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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빠 삼형제 들에게 초전부터 3번째 설하신
[다음카페] 불타오름에 대한 법문 경(S35:235) http://m.cafe.daum.net/pali-study/9akK/321?svc=cafeapp
붓다가 설한 법은 의미(attha)와 언설(byañjana)을 갖추었다. 이것은 다음을 경문을 통해 분명히 제시된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의미(attha)와 언설(byañjana)을 갖춘,
온전하고 원만하며 청정한 법을 설하겠다.”
법은 말의 형식인 언설과 그 말에 내포된 의미를 통해 전달된다.
언설과 의미라는 두 갈래는 네띠의 전체 내용에 두루 걸쳐 있으며,
언설을 전달하는 방식(atthanaya)과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byañjananaya)에 대한 분석은
네띠의 전개에서 기본 틀이 된다.
ㅡㅡㅡㅡ
불타오름에 대한 법문 경(S35:235) 8. Ādittapariyāyasuttaṃ
35:235(3-8) 연소에 대한 법문의 경 3932) 잡아함 9권 12(大正 2. 58a, 잡241)참조
235. ‘‘Ādittapariyāyaṃ vo, bhikkhave, dhammapariyāyaṃ desessāmi. Taṃ suṇātha.
Katamo ca, bhikkhave, ādittapariyāyo, dhammapariyāyo?
1. [세존] "수행승들이여, 연소의 교법에 대한 법문을 가르치겠다. 잘 들어라.
수행승들이여, 그 연소의 교법에 대한 법문이란 무엇인가?
시뻘겋게 불타오르고 불꽃을 튀기고 빛을 내는 쇠꼬챙이로 차라리 눈의 감각기능[眼根]을 파괴할지언정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형색들에 대해 [세세한] 부분상을 통해서 표상(전체상)을 취해서는 안 된다.
Varaṃ, bhikkhave, tattāya ayosalākāya ādittāya sampajjalitāya sajotibhūtāya [sañjotibhūtāya (syā. kaṃ.)]
cakkhundriyaṃ sampalimaṭṭhaṃ, na tveva cakkhuviññeyyesu rūpesu anubyañjanaso nimittaggāho.
1) 수행승들이여, 연소하고 작열하고 불꽃 튀는 뜨거운 쇠바늘로 시각기관을 차라리 지질지언정,
시각으로 인식되는 형상의 인상과 속성에 사로잡히지 말라.
(여기서
na tveva cakkhuviññeyyesu rūpesu anubyañjanaso nimittaggāho.
-> 눈으로 감지할수 있는 형색들에 대해 부차적인 것으로 표상(니밋따)에 파악해서는 안된다!
viññeyya(to be perceived),
anubyañjana (accompanying, secondary attribute, additional sign or mark),
nimittaggāho 는 nimitta+ggāho, 여기서 gāha는 seizing, seizure, grip. ...
nimitta에 함께 빈번하게 나오는 gāha를 '취함'에 해석하지 말고 '파악'에 해석하면요,
위 경문의 언설(byañjana)에서,
있던걸 가지려는 '취함' 보다는 어떤 노력을 해서 구하려고 하는 의미(attha, 뜻)의 '파악'이
명상주제에 대한 실참이고요, 이게 네띠(netti) 입니다.
네띠(netti)에서, 붓다가 설한 법은 의미(attha)와 언설(byañjana)을 모두 갖추었다고 합니다.
)
만일 그의 알음알이가 표상(전체상)의 달콤함이나
[세세한] 부분상의 달콤함에 빠진 채로 유지되다가 그런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에게는 이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즉 그는 두 가지 태어날 곳 가운데 하나로 갈 것이니, 지옥이거나 축생의 모태이다.
