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바람처럼
사람의 일이란 알 수가 없다. 내가 어떤 일을 왜 하는지, 그 일을 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그 일이 나에게 혹은 남에게 도움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도 알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날은 영 형편없는 삶을 산다는 생각이 들어 삶이 시큰둥하다가도, 어떤 날은 이렇게 훌륭하고 재미있는 삶이 또 있을까 하는 상반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시쳇말로 인간이 간사스럽다 하는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까지도 가슴에 뭔가 얹힌 것처럼 답답하더니 일순간에 체증 내리듯 시원해졌다. 무슨 일이든 잘 안 풀리고 해결될 기미조차 안 보이면 늘 일어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체증이 내리는 것도 그 일이 꼭 잘 풀려서가 아니라 마음을 바꿔 생각을 고쳐먹은 연유에도 있다.
세상에 견디지 못할 일은 없다. 단지 그 일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어려움을 어떻게 견디느냐는 것인데 차분히 앉아서 일의 선후와 내용을 잘 가다듬어 보면 그리 매듭이 옭매여진 것도 많지 않다. 그저 빨리 풀려고 허둥대니 더더욱 옭매여지는 것이다. 그 매듭이란 게 알고 보면 욕심과 이기심인 듯하다. 욕심을 버리고 만사 다 포기하면 걱정될 만한 일이 뭐 있겠는가.
최근에 일 하나가 영 빗나가버려 내년 살림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잘 될 줄 알았던 일인데 그리 되고 나니 마음도 불편하고 아쉽게 되었다. 한편 생각해 보면 거래처에서 그 동안 받은 과분한 대접에 대해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 원망하고 실망할 일만도 아니다. 그들도 나와의 줄곧 된 거래에 무슨 문제가 없었을 리 없고, 다른 거래를 해야 할 이유가 생겼을 수도 있지 않은가.
올해 안 되었다고 해서 내년에도 잘못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참고 기다리며 차분하게 내년을 준비한다면 더 좋은 결과가 돌아올 것이 틀림없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왜 생겼겠는가. 이 참에 다른 일에 몰두할 시간이 생겼으니 그 또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잘 된 일이다.
다른 하나는 근자에 어떤 이와 문제가 생겨 틈이 벌어졌다. 그게 나로부터 생긴 문제만도 아니고 그로부터 기인한 것도 아니다. 그저 운명이요, 팔자라고 표현한다면 너무 무책임한 말인지는 몰라도 달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없으니 그리 알고 있는 게 오히려 편하겠다. 내가 잘못했다고 한다면 그리 알면 그만이고, 상대가 잘못했다고 해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훗날 돌이켜 생각해 보고 후회를 하건 반성을 하건 그때 가서 그리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세상 편하고 마음이 가볍다.
차라리 끼니때마다 아버지 얼굴을 올려다보는 일이 더 힘들다. 수저 드는 것도 힘들어 하시는 눈치다. 음식을 씹어 삼키는 일도 힘에 부치는지 가끔 숨을 몰아쉬시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하고 아버지가 딱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또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해 볼 수 없는 자연의 순리니 그저 바라만 본다. 뭘 해드려야 기운이 번쩍 나고 원기가 돌아올지 몰라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가끔은 이제 세상구경 많이 하셨으니 그만 영면에 드셔서 편히 쉬셨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아침에 일어나 아버님의 주무시는 모습을 뵈면 마음이 놓이지만, 내가 이렇게 자꾸만 욕심을 부려도 좋은 것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어제는 외증손자의 백일에 다녀오셨다. 당신의 몸 형편으로 보아서는 안 가시는 게 좋지만, 언제나 집에만 계시니 심지어는 병원나들이도 좋아하시는데, 외증손자의 백일잔치에 빠진다면 얼마나 서운해 하실까 생각하고 모셨다.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애 백일이 언제냐고 물어 오실 것이 빤한데 그때 가서 지났어요, 라고 대답하기는 차마 용기가 없었다. 아버지는 어린것과 함께 사진을 한 장 찍겠노라고 하셨다. 훗날 아이에게 외증조부의 모습을 남겨두고 싶었던 것일 게다.
만사 조급할 것도 없고, 일희일비할 것도 없다. 그걸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순간적으로 조급하게 되고, 일희일비하게 되니 아직도 멀었다. 도를 닦겠다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편하게 살자니 뭔가 딱 부러지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 마련이 마땅치 않으니 해보는 소리다. 엄벙덤벙 살려고 하니 그건 더 두렵다. 무슨 일인가 맞닥뜨렸을 때 감당이 안 되고 그저 서성거리기만 할 게 빤하기 때문이다. 나잇살이나 들어서 그러는 것도 보기가 좋지 않다.
그저 물길이 나면 그리 흐르고, 바람 길이 생기면 그리 몰려가는 물이고 바람이면 좋겠다. 그러다 때가 되어 스르르 사라지면 제 할 일 하고 제 갈 길 간 것 아닌가. 사람간의 일이라는 게 일방적인 것은 없다. 그러니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고, 어찌 행동하건 참견치 말고 나만 바르고 옳게 살면 될 법한데 그게 그리 잘 되지 않는다. 누구 나무랄 것도 탓할 것도 없다. 주절대며 아는 척해보아야 실제와 다르니 말이다. 그렇다고 입을 꽉 다물고 사는 것도 잘하는 일만 같지는 않다. 그걸 교육이라고 해야 하나, 충고라고 해야 하나? 그게 어렵다.
내 갈 길도 바쁜 마당에 남의 일까지 참견하고 나서면 오지랖 넓다는 소리 아니 들을 라야 아니 들을 수 없다. 참 어려운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래도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그럭저럭 근자의 일을 해결하고 넘어간 것 같아 마음이 좋기는 하다. 이런저런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 역시 두루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다. 이익이 반이면 손해도 반이다, 라고 생각하고 사니 마음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