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은 글쓰기다 이종인 (1954~ ) 고려대 영문과 졸업.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 대학교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서문]
어떻게 하면 번역을 잘 할 수 있을까. 지난 15년 동안 전업 번역가 생활을 해오면서 늘 생각해온 화두였다. 네모꼴을 동그라미에 겹쳐놓으면 서로 배척하는 부분이 생겨나듯, 외국어와 모국어는 아무리 일치 시키려 해도 포섭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하여 단어와 문장의 옮겨오기에서 진일보하여 아이디어의 번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아이디어는 참으로 복잡 미묘한 것이다. 우리가 어떤 글을 읽고 일으키는 아이디어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 더욱이 텍스트 내에 깃들어 있는 아이디어가 때때로 유인가 하면 무라는 점도 사정을 어렵게 만든다. 번역자의 눈높이에 따라 아이디어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 텍스트의 표면은 사이렌의 노래처럼 번역자를 유혹하고 그 내면은 키르케의 마법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아이디어의 유와 무 혹은 텍스트의 표면과 내면은 사람마다 다르게 보이고, 보는 것이 다르면 표현하는 방식(글쓰기)도 달라진다.
번역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어구와 문장에 집중하는 미시적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글쓰기에 집중하는 거시적 방법이다.
[Part 1 번역가로 살기 위한 조건]
- 번역가가 되기 위한 7가지 조건
• 책을 좋아하는 사람 • 외국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 • 말장난을 즐기는 사람 • 혼자 있어도 심심치 않은 사람 •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 • 호기심이 많은 사람 •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혼란스러운 생각을 어떻게 글로 옮겨놓아야 좋은 문장이 될까? 그것은 서로 다른 것을 적절히 뒤섞는 데 있다. 가령 눈 오는 풍경이나 꽃피는 광경을 말하려면 오히려 그것과는 상관없는 어떤 것을 말해야 더 잘 설명이 된다. 문장이 교과서적으로 일정한 예상대로만 흘러가면 독자는 곧 단조로움에 빠져든다. 적절히 반대 예상을 집어넣을 때 독자에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터전을 마련할 수 있다.
-번역가에게 ‘원문 그대로’ 는 가능한가?
백과사전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면 오히려 번역문이 이상해져서 원문의 일부를 생략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원문을 읽고 해석하는 데에는 두 가지 단계를 거친다. 먼저 원문의 뜻을 파악하는 발상의 단계가 있고 그 발상을 완전히 우리말 화하여 재구성하는 표현의 단계가 있다.
모국어적 발상이 선행되어야 모국어다운 문장이 나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번역가는 그렇지 못하다. 원문이라는 까다로운 괴물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번역가가 원문을 읽고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은 아직 모국어적 발상이 아니다.
어떤 단어를 골라야 할까, 어떻게 표현하면 더 좋을까. 이 경우 어휘의 선택을 도와주는 것은 번역가의 해석에 달려 있다. 바로 여기에서 ‘번역가의 자유’라는 재량권이 인정되고 이 때문에 ‘번역은 글쓰기’라는 명제가 성립된다. 문장의 수준으로 넘어가서도 명령문을 감탄문으로, 평서문을 의문문으로 바꿀 수 있다. 가령 ‘이 배는 달다.’ 는 구문을 뜻을 바꾸지 않고 표현만 다르게 해보면 여러 구문으로 바꾸어 쓸 수 있다.
이 배는 꿀같이 달다. 이 배는 꿀맛이다 아! 달도다! 이 배 맛 이 배는 사탕보다도 더 달다. 이 배는 감로수다 이 배가 달지 않다니? -손동인. <새로운 문장작법>
표현 기교에 따라 같은 뜻이지만 구문의 형태는 얼마든지 달라진다.
번역가의 자유와 의무는 원문의 흐름과 뜻을 잘 전달했는가 로 최종 판단해야지, 원문에 없는 것을 넣었다, 혹은 있는 것을 뺐다는 기계적인 기준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번역가는 번역 기계가 아니다. 백퍼센트 기계적 대응은 불가능하다. 자연스럽게 번역가의 개성이 번역서 안에 스며들게 되며, 번역가의 글쓰기가 작용 하게 된다.
- 번역가를 위한 마음과 몸 다스리는 법 12가지
• 원문에 압도되지 마라 이병주 선생의 소설<바람과 구름과 비>의 첫머리에 아주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나온다. 어떤 무녀가 있는데 그 여자와 하룻밤의 정을 통한ㄴ마자는 모두 다음날 죽는다. 그런 상황에서 소설의 주인공 최천중이 무녀에게 도전하고 나선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죽지 않았다. 기가 막힌 방비책을 준비하여 그 여자와 정을 통하고도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다. 나는 최천충과 번역가의 입장이 상당히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비유를 더 진행하여 무녀를 원문이라고 하자. 그리고 무녀와 정을 통한 다음 죽었다는 사람들을 원문에 압도당한 사람이라고 하면 번역가와 원문의 관계가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 번역가는 원문의 멋, 맛,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원문과 번역문 중간에 끼어드는 사람이다. 그런데 원문에 너무 도취한 상황에서 번역을 하면, 원문 비슷한 번역문이 나온다. 원문의 영향이 그대로 남아 있는 번역문은 곧 독자가 이해 할 수 없거나 어색한 번역문이 되어 버린다. 결국 번역가는 원문과 정을 통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죽어버린 남자가 된다. 이렇게 죽어 버렸으니 전해줄 말도 없다.
원문은 번역가를 도취하게 만든다. 원문은 너무나 강력한 힘이어서 자칫하면 속아 넘어가기 쉬운 사이렌이요, 히드라이다.
원문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이것이 번역가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첫 번째이다.
•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라
아내와 심한 언쟁을 벌였다거나 믿던 친구로부터 기분 나쁜 말을 들었다거나 금전 문제로 고민을 하는 날은 번역이 정말 어렵다.
• 좋은 텍스트를 탐하지 마라
어려운 것도, 때로는 쉬운 것도 번역하는 전천후 스타일로 나아가야 한다. 만약 하기 쉬운 에세이나 소설만 고집한다면 생애 후반기에 가서는 어떻게 일거리를 조달할 것인가. 모든 일은 한 번 좋으면 한번 나쁜 것이다. 평소 어려운 텍스트도 거부하지 말고 훈련해 두어야 한다.