Nimittassādagathitaṃ [nimittassādagadhitaṃ (syā. kaṃ. ka.) ma. ni. 3.316-317] vā, bhikkhave,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
anubyañjanassādagathitaṃ vā tasmiñce samaye kālaṃ kareyya,
ṭhānametaṃ vijjati, yaṃ dvinnaṃ gatīnaṃ aññataraṃ gatiṃ gaccheyya – nirayaṃ vā, tiracchānayoniṃ vā.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의 의식이 인상의 유혹에 사로잡히거나 속성의 유혹에 사로잡혀, 그 순간에 죽는다면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축생으로 태어나는 두 가지 운명 가운데 하나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
-> 만일, 그의 알음알이(식)가 (눈으로 감지하는 형색들에 대해 부차적인 것을 니밋따에 파악하고는) 니밋따의 달콤함에 빠진 채로 유지되다가 그런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에게는 이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즉 그는 두 가지 태어날 곳 가운데 하나로 갈 것이니, 지옥이거나 축생의 모태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위험함을 보기 때문에 나는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Imaṃ khvāhaṃ, bhikkhave, ādīnavaṃ disvā evaṃ vadāmi.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 위험을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Varaṃ, bhikkhave, tiṇhena ayosaṅkunā ādittena sampajjalitena sajotibhūtena sotindriyaṃ sampalimaṭṭhaṃ,
na tveva sotaviññeyyesu saddesu anubyañjanaso nimittaggāho.
Nimittassādagathitaṃ vā, bhikkhave,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
anubyañjanassādagathitaṃ vā tasmiñce samaye kālaṅkareyya, ṭhānametaṃ vijjati,
yaṃ dvinnaṃ gatīnaṃ aññataraṃ gatiṃ gaccheyya – nirayaṃ vā tiracchānayoniṃ vā.
Imaṃ khvāhaṃ, bhikkhave, ādīnavaṃ disvā evaṃ vadāmi.
2) 수행승들이여, 연소하고 작열하고 불꽃 튀는 뜨거운 쇠막대기로 청각기관을 차라리 지질지언정,
청각으로 인식되는 소리의 인상과 속성에 사로잡히지 말라.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의 의식이 인상의 유혹에 사로잡히거나 속성의 유혹에 사로잡혀,그 순간에 죽는다면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축생으로 태어나는 두 가지 운명 가운데 하나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 위험을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Varaṃ, bhikkhave, tiṇhena nakhacchedanena ādittena sampajjalitena sajotibhūtena
ghānindriyaṃ sampalimaṭṭhaṃ, na tveva ghānaviññeyyesu gandhesu anubyañjanaso nimittaggāho.
Nimittassādagathitaṃ vā, bhikkhave,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
anubyañjanassādagathitaṃ vā tasmiñce samaye kālaṃ kareyya.
Ṭhānametaṃ vijjati, yaṃ dvinnaṃ gatīnaṃ aññataraṃ gatiṃ gaccheyya – nirayaṃ vā tiracchānayoniṃ vā.
Imaṃ khvāhaṃ, bhikkhave, ādīnavaṃ disvā evaṃ vadāmi.
3) 수행승들이여, [169] 연소하고 작열하고 불꽃 튀는 날카로운 손톱칼로 후각기관을 차라리 지질지언정,
후각으로 인식되는 냄새의 인상과 속성에 사로잡히지 말라.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의 의식이 인상의 유혹에 사로잡히거나 속성의 유혹에 사로잡혀,그 순간에 죽는다면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축생으로 태어나는 두 가지 운명 가운데 하나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 위험을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Varaṃ, bhikkhave, tiṇhena khurena ādittena sampajjalitena sajotibhūtena jivhindriyaṃ sampalimaṭṭhaṃ,
na tveva jivhāviññeyyesu rasesu anubyañjanaso nimittaggāho.
Nimittassādagathitaṃ vā, bhikkhave,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
anubyañjanassādagathitaṃ vā tasmiñce samaye kālaṃ kareyya.
Ṭhānametaṃ vijjati, yaṃ dvinnaṃ gatīnaṃ aññataraṃ gatiṃ gaccheyya – nirayaṃ vā tiracchānayoniṃ vā.
Imaṃ khvāhaṃ, bhikkhave, ādīnavaṃ disvā evaṃ vadāmi.
4) 수행승들이여, 연소하고 작열하고 불꽃 튀는 뜨거운 면도칼로 미각기관을 차라리 지질지언정,
미각으로 인식되는 맛의 인상과 속성에 사로잡히지 말라.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의 의식이 인상의 유혹에 사로잡히거나 속성의 유혹에 사로잡혀,그 순간에 죽는다면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축생으로 태어나는 두 가지 운명 가운데 하나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 위험을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Varaṃ, bhikkhave, tiṇhāya sattiyā ādittāya sampajjalitāya sajotibhūtāya kāyindriyaṃ sampalimaṭṭhaṃ,
na tveva kāyaviññeyyesu phoṭṭhabbesu anubyañjanaso nimittaggāho.
