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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장29-31
여호수아의 생애를 통해 주시는 교훈
축복은 참 좋은 말입니다.
하나님은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리스도인의 행복과 축복을 모두 받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여호수아는 특별히 몇 가지의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선 신분, 지위, 일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본래 에집트의 노예입니다. 그런데 출애굽 후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장군으로 세워주셨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는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고, 그곳에서 여러 지파들에게 땅을 나누어주는 복된 일을 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인이 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스라엘의 지휘관으로 전쟁을 할 때마다 이기고, 이스라엘의 존경받는 최고 지도자가 되고, 세상적인 일이 아닌 하나님의 대역사(大役事)에 참여했다는 것은 매우 큰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축복은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인복(人福)을 주셨습니다. 항상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모세를 만나게 하시므로 모세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면서, 모세의 인격과 인품을 배웠고, 영적 생활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지도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주위에 좋지 않은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모세와 비교를 해보면 대조가 됩니다. 모세는 위인 중에 위인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대표적인 두 사람의 인물을 선택하라면 모세와 다윗이고, 세 사람을 선택하라면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입니다. 그 중에서도 한 사람을 선택하라면 모세입니다. 모세는 모든 면에 하나님께서 가장 크게 쓴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항상 사람 문제로 고통과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킬 때에 바로와 큰 씨름을 했습니다. 출애굽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의 대상이었습니다. 친 형제인 아론과 미리암도 모세에게 도전을 하였고, 고라 일당으로부터 반역을 당하기도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면서 거의 하루도 편한 날이 없을 정도로 사람 관계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당했는데, 여호수아는 평생 그를 괴롭힌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로부터 대권을 위임받은 후 여러 지파의 지도자들이 모두 여호수아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따랐고 존경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축복도 받았지만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축복입니다. 회사에서나 교회에서나 밖에서나 가정에서나 좋은 분들이 곁에 있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받은 또 하나의 축복은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복입니다. 시작이 좋고 과정이 좋다 할지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모두 좋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수아는 110세까지 사는 장수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장수하는 동안 아픈 적이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죽기 직전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마이크도 없이 그들이 모두 들을 정도의 설교를 할 수 있는 건강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육적인 축복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축복도 받았습니다. 노년이 되면 몸이 아픈 것도 걱정이지만 더한 걱정은 치매 같은 의식이 없어지는 병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정신이 맑았습니다. 거기다가 영적인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마지막까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한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노년에도 하나님의 인정과 백성들의 신뢰를 받는 아름다운 생애를 사는 축복을 받습니다. 대부분 나이가 들면 추하게 늙는 것을 걱정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좀 더 우아하고 아름답고 인격적으로 늙어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모든 면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한 사람입니다. 마무리는 인생의 끝만이 아니라 그때 그때마다 주어집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일반 직장, 장년, 노년의 여러 단락이 있는데 단락을 매듭지을 때마다 여호수아처럼 유종의 미를 거두는 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여호수아가 어떻게 이와 같은 큰 축복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절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큰 복을 받은 이유가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축복하시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신실한 삶을 사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여호수아는 신실한 삶은 산 모범적 인물입니다. 군의 지휘관으로 아말렉과의 전투를 비롯한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신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출애굽 후 그의 신분은 노예가 아닌 지휘관입니다. 그럼에도 모세의 수종자로 모세의 육신적인 필요를 돌보는 일까지 하면서 모세에게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회막을 떠나지 말라고 할 때 회막을 끝까지 지키는 순종의 사람입니다.(출33:11)
여호수아는 정탐꾼으로서도 신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한 후 열사람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보고를 합니다. 더 나아가 백성들을 선동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두 울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모세를 등지려고 합니다. 그 때에 갈렙과 더불어 여호수아는 긍정적인 발언을 하므로, 백성들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줍니다. 이스라엘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야구선수 중 연패를 많이 한 투수가 있는데 심수창 선수입니다. 심수창 선수는 LG에서 넥센으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그런데 심수창 선수가 넥센으로 이적한 후 두 번 승리를 하게 되어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인터뷰 중에 그는 ‘계속 패해서 힘든 중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여호수아가 성공적이고 행복하고 축복된 인생을 살게 된 것은 그가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자기의 직무에 최선을 다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신실하게 사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에서 용인으로 이사를 간 집이 있어서 심방을 했습니다. 그 분은 평상시에도 신실하다는 느낌을 주는 분입니다. 자신의 삶에도 신실하고, 아들이 넷인데 자녀들을 키우는데도 신실하고, 남편에게도 신실하고, 믿음 생활도 신실하고, 교회에서 맡겨진 직무에도 신실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맡은 속회가 부흥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분입니다. 심방을 갔는데 마음이 상당히 기쁘고 좋았습니다. 심방하면서 제가 가 본 집들 중에 그 집처럼 아름답고 예쁜 집을 보지 못했습니다. 마치 남진씨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하는 노래에 어울리는 집 같았습니다. 앞에는 나무와 잔디밭이 잘 배열된 정원이 있고, 마당 앞에는 바위로 만든 조형물까지 있는 작은 냇가에 물이 흐릅니다. 시적인 감흥이 일어나는 집입니다. 여름이 되어 강원도의 펜션으로 휴가를 가면 하루 빌리는데 몇 십 만원씩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 가정은 펜션보다 훨씬 좋은 곳에서 사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 집에서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아이들과 다복한 생활을 합니다. 예배 후 커피를 준비하는데, 집사님이 입은 옷차림이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에 나오는 비비안·리 같아 보였습니다. 집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것입니다. 그 집사님에게 주어진 축복이 그동안 신실하고 성실하게 산 결과인 것 같습니다.