• 자기에게 없는 말을 찾아 나서라
글을 쓰면 자기에게 익숙한 단어나 표현, 구문만 사용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런 친숙한 것들보다 더 좋은 말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도 익숙함에 가로막혀서 더 좋은 말을 찾아나서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출판사의 편집자들은 이런 면에서 좋은 스승이다. 그들이 무심하게 고쳐놓은 어떤 단어와 표현은 내가 평생 가도 생각해내지 못하는 그런 것이다.
나는 출판된 번역서를 유심히 읽으면서 ‘나에게 없는 말’이 편집과정에서 추가되지 않았는지 유심히 살핀다. 또 남의 글을 읽다가도 그런 말을 우연히 발견하면 노트에 적어 놓고 적절한 상황에 활용하려고 애쓴다.
• 부질없는 비교를 하지 마라
• 명성을 추구하지 마라
번역가 중에는 베스트셀러 번역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 번역가는 어떤 텍스트가 되었든 지금 손에 잡고 있는 책이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 경쟁심을 가져라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다른 번역가들을 연구하고 그와 경쟁하고 그를 넘어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한국인 번역가 중에서 월하 김달진(1907~1989)을 가장 존경한다.
• 추측하지 마라
번역가가 가장 부끄럽게 여겨야 하는 것이 오역이다. 번역가는 오역에 대해서만큼은 불이과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오역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절대 추측하지 않는 것이다. 한 점 의문 없이 어떤 단어와 구문을 이해하고 있는가를 늘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사전을 찾아서 그것을 확인해야 한다.
•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
번역가는 사무실이나 집에서 혼자 작업을 하기 때문에 자칫 마음이 흐트러지기 쉽다. ~~~ 번역가는 하루 8시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 취미를 가져라
•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라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음성과 어조와 억양을 살피다 보면, 번역할 때 도움이 된다.
• 운동을 하라
[Part 2 좋은 번역가가 되려면 글쓰기에 집중하라]
-번역이 글쓰기인 까닭
번역을 처음 하면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원문 그대로, 있는 것 빼지 말고, 없는 것 넣지 말고 번역하라.’ 는 것이다. 또 하는 원문의 문체를 살려 번역을 하라는 것이다. 가령 작가가 엉성하게 썼으면 엉성하게 번역하고, 복문 투성이의 복잡한 문장을 구사했으면 번역문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번역은 남의 글을 그대로 옮겨 놓는 작업에 그치지 않고 번역가의 글쓰기이다. 그 까닭을 생각해 보자.
우선 메이슨 그레이가 남긴 번역에 관한 흥미로운 조언을 소개하려고 한다.
* 라틴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데 따른 몇 가지 조언
1) 라틴어 문장은 도미문이 많다. 다시 말해 동사가 문장의 끝에 오는 것이다. 이런 라틴어 문장을 영어로 번역할 때에는 동사가 주어 바로 다음에 오도록 유의해야 한다. 2) 라틴어 문장에서는 목적어가 ㄷ오사 앞에 오지만, 영어에서는 목적어가 동사 뒤에 온다. 3)라틴어 문장에서 종속절이 사용되었을 경우, 영어 번역문에서 원문의 순서를 따라 원문의 그 자리에 종속절을 넣으려고 하지 마라. 4) 라틴어 문장은 영어 문장과는 달리 한 문장 안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길고 복잡한 라틴어 문장은 2개 혹은 3개로 끊어서 번역해도 무방하다. 5) 절대 탈격(독립 주어 구문)이나 기타 영문과 다른 라틴어 구문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려고 하지 마라. 6) 절대 탈격을 포함하여 분사가 사용된 구문은 종속절을 사용하여 번역하라. 아이디어의 연결 관계를 잘 보여주는 when, since, if, althogh 같은 접속사를 사용하라. 7) 문장 전체를 받거나 앞 문장의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 관계 대명사는, 영어의 관계 대명사를 그대로 사용하지 말고 대명사를 사용하여 번역하라. 8) 접속법의 구문에 유의하라. 라틴어 종속절에서는 동사가 주절과 달라진다는 것을 명심하라. 종속절 또한 동사가 문의 맨 뒤에 온다는 것을 기억하라. 9) 한 단어에 한 가지 의미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동의어를 사용하라. 번역은 단어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옮겨오는 것임을 늘 기억하라. 라틴어 단어가 의미하는 아이디어에 가장 근접하는 영어 단어를 고르도록 애쓰라. magnus라는 단어가 나오면 great로 번역하고,res는 things 로 번역하고 locus는 place로 번역하는 기계적 번역을 피하도록 하라. 10) 당신의 영어 번역문을 라틴어 시간이 아니라 국어(영어) 시간에 에세이로 제출해도 손색이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그런 번역이 되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제출한 번역문이 라틴어 원문에 구애되어 원문의 도움이 없으면 잘 이해되지 않는 그런 문장이라면, 그건 번역이 아니라 영어 단어들을 무의미하게 모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원문 그대로라는 번역 원칙은 두 언어의 문법 구조를 도외시한 기계적 조언에 지나지 않는다. 번역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사람에게는 이론적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나 실제 번역 현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탁상공론인 것이다. 문법 구조가 다른 두 언어를 어떻게 같은 복문 투성이의 문장으로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설사 무리하게 복문 투성이의 번역문으로 만들었다 해도 그것이 과연 한국인이 처음부터 한국어로 쓴 문장처럼 자연스러울까. 문법적인 구조를 따라가기 보다는 그런 구조 속에 들어 있는 아이디어를 따라가려고 애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번역의 스펙트럼. 원문파와 자유파의 간극
원문 파는 가능한 충실하게 원문을 번역하는 것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원문 파는 원문에 없는 것 넣지 말고, 있는 것 빼지 말자는 원칙을 고수한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 씨는 <번역의 테크닉>에서 원문이 30줄이면, 번역문도 30줄, 원문에 콤마가 8개 있다면 번역문도 8개, 이런 식으로 최대한 원문을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원문의 숨결 그대로 살리기 위해 가능한 한 원문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논리다.