Nimittassādagathitaṃ vā, bhikkhave,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
anubyañjanassādagathitaṃ vā tasmiñce samaye kālaṃ kareyya.
Ṭhānametaṃ vijjati, yaṃ dvinnaṃ gatīnaṃ aññataraṃ gatiṃ gaccheyya – nirayaṃ vā tiracchānayoniṃ vā.
Imaṃ khvāhaṃ, bhikkhave, ādīnavaṃ disvā evaṃ vadāmi.
5) 수행승들이여, 연소하고 작열하고 불꽃 튀는 날카로운 칼로 촉각기관을 차라리 지질지언정,
촉각으로 인식되는 감촉의 인상과 속성에 사로잡히지 말라.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의 의식이 인상의 유혹에 사로잡히거나 속성의 유혹에 사로잡혀,그 순간에 죽는다면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축생으로 태어나는 두 가지 운명 가운데 하나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 위험을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8. “비구들이여, 잠자는 것은 헛된 삶을 사는 것이고
아무런 결실을 주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고 무감각하게 삶을 사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러나 차라리 잠을 잘지언정 승가의 분열을 일으키는 그러한 형태의 생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비구들이여, 이런 헛된 삶을 사는 위험함을 보기 때문에 나는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Varaṃ, bhikkhave, sottaṃ.
Sottaṃ kho panāhaṃ, bhikkhave,
vañjhaṃ jīvitānaṃ vadāmi, aphalaṃ jīvitānaṃ vadāmi, momūhaṃ jīvitānaṃ vadāmi,
na tveva tathārūpe vitakke vitakkeyya yathārūpānaṃ vitakkānaṃ vasaṃ gato saṅghaṃ bhindeyya.
Imaṃ khvāhaṃ, bhikkhave, vañjhaṃ jīvitānaṃ ādīnavaṃ disvā evaṃ vadāmi.
6) 수행승들이여, 비록 잠자는 것은
생명의 불임이라고 나는 말하고, 생명의 불결실이라고 나는 말하고, 생명의 몽매함이라고 나는 말하지만,
수행승들이여, 차라리 잠을 자는 것이 낫다.
사유에 사로잡혀 참모임의 화합을 파괴할 정도로 그처럼 사유 속에서 사려하지 말라.
수행승들이여, [170] 나는 그 위험을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9. “비구들이여, 이런 경우에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해야 한다.
‘‘Tattha,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2. 수행승들이여, 그것에 대해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다음과 같이 반성한다.
시뻘겋게 불타오르고 불꽃을 튀기고 빛을 내는 쇠꼬챙이로 눈의 감각기능이 파괴된다 할지라도
나는 이와 같이 마음에 잡도리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눈은 무상하다. 형색은 무상하다. 눈의 알음알이는 무상하다, 눈의 감각접촉은 무상하다.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상하다.’라고.”
‘tiṭṭhatu tāva tattāya ayosalākāya ādittāya sampajjalitāya sajotibhūtāya cakkhundriyaṃ sampalimaṭṭhaṃ.
Handāhaṃ idameva manasi karomi –
iti cakkhu aniccaṃ, rūpā aniccā, cakkhuviññāṇaṃ aniccaṃ, cakkhusamphasso anicco,
yampidaṃ cakkhu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ṃ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tampi aniccaṃ’’’ [anicca’’nti (?)].
1) '연소하고 작열하고 불꽃 튀는 뜨거운 쇠바늘로 시각기관을 차라리 지져버리는 것을 그만두고,
아, 참으로나는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하리라.
시각은 무상하다, 형상도 무상하다, 시각의식도 무상하다, 시각접촉도 무상하다,
시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역시 무상하다.'
‘‘Tiṭṭhatu tāva tiṇhena ayosaṅkunā ādittena sampajjalitena sajotibhūtena sotindriyaṃ sampalimaṭṭhaṃ.
Handāhaṃ idameva manasi karomi –
iti sotaṃ aniccaṃ, saddā aniccā, sotaviññāṇaṃ aniccaṃ, sotasamphasso anicco,
yampidaṃ sota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ṃ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tampi aniccaṃ.
2) '연소하고 작열하고 불꽃 튀는 뜨거운 쇠막대로 청각기관을 차라리 지져버리는 것을 그만두고,
아, 참으로 나는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하리라.
청각은 무상하고, 소리도 무상하다, 청각의식도 무상하다, 청각접촉도 무상하다,
청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역시 무상하다.'
