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 : 2025. 01. 25(토)~01. 26(일)
□ 곳 : 화방재[꽃방석 고개](해발 950m)~수리봉(1214m)~만항재[늦은목이](1330m)~함백산(1572.8m)~중함백(1505m)~은대봉[상함백](1442.3m)~두문동재[싸리재](1268m)~금대봉(1418.1m)~수아밭령~비단봉(1281m)~매봉(산)[천의봉]~(1303m)피재[삼수령](935m)
□ 낙동산악회(19기 27구간)
□ 참여 : 모두 24명
□ 날씨 : 구름+진눈깨비
□ 길 : 눈길
□ 걷는 데 걸린 시간 : 2025. 01. 26(일) 02:58~13:50(10시간 52분, 쉰 시간 포함)
□ 일러두기
1. 나온 데[출처]
○ 「실전 백두대간 종주산행」⇒「실전 ..대간」으로 적음.
○ 푯돌에 적힌 산 높이⇒‘푯돌’로 적음
□ 간추린 발자취(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02:58 꽃방석 고개[화방재, 어산재] 나섬.
○ 03:30 수리봉(1214m-‘푯돌’)
○ 04:15 군부대 철조망
○ 04:17 만항재(1330m-‘푯말’)[늦은목이],
○ 05:50 함백산(1572.9m-‘푯돌’)
○ 06:15 중함백(1505m-‘푯말’)
○ 07:52~08:22 아침밥
○ 08:37 은대봉[상함백](1442.3m-‘푯돌’)
○ 08:55 두문동재(1268m-‘푯돌’)[싸리재]
○ 09:30~09:39 금대봉(1418.1m-‘푯돌’)
○ 10:41~10:46 수아밭령[창죽령], 머묾.
○ 11:15 비단봉(1281m-‘푯돌’)
○ 12:14~12:27 매봉산 푯돌, 머묾.
○ 12:32 「매봉산 풍력 발전 단지」 푯돌
○ 12:57 매봉(산)[천의봉](1303.1m-‘푯돌’)
○ 13:50 피재[삼수령](935m-‘푯말’), ※ 산행 끝.
꽃방석 고개[화방재]
화방재에서
화방재
수리봉
만항재[늦은은목이]
창옥봉
창옥봉
함백산
중함백
은대봉
은대봉
두문동재[싸리재]
'두문동재'는 '싸리재' 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두문동재
두문동재
금대봉
한강, 낙동강이 발원한다 하여 '양강봉' 이라고도 한다
□ 줄거리(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화방재~만항재~함백산)
2025. 1. 25(토) 22:43쯤 000 역을 떠난 버스는 거의 4시간쯤 뒤 꽃방석 고개[화방재](해발 950m-‘실전..대간’)에 닿았다.
화방재는 동쪽으로 강원도 태백시와 서쪽 강원도 영월군을 잇는 31번 국도가 지난다.
민가 2~3채가 있고, 주유소 건물, 상가가 있다.
‘꽃방석 고개’는 ‘화방재’, ‘어평재’, ‘징거리재’, ‘하비령’ 따위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꽃방석 고개[화방재]를 나서 32분쯤 뒤 수리봉(1214m-‘푯돌’)에 닿았다.(03:30)
수리봉에는 화방재까지 길 푯말(↑만항재 2.3km, ↓화방재 1.0km)이 있다.
수리봉에서 45분쯤 뒤 철조망을 둘러친 군부대에 닿는다. 길은 철조망을 따라 거의 90도쯤 오른쪽으로 굽어진다.
군부대에서 거의 1시간쯤 뒤 만항재(1330m-‘푯말’)에 닿았다.(04:17)
만항재에는 길 푯말(→함백산 3.0km, ↓화방재 3.3km, ↓수리봉 2.3km, ↓백두대간)이 있다.
화방재에서 3.3km, 1시간 19분쯤 걸렸고, 함백산까지는 3.0km 거리다.
만항재는 “강원도 정성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 그리고 태백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고개”로 “우리나라에서 포장 도로가 놓인 고개 가운데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 고갯길”《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로 알려져 있다 한다.