자유파는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지나치게 원문에 충실한 나머지 오히려 번역문이 잘 읽히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이에 대해 원문파는 원문도 살리면서 번역문도 한국어답게 하면 더욱 좋은 것이 아니냐고 응수한다. 그러면 자유파는 다시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원문에 너무 충실하다 보니 영어 문장 비슷한 한국어 문장이 되어 독자를 혼란에 빠트리면 어떻게 하는가? 뜻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서 원문의 외부적 형태에만 충실한 번역이 과연 제대로 된 번역인가? 원문의 스타일을 다소 훼손하는 데서 오는 손실은 원문의 뜻을 더욱 잘 전달하는 이득으로 충분히 보상되지 않을까?
자유파는 더러 원문에 없는 말을 집어넣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빼버리기도 한다.
-오역의 4가지 유형
오역은 번역가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오역은 대체로 아예 모르는 경우, 사전 찾기 귀찮아서 추측한 경우, 모르지는 않는데 착각한 경우, 표면과 심층을 착각한 경우의 4가지 유형이 있다.
-번역가의 글쓰기를 위한 7가지 법칙
나는 글쓰기에 대해서만은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최근에도 <글쓰기의 ㄱ오중부양>,<글쓰기의 즐거움>,<글쓰기의 전략>,<글쓰기 만보>, <글쓰기의 쾌락>등을 사들였다.
첫째, 상투를 잡지 마라 상투어는 전에 많이 들어본 말이나 표현을 가리킨다. 가령 아름다운 풍경을 가리켜 ‘한 폭의 동양화’라거나, 행복과 불행이 번갈아 찾아드는 인간의 삶을 가리켜 ‘인생은 무상하다’는 표현은 가능한 한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빼버려도 별 문제가 안 되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가 이것이 상투어 인지 아닌지 불분명할 때에는 이렇게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남들이 이미 그것을 많이 썼다는 느낌이 드는가 그렇지 않은가, 많이 쓴 것 같으면 그게 곧 상투어이다.
소설가 조지 오웰은 상투어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했다. “신문과 잡지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직유, 은유, 기타 비유법은 절대로 사용하지 말라.”
쓸 얘기가 없는데 억지로 쓸 경우 상투적 발상이 나오고 그로 인해 독자가 다 아는 얘기로 글의 절반 혹은 3분의 2를 채우는, 그야말로 쓰나마나 한 글이 된다. 글쓰기의 초보자는 이 상투어의 고개에서 쓰러져 버린다. 그들은 자신이 상투적인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글이란 드로잉과 비슷하다. 드로잉은 몇 개의 선으로 사물의 윤곽을 표현하는 것인데, 특히 렘브란트의 드로잉이 유명하다. 왜 그런가? 화가가 첫 번째 붓질을 하는 순간, 이미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비전의 힘이 강력하게 표시되기 때문이다. 한 솥 가득 끓인 국을 한 숟가락만 떠먹어도 전체 국 맛을 알 수 있듯이, 렘브란트 붓질은 이미 그 첫 번째 스트로크에서 내면의 삶과 외면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둘째, 불분명한 단어를 피하라
자기 생각에만 몰두하면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불분명한 어휘를 구사하게 된다.
“나는 소년 시절부터 근대문학에 내 자신이 결정적으로 흡수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결과 모든 가치를 헤아리는 기반으로서의 자아가 형성되었던 것 같다…….”
이 글에서 ‘흡수’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못하다. ‘모든 가치를 헤아리는 기반으로서의 자아’도 그 뜻이 불분명하다.
셋째, 수식어를 억제하라
러시아의 소설가 체호프는 수식하는 명사와 형용사와 동사가 너무 많으면 문장이 독자의 주의력을 사로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넷째, 연결이 좋아야 한다.
“교수가 되겠다고 나의 꿈을 송두리째 포기시킨 가족들의 맹렬한 설득 끝에 결혼을 해버린 나에게는 오직 새로 태어나는 생명에 대한 집착만이 있었다.”
위 글은 아이디어가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하나의 문장에는 하나의 아이디어가 들어가야 하는데 ‘생명에 대한 집착’ 앞에 생명과 관련 없는 교수, 꿈, 가족, 설득, 결혼 등이 나오니 아주 혼란스럽다. 할 말을 많고 빨리 써야 하는데 시간은 없는 사람의 모습이 역력하다. 이처럼 생각의 순서가 정리되지 않은 글은 글쓰기는 피해야 한다. 글쓰기의 진정한 중심은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6~7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문단이다.
연결의 가장 고난도 기술은 문단과 문단이 서로 잘 연결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문단의 제일 첫 번째 문장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지 신경 써야 한다. 원고지 20매 정도의 글은 보통 9개 문단으로 구성되는데, 이때 각 문단의 주된 아이디어를 첫 번째 문장이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각 문단의 주된 아이디어를 예고하면 글의 흐름이 훨씬 좋아지고 잘 읽히는 글이 된다. 좋은 글은 이 문단의 첫 번째 문장들만 읽어도 전체적 흐름을 알 수 있다.
다섯째, 구조를 갖추어라
문단의 연결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 글 전체는 선명한 구조를 가지게 된다. 보통 기승전결이 뚜렷한 글은 역삼각형의 구조를 갖는다. 기승전결의 전(轉)에서 상황이 급격히 전환될수록 역삼각형의 꼭짓점(결론)을 향해 치닫는 각도는 날카로워진다. 따라서 이 역삼각형에 기여하지 않는 디테일(세부사항)은 아무리 인상적인 표현, 인용, 대화라 해도 제거해야 한다. 문장의 구조는 대체로 역삼각형, 정삼각형, 다이아몬드 형이 일반적이다.
수사법 용어로는 각각 미괄식, 두괄식, 양괄식이라고 한다.
여섯째, 여백을 남겨놓아라
여백을 남긴다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열 마디로 말할 것을 일곱 마디 정도로 말하는 것이다.
유병석의 <자반을 먹으며>라는 수필은 할아버지 - 아버지(글쓴이) -아들의 3대에 걸쳐 어른이 자식에게 자반의 제일 좋은 부분을 양보하고, 어른은 자반의 맛없는 부분만을 고집하여 먹는다는 내용이다. 이 글의 끝부분은 이러하다.
