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물어뜯는 이리 (youtube.com)
창 49:27-28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오늘은 이스라엘의 막내 베냐민을 향한 축복의 말씀을 물어 뜯는 이리의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원하시는 귀한 은혜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베냐민을 향한 축복의 말씀을 주시고 28절에는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드라는말씀이 있습니다.
야곱이 자녀들에 대한 축복이 적절하였다는 말씀입니까?
아무리 좋은 말로 축복을 하여도 그들이 받아들일 모습이 없다면 그 모든 축복들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죠? 그렇습니까?
반대로 저주와 같은 축복의 말씀도 받아 들인 아들에게는 그 저주가 귀한 축복이 된 사실을 우리는 이미 성경을 통해서 확인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레위에게 주어진 축복이 주어지드래도오늘 주신 말씀처럼 베냐민에게 주어진 축복의 말씀이 나에게 주어지드래도누구에따라 하나님의 복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까? 받아 들이는 사람에 따라 복이 될 수가 있고 저주가 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귀하신 성도님들 오늘 주어진 말씀도 우리 모두의 영적 복이 되는 말씀이 되길 축복합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향한 축복의 말씀 첫마디를 어떻게 시작합니까?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이 말씀이 좋은 말씀처럼 생각이 듭니까?
사진처럼 손톱을 물어 뜯는 이리라는 말씀은 아니겠죠?
그러니 별로 좋지 않은 말씀처럼 생각이 드시지 않으십니까?
이리가 나왔으니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짐승들을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 제일 많이 나오는 짐승은 어떤 짐승입니까?
양이죠.성경에 약 1000번 정도 나옵니다.
그 다음에 많이 나오는 짐승은 어떤 짐승일까요? 염소도 많이 나옵니까?
약 150회 기록되었습니다.
이리도 많이 나올까요? 이리라는 명칭은 많이 나오지 않지만 사나운 짐승들은 많이 나오죠? 사자, 곰, 악어, 독수리, 표범, 여우 등 이런 짐승들 다 이리와 같은 과 입니까?
다 맹수들이죠?
어떤 분의 설교를 들어보니 이 세상에는 이런 세 종류의 짐승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짐승들입니까? 양과 같은 사람들이 있고요. 염소와 같은 사람들이 있고요,
이리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
이 중에 저와 여러분들은 어디에 속할까요?
양과 염소는 우리가 많이 들어서 잘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오는 말씀있죠? 어디에 있습니까?
마 25:31-33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마태복음 25장은 세 비유가 나옵니다.
하나는 열처녀의비유이고요, 다음은 달란트에 대한 비유이고,
세 번째가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다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 그런 비유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라고말씀하십니다.
왜 양과 염소입니까? 양과 이리가 아니고요.
예수님 재림 전에 이리로 묘사된 사람들의 운명은 끝이 나죠.
그리고 염소는 양을 닮은 짐승입니다.
양처럼 생겼지만 양이 아니고요. 양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양이 아니고 염소입니다.
교회안에 어떤 분들을 가리킨다고 보면 될까요?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사람들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서도 자기는 어떤 사람들로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로 알고 있죠.
그래서 임금으로 상징된 예수께서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하니까 그들은 무슨 말을 합니까?
마 25: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예수님을 안다는 말입니까? 모른다는 말입니까? 우리도 압니다 라는 말 아닙니까?
여기서 우리의 모습을 좀 보와야하겠습니까?
우리도 누구처럼 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염소로 표현된 사람들처럼 그렇게 될 수가 있다는 말이죠.
염소로 표상된 그들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살았습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 도와 주고요, 나그네도 대접하고요, 환자 방문도 열심히 했고요.
옥중선교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이 내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이런 말씀을 주시죠?
마 25: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하시리니”
마태복음 25장을 읽어보면 양과 염소의 특징이 나옵니다.
양들은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는 것이고요,
염소들은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더 똑똑한 사람들입니까? 염소가 훨씬 더 똑똑합니다.
양들은 해 놓고도 무엇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바보들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런 바보들이 있습니까?
우리 성도님들은 양에 가깝습니까? 염소에 가깝습니까?
그렇다고 제가 드리는 말씀은 한 일들을 잊어 버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기억하고 있어야 간증도 하고 경험담도 들려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양들은 자기가 한 일들을 자기가 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주님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셨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경험담 하라고 하면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한 일들을 말하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에 많다는 것이죠.
우리 모두 나를 잊어 버리시고 나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수 있는 기회들을 많이 드리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나도 잊어 버릴 수 있는 양들로 살아가시길바랍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교회 안에 두 무리 양과 염소 교회 밖에 한 무리 이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기의 열 한번째아들인 베냐민을 어떻게 불렀습니까?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어떤 이리라고요? 물어 뜯는 이리라.
이리라는 짐승도 그런데 그 이리가 어떠하다고 합니까? 물어뜯는 이리라고 하죠.
우리 성도님들 우리 들에게는 그런 기질들 없습니까?
