘프고 갸름한 어깨와 목하며,
어디서 그렇게 힘차고 괄괄한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줌이나 될 듯한 가느다란 허리와 호리호리한 몸매에 비하여
발달된 팔다리와 토실토실한 두 손등과 조그맣게 도톰한 입술을 가진 탓인지도 몰랐다.
"계연아, 오빠 세숫물 놔 드려라."
이튿날 아침에도 옥화는 상돌엄마를 부엌에 둔 채 역시 계연에게 성기의 시중을 들게 하였다.
세숫물을 놓는 일뿐 아니라 숭늉 그릇을 들고 다니는 것이나 밥상을 차려 오는 것이나
수건을 찾아 주는 것이나 성기에 따른 시중은 모조리 그녀로 하여금 들게 하였다.
그리고는,
"아이가 맘이 컴컴치 않고, 인정이 있고, 얄미운 데가 없어."
옥화는 자랑 삼아 이런 말도 하였다.
"저의 아버지는 웬일인지 반 억지 비슷하게 거저 곧장 나만 믿겠다고,
아주 양딸처럼 나한테다 맡기구 싶은 눈치더라만……"
옥화는 잠깐 말을 끊어서 성기의 낯빛을 살피고 나서 다시,
"그래 너한테도 말을 들어 봐야겠고 해서 거저 대강 들을 만하고 있었잖냐……
언제 한번 데리고 가서 칠불(七佛) 구경이나 시켜 줘라."
하는 것이, 흡사 성기의 동의를 구하는 모양 같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서 옥화는 계연의 말을 옮겨,
구례 있는 저의 집이래야 구례 읍에서 외따로 떨어진 무슨 산기슭 밑에
이웃도 없이 있는 오막살인가 보더라고도 하였다.
"그럼 살림은 어쩌고 나왔을까?"
"살림이래야 그까진 거 머 방문에 자물쇠 채워 두었으면 그만 아냐,
허지만 그보다도 나그넷길에 데리고 나선 계연이가 걱정이지."
이러한 옥화의 말투로 보아서는 체장수 영감이 화갯골에서 나오는 대로
계연을 아주 양딸로 정해 둘 생각인 듯이도 보였다.
다만 성기가 꺼릴까 보아 이것만을 저어하는 눈치 같았다.
지금까지 몇번이나 옥화는 성기더러 장가를 들라고 권했으나 그는 응치 않았고,
집에 술 파는 색시를 몇 차례나 두어도 보았지만 색시쪽에서 간혹 성기에게 말썽을 내인 적은 있어도
성기가 색시에게 그러한 마음을 두는 일은 한번도 있은 적이 없어, 이러한 일들로 해서,
이번에도 옥화는 그녀로 하여금 성기의 미움이나 받지 않게 할 양으로
그녀의 좋은 점만 이야기하는 듯한 눈치 같기도 하였다.
아랫집 실과 가게에서 성기가 짚신 한 컬레를 사들고 오려니까
옥화는 비죽이 웃는 얼굴로 막걸리 한 사발을 그에게 떠 주며,
"오늘 날씨가 너무 덥잖냐?"
고 하였다.
술 거를 때 누구에게나 맛뵈기 떠 주기를 잘하는 옥화였다.
계연이는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계연아, 너도 빨리 나와, 목마를 텐데 미리 좀 마시고 가거라."
옥화는 방을 향해서도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항라 적삼에 가는 삼베 치마를 갈아입고 나오는 계연은 그 선연한 두 눈의
흰자위 검은자위로 인하여 물에 어리인 한 송이 연꽃이 떠오는 듯하였다.
"꼭 스무 해 전에 내가 입었던 거다."
옥화는 유감(有感)한 듯이 계연의 옷맵시를 살펴 주며 말했다.
"어제 꺼내서 품을 좀 주여 놨더니만 청승스리 맞는고나,
보기 보단 품을 여간 많이 입잖는다,
이앤…… 자, 얼른 마셔라, 오빠 있음 무슨 내외할 사이냐?"
그러자 계연은 웃는 얼굴로 술잔을 받아 들고 방으로 들어가 마시고 나오는 모양이었다.
성기는 먼저 수양 버드나무 밑에 와서 새 신발에 물을 축이었다.
계연이도 곧 뒤를 따라 나섰다.
어저께 성기가 칠불암(七佛庵)까지 책값 수금 관계로 좀 다녀올 일이 있다고 했더니,
옥화가 그러면 계연이도 며칠전부터 산나물을 캐러 간다고 벼르는 중이고,
또 칠불암 구경은 어차피 한번 시켜 주어야 할게고 하니,
이왕이면 좀 데리고 가잖겠느냐고 하였다.
