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16)진화론의 등장 배경
생명체가 긴 시간 동안 진보적 발전 거듭한 것으로 해석
지구가 긴 시간 큰 변화 했다고
지층 연구 통해 본격적으로 증명
각 지층에 있는 화석 연구하며
생명체의 진화도 추측하게 돼
이제 우리는 진화론에 대해 본격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진화론은 과학적 무신론의 아주 중요한 배경이 되는 이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창조주의 생명 창조를 현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이론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진화론만큼이나 오해와 무지, 무조건적인 지지와 무조건적인 비난이 복잡하게 뒤엉킨 과학 이론은 역사상 없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됩니다. 그 정도로 진화론은 내용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이론입니다. 하지만 정작 진화론의 내용과 현재의 연구 방향에 대해 자세히 아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여전히 논란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이 진화론은 원래 여러 종류가 있었으나, 현재는 다윈주의(Darwinism), 좀 더 정확하게는 20세기 초중반에 집단 유전학(Population Genetics)과 결합되어 정립된 신다윈주의(Neo-Darwinism)가 정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윈주의 내지 신다윈주의가 생겨나기 전까지의 상황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다윈주의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이전에 진화라는 개념과 관련하여 먼저 등장한 중요한 과학적 연구 결과는 바로 지질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8~19세기에 이르러서 지구가 인류의 출현 이전에 엄청나게 긴 시간 동안 큰 변화를 거듭해왔다는 점을 지질학자들이 지층 연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증명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6일간의 창조에 관한 내용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을 옹호하는 것이 더 이상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6일간의 창조 이야기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 지구의 나이는 대략 6000년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지질학자들은 수억 내지 수십억 년을 말하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학자들이 각 지층에 있는 화석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생명체가 아주 오래전에는 원시적인 형태로 출현했다가 길고 긴 시간이 흐르면서 생명체의 조직이 더욱 커지고 복잡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18~19세기 동안 유럽의 많은 학자들은 생명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점점 진화라는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되었습니다.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 다윈. 그는 저서를 통해 진화론을 본격적으로 주장했다.김도현 신부 제공
그러던 와중에 본격적으로 진화론을 주장하는 인물이 영국에서 등장했는데 그는 바로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1731~1802)이라는 의사였습니다. 그는 1794년에 「주노미아」(Zoonomia)라는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주장합니다:
에라스무스 다윈의 저서 「주노미아」
지구의 머나먼 과거에 단순한 유기체로부터 자연발생적인 과정에 의해 생명의 근원이 생겨났으며 그 이후 길고 긴 시간 속에서 여러 세대를 거쳐 점진적이고도 필연적인 더 높은 수준의 조직화, 복잡화를 통해 생명체가 진화를 하게 되었다. 에라스무스 다윈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 영국의 지식인들 층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장-바티스트 라마르크의 ‘라마르크주의’를 표현한 그림. 라마르크는 기린이 높은 가지에 있는 잎을 먹기 위해서 목을 늘이는 과정을 되풀이한 결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주장했다.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그 후 프랑스에서는 ‘용불용설’(用不用說·Theory of Use and Disuse)로도 잘 알려져 있는 라마르크주의(Lamarckism)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라마르크주의는 장-바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1744~1829)가 1809년 그의 저서 「동물 철학」(Philosphie Zoologique)을 통해 제안한 이론인데, 이 이론에 따르면 생물이 살아있는 동안 환경에 적응한 결과로 획득된 형질(Acquired characteristics)은 다음 세대에 유전되어 진화가 일어난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이 주장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서 라마르크 본인이 언급한 예는 바로 기린의 목이 늘어나는 과정입니다. 기린은 일생 동안 높은 가지에 있는 잎을 먹기 위해서 목을 늘이는 것을 되풀이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오랜 기간 지속한 결과, 기린의 목은 점점 늘어나게 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죠. 결국 동물이 어떤 기관을 다른 기관보다 더 자주 쓰거나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그 기관은 사용되는 시간에 비례하여 점점 발달하게 되어 크기가 커지거나 길이가 길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어떤 기관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그 기관은 점점 퇴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라마르크의 주장과 달리 획득된 형질은 유전되지 않음이 후에 밝혀져 현대의 진화 이론에서는 그다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후 1840년경이 되면 이미 오늘날 받아들여지는 것과 흡사한 내용의 지구 역사의 개요가 지질학자들에 의해 소개됩니다. 이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원시적 무척추동물에서 어류의 시대, 파충류의 시대, 포유류의 시대를 거쳐서 마지막으로 인류가 나타난 오늘날까지 생명이 진보적 발전을 거듭해 온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1839년부터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를 하던 영국은 소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대단히 넓은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영국의 귀족들과 중산층에서는 개와 비둘기 등을 키우는 문화가 대대적으로 유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특이할 만한 것은 그때 개와 비둘기를 키우는 열풍이 새로운 품종 개발과 결부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전까지는 사냥이나 양치기, 쥐잡기 등 목적에 맞게 개를 교배해 만드는 정도였었는데, 빅토리아 시대에 와서는 영국의 귀족들과 중산층이 개와 비둘기의 ‘미적 가치’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니 육종사(Breeder·브리더)들도 전문화되기 시작합니다. 덩치는 작게, 눈은 크게, 얼굴은 평평하게…. 이런 식으로 영국인들의 미적 욕망에 맞게 새로운 개와 비둘기의 품종 개량이 대유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전 세계의 개 품종은 400종이 넘는데 이들 중에서 적어도 3분의 2 이상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앞서 소개한 에라스무스 다윈의 손자인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1809~1882)에 의해 새로운 진화론인 다윈주의가 드디어 등장하게 됩니다.
김도현 바오로 신부(서강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