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49일재인가?
언젠가 <영적인 눈)이 열려 있는 그 보살님<나의 글 중에서 반야심경 위력에 나온>이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스님, 우리 친정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나에게 많지는 않지만 유산을 조금 남기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 유산의 일부를 가지고 00 큰절에서 많은 스님을 모시고 바라춤까지 춰가면서 참으로 49재를 성대하게 해드렸습니다.
49일제가 다 끝나던 날 나는 우리 아버님이 좋은데 가셨는지 알아보려고 한 생각을 내는 순간, 아버님이 다가와서 내 귓전에 대고 <아가 나 못 갔다.>하시는 것입니다. 그 순간 참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몰랐습니다. 그저 정신이 띵~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님께 물었습니다. <아니 아버님을 위해서 몇 천 만원이나 들려가면서 성대하게 49제를 드렸는데 좋은 대로 가지 못했다니요. 어째서 가지 못하였습니까?> 그러자 아버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가, 나는 사실 살아생전에 불법공부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처님과 신장님이 계시는 성대한 잔치에 내가 참석할 수가 없었다.> 스님, 나는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잘 아는 도인에게 전화로 이런 상황을 알렸더니 그 도인이 웃으면서 아버님이 벌써 도인 옆에 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인 옆에서 불법공부를 하다가 때가 되면 인연 따라 가겠다고 하였담니다.
그래서 돌아보니 정말 아버님이 안계셨습니다. 스님, 정말 세상에 이런 일도 있네요. 스님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제가 아버님을 위해서 제 돈으로 49재를 해 드렸는데 어째서 아버님께서 그 자리에 참석을 못했을까요? 나는 그것이 제일 궁금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어떻게 하든 49재를 성대하게 하려고 애를 쓰지 않습니까?”
“내가 그 이치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내가 어떤 도반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여담으로 해드릴 테니 참고 하십시오. 그 도반이 말하기를 어떤 보살님이 보살님처럼 친정어머님을 큰절에서 49일제를 성대하게 해주었는데 그날 밤 친정어머님이 꿈에 거지꼴로 나타나서 하는 말이 배가 고프니 밥 좀 달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이 보살님이 어머님께 <아니, 어머님 49제 동안 먹을 것을 참으로 많이 차려 들렸잖습니까? 그런데 배가 고프다니요. 그랬더니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이<아가, 법당에 무서운 신장님들이 많아서 나는 법당 안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 보살님은 나름대로 수행을 많이 한 터라, 친정어머님의 그 말을 알 듣고. 스님 혼자서 철저하게 수행을 잘하는 작은 암자를 찾아가서 천도를 다시 했답니다.
그 보살님 말씀은 큰 절에서 49제를 할 때에는 오직 친정어머님이 좋은데 가시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천도를 하는 그 비용으로 이왕이면 작은 암자에서 공부하는 그 수행자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하였답니다. 그랬더니 그날 밤 꿈에 어머님이 나타나서 오랜만에 배부르게 잘 먹었다면서 가시더니 다시는 꿈에 나타나지도 않더랍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를 여담으로 해보자면 유명한 지관을 모셔다가 명당을 잡아서 부모님을 매장해 드려도 겉으로 보기만 누가보아도 딱 떨어진 명당이지, 사실은 그 부모님이 명당에 들어가 계신 것은 아니랍니다.
왜냐하면 명당이라는 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덕을 쌓은 자의 자리랍니다. 살아생전에 덕을 쌓지 않는 사람이 죽은 후에 그 자식들이 돈을 많이 주고 아무리 명당을 골라 매장을 해도 산신(山神)에서 틀어버린 답니다. 다시 말하면 명당이라는 정맥에서 옆으로 한 치만 산신에서 눈속임에도 그 자리는 이미 명당이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살아생전에 불법도 모르고 그저 재산만 모을 줄 알고 돈을 쓰는 대는 인색하거나 남을 괴롭혀서 먹고 살았던 사람들이 죽은 후에 어찌 부처님 앞에서 성대한 49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불보살님들이야 한없이 자비스럽지만 그 옆을 지키는 신장님들은 자비가 없습니다.
살아생전에야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지만 죽는 순간부터는 재물은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죽어서는 자신의 불법수행력이 바로 자기 자신만의 재산인 것입니다. 자신의 수행력이 높으면 자신이 죽은 후로 자식들이 49일제를 하던 하지 않던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 수행력으로 스스로 갈 길을 찾아 갈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해가 조금 되십니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