“세상은 아무래도 이런 어른들이 다스려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는 물론이고 잘못된 아이들을 잡아가는 사람들, 재판하는 사람들의 자격시험으로 생선과 고기와 오징어를 함께 먹어보게 하는 과목을 과하면 어떨까. 오늘도 집의 아이들과 자반을 먹으며 부질없는 생각에 잠긴다.”
이 훌륭한 수필의 끝부분이 이런 평범한 설교로 끝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차라리 이 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해 버렸더라면 글의 감동이 더욱 커졌을 것이다.
일곱째, 솔직 하라
남의 글을 처음 대한 독자는 먼저 이런 생각을 한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누구이며 이 글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글 쓰는 사람은 솔직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
-야구와 글쓰기
글을 시작할 때 일부러 유인구(어려운 문장이나 알기 어려운 표현) 몇 개를 던져 헛방망이질을 유도함으로써 별 볼 일없는 독자는 3진 아웃 시켜 버린다. 내 글은 어려우니 당신처럼 글의 뜻을 알기 위해 미리 준비하고 오지 않는 사람은 내 글을 읽지 않는 게 좋다. 이렇게 경고하는 것이다.
투수가 상하, 좌우로 공의 위치를 바꾸면서 타자를 현혹시키듯이 글에서도 얼마든지 이것이 가능하다. 어휘, 문장, 문단, 텍스트의 차원에서 가능한데, 어휘의 경우 누가 양심이 불량한 사람을 비하하는 뜻으로 이렇게 썼다고 해보자. “염통에 털 난…….” 여기까지 읽으면 독자는 염통에 털 난 (놈)혹은 (녀석)이라는 단어를 예상한다. 앞에서 부정적 이미지의 단어를 썼기 때문에 같은 이미지의 단어를 예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긍정적 이미지로 비틀면 이렇게 된다. 염통에 털 난(분) 혹은(선생님), 이렇게 예상과 다른 공이 날아오면 독자는 긴장하면서 주목하게 된다. 문장의 경우, 빠르고 느린 완급 조절의 공으로 설명될 수 있다. 다음의 세 문장을 보자.
너는 바보.(빠른 공) 너는 바보이지 싶다.(중간 빠르기의 공) 너는 바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느린 공)
또한 문장의 구성 요소를 서로 연결시키는 동사를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완급조절이 가능하다.
그는 티베트에서 7년을 살았다. 그는 7년을 살았던 티베트는…….
앞의 문장은 동사가 서술어로 사용되어 빠른 속도를 일으키지만, 다음 문장에서는 수식어로 사용되어 아직 메시지의 본론이 나오지 않은 관계로 속도가 느리다. 동사가 문중의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빠른 공이냐 느린공이냐(메시지를 빨리 전달하느냐 혹은 늦게 전달하느냐)가 결정된다. 문단은 보통 6~7개 많으면 8~9개의 문장으로 구성되는 데, 이 문장 각각에 동사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빨간 공과 하얀 공(느리고 빠른 효과)로 독자의 예상을 흐트러트릴 수 있다. 문단의 경우, 6~7개의 문장 중에 어느 한 문장에 예상과 다른 공이 날아오면 돌연한 효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중국 송나라의 문예평론가 위경지는 이런 말을 했다.
시문(時文)이란 함축의 묘를 살려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야만 잘된 표현이 된다. 고인들이 말하던 웅장하고 깊으며 전아하고 강건한 품격이라는 바로 이 깊은 뜻을 담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품은 뜻 10할에서 3할만을 말로 하면 거의 풍아(시경)에 가깝다고 할 것이고, 6할을 말로 하면 이백, 두보를 따를 만하며 다 말해버리면 만당(晩唐)의 (시시한) 작품이라 할 것이다. 품은 뜻은 깊고 표현은 쉬워야만 하니 이것이 시인들이 어려워하는 바이다.
미국의 평론가 라이오닐 트릴링은 <문학의 경험>이라는 책에서 위대한 작품이 담고 있는 모든 뜻을 파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좋은 작품은 읽는 사람마다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얘기로, 위경지의 말과 같은 뜻이다. 대작가일수록 품은 뜻 10을 3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나머지 7은 허공중에 떠있는 공, 즉 타자의 방망이까지 날아오지 않는 공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글을 썼다고 해보자.
사람들이 신혼 여행지로 자주 가는 제주도에 나는 가보고 싶다.
이 문장에서 감동을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너무나 메시지가 분명하고 평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10명의 타자가 나와서 모두 때려낼 수 있는 한 가운데 높은 공이다. 그러나 이렇게 바꾸어 놓으면 때려내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의 시 (섬)의 전문
뭔가 신비한 아우라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 뜻을 알아내고 싶고, 공을 쳐내고 싶은 도전 의식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섬은 무엇을 가리킬까, 곰곰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상징사전에서 섬을 찾아보면 아주 많은 뜻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에 대한 설명은 없다. 이것은 타자가 미리 예상하고(열심히 연구하고) 방망이를, 휘둘러야만 맞출 수 있다.
-축구의 글쓰기
축구와 글쓰기는 어떻게 관련이 있을까. 일단 이렇게 생각해 보자. 우리 팀은 글을 쓰는 저자이다. 상대팀은 글을 읽는 독자이다. 패스는 글 속의 문단이 서로 치밀하게 연결되어 이어지는 과정이다. 골이 터지는 순간은, 글의 주제가 독자의 마음속에 명확히 각인되어 쾌감 혹은 감동을 주는 순간이다. 이렇게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패스이다.
• non sequitur
직역하면 그것은 뒤따라오지 않는다이며, 어떤 진술이 전제조건에 합당한 결론이 아닌 경우를 말한다.
“오로지 이곳저곳 출판사에서 넘겨주는 소설책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우리말로 옮기고 교전보고 역자후기 쓰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나한텐 번역쟁이가 어울리는 타이틀이겠다. 그리고 난 번역쟁이가 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다. 구질구질한 꼬락서니에 낭만이라고는 개뿔도 없는 인생이지만 말이다.
밑줄 친 문장은 논 세퀴르트이다. 앞에서 자신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는데, 그런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을까?
