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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과의 전쟁
왕을 의미하던 태양이 사라지는 것은 왕권에 대한 도전이며 왕이 다스리던 영역이 침범을 당했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조선시대 사람들도 일식이 자연의 범칙에 따라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증거가바로 관상감의 일월식술자라는 직책이다. 일월식술자는 일식 월식이 나타날 날을 계산해 왕에게 보고했다.
소복을 입고 북 치면서 태양을 되살리는 의식을 치렀다. 하지만 이는 황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정치적 쇼였다.
일식의 주기는?
일식은 약 년 2~3회 , 1935년, 2206년에 5회가 될 것이다.
조선시대 이혼제도
칠거지악과 삼불거를 엮어서 칠출삼불거라 한다.
칠거지악 - 일곱 가지 잘못이 있을 때 아내를 쫓아낼 수 있다는 것인데,
1시부모를 잘 모시지 못하거나,
2아들을 낳지 못하거나,
3음란하여 자식의 혈통이 의심스러운 경우,
4투기를 저지르는 경우,
5나쁜 병에 걸려 건강한 아들을 낳지 못할 경우,
6말이 많을 경우,
7도둑질 하는 경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삼불거 -
1처가 쫓겨나도 돌아갈 곳이 없다거나
2부모의 3년상을 같이한 경우,
3가난할 때 시집을 와서 시댁이 부자가 되었다면 아내를 내 쫓을 수 없다
이혼을 극력 억제한 이유가 언뜻 보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 같지만, 실상은 남성 위주의 유교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조선은 여성에게 정절을 강요했다. 남편이 죽은 뒤에도 강요된다. 그 정점에 섰던 것이 재가녀자손금고법(재혼한 여성의 자식은 과거 응시자격을 제한한다는 것이 주 내용인 법)이었다. 과거급제를 가문의 목표를 삼던 양반가문에서 재혼은 가문의 몰락을 의미했다.
평민들의 이혼제도
성황당 앞에서 기다리다가 그녀를 처음 발견하는 남자를 따라가는 것이다. 이것을 습첩이라고 했다. 이 말은 첩을 줍는다는 듯으로 여자를 발견한 남자에게는 반드시 그녀를 데려가야 하는 의무가 있다.
서낭당 혹은 성황당 - 지날 때 마다 돌 세 개를 올리고 절을 세 번 하고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설이 있다.
사냥 -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세종
태종은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의 피를 이어 받아 성격이 호방하였다. 두 번에 걸친 왕자의 난으로 임금자리에 오른 인물답게 무인의 기개가 뚝뚝넘쳐흘렀다. 덕분에 틈만 나면 사냥에 나섰다. 태종이 세종을 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세종이 확연히 문쪽에 가까운 인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창업시기에는 칼을 쥔 자가 나와 피로 터를 닦는다면, 이후 수성의 과정에서는 붓을 든 자가 나와 터 위에 기둥을 세우는 것이 역사의 순리였다.
세종은 왕성한 식욕과 성욕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식가였으며 4명의 부인과 18남4녀의 자식이 있었다. 조선의 역대 왕들 가운데 아들을 가장 많이 둔 왕이 세종이었다.
부종, 소갈증(당뇨병), 임질(임균->성병), 안질, 각기병, 등창
대식가이며 운동량이 적었던 세종은 일찍부터 당뇨병에 걸렸고, 당뇨합병증으로 이어졌다.
권신 압구정 한명회
한명회는 자신이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업슨 고고한 학자처럼 보이길 원했던 차라 기러기랑 노닐면서 한가롭게 지내겠다는 뜻의 압구정이란 호를 지었다.
속알머리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상투밑의 머리를 돌려 깎는 것을 배코치기라고 했다.
조선판 과학수사신주무원록은 세중이 편찬한 법의학 지침서로 원나라의 왕여가 만든 무원록을 개정해 조선의 현실에 맞게 편찬한 것임, 제목 그대로 ‘억울한 사람이 없게’하도록 법의학에 관한 지식과 실례가 실려 있다.
반계법 - 진사의 입속에 밥을 넣고 한시간이 지난호 닭에게 던져주었더니 얼마 먹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다.
