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에서 서울로 병원 다니시는 것도 벅찬 일이고 허리까지 아파서 거동이 불편해지신 형부는 영통 아들네 집에 올라오셨습니다. 형부를 뵈러 갔습니다. 환자 돌보는 일로 지친 팔순의 언니한테 점심밥까지 얻어먹고 오는 것은 아니다 싶어 점심 전에 돌아오기 위해 일찍 방문했습니다. 우리 동네에 맛집인 갈비탕집에서 갈비탕 5인분을 사고 종자골에서 수확한 자두를 조금 들고 갔습니다. 형부는 누워계셨습니다. 허리가 아프니 천천히 달래가며 일어나 앉으시는데 참고 참은 깊은 신음 소리가 들립니다. 무려 이십여 분이 필요했습니다. 언니는 형부가 먹고 싶다는 옥고시를 사러 땀을 뻘뻘 흘리며 상가에 다녀오셨는데, 나이도 나이려니와 얼굴이 전과 다르게 많이 상하셨습니다. 상할 수 밖에요. 형부와 언니를 위해 대신 해 드릴 것이 없으니 할 말은 별로 없습니다. 바라만 볼 뿐입니다. 한 시간여 앉아있다가 바쁜 일이 있다며 나오는데,
점심 먹여서 보내야 한다고 먹여서 보내야 한다고, 그냥 가면 어쩌냐고 언니는 눈물을 보이십니다. 뭐라도 줄 것이 없을까 두리번거리시더니 네 개 남아있는 복숭아 상자를 내밉니다. 어제 사위가 사 온 거라는군요. 남편인 최서방은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저는 압니다. 무엇이든 주고 싶어하는 친정 어머니를 닮은 언니입니다. 복숭아 상자를 기꺼이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래 글들은 우리가 다녀온 후 언니가 카톡방에 올리신 글들입니다. 여든이라는 연세에 핸드폰을 장난감처럼 다룰 줄 아는 언니가 대단하십니다.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셔서 마음이 앞서는지 아니면 손이 앞서는지 틀린 글자가 많습니다. 언니의 마음을 다 알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동생이 감히 고친다고 고쳤지만, 언니의 마음을 깎아내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언니 마음 그 자체가 원석의 빛깔과 반짝임처럼 진심을 백 퍼센트 함유한 보석이니까요.
막내야!
어렵게 형부 주려고 갈비탕 사 온 것은 고마운데 뭘 그리 많이 사 오고 최 서방은 설도 아닌데 애들 용돈을 주고 하냐. 내 얼마나 미안하던지 모른다. 자두도 조금 땄다면서 두고 먹지. 마트서 빨간 토종 자두도 비싸더라고. 작은 통에 담아 5000원이여. 잘 먹겠다. 형부 한 첨 까서 드렸다. 바로 너네 떠난 후 담배 찾아 베란다에 나갔다가 구토하고 담배는 못 태우고 들어오셨어. 여태 왜 이러냐고 반문하면서 후후 한숨만 쉬며 답답해하면서 창문 열라고 난리셨다.이게 금단 증세여 네 삼촌이나 형부 담배나 같구나.
서울서 살 때였지. 내가 형부 드리려고 담배 두 갑 살 때 이것만 피우면 내 죽어도 담배 심부름 안 한다 했거든. 그런데 안 되는구나. 문갑 위에 담배 꼬다리 한 개 주워주고 가방에 숨겨둔 담배는 절대로 안 주고 대성통곡하면서 함렬읍에 나가서 담배 사다가 대령했단다. 커피도 중독이신데 요새도 커피 타 오라고 하시지. 한 모금 밖에 못 드시면서. 한숨 쉬다가 구토하다가 지쳐 잠드셨구나.
큰언니 말씀이 이제 가실 때가 되시나보다 하시는데, 벌써 응급실 2번, 큰일 날 일이었어. 낙상 때 머리 다치셨어봐 시아버지 74세에 뇌타박상으로 119에 실려 임종하셨는걸 봐도. 명줄 9수 넘기기 어렵다는데 고통이 너무 심하구나. 응급실 퇴원해서 집 앞에서 내렸는데 가로 등불 아래에서 우리 집이 아니라고 성당 넘어 쪽 고갯길로 걸어가실 때, 허망하고 절망적인 모습에 눈물마저 안 나오더라. 항암 약이 사람 정신마저 버려 놓은 거 같구나.
막내야!
산 넘어 산이로구나. 허리마저 다치셨으니. 세 번을 주저앉으셨으니. 엉덩이 쪽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지. 나도 쓰러지지 않고 배겨내고 있는 거여. 못 올 때를 또 왔다 가게 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막내야. 그 빚을 어찌 갚겠노. 작은 오빠도 쌍지팡이 짚고 매형 보러 또 병원 올 모양인데, 오지 말라고 해도 안 올 오빠냐? 아버지처럼 유 서방 걱정해주니 무엇으로 답을 하냐. 늙어버렸으니. 요즘 무릎도 살살 탈이 나고 걸음마저 지그재그로 휘청거려 나도 놀랜다. 아! 이젠 3 다리 할 때가 되어가는구나. 작은 에미와 재영이 말인즉슨 엄마는 건강해 보인다나. 걸음은 엄마 닮아 빠른 것은 맞지만 늙음 앞에 영원은 없다야 막내야 바람 같이 왔다가 주마등처럼 사라지는 거지. 옛날이 생각나는구나. 그땐 다 잼난 일만 있지 않았겠니? 맞다 그쟈? 갈비탕 형부가 잡숫다 남기면 밥까지 내가 싹 먹고 기운 차려 병원 수발 하련다. 막내야 건강 잘 지키구. 착한 우리 막내 제부 다녀가셔서 너무 고마우이.