• Lucus a non Lucendo
직역하면 “빛이 없는 깊은 숲속에서”인데, 깊은 숲속에서 빛을 보았다고 말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즉 전혀 근거가 될 수 없는 어떤 사항을 제시해 놓고 그것에 입각하여 글을 써나가는 것이다.
“오백년이나 넘어 살았다는 이 오래된 느티나무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모르는 듯이 상하좌우로 확 퍼져 올라섰다. 그러나 지금 이 노목은 검푸른 그늘을 새파란 잔디위에 드리우고 있다.”
얼핏 아름다운 문장이나, 실제로는 느티나무 밑에서 잔디가 살지 못한다. 따라서 이 문장은 루쿠스 아 논 루켄도가 된다.
• Post hoc ergo hoc
직역하면 ‘이것 다음에 그러니 이것 때문에’ 인데 시간의 전후 관계를 사건의 인과 관계와 혼동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말의 오비이락이 여기에 해당한다.
상대가 길목을 지키고 있는 곳에 패스를 하면 공이 끊기고 만다. ~~~상대가 예상하지 못하는 곳으로 공을 몰고 가야 한다. 글도 이와 마찬가지로 같은 얘기를 계속 반복하면 독자는 지루함을 느껴 곧 흥미를 잃어버린다. 적절한 변화가 있어야만 독자의 지속적 관심을 유지할 수 있다.
- 번역가의 글쓰기 실력을 판가름하는 역자후기
• 역자후기를 쓰는 요령
가장 좋은 방법은 잘 써놓은 역자후기를 독자의 입장에서 읽어보는 것이다.
역자후기를 처음 쓰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대략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줄거리의 요약이고, 둘째는 개인적 상황의 진술이고, 마지막은 자기 지식의 과시이다. 줄거리 요약은 인문서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절대 해서는 안 된다. 특히 장편소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미국의 대학 영문과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작품에 대해 리포트를 제출하라고 할 때, 철저한 금기 사항이 줄거리 요약이다. 이것에 매달리면 독창적 생각이 나올 공간이 없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 생각이 없는 글이 되기 때문에 리포트 중에서 제일 하급 리포트로 처리한다.
개인적 상황의 진술도 가급적 피해야 한다. 책머리에 평소 000의 작품을 너무 좋아했는데, ~~~독자는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책에 대한 정보를 바라는 것이지, 번역가의 그런 개인적 상황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기 지식의 과시도 초심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독자는 글쓴이가 유식한 척 하면 거부감부터 느낀다. 글쓰기의 요령중 하나로 ‘설교하지 마라’가 있는데, 역자가 장황하게 자신의 지식을 늘어놓으면 독자를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한 거부감을 일으킨다.
• 역자후기는 왜 중요한가.
역자후기가 중요한 나름의 다섯 가지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첫째, 텍스트에 집중하게 해준다. 역자후기를 반드시 써야겠다고 마음먹는 번역가는 텍스트를 대하는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다. 뭔가 요령 있고 조리 있는 얘기를 써넣어야 하기 때문에 텍스트의 어떤 부분이 가장 인상적인지, 또 저자가 어떤 부분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지, 텍스트의 배경은 무엇인지, 어떤 관련 자료를 알고 있어야 텍스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지, 온갖 참고사항을 다 의식하게 된다. 그러니 자연스레 번역하기 전에 텍스트를 많이 읽게 되고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많으면 7~8회 집중적으로 읽기도 한다.
둘째, 글쓰기에 도움을 준다.
역자후기는 기승전결이 뚜렷해야 한다. 엉성한 얘기를 중언부언하면 ‘이런 글쓰기 실력으로 무슨 번역을 한다고 해? 하는 의문을 독자에게 안겨준다.
수미일관한 글을 쓰자면 자연 글쓰기의 요령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책을 많이 일게 해준다.
텍스트의 인상만을 가지고는 아무리 애를 써도 역자후기 20매를 채우지 못할 때가 있다.
넷째, 역자후기를 써놓으면 텍스트를 재검토하는 효과가 있다.
다섯째, 독자에게 정성껏 봉사한다는 느낌을 준다.
-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디테일을 살려라
- 말하는 대로 쓰고, 생각하는 대로 써라
우리가 어릴 때부터 글 쓰는 요령으로 익혀온 것이라면 “말하는 대로 쓰라”와 “생각나는 대로 쓰라” 가 있다. ~~~우리가 평소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으면 그것은 문장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대화에서는 상대방의 표정, 화자의 몸짓, 말하는 장소, 상황 분위가 등에 따라서 응, 그래 등의 외마디로도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한 반면, 글쓰기에서는 그것이 안 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너의 이야기도 될 수 있고 나아가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그러자면 직접 경험한 것이거나, 본인이 오랫동안 생각하고 궁리하며 마치 실현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어야 한다.
감동적인 이야기는 어떻게 써야할까. 우산 나의 이야기에 남의 이야기를 끌어들여야 한다. 하고자 하는 얘기를 ‘갑’이라고 한다면 그 반대되는 ‘을’을 끌어 들여 어떤 종합을 이루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독자는 그 글에 대하여 호감을 느끼고 처음에는 얼핏 읽었던 것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피천득의 수필 <보스톤 심포니>눈 나의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네가 없다. 그러기에 이 글은 아름답지만 강력한 감동이 없다.
구한말의 명문장가 영재 이건창(1852~1898)은 창강 김택영(1850~1927)이 선정한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명문 장가 9명 중 맨 마지막으로 꼽힌 인물이다. 그는 글을 어떻게 지어야 훌륭한 문장이 될까? 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주된 뜻(주의 主意)이 있으면 반드시 여기에 대적하는 뜻(적의 敵意)이 있어야 합니다. 문장을 별도로 만들어 적의로 주의를 공격해야 합니다. 주된 뜻은 갑옷처럼 방어하고 대적하는 뜻은 병기처럼 공격하니 갑옷이 견고하면 병기는 저절로 꺾일 것이고 누가 공격해 여러 번 꺽이면 주된 뜻이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면 곧바로 대적의 뜻을 거두어 포로로 잡아들임으로써 주된 뜻이 더욱 밝게 드러날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 와 적의라는 말은 결국 나의 이야기와 저의 이야기로 바꾸어 넣을 수 있고, 주된 뜻이 더욱 밝게 드러난다는 것은 곧 나의 이야기가 모든 사람의 이야기로 확대된다는 뜻이다.