(함백산~중함백~은대봉[상함백]~두문동재[싸리재])
만항재에서 1시간 33분쯤 뒤 함백산(1572.9m-‘푯돌’)에 닿았다.
함백산은 “남한에서 6번째로 높은 산”《푯말에서 따옴》이다.
함백산은 겨울은 물론, 여름에도 가만히 서 있기 힘들게 세찬 바람이 부는 곳인데, 이번에는 거의 바람이 불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었다.
아쉬웠던 것은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이었고, 진눈깨비가 흩날려, 낮이었더라도 뒤로 태백산, 앞으로 매봉[천의봉] 따위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백두대간 길은 함백산 꼭대기에서 왼쪽으로 내려서 이어진다.
함백산에서 25분쯤 뒤 중함백(1505m-‘푯말’)에 닿았다.(06:15)
중함백에서 1시간 37분쯤 뒤 눈이 많이 내려 쌓인, 약간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아침밥을 먹었다.(07:52)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고, 추위가 심하지 않아 밥 먹기가 수월했다.(?)
아침밥을 치르고 길을 나서(08:22) 15분쯤 뒤 은대봉[상함백](1442.3m-‘푯돌’)에 닿았다.(08:37)
은대봉은 ‘상함백’ 이라고 한다.
은대봉에는 삼각점이 있고, 헬기장이다.
은대봉에서 18분쯤 뒤 두문동재[싸리재](1268m-‘푯돌’)에 닿았다.(08:55)
두문동재는 ‘싸리재’라고도 하며, 서쪽으로 정선군 고한읍과 동쪽으로 태백시를 연결하는 38번 국도가 지나는 2차선 아스팔트 길이다.
(두문동재~금대봉~수아밭령~비단봉~매봉(산)[천의봉]~피재[삼수령])
두문동재에서 35분쯤 뒤 금대봉(1418.1m-‘푯돌’)에 닿았다.(09:30)
금대봉은 ‘양강 발원봉’ 이라고 한다. 여기서 양강(兩江)이란 한강과 낙동강을 말한다.
9분쯤 머문 뒤 금대봉을 나서(09:39) 1시간 2분쯤 뒤 수아밭령[창죽령]에 닿았다(10:41)
수아밭령은 ‘창죽령’이라고 한다.
수아밭령은 “한강 최상류 마을 창죽과 낙동강 최상류 마을인 화전을 잇는 백두대간 상의 고개”, “옛날 화전에서 밭벼를 재배한 관계로 수화전(水禾田)이란 지명이 생겼다가 다시 줄여서 화전(禾田)(벼화, 밭전)이 되었다.
지역민들은 “쑤아밭”이라 불렀으며 오늘날 태백시에는 벼를 재배하는 농가가 없다“고 한다.《여기까지 「수아밭령」 푯말에서 따옴》
5분쯤 머문 뒤 수아밭령을 나서(10:46) 29분쯤 뒤 비단봉(1281m-‘푯돌’) 푯돌이 있는 곳에 닿았다.(12:14)
비단봉 푯돌 있는 곳에 닿기 전 바깥 (왼쪽) 장갑을 수아밭령에서 잃어버린 것을 깨달았으나 장갑 찾으러 다시 되돌아가기 귀찮아 그대로 걸었다.
비단봉 푯돌 있는 곳에 닿았을 때 신민철 님이 내가 잃어버린 장갑을 주워 갖고 왔다.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란선 님이 “이번 구간에 아름다운 산 이름이 많다”고 했다.
은대봉, 금대봉, 비단봉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제 비단봉 꼭대기는 이곳에서 5분쯤 더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이 푯돌이 있는 곳은 날씨가 좋으면 지나온 함백산 따위가 잘 보이는 곳이다.
비단봉에서 채 10분이 되지 않아 ‘고랭지 채소 재배지’에 닿았다.
비단봉 푯돌이 있는 곳에서 그의 1시간 뒤 매봉산 푯돌에 닿았다.(12:14)
아주 큰 푯돌을 세워 두었는데, 실제 매봉산은 한참을 가야 한다.