조선의 생화학무기
삼아창 - 창날이 세 갈래, 네 갈래로 갈라진 창으로 민간에서 수렵용이나 어업용으로 쓰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무기로 사용한다.
분포 - 똥대포
금즙 - 똥을 거른 다음에 1년 동안 삭힌 것
비거 - 하늘을 나는 수래 ,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소개, 진주성 전투에서 외부와 연락하는 한편, 영남의 고성에 갇혀 있던 성주를 밖으로 탈출시켰다는 것인데, 비행 거리가 무려 30리에 이르렀다. 설계도가 남아있지 않아 정설로는 인정받지 못함. 라이트 형제보다 300년 앞선 것.
경제정책의 연속성을 중요시한 조선
이조판서 평균 9개월 임기 인 반면, 호조판서 재임기간은 2년1개월이었던 것이다.
상평청- 조선후기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상평동보를 중심으로 한 화폐가 유통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유통되는 쌀의 양을 조절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했는데 그 기관이 상평청이었다. 풍년때 곡물을 자정하고 흉년일 때 값을 내려 되파는 식으로 물가를 조절했다.
영조의 최장수 재임
83세까지 살면서 51년7개월 동안 재위하였다.
영조는 여색을 좋아하지 않고 상당히 검소한 생활을 했다. 영조는 무수리의 아들이란 콤플렉스 때문에 재위 기간 내내 알게 모르게 시달렸다. 그러나 그이 출신성분은 서민생활을 이해하는 밑바타잉 되어 조선조 임금 중 가장 검소한 생활을 했다.
기본적으로 왕은 아침에 일어나 먹는 자릿조반, 아침수라, 낮것, 저녁 수라, 밤참의 2식 3참을 먹었다. 그러나 영조는 식사를 세 끼로 줄이고 12첩 반상으로 나오던 반찬의 가지수도 줄이고 채소 위주로 꾸렸다. 영조는 정치 현안 회의가 있을 때에도 식사시간만은 꼭 지켰다.
초조반 - 미음, 죽
아침상 - 수라, 12첩 반상
낮것상 - 국수, 장국, 다과
저녁상 - 12첩 반상
야참 - 약과, 수정, 식혜, 죽
우황청심원 대 환
사실 다른 약이다. 우황청심원은 사향, 우호아, 서각, 대두황권등 30종류의 성분이고 중국에서 생산되는 우황청심환은 우황외 5종 혹은 10종, 또는 당귀외 9종으로 만들어진다.
동의모감에 따르면 우황청심원은 중풍으로 쓰러져서 사람과 사물을 식별하지 못하며 입과 눈이 돌아가고 사지를 움직이지 못할 때 효과가 있다고 전한다.
임금이 사는 이남 지방
삼남지방이란 오늘날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 충청남북도 합친 지역으로 하삼도라고 도 불렀다. 전체 조운에서 87퍼센트를 삼남지방이 부담하고 있었다. 조선을 움직였던 것은 한양이었으나, 한양을 먹여 살렸던 것은 바로 삼남지방이었던 것이다.
호랑이 잡는 특공대 ‘착호갑사’ 호랑이 대신 광해군을 잡다.
임근의 재가 없이 선참후계(먼저 움직이고, 나중에 보고한다.)로 군대를 움직일 수 있는 상황 두 개를 확정지었다. 하나는 외적의 침입이나 쿠데타 발견시 이며 두 번 째가 바로 호랑이의 출몰이었다.
이귀가 내세운 목적은 호랑이 사냥이었지만, 실제로 인조반정이 선봉군으로 광해군 축출에 앞장서게 된다.
역대 임금중 호랑이사냥에 가장 열을 올린 임금은 세조이다. 계유 정난을 일으켜서 권력을 차지한 세조에게 라이벌은 백두산 호랑이 김종서였다. 그는 세종 시절 6진을 개척하였고 문종이 죽은 이후 권력의 진공상태에서 어린 단종을 보위하며 수양대군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웠었다. 계유정난으로 김종서를 제거하긴 했으나 호랑이로 불리던 김종서에 대한 잠재적 두려움 때문에 호랑이 사냥에 몰두했던 이유일 수도 있다.