그런 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바로 글로 옮기는 것이 좋을까? 아니다. 그런 이야기일수록 저자는 너무 소중하여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법이다. 가능한 한 의제하면서 속으로 반추하면서 생각이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생각은 계속 밖으로 나오려고 내면에서 꿈틀거린다. 그리하여 누르고 눌렀던 생각이 저자의 내부에서 흘러 넘쳐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을 때 저자의 독특한 언어로 구체화 시킨다면 좋은 글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나 생각이 저자의 내부에서 깊어지고 맑아지는 정화의 시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글이란 일단 써놓고 몇 번이나 수정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 정착된다.
-좋은 발상이 좋은 글을 부른다.
글을 잘 쓰려면 먼저 자신이 글을 잘 쓴다는 엉뚱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번역을 하면서 자신의 문장 실력을 높여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말의 동작, 제스처, 호흡을 잘 알아 볼 수 있을까? 방법은 딱 하나, 남이 써 놓은 훌륭한 글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읽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으면 그 글을 아예 통째로 베껴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연습하다보면 때때로 저자가 대필해 주는 느낌이 올 때가 있다. 이 때가 그 글의 리듬을 어렴풋이 깨우친 때이다. 어떤 글을 쓰려고 하느냐에 따라 문장의 리듬을 잡는 것이 달라진다. 강건한 메시지의 글을 쓰려는데 피천득의 <인연> 같은 리듬은 곤란하다. 이렇게 하여 어렵사리 리듬을 알게 되면 그 때에는 저절로 글을 잘 쓰게 될까? 사정은 그렇지도 않다. 제 딴에는 리듬감이 좋은 문장을 쓴다고 하더라도 독자가 그 리듬을 눈치 채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왜 독자가 눈치 채지 못할까. 글의 리듬과 주제가 따로 놀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면 그것을 머릿속에 오래 간직해 두고 절이는 기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맛도 나고 글쓴이 나름의 개성이 스며들게 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마지막 조언은 자기 글을 완전 남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피소드가 한편의 글이 되는 과정
글에는 글감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두 종류가 있다. 가령 출장 보고서 같은 경우는 글감이 미리 정해져 있다. 이런 글들은 글감을 위주로 앞뒤에 적당히 살을 붙이면 된다. 그러나 역자후기, 일반에세이, 개인 편지 등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글은 글감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개인의 기억에서 우리로 확장하는 글쓰기
대체로 글감은 기억, 생각, 정통의 세 군데에서 나온다.
기억을 글감으로 할 때에는 우선 오래 머릿속에 묵혀 두는 것이 중요하다. 엊그제 있었던 불쾌한 일이나, 며칠 전 들었던 일을 그대로 적으면 감정이 정화되지 않았거나, 이성적으로 판단해보지 않았기에 감정적 글이 되기 쉬워 독자를 설득하기가 어렵다.
두 번째 글감은 생각(외부현상을 관찰하는 힘)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글의 관심을 타인들, 혹은 더 많은 사람의 집단인 사회로 눈을 돌리고, 깊은 생각과 궁리를 해야 한다. 생각을 원천으로 하는 글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에 더 큰 주목을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통을 살펴보자. 전통의 계승은 풍성한 글쓰기의 원천이다. 기존에 있던 작품이나 사상을 변형하여 새로운 글을 써 내는 행위로서, 글쓰기의 좋은 밑천이 되어 왔다.
[Part 3 번역가로 사는 즐거움과 괴로움]
- 번역가의 길, 기다리지 말고 찾아 나서라
- 번역가의 첫 걸음, 계약서 쓰기
- 넉넉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번역만으로 생활하기
한 달에 1천매를 하려면 하루에 33매를 해야 한다. 33매는 단편소설 절반 정도의 분량이다.
매일 33매를 번역한다고 할 때 연 수입이 4천만 원 정도다.
한 달에 1500매를 번역한다면 수입은 연 6천 만 원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지금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ㄷ오하고 있는 어떤 번역가는 월 2천에서 2천 2백매를 꼬박꼬박 작업하여 해마다 수입이 1억 원을 넘는다고 한다.
- 장르 번역가 VS 전천후 번역가
뉴욕타임스 일요판에 의하면 한국은 체코와 함께 번역서의 비중이 세계 최고인 29퍼센트로, 중국 4퍼센트, 미국 2.6퍼센트, 일본 8퍼센트와 비교가 되지 않는 번역왕국이다.
- 숨 쉬듯 쉼 없이 하는 외국어 공부
- 살아있는 우리말로 번역하기
[Part4 번역의 실제]
-글쓰기 기술 8가지와 번역 연습
쓰는 사람은 자신의 글이 감동적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 믿음이 없으면 결코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독자를 감동시키려면 무엇보다도 진실한 사상과 보편적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해야 한다.
번역의 실제 1. 홍운 탁월 -빗대어 표현한 상징물 이해하기
홍운탁월은 달을 묘사하고자 하나 그것이 어려우므로 밝은 구름을 그려 달의 모습을 대신 보여준다는 뜻이다. 훤한 달을 그려봐야 그 빛의 효과가 별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구름을 어둡게 혹은 환하게 그려서 달빛의 상태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물을 그리려 할 때 그 대상을 직접 그리는 방식이 있고, 그것을 둘러싼 환경을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방법이 있는데 홍운탁월은 후자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비 오는 기차역에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여자는 그리움을, 모파상의 단편소설 <목걸이>에 나오는 마틸드의 잃어버린 목걸이는 여인의 허영을 표시하는 객관적 대상물이다. 관념은 보이지 않고, 사물은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물을 전면에 내세워 전달하고자 하는 관념이 독자의 머릿속에 새겨지도록 하는 것이다.
번역의 실제2. 이당취수 -비틀어 표현하여 반전효과
이당취수는 집을 옮겨서 나무 밑으로 가져간다는 뜻이다. 무더움 여름날 집 앞에 나무 그늘이 있으면 딱 좋겠는데, 아쉽게도 나무가 집 뒤에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 나무를 집 앞으로 옮겨올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글은 집을 허물어 나무 뒤로 가져가는 파격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야기의 흐름을 교묘하게 비틀어서 독자에게 서늘한 인식의 충격을 주는 기술을 말한다.