성기는 가슴도 좀 뛰고, 그래서, 나물을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싫다고 했더니 너더러 누가 나물까지 캐라느냐고,
앞에서 길만 끌어 주면 되잖느냐고 우기어,
기승한 어머니에게 성기는 더 항변을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성기는 처음부터 큰길을 버리고,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수풀 속 산길을 돌아가기로 하였다.
원체가 지리산 밑이요, 또 나뭇길도 본디부터 똑똑히 나 있지 않는 곳이라,
어려서부터 자라난 고장이라곤 하지만 울울한 수풀 속에서
성기는 몇번이나 길을 잃은 채 해매곤 하였다.
쳐다보면 위로는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산봉우리요,
내려다보면 발아래는 바다같이 뿌우연 수풀뿐,
그 위에 흰 햇살만 물줄기처럼 내리 퍼붓고 있었다.
머루, 다래, 으름은 이제 겨우 파랗게 메아리 쳐 있고,
가지마다 새빨간 복분자(나무딸기), 오디(산뽕나무의 열매)는 오히려
철이 겨운 듯 한 머리 까맣게 먹물이 돌았다.
성기는 제 손으로 다듬은 퍼런 아가위나무 가지로 앞에서 칡덩굴을 헤쳐 가며 가고 있는데,
계연은 뒤에서, 두릅을 꺾는다, 딸기를 딴다, 하며 자꾸 혼자 처지곤 하였다.
"빨리 오잖고 뭘 하나?"
성기가 걸음을 멈추고 서서 나무라면 계연은 딸기를 따다 말고, 두릅을 꺾다 말고,
그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을 꼭 다물고는 뛰어오는 것인데,
한참만 가다 보면 또 뒤에 떨어지곤 하였다.
"아이고머니 어쩔꺼나!"
갑자기 뒤에서 계연이가 소리를 질렀다.
돌아다보니 떡갈나무 위에서, 가지에 치맛자락이 걸려 있다.
하필 떡갈나무에는 뭣하러 올라갔을 까고, 곁에 가 쳐다보니,
계연의 손이 닿을 만한 위치에 그 아래쪽 딸기나무 가지가 넘어와 있다.
딸기나무에는 가시가 있고 또 비탈에서 있어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그 딸기나무와 가지가 서로 얽힌 떡갈나무 쪽으로 올라간 모양이었다.
몸을 구부려 손으로 치맛자락을 벗기려면 간신히 잡고
서 있는 윗 가지에서 손을 놓아야 하겠고, 손을 놓았다가는 당장 나무에서 떨어질 형편이다.
나무 아래서 쳐다보니 활짝 걷어 올려진 베치다 속에,
정강마루까지를 채 가루지 못한 짤막한 베고의가 훤한 햇살을 받아
그 안의 뽀오얀 것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성기는 짚고 있던 생나무 지팡이로 치맛자락을 벗겨 주려 하였으나,
지팡이가 짧아서 그렇겠지만 제 자신도 모르게,
지팡이 끝은 계연의 그 발가스레하고 매초롬한 종아리만을 자꾸 건드리고 있었다.
"아이 싫어! 남게서 떨어진당게!"
계연은 소리를 질렀다.
게다가 마침 다람쥐란 놈까지 한 마리 다래 넌출 위로 타고 와서,
지금 막 계연이가 잡고 서 있는 떡갈나무 가지 위로 건너뛰려 하고 있다.
"아 곧 떨어진당게! 그 막대로 저 다램이나 때려줬음 쓰겠는듸."
계연은 배 아래를 거진 햇살에 훤히 드러내인 채 있으면서도
다래 넌출 위에서 이쪽을 건너다보고 그 요망스런 턱주가리를 쫑긋거리고 있는
다람쥐가 더 안타까운 모양으로 또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요놈의 다램이가……."
성기는 같은 나무 밑둥치에까지 올라가서야 겨우 계연의 치맛자락을 벗겨 주고,
그러고는 막대로 다시 조금 전에 다람쥐가 앉아 있던 다래 넌출도 한번 툭 쳤다.
이 소리에 놀랐는지 산비둘기 몇 마리가 -푸드득-하고 아래쪽 머루 넌출 위로 날아갔다.
"샘물이 있어야 쓰겄는듸."