형부는 갈비 국물 한 수저 뜨시다 구토증이 나서 방으로 들어가셨구나. 음식물에 대해 완전 거부 반응을 보이시네. 아침은 닭죽 반 공기뿐. 요구르트 한 병마저 안 드시고 아까 자두 한쪽 드셨다. 두 쪽은 노. 너네 오기 전에 아까 내가 마트 간 건 아침에 형부가 오꼬시 얘길 해서 아침 먹고 사온다 해서였구나. 하필이면 오꼬시 집 문이 닫혀서 오곡물 과자와 쌀과자만 사왔지. 한 개도 못 드셨어.
언니 대신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죄송하다니. 죄송. 별소릴 다 한다. 천만에 그런 얘긴 말아라. 모두 다 과분해. 울 시동생들 봐라. 형제 우애라곤 눈곱만치도 없어. 피붙이가 뭐냐 야속해. 갈비탕 국물 맛이 진짜 오리지날 한우 갈비탕이여. 맛있게 잘 먹었어. 형부가 못 드시니 어쩔 수 없고 아픈 것은 대신이란 게 없네 남기신 건 나만 먹어대니. 쓸개 수술 후 형부 간병하다 내 배가 고파 나가서 우동 한 그릇 눈물에 말아 먹던 일 생각이 나. 40대나 70대까지도 병마로 고통이 있을 거라고 예측 못했지.
막내야!
그래 형부가 조실부모에 아버지 사랑만 받고 계모 밑에서 눈칫밥으로 살았잖냐 나 새댁 때 계모가 우리 둘을 앉혀놓고 나를 뭐로 아느냐고 따졌단다. 계모티를 낸 거지. 엄마 말씀에 시어머님이 사모관대 쓰고 처녀로 시집왔기 때문에. 서모가 아닌 계모로 대접을 잘 해야 된다고 하셨거든. 안 도망가고 산 건 울 아버지 망신 시킬까 싶어 눈물을 참고 참았어. 어린 막내 시동생 병길이 찾아다 씻겨주고는 했지. 막내 시동생은 형수 앞에 고추를 막 내놓고 뭘 모르는 개구신이었지. 손은 다 터져 피가 났어. 시동생 보살피는 동안 정작 옥골 내 막내 동생은 꾀죄죄하고 머리도 못 자르고 그랬다고. 나중에 알았구나. 그놈의 바느질 재봉한다고, 주물공장 돈벌이도 시원찮고, 시아버지는 배만 김일성처럼 허풍이시고, 똥구멍 찢어질 만큼 가난했었지
내 콩나물 천 원어치 사러 상도 본동시장 다닐 때 재중이 임신해서 입덧이 심했지. 돼지국밥이 하도 먹고 싶어 털이 비게 껍질에 듬성듬성하고 까칠한 걸 미친 듯 한 그릇 사 먹고 들어가니 늦게 왔다고 시어머니가 성을 냈었어. 그랬다는 얘기여. 저녁 먹었냐? 형부 누룽지 끓여 드리고 조금 난 물 말어 네가 사 온 무김치랑 먹고. 고기국도 점심에 잘 먹었으니. 선준인 저녁 금식. 웅인 먹고 오고. 며느리와 선우와 다현이가 갈비탕 잘 먹었구나 얼마나 많은지 들통으로 반이나 되어. 내일도 먹겠구나. 국수 삶아 낼 점심으로 형부한테 들여보아야겠다.
물 건너 간 뒤에 얘기하면 뭐하나. 어제 아침에 아들과 며느리가 일요 예배 보는 동안 닭 사러 가서 통배추 한 포기를 사서 안고 오다 이고 오다 했구먼. 바로 잠시 절여 겉저리를 무쳤어. 밥과 삶은 감자 양파를 갈아 넣고. 재영이 오면 줄라고 작은 팩에 담어 놓았는데. 이 서방이 제가 담근 게 더 맛있다 하면서 안 가져갔어. 냉장고에 넣는데 그걸 못 보낸 것이 아쉽네. 너네도 이른 점심으로 겉저리라도 먹여 보냈으면 내 맘이 좋았을텐대. 자두 맛있다고 잘들 먹어. 고맙다 막내야. 건강해라.
형부는 어제 밤중 3시에 담배 마귀에 맞서 생사탕 한 개 입에 물고 참아내더니, 아침에 누룽지 서너 수저 잡수시고 방에 가셔서 담배 꼬나물고 계시네. 누가 말리겠누. 그래도 그래도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무사히 보낸 하루입니다. 코로나 검사하는 날인데 며느리가 태워다주니, 감사합니다. 2021년 7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