‘‘Tiṭṭhatu tāva tiṇhena nakhacchedanena ādittena sampajjalitena sajotibhūtena ghānindriyaṃ sampalimaṭṭhaṃ.
Handāhaṃ idameva manasi karomi –
iti ghānaṃ aniccaṃ, gandhā aniccā, ghānaviññāṇaṃ aniccaṃ, ghānasamphasso anicco,
yampidaṃ ghāna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ṃ…pe… tampi aniccaṃ.
3) '연소하고 작열하고 불꽃 튀는 날카로운 손톱칼로 후각기관을 차라리 지져버리는 것을 그만두고,
아, 참으로 나는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하리라.
후각은 무상하다, 냄새도 무상하다, 후각의식도 무상하다, 후각접촉도 무상하다,
후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역시 무상하다.'
‘‘Tiṭṭhatu tāva tiṇhena khurena ādittena sampajjalitena sajotibhūtena jivhindriyaṃ sampalimaṭṭhaṃ.
Handāhaṃ idameva manasi karomi –
iti jivhā aniccā, rasā aniccā, jivhāviññāṇaṃ aniccaṃ, jivhāsamphasso anicco,
yampidaṃ jivhāsamphassapaccayā uppajjati…pe… tampi aniccaṃ.
4) '연소하고 작열하고 불꽃 튀는 뜨거운 면도칼로 미각기관을 차라리 지져버리는 것을 그만두고,
아, 참으로 나는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하리라.
미각은 무상하다, 맛도 무상하다, 미각의식도 무상하다, 미각접촉도 무상하다,
미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역시 무상하다.'
‘‘Tiṭṭhatu tāva tiṇhāya sattiyā ādittāya sampajjalitāya sajotibhūtāya kāyindriyaṃ sampalimaṭṭhaṃ.
Handāhaṃ idameva manasi karomi –
iti kāyo anicco, phoṭṭhabbā aniccā, kāyaviññāṇaṃ aniccaṃ, kāyasamphasso anicco,
yampidaṃ kāya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ṃ…pe… tampi aniccaṃ.
5) '연소하고 작열하고 불꽃 튀는 날카로운 칼로 촉각기관을 차라리 지져버리는 것을 그만두고,
아, 참으로 나는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하리라.
촉각은 무상하다, 감촉도 무상하다, [171] 촉각의식도 무상하다, 촉각접촉도 무상하다,
촉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역시 무상하다.'
14. “잠에 빠진다 할지라도 나는 이와 같이 마음에 잡도리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마노는 무상하다. 법은 무상하다. 마노의 알음알이는 무상하다. 마노의 감각접촉은 무상하다.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상하다.’라고.”
‘‘Tiṭṭhatu tāva sottaṃ. Handāhaṃ idameva manasi karomi –
iti mano anicco, dhammā aniccā, manoviññāṇaṃ aniccaṃ, manosamphasso anicco,
yampidaṃ mano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ṃ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tampi aniccaṃ’’.
6) '잠자는 것을 그만두고,
아, 참으로 나는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하리라.
정신은 무상하다, 사실은 무상하다, 정신의식도 무상하다, 정신접촉도 무상하다,
정신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역시 무상하다.'
5.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Evaṃ passaṃ,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cakkhusmimpi nibbindati,
rūpesupi nibbindati, cakkhuviññāṇepi nibbindati, cakkhusamphassepi nibbindati
3.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1) 시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접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면,
사라지고, 사라지면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앎이 생겨나,
'태어짐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pe…
2) 청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소리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청각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청각접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청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면,
사라지고, 사라지면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앎이 생겨나,
'태어짐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3) 후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냄새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후각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후각접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후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면,
사라지고, 사라지면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앎이 생겨나,
'태어짐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4) 미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맛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미각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미각접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미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면,
사라지고, 사라지면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앎이 생겨나,
'태어짐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5) 촉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감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감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촉각접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촉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면,
사라지고, 사라지면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앎이 생겨나,
'태어짐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마노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법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의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16.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yampidaṃ mano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ṃ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tasmimpi nibbindati.
Nibbindaṃ virajjati; virāgā vimuccati;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
6) 정신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사실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정신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정신접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정신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면,
사라지고, 사라지면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앎이 생겨나,
'태어짐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Ayaṃ kho, bhikkhave, ādittapariyāyo, dhammapariyāyo’’ti.
4.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연소의 법문이라는 가르침이다."