계연은 치맛자락을 걷어 올려 이마의 땀을 씻으며 이렇게 말했다.
모롱이를 돌아 새로운 산줄기를 탈 때마다 연방 더 우악스런 멧부리요,
어두운 수풀을 지나 환하게 열린 하늘을 내다볼 때마다
바다같이 질펀한 골짜기에 차 있느니 머루, 다래 넌출이오, 딸기, 칡의 햇덩굴이다.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여기저기서 난장판으로 뻐꾸기들은 울고,
이따금씩 낄낄거리고 골을 건너 날아가는 꿩 울음소리마저
야지의 가을 벌레 소리 듣는 듯 신산을 더했다.
해는 거진 하늘 한가운데를 돌아 바야흐로 머리에 불을 끼얹고,
어두운 숲 그늘 속에는 해삼 같은 시꺼먼 달팽이들이 허연 진물을 토한 채 땅에 붙어 늘어졌다.
햇살이 따갑고, 땀이 흐르고, 목이 마를수록 성기들은
자꾸 넌출 속으로만 들짐승들처럼 파묻히었다.
나무딸기, 덤불 딸기, 산 복숭아, 아가위, 오디, 손에 닿는 대로 따서
연방 입에 가져가지만 입에 넣으면 눈 녹듯 녹아질 뿐, 떨적지근한 침을 삼키면 그만이었다.
간혹 이에 걸린다는 것이 아직 익지 않은 산 복숭아, 아가위 따위인데,
딸리 녹은 침물로는 그 쓰고 떫은 볼에까지 묻어졌다.
먹을수록 목이마른 딸기를 계연은 그 새파란 산복숭아서껀,
둥그런 칡잎으로 하나 가득 따서 성기에게 주었다.
성기는 두 손바닥 위에다 그것을 받아서는 고개를 수그려 물을 먹듯 입을 대어 먹었다.
먹고 난 칡잎은 아무렇게나 넌출 위로 던져 버린 채
칡넌출이 담뿍 감겨 있는 다래 덩굴 위에 비스듬히 등을 대이고 누웠다.
계연은 두 번째 또 칡잎의 것을 성기에게 주었다.
성기는 성가신 듯이 그냥 비스듬히 누운 채 그것을 그대로 입에 들이부어
한입 가득 물고는 나머지를 그냥 넌출 위로 던졌다.
그리고 그는 곧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세 번째 칡잎에다 딸 기알 머루 알을 골라 놓은 계연은 그러나
성기가 어느덧 잠이 들어 있음을 보자 아까 성기가 하듯 하여 이번엔 제가 먹어 치웠다.
"참 잘도 잔당게."
계연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자기도 다래 덩굴에 등을 대이고
비스듬히 드러누워 보았으나 곧 재채기가 났다.
목이 몹시 말랐다. 배도 고팠다.
갑자기 뻐꾸기 소리가 무서웠다.
"덩굴 속에는 샘물이 없는가?"
계연은 덩굴을 헤치고 한참 들어가다 문득 모과나무 가지에
이리저리 얽히고 주렁주렁 열린 으름 덩굴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익어 있음 쓰겄는듸."
계연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아직도 파아란 오이를 만지듯 딴딴하고
우들우들한 으름을 제일 큰 놈으로만 세 개를 골라 따 쥐었다.
그리하여 한나절 동안 무슨 열매든지 손에 닿는대로 마구 따 입에 넣곤 하던 버릇으로
부지중 입에 가져가 한 번 덥석 물어떼었더니
이내 비릿하고 떫직스레한 풀 같은 것이 입에 하나 가득 끼었다.
"아, 풋내 나!"
계연은 입안의 것을 뱉고 나서 성기 곁으로 갔다.
해는 벌써 점심때도 겨운 듯 갈증과 함께 시장기도 들었다.
"일어나 샘물 찾아 가장께."
계연은 성기의 어깨를 흔들었다.
성기는 눈을 떴다.
계연은 당황하여, 쥐고 있던 새파란 으름 두 개를 성기의 코끝에 내어 밀었다.
성기는 몸을 일으켜 그녀의 둥그스름한 어깨와 목덜미를 껴안았다.
그리고는 입술이 포개졌다.
그녀의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에서는 한나절 먹은 딸기, 오디, 산 복숭아,
으름들의 달짝지근한 풋내와 함께, 황토 흙을 찌는 듯한 향긋하고 고수한 고기(肉)냄새가 느껴졌다.
까악까악하고 난데없는 가마귀 한 마리가 그들의 머리 위로 울며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