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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애틀 근처, 올림피아 市에 있는 유태교 지도자 랍비가 쓴 글: 미국 유태인 사회에 공감을 받고 있다.
WILL YOU SWEEP AWAY THE INNOCENT?
죄 없는 사람들을 쓸어버리시렵니까?
I find some of the most heartfelt, searing, and enduring words in the Torah to be found in this past week’s parasha:
나는 지난 주 파라샤에서 가장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흥분 시키며 여운이 이어지는 토라의 말씀을 발견했다.
*parasha:안식일이나 제사날에 유대 교회에서 일과 로 읽혀지는 율법의 한 부분
“Will you sweep away the innocent along with the guilty?”
“죄 있는 사람과 함께 죄 없는 사람까지도 쓸어버릴 생각이십니까?”
These words are found in the story of the impending destruction of Sodom and Gomorrah in Genesis 18. God has decided that the wickedness of these cities warrants their destruction. (After having destroyed the entire world two portions ago, I guess God is now narrowing focus and will destroy city by city.) But God feels that because there now exists a formal bond—a covenant—with Abraham, God can not withhold this information, and must tell Abraham of the plan in the spirit of honesty and open communication that is the foundation of any healthy relationship.
이 말은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멸망이 임박한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 나온다. 하느님은 이 도시가 사악함으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할 만하다고 결정했다. (그 전에 전 세계의 두 부분을 파괴하고 나서 이제 하느님은 초점을 맞춰 도시별로 파괴할 거라고 나는 짐작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십계)이라는 공식적인 유대관계가 있었기에, 어찌 되었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말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면에서 모든 건강한 관계에는 정직함과 열린 소통이 기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In response to hearing this news, Abraham, standing one-on-one with God, draws a step closer and says these words, “will you destroy the innocent along with the guilty?”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의 반응은 하느님과 일대일로 맞서며 또 한 걸음 더 다가가서, 이런 말을 한다. “죄 있는 사람과 함께 죄 없는 사람까지도 쓸어버릴 작정이십니까?”
Abraham then begins to famously negotiate with God and implores God not to destroy the cities if 50 innocent people can be found within them. The back and forth continues—Abraham also charges God, “should not the Judge-of-All-the-World act justly?”—until God has agreed that should Abraham find ten innocent people living in the cities, then they will not be destroyed.
아브라함은 잘 알려진 대로 하느님과 협상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도시에서 50명의 죄 없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멸망시키지 말 것을 간청한다. 아브라함과 하느님 사이에 문답이 오고 가기를 계속하는데-아브라함은 하느님에게 “세상 만사를 심판하는 당신께서 하시는 일이 정의로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결국 아브라함이 10명의 죄 없는 사람을 찾는다면 멸망시키지 않겠노라고 하느님은 동의했다.
The text is silent about how Abraham goes about this undertaking. What we do know is, according to the Torah, the cities were destroyed, so we can assume that Abraham failed.
텍스트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 일(10명의 죄 없는 사람을 찾아내는 일)을 진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토라에 의하여 우리가 아는 바는 두 도시는 멸망했고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실패했다고 여긴다.
However, what is interesting is that by not focusing on Abraham pursuing this task, and by treating the fact of the destruction as almost an afterthought, a sidenote, the text seems to want to put the emphasis on the dialogue with God and the arguments made. The text wants us to pay attention to Abraham’s words and intentions. And by doing so, we can understand that if these are the arguments that Abraham makes with God, then these are the arguments that we must make with God. We, like Abraham, must be concerned with justice and with the innocent.
어쨌든 재미있는 점은 아브라함이 이 일을 추진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멸망이라는 사건을 거의 추가된 것이나 각주로 붙인 것 같이 취급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하느님과의 대화와 논쟁에 강조점을 두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텍스트는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말과 의도를 주목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아브라함이 하느님과 논쟁하듯이 우리도 여기에서 하느님과 논쟁해야 한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는 정의와 죄 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So many of us have been in so much pain over the events of the past month. Since the initial murderous Hamas attack that also resulted in the capture of hostages, and now with the Israeli response creating a staggering death toll in Gaza, including thousands of children, the violence and humanitarian crisis has been horrific and heartbreaking.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지난 달부터 벌어진 사건으로 큰 고통 속에 처해 있을 것이다. 처음 살인적인 하마스의 공격 이래로 인질로 붙잡히는 결과를 낳았고, 이제 이스라엘의 반격으로-수 천 명의 어린아이들을 포함한-가자 지구의 사망률이 깜짝 놀랄 만큼 늘어났다. 폭력과 인도주의적인 위기는 끔찍할 정도로 가슴이 아플 지경이다.
There are both no words and many words to describe how we are feeling. We have been stunned into silence because of anger, fear, and sadness. And we have made pleas, argued vociferously, shared articles and analysis.
우리의 감정이 어떠한 지 표현할 말이 없기도 하고 또 많기도 하다. 우리는 분노와 두려움과 슬픔으로 어리벙벙하여 말을 잊었다. 그리고 우리는 탄원하고, 소리를 높여 논박하기도 하고, 기사와 사태분석을 나누기도 하였다.