Aṭṭhama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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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ti
Dhammaṃ vo bhikkhave desissāmi ādiklyāṇaṃ majjhekalyāṇaṃ pariyosānakalyāṇaṃ
sātthaṃ sabyañjanaṃ kevalaṃ paripuṇṇaṃ parisuddhan ti. [p.10]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의미와 언설을 갖춘, 온전하고 원만하며 청정한 법을 설하겠다.
네띠는 법이 언어로 전달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있으며,
법과 언어의 간격을 극복하려고 시도한다.
네띠는 붓다의 제자들이 이들의 차이를 인식하고서
스스로가 제시하는 해석의 틀에 따라 법에 접근하기를 권한다.
그렇게 하면 붓다가 말하는 언설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러한 취지에서 네띠는 언설의 전달 형식과 의미를 다양한 기준에 따라 꾸준히 탐구하고 분류한다.
붓다가 설한 법은 의미(attha)와 언설(byañjana)을 갖추었다. 이것은 다음을 경문을 통해 분명히 제시된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의미(attha)와 언설(byañjana)을 갖춘,
온전하고 원만하며 청정한 법을 설하겠다.”
법은 말의 형식인 언설과 그 말에 내포된 의미를 통해 전달된다.
언설과 의미라는 두 갈래는 네띠의 전체 내용에 두루 걸쳐 있으며,
언설을 전달하는 방식(atthanaya)과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byañjananaya)에 대한 분석은
네띠의 전개에서 기본 틀이 된다. *원어의 위치가 바뀌어 있음.
Yaṃ loko pūjayate, salokapālo sadā namassati ca
Tass’eta sāsanavaraṃ, vidūhi ñeyyaṃ naravarassa.
세간이 공양을 올리고 세간의 수호자가 언제나 공경하는 것,
그것은 최상의 사람이 [설하신] 최고의 가르침으로, 지혜로운 이들이라면 마땅히 안다.
Dvādasa padāni suttaṃ, taṃ sabbaṃ byañjanañca attho ca
Taṃ viññeyyaṃ ubhayaṃ, ko attho byañjanaṃ katamaṃ.
경은 열두 가지 경우를 [지닌다.] 그 [열두 가지 경우는] 모두 언설과 의미에 해당한다.
어떤 것이 의미이고 어떤 것이 언설인가? 그 둘을 [구분하여] 알아야 한다.
Soḷasa hārā Nettī, pañca nayā sāsanassa pariyeṭṭhi
aṭṭhārasa mūlapadā, Mahakaccānena niddiṭṭhā.
길잡이(netti)로서의 열여섯 가지 전달,
가르침의 탐구로서의 다섯 가지 방식,
열여덟 가지 뿌리가 되는 구문이 마하깟짜나 존자에 의해 설명되었다.
Hārā byañjanavicayo, suttassa nayā tayo ca suttattho
Ubhayaṃ pariggahītaṃ, vuccati suttaṃ yathāsuttaṃ.
전달(hāra)은 경의 언설에 대한 분석과 관련되어 있다.
세가지 방식은 경의 의미와 관련되어 있다.
이 둘 다가 두루 파악되었을 때 경은 경 그대로 설명된다.
Yā ceva desanā yañ ca, desitaṃ ubhayameva viññeyyaṃ
Tatrāyamānupubbī, navavidha suttantapariyeṭṭhīti.
드러냄[의 언설과] 드러낸[의미], 그 둘 다를 알아야 한다.
따라서 아홉 갈래 경의 탐구를 위해 [앞으로] 그 순서로 [전개한다.]
첫댓글 bālapaṇḍitasuttaṃ (SN 12.19) 우현(愚賢)경
avijjānīvaraṇassa, bhikkhave, bālassa taṇhāya sampayuttassa
evamayaṃ kāyo samudāgato.
iti ayañceva kāyo bahiddhā ca nāmarūpaṃ,
itthetaṃ dvayaṃ,
dvayaṃ paṭicca phasso
saḷevāyatanāni , yehi phuṭṭho bālo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ayati etesaṃ vā aññatarena”.
3. “비구들이여,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어리석은 자의
이 몸은 이와 같이 생겨난다.
이처럼 이 몸과 밖의 정신 · 물질이 생겨난다.
이렇게 해서 한 쌍이 존재하게 된다.
한 쌍을 조건으로 하여 감각접촉이 있고,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에 닿거나 이들 가운데 하나에 닿아서
어리석은 자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