조선시대 뒤처리 기술
측간자 또는 정목(깨끗하게 해주는 나무) - 대나무를 나무주걱처럼 얇게 잘라 잔변을 파내는 방식으로 뒤처리를 했다.
조선에 고추가 들어온 사연
조선 전기 까지 김치라면 으레 소금에 절인 백김치를 말하는 것이었고, 떡볶이란 것은 궁중에서 떡과 고기를 버무리고 간장으로 양념을 해서 임금에게 진상하던 음식을 말하는 것이었다.
15세기 중반 콜럼버스가 유럽에 소개한 것 중 하나가 고추였다. 포르투갈은 일본과 교역을 하고 이때 고추를 건네주었다. 그 이후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면서 고추를 조선으로 들여왔다.
조선에도 화학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고운 재였다. 임진왜란에서는 고춧가루와 재가 서로 뒤섞이며 싸웠던 것이다.
다방
태조는 조선을 개국하자마자 신하들에게 다방이란 관청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다방은 고려 왕조가 남긴 문화적 유산이었다. 태조는 이조에 소속된 다방을 만들고 다례를 담당하는 관원들은 외교관 노릇도 하게 되면서 태조는 이들을 아꼈다.
다모는 순수한 의미로 차를 끓이고 차 시중을 해주는 여자이다. 초창기 다모는 일반 서민 여성들이나 의녀들 중에서 성적이 못 미치는 여자들을 골랐으나 차 문화가 쇠퇴하고 성격이 변질되어 여 형사로 변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불교와 함께 달려온 다도 문화가 불교를 때려잡는 숭유억불정책에 의해 자연 쇠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나마 조선초에는 불교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왕들이 많아서 어느정도 유지했었다.
화냥년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간 여염집 여자들이 집으로 돌아왓을 때 환향녀라 부른 것에서 연유했다.
임진왜란 당시 서울을 점령한 가토 기요마사가 운종사에서 여승들을 겁탈하여 아이가 생겼는데 이들이 모여 융경산 부군당 밑 토막집에 모여 살았다. 이곳을 이태원(다른 이, 즉 왜인의 아이를 밴 집 또는 배나무가 크게 자라는 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광해군이 임진왜란 이후 줄타기 외교인 기미책을 사용했다. 사실 기득권층에 경제적 타격을 주는 대동법에 불만을 품은 서인들이 기미책을 핑계로 들고 일어나다. 이때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노린 것이 두가지 있었으니, 하나가 명나라를 칠 때 배후의 위협을 받지 않겠다는 정치적 전략적 노림수였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경제적, 육체적 노림수였다. 잡아가 일 시키고 마누라 삼고 몸값 요구하고 ... 후금은 부족한 노동력과 여자들 때문에 의주에서평양에 이르기 까지 여자란 여자는 다 쓸어갔었다.
인조가 환향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두가지 대책, 즉 ‘흥제원 냇물 면죄부’ 정책과 ‘첩 권장 정책’은 실질적ㅇ니 대책이 될 수 없었다.
호로자식의 유래
1624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인조는 정건 안정화 차원으로 임진왜란 때 일로 끌려간 포로들의귀한 협상을 벌여 146명이 귀환 하고 13년후 청나라에서 600여명의 조선이 ㄴ포로를 데리고 온다. 이때 청나라 씨를 받아온 여자들의 태어난 자식들은 이때부터 호래자식이라 욕먹으며 살게 된 것이다.
욕의 기원
호로(오랑캐의 포로)자식
육시랄 놈 - 시체를 다시 짖어 버린다는 뜻
오살할 놈 - 몸을 다섯 토막 내서 죽이는 형벌
경을 치다 - 얼굴, 팔뚝의 살을 따고 흠을 내어 먹물로 죄명을 찍어 넣는 것
오라질 - 오라 는 도둑이나 죄인을 결박하던 줄, 죄를 지어 수갑을 찰 놈
엿 먹아라. 엿이란 여성의 성기를 의미한다. 엿먹아라는 여자에게 잘못 결려서 된통 당하라는 뜻이다.
