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250편
* 한국 불교(韓國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訟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현)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歷史的)
문헌 기록상(文獻記錄上)
오도송(悟道頌)을
가장 먼저 남긴 이(僧侶)는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禪師)
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구분이 부질없는 일임에야
사람들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은 슬퍼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을
올려놓으니
그 깊은 뜻이야
어찌 우리가 모두 다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마는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기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韓國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
각심(覺心,
깨달음의 마음)
範圍天地大 범위천지대
絶對有何倧 절대유하종
可笑觀心者 가소관심자
量空又繫風 양공우계풍
돌아보니 천지는
삼천대천세계
견줄 수 없는 마음
어떻다 말을 할 수 있으리.
이렇게 맑고 밝고
깨끗한 깨달음의 마음
그 크기와 무게를
차마 어떻게 논(論)하리.
"
"
심등화(心燈花,
마음에 등불로 피운 꽃)
歷劫傳傳無盡燈
역겁전전무진등
不會桃別鎭長明
불회도별진장명
任他雨灑兼風亂
임타우쇄겸풍란
漏屋虛窓影自淸
루옥허창영자청
역사의 영겁(永劫)을 따라
끝다함 없이 밝혀온 등불
꺼지고 켜짐도 없는
아름다운 밝은 빛(光明 지혜)
삼라만상을 깨끗이 할
청아한 바람 일어난다.
타락된 선실 허공의 창에 비친
나의 맑고 맑은 마음이어라.
"
"
자연(自然)을
뛰어넘고 초월(超越)하는
선사(禪師 佛祖師)의 깨우침은
청아(淸娥 청정)하다 못해
생멸(生滅)조차도 없어 보인다.
당시 쇠잔해지는
지리(智理 지혜 도리)의 등불에
불을 켠 선사(함월선사)는
삶에 있어서
허망(虛妄 속에 내재한
진실(참되고 참 된 진실)된
그 무엇(眞如眞理)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觀心)을 갖고
이(진여진리)의 구현에
힘쓰라고 가르쳤다.
선사(함월선사)께서
깨우친 혜안(慧眼 지혜의 눈)은
현종(玄宗,
현묘(玄妙)한 종지(宗旨), 즉
부처님(여래, 佛, 世尊)의
통각(通覺))이다.
세속적(世俗的)
물욕(物質 욕망 탐진치)에서
벗어나
언제나
맑고 밝고 깨끗하며
청아(淸娥)한 삶을 살라는
선사(함월선사)의
가르침은 오늘날까지
미혹한 중생들의
정신적(精神的) 지주(기둥)가
되고 있다.
선사(함월선사)께서는
“
가장 행복한 삶은
어떻게 사느냐 ?
”
라는 질문에
언제나
다음과 같이
답(答)하였다.
終日忘機坐 종일망기좌
諸天花雨飄 제천화우표
生涯何所有 생애하소유
壁上掛單瓢 벽상괘단표
세상일 모두 다 잊고
고요히 앉아있노라니
천지어는 온통 모두가
분분한 꽃과 비(花雨) 뿐이네.
내게(수행자에게) 있는 건
다만 벽에 걸린 표주박 하나뿐
– 함월선사 –
"
"
무일화(無一花, 한 꽃도 없다,
즉, 한 물건도 없도다(無一物))
一念不生全體現
일념불생전체현
此體如何得喩齊
차체여하득유제
透水月華虛可見
투수월화허가견
無心鑑象照常空
무심감상조상공
洞中流水如藍染
동중류수여람염
門外靑山盡不成
문외청산진불성
山色水聲全體露
산색수성전체로
箇中誰是悟無生
개중수시오무생
한 생각도 나지 않으면
전체(全體)가 나타나려니
이 본체(본래면목 自性)를
어떻게 말(說) 할 수 있으리요.
투명한 물 속 빛나는 달빛은
허공(虛空)에서도 볼 수 있으나
무심(無心)의 거울(鏡)은
비추어도 항상 허공(空)이로다.
골짜기를 가로질러 흐르는 물은
쪽물(푸르름)에 물들인 것 같고
문(門) 밖의 청산(푸른 산)은
스스로 다함없이 그대로이다.
산색(山色 산 빛), 물소리에
전체(全體 일체)가 드러났으니
그 속에서 무생(無生, 모든 법의
실상은 생멸(生滅)이 없는 것)의
깨달음(無上正覺)을 얻었노라.
"
"
선관(禪觀,
선(Zen)의 지관법(止觀法))
黃面瞿曇不良久
황면구담불량구
室中維摩亦不默
실중유마역불묵
恰似吹毛新發硏
흡사취모신발연
外道天魔 處不得
외도천마처불득
금빛 얼굴의 부처님(佛 세존)은
유구한 세월(歲月)도 없나니
방장실의 유마힐 거사도
결코 침묵(沈默)하지 않도다.
선(禪 Zen)의 본바탕(根本)은
새로이 연마한 취모리(吹毛利)
번개같이 빠른) 검과도 같으니
외도(사마외도)와
천마(天魔 하늘의 마구니)도
차마 넘보지 못한다네.
– 백운선사 –
"
ㅡㅡㅡㅡ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ㅡㅡㅡㅡㅡㅡㅡㅡ
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