이른바 ‘바람의 언덕’에 전에는 풍차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처 보지 못한 곳에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어쩌면 바람에 시설이 상해 철거했는지도 모른다.
13분쯤 머문 뒤 매봉산 푯돌을 나서(12:27) 5분쯤 뒤 「매봉산 풍력 발전 단지」 푯돌에 닿았다.(12:32)
「풍력 발전 단지」 푯돌에서 25분쯤 뒤 매봉(산)[천의봉](1303.1m-‘푯돌’)에 닿았다.(12:57)
길을 잘못 들어 ‘낙동정맥 갈림길’ 푯돌이 있는 곳을 지나쳤다.
나중에 100m쯤 떨어진 ‘낙동정맥 갈림길’ 푯돌이 있는 곳에는 발 빠른 국화 · 란선 님은 다녀왔다.
나는 귀찮다는 핑계를 대며 다녀오지 않았다.
매봉산[천의봉]에서 53분쯤 뒤 피재[삼수령](935m-‘푯말’)에 닿아(13:50) 산행을 마쳤다.
피재는 ‘삼수령(三水嶺)’ 이라고도 한다.
삼수령은 한강, 낙동강, 오십천(五十川)이 나뉘는 고개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이번 구간은 눈이 많았고,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나무에 눈꽃이 찰싹 달라붙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이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나중에는 감탄사가 더 나오지 않았다.
연속되는 현상에는 만성이 디기 마련이다.
「고랭지 채소 재배지」~매봉(산)[건의봉]~피재[삼수령] 구간에 눈이 많이 쌓여 있어, 길이 더러 헷갈렸다.
몇 번 걸었던 구간이었으나 제대로 길을 찾지 못했다.
옛 기억이 언제나 뚜렷한 상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느꼈다.
눈 많이 쌓인 길을 앞장서 헤치느라 권재구 대장 님과 앞선 대원들 고생 많이 했다.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눈길을 열심히 걸었던 대원 여러분 고생 많았다.
□ 그밖에
◎ 흘러가는 생각을 잠깐 붙들고...
1. 눈 덮인 백두대간 길
대간 길 내내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겨울에 눈이 쌓여 있으면 그 아래에 있는 생물에게 이불과 같은 보온 효과가 있어 따뜻하다고 한다.
눈 많은 강원도 지방에 식수 고갈을 막아주고, 산불을 막아주는 다목적 효과가 있다.
눈 아래 뭇 생명들이 봄을 기다리면서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특히 함백산 일대는 들꽃[야생화]이 유명한 곳이므로 눈 아래에서 봄과 여름에 피울 아름다운 꽃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눈이 적은 남녘에서 온 대원들은 황홀감에 젖어 어린애처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남녘 아이들이 이 구간에 왔더라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눈 내린 뒤에 추위가 이어져 눈이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하지 않아 눈이 뽀송뽀송해서 걷기에 좋았다.(?)
‘마른눈’[건설(乾雪)]이라 젖은 눈[습설(濕雪)]을 밟고 걷는 것보다는 낫다.
2. 백두대간 길 효능
사람은 두 발로 걷는 것이 기본이다.
걷는 것은 건강에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한다.
‘산사랑제이’ 님이 목욕탕에서 말했다.
“백두대간 길을 걷고 나면 몸무게가 2~3kg쯤 줄어든다. 좋은 공기 마시고, 대간 길이 참 좋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말이었다.
추운 날. 사서 고생을 하는 대원들 모습이 아름다웠다.
누가 시키지 않을 일을 ‘일부러 사서 고생’ 하는 모습이 좋았다.
3. 용감했던 젊은이들
지난 태백산과 이번 함백산 구간에 젊은이들이 참여해 보기 좋았다.
젊은이들이 등산, 특히 백두대간 길에 나서는 일이 많지 않은데, 길고 눈 많은 대간 길에 나선 것이 대견하고 믿음직했다.