염병할 놈 - 염병은 장티푸스를 뜻함
병신 육갑 한다. - 육갑이란 육십갑자로 생년월일을 가지고 길흉화복을 점치는 행위를 말하다. 병신이 자기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남의 인생을 말한다는 조롱의 말이다.
불교억압
동량질이란 어원은 고려시대 스님들이 돌아다니며 작은 종을 흔들던 동령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이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동냥질이 되어버렸다.
술을 못 마셔서 왕이 못된 사연
태종의 아들 1.양녕 2.효량 3.충녕
양녕대군은 곽선의 첩이었던 어리를 빼앗아 와서 희대의 스캔들을 일으키고 근신하라는 태종이 명을 어기고 다시 어리를 만난다. 이렇게 폐세자가 되었다. 둘째인 효령을 술을 마시지 못했기 때문에 충녕은 ‘술을 마실 줄 안다’는 이유로 왕세자로 뽑혔다.
세종은 왕세자가 된지 두 달 남짓밖에 안되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 양위에는 주상이 장년이 되기 전가지 군사 관련일은 태조가 주관하고 중대사는 정부와 6조로 하여금 함께 그 가부를 의논하게 하였으며 의논에 태조가 참여하여 주상을 도우는 이중권력 구조를 갖추게 했다. 그 이유는 세종의 실무교육에도 이유가 있었지만 어머니 원경왕후와 양녕대군의 측근에 대한 견제가 목적이었다. 세종이 보위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종의 장인인 심온을 태종이 역모로 몰아 사형시키고 가족을 관노로 만들었다. 태중은 과거 외척의 준동을 경계하기위해 처가인 민시 일가마저 도륙냈던 왕이었다. 세종은 4년간 수습기간을 가졌다. 세종은 조선조 최초로 수습기간을 거친 왕이다.
내시
교려시대까지만 해도 내시는 임금을 최측근에서 보위하는 엘리트 관료들이었다.
대마도 정벌의 비밀
명나라에서 왜구 토벌군을 일으키면 조선은 명 군대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태종이 동원령을 내려 227척 1만 7285명의 병사를 이종무에게 맡겼다. 조선군의 배를 왜선으로 착각한 대마도의 왜구들은 기습에 맥없이 쓰러졌다. 산으로 도망간 왜구를 쫓아 공격대를 보냈으나 매복에 걸려 패퇴하고 귀환했다. 돌아와 토벌군은 전쟁영웅으로 대접받았으나 며칠이 지나자 패배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정무를 처단할 주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11월 토벌군에 불충한 자를 넣었다는 모호한 이유로 의금부로 하옥되었고 귀향길에 오르게 된다. 대마도에서 돌아온지 불과 3개월 만에 벌이진 일이었다.
식자우환 - 학식이 있는 것이 근심을 삼
무지몽매 - 아는 것이 없어 어리석음
득달 같이 달려오고, - 잠시도 멈추지 않고 달려오다.
공성 - 성을 공략함
누란지세 - 층층이 샇은 알 . 위태롭다.
격세지감 - 사이 격, 세대 세, 갈이지, 느낄 감세상이 빠르게 변한다.
호환 - 호랑이에게 당하는 화
모사꾼 - 약은 꾀로 일을 꾸미는 사람
권신 - 권세를 잡은 신하
치세 - 세상을 잘 다스림
유시 - 문서보냄
육조 - 이,호,예,병,형,공~조
상왕 - 자리를 물려주고 들어앉은 임금
수신 - 몸과 마음을 닦음
해동청 - 매
면신 - 새로움을 면하다. 예문관 관원으로 인정 받는 것
허참 - 관직 참여 허락
당상관 - 정삼품 이상
문묘배향 - 공신의 신주를 모시는 일
진사 - 과거의 예비 시험에 합격한 사람
사관 - 예문관, 성균관, 교서관, 승문원
제수 - 옛 관직을 없애고 새 관직을 내리던 일
사초 - 역사 기록 초고
축첩 - 쌓을 축 , 첩을 둠
가시버시 = 아내+남편 부부를 낮잡아 이르는 말
지분거리는 - 귀찮게 하는
사정파의 - 합의이혼
한량 - 무과합격자로 전직이 없던 사람. 주선 후기가 되면서 한량들에게 부과시험 응시자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오입질 - 외도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