회개하시고 고쳐 나가게 되길 바랍니다.
아버지로부터 그런 축복을 받은 베냐민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런 축복의 기도를 들은 후 약 4대를 지난 베냐민 지파를 축복하는 모세의 축복에서 이런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신 33:12 “베냐민에대하여는 일렀으되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살리로다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
물어 뜯는 이리가 어떻게 변화된 모습 같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자라는말을 듣습니다. 놀라운 변화입니까?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우리 성도님들 지금 우리의 모습에서 물어 뜯는 이리의 근성들이 있을지라도 믿음의 길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로 주님 오시는 날 서게 되길 축복합니다.
베냐민의 그런 모습은 출생의 비밀속에서도 나타나 있습니다.
베냐민은 누가 낳은 아들이었습니까?
야곱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았던 라헬의둘째 아들입니다.
라헬은둘 째 아들을 낳을 때 심한 산고를 격습니다.
창 35:16-17 “그들이 벧엘에서길을 떠나 에브랏에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하매”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 하여 라고하죠?
우리 여자분들 자식들 해산하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느 목사님 말씀에는 하늘이 노래지는 고통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랬습니까? 요즘은 그런 고통을 없이 하려고 배를 갈라 끄집어 내는 수술을 하죠.
그 고통도 만만한 고통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수 천년 전 약도 없었는데 그것도 여행 도중에 해산을 하니 어떠했겠습니까?
그 다음 말씀을 보니 라헬은아들을 낳으면서 숨이 끊어 집니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지어 줍니다.
창 35: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불렀으나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이 말씀은 영혼 불멸을 믿는 사람들이 영혼이 있다는 말을 증거하려 할 때 이 말씀을 잘 찾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라헬은죽게 되어 숨을 거두면서 아기 이름을 벤오니라고불렀다.그러나 아기 아버지는 베냐민이라 불렀다”
혼이 떠나려 할 때를 어떻게 번역하였습니까? 숨을 거두려 할 때에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때에 아들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지었다고요? “베노니” 라고
베노니라는 이름의 뜻은 “고통의 아들” 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입니다.
베냐민의 형 요셉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아들을 낳고 더 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더해주실 것이다” 라는 의미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와 바램대로이제 아들을 낳습니다.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봅니다.
요셉의 피 묻은 옷을 그 형들이 들고 왔을 때 엄마가 보았다면 어땠을까요?
살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던 라헬의바램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담아 불행의 아들 고통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베노니라고지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이름을 바꾸어 베냐민으로 불렀습니다.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입니다.
그 자손들에게서 그 이름의 의미들이 나타난 것 같습니까?
물어 뜯는 이리에서 무엇으로 바뀌어 졌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로
우리도 그렇게 될 수가 있다고 했습니까?
성경에 보면 그렇게 변화된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중요한과 야고보를 무슨 아들이라는 별명이 있는지 아시는 분?
막 3:17 “또 세베대의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무슨 별명이 있었다고요? 보아너게우리말로는 우레의 아들. 우레가 뭡니까? 천둥소리를 가지고 우레라고 하죠.
그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보니까 그들의 성격을 조금 알 수 있는 거 같습니까?
하루는 사마리아로 지날 때 그들이 영광의 주님을 몰라보고 거절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까? 모르니 그럴 수 있죠. 그때 우레의 아들들이 누가복음 9장 54절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눅9: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구주를 받아 들이지 않는다고 불을 명하여 라고요청한 우레의 아들들의 말입니다. 성깔이 있는 말 같습니까?
우리 성도님들 알지 못하고 상식 밖의 표현을 할지라도 참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급하고 참지 못한 성격을 가졌던 요한이 어떻게 변하였습니까?
그의 말년에 기록한 그의 편지서들은 요한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많이 찾는 요한일서 4장은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요일 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그의 변화를 증언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화 79 “요한의 생애는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기 위해서 가장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 생애 중의 하나였다. 그 사도는 그의 구주를 너무도 친밀히 따르며 그리스도의 순결함과 고귀한 거룩함을 깊이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품성은 대조적으로 불결하게만 보였다.구주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그런 느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들이 더욱 더 자세히 예수님의 생애와 품성에 대해 명상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욱 더 자신의 죄를 느끼게 될 것이며, 조금도 그들의 마음이 거룩하다고 주장하거나 그들이 성화되었다고 자랑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구주에 대하여 진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기 위하여 가장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 생애를 요한은 살았다고 말하고 있죠?
우리 성도님들 올려드린 말씀처럼 예수그리스도의 생애를 많이 많이명상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의 거룩한 성품이 그분을 명상하는 우리 모두의 성품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물어 뜯는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베냐민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으로 변화 된 것처럼. 우레의 아들이 사랑의 사도로 변화 된 것처럼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저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이 소망 우리 성도님들의 간절한 소망도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 오시는 날 예수님처럼산 사람들을 불러 모울때 그곳에 다 참여하는 하나님의 충성한 은혜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