글쓰기는 결국 어떤 급격한 반전을 통하여 독자로 하여금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것이다.
번역의 실제 3. 월도회랑 - 접층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긴장감 높이기
월도회랑은 달이비치는 복도와 계단을 지나고 창문을 지나 비로소 방안의 어둠 속에 혼자 앉아 있는 미인을 비춘다는 뜻이다. 만약 달빛이 이런 전주곡 없이 곧바로 미인을 비춘다면 아름다움에 대한 정취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미인을 비추기 전에 무한히 끌면서 긴장의 강도를 높여갈 때 비로소 미인의 진면목을 실감나게 전달할 수 있다. 이를 수사법에서는 점층법이라고 한다.
너무 높은 음으로 시작하면 노래를 끝까지 부를 수가 없고, 동굴의 입구가ㅣ 너무 넓으면 그 내부는 상대적으로 좁게 보여 신비한 기분이 사라진다. 글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좀 수수하게 시작하여 뒤로 갈수록 강력해지는 것은 예로부터 멋진 글을 써나가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
달빛을 회랑에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은 기억을 상상력에 의해 숙성시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뒤의 기억이 앞의 기억을 수정하는 것을 기억의 사후성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인간의 상상력이 발휘되어 그 기억을 더 아름답게 수정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이 망각(수중)과 기억(수상)의 사이를 반복하면서 계속 기억을 아름답게 정화해 나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기억은 수중도 수상도 아닌 제 3의 지역에서 고정이 되는데, 이때가 바로 월도회랑의 때이다.
세계적 사진작가 헬무트 뉴튼에게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주변은 멀리 떨어진 장소보다 신비스럽고 더 많은 흥분을 안겨준다. 나는 뤽상부르 공원 가까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 자주 산책을 나간다.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대형 온실 옆을 지나게 되었다. 사람들이 거기에 앉아서 일광욕을 했다. 그곳은 뤽상부르 공원에서 가장 안락한 은신처였다. 그때 해바라기 꾼들 중 한 사람은 50대 여자였는데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검은색 양장 상의에 딱 달라붙은 스커트를 입었고 스타킹은 신지 않았지만 은색 높은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고 다리는 크게 벌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 옆을 지나가면서 기이한 광경을 목도했다. 그녀는 스커트 안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50미터쯤 걸어간 뒤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내 말을 믿지 않았고 그래서 다시 그 장소로 돌아가 상황을 확인시켰다. 아내는 얼른 집으로 가서 카메라를 가져 오라 했지만 나는 거부했다. 나는 현장을 찍는 사진기자가 아니다. 그 이미지를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언젠가 재현할 것이다. -헬무트 뉴튼, <자서전>
어떤 기억을 머릿속에 간직하여 오래 성숙시킬수록 그것은 더 절실해진다. 그 기억을 잊어버렸다가 어떤 우연한 계기에 의해 회상할 때 기억의 힘은 배가된다. 회상에는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한다. 헬무트 뉴튼이 그 여자를 재현한다면 노출증의 여자가 그렇게 된 과정, 혹은 뉴튼이 상상력 속에서 알아낸 과정을 암시하는 사물(소도구)을 제시할 것이다. 그 여자의 표면(노출증)과 내면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기억 혹은 그 기억의 등가물)을 조응시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상력이 기억의 긴 복도를 통과하는 월도회랑이다.
번역의 실제4. 묘처부전 - 생략함으로써 상상하게 만들기
묘처부전은 작품의 진짜 포인트는 말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말을 과감하게 생략하여 독자로 하여금 짐작하게 만드는 요령이다.
송대의 문장가 소동파는 두텁게 공부하여 가볍게 드러내고, 많은 책을 읽어서 요약을 잘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동파는 이것을 부자의 농사에 비유하고 있는데, 부자(학자)는 땅(지식)이 많아서 일부 땅(지식)은 쉬게 했다가 경작을 하여 소출이 많은 반면, 빈자는 오로지 하나의 땅에서만 농사를 짓기 때문에 소출이 적다는 것이다. 일단 많은 것을 공부하여 지식을 쌓고 그 다음에는 아는 것을 다 드러내지 말고 조금만 드러내면 묘처부전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번역의 실제5. 열거함으로써 강조하기
열거하기는 어떤 주제와 관련된 사항들을 계속 나열하여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글쓰기 요령이다. 대표적인 문장으로는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안톤 슈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피천득의 “나의 사랑하는 생활”, 김성탄의 “인생의 가장 유쾌한 일 33가지”등이 있다. 그런데 주제와 관련되기만 하면 아무 사항이나 다 열거해도 될까.
번역의 실제6. 청진한실 - 판타지로서 진실 말하기
‘청’은 참신한 것을 뜻하는 바, 남이 한말을 따르지 않고 남이 한 말을 줍지 않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상투적인 발상을 가지고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으려 할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하여 기발한 소재를 가져와야 한다.
‘진’은 저자가 하려고 하는 말을 저자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은 여유 있는 정취를 말하는 것인데 방 속의 고요하게 가라앉은 마음에서 나오는 한유한 기분을 말하는 것으로, 음조가 약간 낮으면서도 그 속에 거대한 함성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작가는 얘기하려는 소재로부터 약간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 소재는 지금 눈앞에 벌어진 일이라기보다 기억 속에서 다시 회상된 어떤 것이어야 한다.