Recently I tend to find myself in the “stunned silence” camp. It is hard to find the right words, especially since we put so much meaning (and manipulation) into phrases and use words against each other. What I can articulate is what I want, right now, for Israel and Palestine and us:
최근 나는 자신이 “어리벙벙한 침묵”하는 진영에 갇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서로를 향해 쏟아내는 문장과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바른 말을 찾기가 어렵다. 내가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다. 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나 자신에게 지금 이렇게 되기를 원한다.
I, like Abraham, want to argue with God.
나도 아브라함같이 하느님과 논쟁하기를 원한다.
I want the hostages to be returned.
나는 인질들이 돌아오길 원한다.
I want the fighting to cease.
나는 전투가 중지되기를 원한다.
I want corrupt governments to be replaced.
나는 부패한 정부가 교체되기를 원한다.
I want occupation to end.
나는 점령이 끝나기를 원한다.
I want people to be uplifted.
나는 사람들이 높이 대접받기를 원한다.
I want the healing of past trauma.
나는 트라우마가 치유되기를 원한다.
I want the end of all hatred, especially antisemitism and Islamophobia.
나는 모든 증오, 특히 반-유태주의와 이슬람 혐오가 끝나기를 원한다.
I want survival.
나는 생존을 원한다.
I want a future that is free, secure, peaceful, prosperous and hopeful.
나는 자유롭고, 안전하며, 평화롭고, 번영하며, 희망이 넘친 미래를 원한다.
I want a heart big enough to hold the many and not privilege the few.
나는 소수의 특권층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을 포용하는 큰 마음을 갖기를 원한다.
I want the Judge-of-All-the-World to do justly.
나는 세상 모든 걸 심판하는 심판관이 정의롭게 행동하기를 원한다.
I want the innocent to not be swept away.
나는 죄 없는 사람들이 쓸려 나가지 않기를 원한다.
And I want us to remember one of the most basic tenets of Judaism and perhaps all spiritual traditions: that we must be concerned with and support the most vulnerable among us. That we align ourselves with the people who are hurting and in need. Whether those people are in Israel, in Gaza, or here in Olympia, we must seek to—as the prayerbook says—“raise up those who are low.”
그리고 나는 유대교뿐만 아니라 모든 영적인 전통에서 기본 교리인 우리 가운데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도움을 주라는 것을 기억하길 원한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과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과 손을 잡는 걸 말한다. 그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있거나 가자지구에 있거나, 혹은 여기 올림피아 市에 있거나 간에-기도책에 나오듯이-낮은 사람들을 높이 들어올려 줄 방도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It is natural and necessary for us—like Abraham—to be primarily concerned with our own family, our own people, those with whom we share a common history. It is also important for us—like Abraham—to be concerned with others, those with whom we share a common future.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자기 가족과 자기 민족, 공통된 역사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필요한 일이다.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다른 사람들, 우리가 미래를 함께 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 또한 중요하다.
I also want us to not lose our humanity. Sometimes our pain and grief are so great about events far from us that we fail to treat well those who are near to us. We judge, we disrespect, we reject. In the face of these events in the Middle East where people’s lives are being devalued, we must not continue that cycle in our own community. We lose our humanity when we are unable to see the humanity in others. We lose our humanity when we, through word or deed, treat others as not worthy of love and respect. We lose our humanity when we are unable to generate empathy for those who are not us.
나는 우리가 인간성을 잃지 않기를 원한다. 가끔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곳에 벌어진 사건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이 너무 커서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잘 대접하지 못할 때가 있다. 우리는 타인을 재단하고 존중하지 않으며 거부한다. 사람들의 삶이 평가 절하되고 있는 중동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직면하여 우리는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그런 악순환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타인에게서 인간성을 볼 수 없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간성을 잃게 된다. 우리가 말로나 행동으로 사랑과 존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듯이 타인을 대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을 잃는다. 우리 편이 아닌 타자들에 대해 공감을 일으킬 수 없다면 우리는 인간성을 잃은 것이다.
So let us, like Abraham, take care of each other.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서로를 돌봅시다.
Let us, like Abraham, think about the most vulnerable.
아브라함처럼 가장 연약한 사람들을 생각합시다.
And let us, like Abraham, lift up our voices to God.
아브라함처럼 하느님께 우리들의 목소리를 높입시다.
첫댓글 🌜나무 관세음보살🌛🙏😌
아브라함과 하느님과의 담판! 저도 20대에 왜 인과응보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냐고 신에게 떼쓴적이 있어요 ㅋ 삐툴어진적도 있구요. 세상에 죄없는 자가 누가 있을까요..
어제 처음 본건데,
여수에서 환경 설치 미술을 하시는 최병수 작가님의 작품이래요.
그분이 성당에 갔다가,
세상의 모든 십자가상의 못을 빼는 상상을 하며 만든 작품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