누구의 삶이든 인내하면서 신실한 삶을 살 수 있다면 하나님은 안식과 쉼, 좋은 환경과 여건을 선물로 주시는 분임을 믿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주어진 여건에 감사하면서 신실한 삶을 사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세익스피어(Shakespeare)가 쓴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이 포샤(Posha)라는 여인입니다. 매우 아름답고 재산이 많은 여인입니다. 그러다보니 명문 출신의 유명한 청년들이 앞을 다투어 청혼을 합니다. 모두 좋은 남성들입니다. 그 중에서 누구를 결정할지 고민하다가 한 가지 묘책을 고안합니다. 이 여인은 세 사람을 선정해서 ‘세 사람 중에 한 사람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여기 상자가 세 개있는데 모든 상자마다 글을 써놓았는데, 그 중의 한 상자에만 저의 초상화를 넣었습니다. 그 초상화가 있는 상자를 고르는 사람과 결혼을 하겠습니다’ 합니다. 하나는 은상자, 또 하나는 금빛 찬란한 금상자, 그리고 납상자였습니다. 각 상자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은상자에는 ‘나를 선택하는 사람은 그가 받을 자격만큼 얻을 것입니다’라는 글이었고, 금상자에는 ‘나를 선택하는 사람은 남성들이 열망하는 것을 얻을 것입니다’ 였으며, 납상자에는 ‘나를 선택하는 사람은 자기의 소유를 모두 버려야 하고 불어닥칠 위험을 각오해야 합니다’라는 글입니다. 상자에 쓰여진 글을 읽은 후 A라는 남성은 은상자를. B라는 남성은 금상자를, C라는 남성은 납상자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각자 상자를 열어보니 은상자와 금상자에는 초상화가 없는데, 납상자에는 상자를 연 사람을 향해 환하게 웃는 포샤의 초상화가 들어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바싸니오라는 사람입니다. 포샤는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삶인가를 아는 사람과 결혼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곧 신실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도 참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면서 신실하게 사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절대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것이 신앙입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와 같이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합니다. 여호수아는 나팔을 불면서 여리고성을 6일 동안 돌라고 하실 때 미련해보였지만 순순히 순종을 했습니다. 그것이 여리고성을 정복한 비결이 되었습니다.(수6장) 이스라엘이 아이성 공략을 할 때 실패했습니다. 그 때에 다른 것에서 원인을 찾지 않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철저히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후에 아이성을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준행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끝까지 하나님만 섬긴 사람입니다.
그의 고별사를 보면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실 줄 믿었기에 절대적인 신앙을 갖고 살았습니다.
며칠 전에 목요제자반과 함께 인제 내린천으로 래프팅(rafting)을 다녀 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운동을 보는 것은 좋아해도 실제로 하는 것은 덜 즐겨합니다. 목사님들의 모임에서도 운동하는 곳에 함께 따라 가서 구경은 하지만 직접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본 교회 집사님들이 적극적으로 권면하여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래프팅을 했습니다. 세 팀으로 나누어 보트를 탔는데 초등부 3명이 함께 동행하여 한 명씩 나누어 탔습니다. 제가 탄 보트에 초등부 6학년 학생이 탔는데 보트가 급류를 내려갈 때에 순식간에 이 어린이가 하늘로 뜨더니 급류로 떨어져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매우 당황했습니다. 걱정을 하면서 그 아이의 엄마를 보는데 그 집사님은 미소를 지으며 천연덕스럽게 ‘우리 아들인데 어떻게 하지?’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조금 떠내려가다가 안내자가 긴 노를 뻗어 이 아이는 구출되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이 아이의 엄마가 어떻게 그처럼 여유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답은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과 위기 속에서라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앙을 가질 수 있다면 여호수아가 받은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구별하시어 그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인생의 끝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죽음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구별시켜주는 시금석과 같다고 합니다. 인간은 묘하게도 죽을 때에도 자신이 평상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에 대한 애착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돈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죽을 때의 몽롱한 상태에서도 돈에 대한 의식으로 가득차 있다고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을 때에 자식들과 가족을 걱정합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을 때에 국가의 안위를 생각합니다.
독립운동가들은 총에 맞아 죽어갈 때에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며 죽습니다.
짝사랑하다가 상사병으로 죽는 사람은 연인을 생각합니다.
이처럼 평상시의 관심이 죽을 때까지 연결이 되기에 죽을 때에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끝까지 하나님을 섬기며 충성한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살아가면서 모세에게 충성했습니다. 백성들에게 충성했고, 나라에도 충성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모든 것 가운데서도 죽는 순간가지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여호수아를 높이 평가하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호수아가 받은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여호수아는 노예 신분에서 존경받는 최고 통치자가 되어 큰 일을 한 사람입니다. 그의 주위에는 항상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죽을 때까지 행복하고도 평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의 삶을 보시고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신실한 삶을 살아라”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앙을 가져라”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라”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같은 행복과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