처음 나선 것이 믿기 않을 정도로 아주 잘 걷고, 끈끈하고 풋풋한 우정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앞으로 계속 참여하고, 우리나라 뼈대인 백두대간을 알고, 백두대간을 경계로 동서가 조금씩 다르게 스며 있는 풍습이나 문화를 익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러분의 도전에 손뼉을 친다.
4. 「매봉산 고랭지 채소 재배 단지」
전에 대간 길을 걸으면서 「매봉산 고랭지 채소 재배 단지」를 마주하는 기분은 가볍지 않았다.
하필 대간 길 일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지어야 하는가?
그곳은 농지로 쓰기보다 나무를 심어야 할 곳이 아닌가?
댐 조성으로 농지가 수몰된 사람들이 옮겨와 농사를 짓는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리고 여름과 가을 고랭지에서 기른, 품질 좋은 배추가 전국으로 팔려나간다는 사실에 고마운 생각도 들었다.
세상일이란 ‘동전의 양면’처럼 좋은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던 기억이 뚜렷하다.
물론 이번에는 온통 눈 덮인 벌판으로 변해 있어 그 위용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전에 밭과 나무가 선 수풀 사이를 걸을 때 ‘전나무’(?)를 심어놓은 곳이 제법 있었는데 그때부터 10년도 더 지났으므로 그 나무도 제법 자랐을 것이다.
※ 다른 사진은 아래 제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log.naver.com/angol-jong
첫댓글 꽃방석에 앉아 꽃구경으로 호강하였으면 좋았을텐데 대간길 잇는다고 쉼없이 걸었습니다 .
산행기를 읽으면서 새로움을 얻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음 산행때 뵙겠습니다.
스스로 걷는 발걸음이 자신이 쓰는 백두대간사(白頭大幹史) 입니다.
대서사에 어떤 모양, 어떤 색깔의 수를 놓을지는 대자연과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씨줄, 날줄로 삼아 베를 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춥고 눈 내린 날씨를 잎 떨구고 묵묵히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나무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낍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지역.지리 정보와 함께 진솔하게 쓰신
큰형님 산행기는 언제나 유익하고,
신선한 감동을 주십니다.
이번에 날씨가 춥지 않아, 셧다 누루는 손가락이 덜 고생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장갑을 다시 찿으신것도 다행입니다. 언제나 소중한 추억 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설 명절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담 산행때 건강한 모습으로 뵙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산만하게 글자만 늘어놓은 말이라 알맹이가 없습니다.
눈 많은 길이었지만, 바람이 불지 않고, 기온이 크게 낮지 않아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어쩌다 이런 행운도 있었습니다.
신민철 님이 장갑을 주워 갖고 와서 얼마나 고맙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왼쪽 장갑은 잘 벗지 않는데, 어쩌다 떨어뜨렸는지...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기 바랍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화방재에서 피재를 지나면서 찍은 사진들이 저에게는 서사로 자리 잡히는 기억이 될 것입니다. 언제 저렇게 포즈를 취했지 생각도 하지만, 외부 사태를 선명한 이미지로 재생산되는 카메라의 장점같습니다.
한길 형님의 블로그를 천천히 따라가면 기억의 갈래를 전지적 시점에서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아! 내가 거친 숨을 내쉬며 걸었던 대간 길이 실은 꽃자리였구나~ㅎㅎ
명절 잘 보내십시요 고맙습니다.
일제를 거치면서 우리 땅 이곳저곳 이름이 한자식으로 바뀐 것이 많았음을 보는 일이 많습니다.
'꽃방석 고개'가 '화방재'로 되고, '늦은목이'가 '만항재'로 된 것 따위...
글에 철학과 시적 표현이 많은 것을 느꼈는데, '솜다리 문학' 편집장이었네요...
문학을 하는 것도 소중하고, 더구나 꾸준히 잡지를 펴내는 것은 더욱 어려움이 많은 것을 어렴풋이 짐작합니다.
두 손 들어 손뼉 칩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이어가는 대간 길.
훌륭한 문학 소재가 될 것인 바 아름다운 시어(詩語)로 수놓기 바랍니다.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기 바랍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