‘실’은 충실포만을 의미하는데 말은 끝이 있지만 뜻은 그 끝이 없다. 이것은 좋은 시는 눈앞의 풍경을 그리면서도 뜻은 말 밖에 있어 말은 끝나도 그 맛은 끝나지 않는다라는 익제 이제현의 시론과 같은 경지라고 생각된다. 말은 반드시 충실하면서도 쉬운 말을 써야 한다. 글을 충실하게 만드는 것보다 글을 쉽게 쓰는 것이 더 어렵다. 이것이야말로 이른바 심입천출(깊게 들어가서 얕게 나옴)의 수련이 된다. 다시 말해 어떤 사물을 정말로 깊이 있게 안다면 그것을 아주 쉽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번역의 실제 7. 몽타주 -서로 다른 것을 엮음으로써 강렬한 메시지 전달하기
번역의 실제 8. 증신 두항설 -모방을 거쳐 독창적으로 글쓰기
버지니아 울프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대해 그는 증오(증), 신랄함(신), 두려움(두), 항의 (항), 설교(설)가 없는 글을 쓴다. 셰익스피어 또한 그런 방식으로 글을 썼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창조적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산 남의 글을 보고서 그것을 베끼든 번역하든 모방해 보는 것이 글쓰기의 시작이다. 이렇게 하여 어느 정도 요령을 익히면 그 다음에는 자신의 생각을 가미해 나간다. 이런 모방과 창조의 과정을 되풀이 하다보면 훌륭한 글을 쓰게 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글쓰기를 잘 하면 번역을 잘 하고 번역을 많이 하다보면 자연 글쓰기의 요령을 익히게 된다. 이것은 자기도 모르게 이 모방과 창조의 과정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독자들도 이 연습 문제들에서 그런 모방작업을 체험하기 바란다.■
[Review]
텔레비전 프로에서 전문 요리사들이 빈약한 식재료를 가지고 멋진 음식을 단시간에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오랜 시간 한 분야에 종사해서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게 된 사람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일반인들보다 남다른 통찰력이 있다. 번역 일을 하는 작가 이종인씨는 글 쓰는 일과 번역분야에서는 누구보다도 전문가다. 15년 동안에 외국어 서적 140권을 우리말로 번역 하였고 매수로는 원고지 20만 매가 넘는다고 했다. ⋆(2009년 이 책이 발간될 당시기준) 대학에서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하였다. 이 책속에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번역과 글 쓰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가 들어있다.
가끔 외국어 서적을 우리말로 번역한 원고의 초안에 대한 교정을 보아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가 있다. 대체로 문맥연결이 부자연스럽다거나 탈자, 오자를 보는 정도이지만 어떤 표현에 있어서는 윈 작가가 굳이 이렇게 표현 하지 말았으면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번역가 의 입장에서는 원작가의 표현을 마음대로 바꾸는 일에는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원문의 뜻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과감하게 바꾸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려면 원작가의 표현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어야하고 또 글 표현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작가는 그것을 '번역은 글쓰기'라고 말한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네 파트로 나뉘어 있다. 첫째, ‘번역가로 살기 위한 조건’에서는 번역가로서 갖추어야 할 인성과 자신을 다스리는 법 12가지를 소개했다. 둘째, ‘좋은 번역가가 되려면 글쓰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굳이 번역가가 아니라도 글을 쓰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소중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셋째,‘번역가로 사는 즐거움과 괴로움’에서는 번역가로서 경제적인 소득과 약간의 애환의 글이 담겨있다. 하루 꼬박 원고지 33매를 번역한다면 단편소설 절반에 해당되는 분량으로 연봉이 4천만 원 정도라고 한다. 그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번역 일이 쉬운 직업은 아닐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번역서의 비중이 29 % 인데, 이 수치는 미국 2.6%, 중국 4%, 일본 8% 에 비해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한다. 넷째, ‘번역의 실제’에서는 글쓰기 연습 8가지와 번역 연습을 위한 실 예를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번역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글감의 선택이나 구성 표현의 기법에 대한 조언들이 시중에 쏟아져 나오는 다른 책들에 비해 남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언어구조가 다르고 문화적 감정이 다른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을 작가는 네모와 원을 포개어 맞추는 작업이라고 했다. 똑같이 네모로 해서도 안 되고 모서리를 아예 잘라내어 원으로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문에 너무 도취해서 압도되거나, 자신의 글 솜씨를 너무 자만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이것을 이병기 선생의 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에 나오는 등장인물 최천중이 무녀와 정을 통한 사람 모두가 죽었는데 용케도 그만 살아남았다는 비유에 표현한 대목도 재미있다.
“원문은 번역가를 도취하게 만든다. 원문은 너무나 강력한 힘이어서 자칫하면 속아 넘어가기 쉬운 사이렌이요, 히드라이다.-본문-”
독자와 작가를 야구에서 타자와 투수로 비유해서 둘 사이에 벌어지는 신경전처럼 스릴이 있어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축구에 비유해서 두 팀 사이에 벌어지는 패스를 독자와 작가를 연결시켜주는 문장으로 비유해서 서로 치밀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결정적인 골에서 일어나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비유도 재미있다.
그러나 번역은 곧 글쓰기라고 했기에 원문에 충실 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진정한 전문가는 자기만의 독창성을 나타내되 원래의 고유의 특성까지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 때 걷 모양이나 맛도 중요하지만 몸에 이로운 음식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과 같다. 번역이 진정한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오랜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서 저자와 같은 사람이 얻어낸 통찰력이라 하겠다. ■
[본문]
“네모꼴을 동그라미에 겹쳐놓으면 서로 배척하는 부분이 생겨나듯, 외국어와 모국어는 아무리 일치 시키려 해도 포섭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하여 단어와 문장의 옮겨오기에서 진일보하여 아이디어의 번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어떤 단어를 골라야 할까, 어떻게 표현하면 더 좋을까. 이 경우 어휘의 선택을 도와주는 것은 번역가의 해석에 달려 있다. 바로 여기에서 ‘번역가의 자유’라는 재량권이 인정되고 이 때문에 ‘번역은 글쓰기’라는 명제가 성립된다.”
“번역가의 자유와 의무는 원문의 흐름과 뜻을 잘 전달했는가 로 최종 판단해야지, 원문에 없는 것을 넣었다, 혹은 있는 것을 뺐다는 기계적인 기준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번역가는 번역 기계가 아니다. 백퍼센트 기계적 대응은 불가능하다. 자연스럽게 번역가의 개성이 번역서 안에 스며들게 되며, 번역가의 글쓰기가 작용 하게 된다.”
“원문 파는 가능한 충실하게 원문을 번역하는 것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원문 파는 원문에 없는 것 넣지 말고, 있는 것 빼지 말자는 원칙을 고수한다.”
“자유파는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지나치게 원문에 충실한 나머지 오히려 번역문이 잘 읽히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이에 대해 원문파는 원문도 살리면서 번역문도 한국어답게 하면 더욱 좋은 것이 아니냐고 응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