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하몰과 세겜이 디나와 그의 아버지 야곱의 재물에 눈이 어두워 야곱의 아들들의 요구대로 지체하지 아니하고 함께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남자로 할례를 받게 합니다(20~24절).
‘성문’은 고대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공포하는 장소였기 때문에 그들은 성문으로 급하게 가서 공포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친목하고’(21절)는, 하몰 부자가 야곱 집안이 제시한 할례를 시행해야만 서로 ‘안전’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안전 논리로 주민들을 설득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들이 여기서 거주하며 매매하게 하고’는, 하몰 부자가 주민들에게, 이 땅과 함께 장사하면서 돌아다니게 하자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이는 하몰 부자가 세겜 성 주민들을 안전 논리에 이어 결제 논리로 설득하는 내용입니다. 즉 야곱 집안의 세겜 성 거주와 상업 교류는 자신들의 이해 관계로 계산해 볼 때 결코 손해보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큰 이득을 얻게 될 것이라고 설득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관계 형성을 위하여 저들의 조건에만 응하면 모든 것이 순탄하며 야곱과 아들들이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다고 하몰 부자는 주민들에게 말을 설득하며(22절) 이어서 23절에 ‘그렇게 하면’이라고 덧붙여 결론적 설명으로 “그러면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그들의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들의 말대로 하자 그러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리라”(23절)고 제시합니다.
인구에 비해 땅이 넓었던 고대 사회에 있어서 부동산의 가치보다 본문에 나오는 ‘가축’이나 ‘재화’같은 동산의 가치 비중이 더 컸었으므로 세겜은 이러한 것들을 주민들에게 최종적으로 언급한 것입니다. 세겜이 디나와 결혼하고자 하는 동기가 순수한 사랑만이 아니라 야곱의 경제력과 재물을 탐내고 그것을 빼앗으려는 의도도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세겜은 자신이 연모하는 디나를 취하고 그리고 그 백성들은 야곱의 재물에 탐이 났습니다.
그래서 하몰과 세겜은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남자로 모두 할례를 받게 하는데, 여기서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24절)는 장성한 자들로 싸움에 임할 수 있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자들이 모두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하몰과 세겜이 야곱의 아들들에게 속은 것입니다.
25절에서 31절까지의 말씀은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성을 쳐서 디나를 구출하는 내용입니다.
할례를 행한 자들이 사흘 째날 가장 고통스러워 할 때에(25절), 야곱의 아들 레위와 시므온이 그들 중에 들어가서 모든 자를 칼날로 죽이고(26절) 또한 모든 형제들이 가서 가축들과 들에 있는 것과 재물과 자녀와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모든 물건을 다 노략하여 나옵니다(27~29절).
할례 후 셋째날은 ‘위기의 날’아라도 불려졌습니다. 그만큼 할례를 받은 지 3일째 즈음이 되면 염증과 고열로 인한 통증이 가장 심하고 거동도 가장 불편할 때입니다. 이 날까지 기다렸었던 시므온과 레위, 디나와 같은 어머니인 레아에게서 태어난 형제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복수를 시작했습니다(25절).
그들은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칼로 쳐서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옵니다(26절).
그리고 시므온과 레위의 형제들이 그들의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을 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자기들의 누이 디나를 더럽혔기 때문입니다(27절). 야곱의 아들들이 살인을 하고 노략하는 정도가 남김없이 철저하고 잔인했음을 28절과 29절에서 구체적으로 열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잔인하고 잔혹한 야곱의 사건 이야기를 성경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일까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개명까지 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 언약자손인 야곱에게 있어서 감추고 숨기고 싶은 이 사건 이야기를 성경을 통해 왜 공개하시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이해하지 못하면 앞으로의 신권 통치 역사를 이해할 수가 없게 됩니다.
첫째는, 야곱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와 보호를 받으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그들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언약과 그의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간은 은혜를 입고 변화를 받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죄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확증하는 곳 본문이 바로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 족보입니다. 죄 가운데 있고 죄 가운데 살아가지만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지키셨으며 그리고 그 은혜와 사랑은 변치 않으시고 언약자손들과 다윗을 보호하사 혈통따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어지도록 하게 하셨음을 확증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아들들의 일로 말미암아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의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은 멸망하리라”(30절)고 염려합니다.
본문에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은 히위 족속에 가까운 족속들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금방 알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야곱의 아들들이 행한 일들이 저들로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악취를 피웠습니다(25~29절).
그러나 세겜 성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과 자손에게 주시기로 언약된 성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성을 언약자손 야곱의 아들들로 정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죽을까봐 걱정을 합니다. 그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을 연단시키시고 얍복 나루에서 간구한 것을 들어 주시고 이곳까지 오도록 해주셔서, 하나님이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여 주셨는데 아직도 믿지 못하고 염려하며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은 야곱이 망하지 아니하는 것이 분명한데, 그것이 믿어지지 아니하니까 걱정근심 염려 불안한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야곱이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걱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야곱은 자기 아들들이 세겜 성을 멸하였으나 자기가 그 주변 족속들의 주목을 받아 공격을 당하여 죽을까 두려운 것입니다.
본문에서 야곱이 ‘나는 수가 적은 즉’이라는 말로 자기 집이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말합니다.
망하고 흥하는 것이 사람의 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에 있음이 야곱은 그때까지 믿어지지 아니하였던 것입니다. 외삼촌 라반과의 길르앗에서의 만남(31:25)과 형 에서와의 만남(33:1)에서도 야곱과 아들들이 죽을 수 있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호하셨는데도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으로 말미암아 그 언약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야곱의 집을 결코 망하지 않게 하십니다(35:5).
시므온과 레위는 아버지 야곱의 염려에,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라고 대답합니다(31절).
이들은 아버지 야곱이 두려워하는 것은 인지하지 못한 채, 아직도 누이 디나가 당한 것에 대하여 강경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35장으로 넘어가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또다시 야곱을 찾아오시고 위로하시며 벧엘로 올라가도록 하십니다. 야곱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걱정근심으로 쌓여 있을 때마다 여호와께서는 찾아오십니다. 이는 야곱과 계속적으로 동행하셨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