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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성탄절 그리고 연말연시/ 엡 4: 22- 24
주용수 목사
[성경본문] 엡 4: 22- 24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24절기가 있었습니다.
눈이 많이 오면 날씨가 포근하고 풍년이 든다는 대설,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지입니다. 절기는 이렇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소한이 대한이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소한, 대한,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 대동강물이 녹고 동면하는 벌레가 나온다는 경칩,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 논밭둑 손질을 하고 가래질을 하고, 농사준비를 하라는 청명, 못자리를 내고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된다는 곡우, 여름이 시작된다는 입하, 보리를 베고 못내기를 한다는 망종, 장마철이 시작된다는 소서, 일년중 제일 덥다는 대서,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 그렇게 지나서 처서, 첫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 국화술 담근다는 한로,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
이렇게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24절기를 중심으로 농사를 준비하고 삶을 준비하는 지혜를 가지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절기는 7개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 절기는 강림절입니다.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두 번째 절기는 성탄절입니다. 교회력에서는 12월 25일부터 1월 5일까지 열흘이 성탄절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탄절에 준비한 크리스마스 츄리는 이때까지 두는 것이 좋습니다.
또 현현절이 있습니다.
그 다음은 사순절입니다.
그 다음은 고난주간입니다.
그 다음이 부활절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오순절, 성령강림절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땅에 계셨다가 승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열흘만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충만함이 이르렀습니다. 이때를 성령강림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는 7개의 절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절기는 우리의 신앙에 중요합니다. 농사절기가 농사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듯이 신앙절기는 우리의 신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명절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명절은 우리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며 우리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옛 어른들도 이 명절을 아주 귀하게 지켰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에 명절이 오면, 설날이 오면 제일 먼저 그릇을 씻었습니다. 집에 있는 놋그릇을 전부 꺼내서 냇가로 가지고 갔습니다. 부엌에서 재를 한웅큼 가지고 가는데 재가 그렇게 좋은 역할을 합니다. 재를 모래하고 섞어서 한참을 닦으면 1년 내내 더러워졌던 놋그릇이 아주 좋은 황금빛을 띄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새그릇을 찬장에 딱 진렬해 놓으면 사기 그릇이나 옹기 그릇은 저리 가라입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의복도 새것을 사다 줍니다. 하다 못해 신발이라도 새것을 사주려고 부모님들은 돈을 모았습니다. 또 사줄 형편이 못되면 입던 의복일지라도 다 깨끗하게 빨아서 입었습니다. 이불도 천을 빨아 다시 시칩니다. 그리고 방도 새롭게 도배를 합니다. 물론 지금같이 좋은 도배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지를 사다가 문에도 바르고 벽에도 발랐습니다. 한지가 없으면 하다 못해 신문지라도 가져다가 발라서 마음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이 신문지를 벽에다가, 천정에다가 발라 놓으면 누워도 신문이 보이고, 엎으려도 신문이 보이고, 옆으로 모로 누워도 신문지가 보였습니다. 대통령도 천정에 보이고 온세계 뉴스가 방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가지고 글자 공부를 했습니다. 저보다도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겠지만 예전에는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또 동네 목욕탕에 가서, 혹은 집에서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데워 놓고 1년 동안 닦지 않던 때를 밀었습니다. 그때는 어머니의 손이 얼마나 힘이 있었는지 때미는 손이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맨날 고양이 세수만 했으니 얼마나 때가 많습니까? 이곳 저곳에서 국수가락 같은 때가 나오면 어머니는 등허리를 찰싹 찰싹 때리면서 “가만이 좀 있어라. 까마귀가 형님하고 따라 오겠다” 하곤 했습니다.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별로 볼수 없는데 당시에는 대체로 그랬습니다. 하여튼 명절이 되면 모든 것을 바꿉니다. 모조리 그렇게 새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주님이 오신 날인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고, 신정과 새해도 얼마 남지 않은 않은 이때에 여러분은 무엇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며 예수님을 맞이하여야 할 것입니까? 주님이 기뻐하시는 마음가짐은 어떤 것입니까?
본문은 우리에게 세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옛사람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을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옛사람의 상태가 어떤 것입니까?
첫째 과정은 마음이 허망해지는 것입니다.
4장 17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허망하다는 말은 한마디로, 방향이 없다, 목표가 없다는 말입니다. 현대는 잘살기 위한 방법과 편하기 위한 수단은 많이 개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방향이 없습니다. 그래서 살다가 보면 마음이 허망합니다. 그래서 마구 삽니다. 좋은대로 삽니다. 방향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과정은 총명이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4장 18절 상반절입니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셋째 과정은 마음이 굳어지는 것입니다.
4장 18절 하반절입니다.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이 말의 원문의 뜻은 마음이 마비되었다는 말입니다. 나쁜 것을 나쁜 줄 모릅니다. 그른 것을 그른 줄로 모릅니다. 일전에 본드를 흡입하는 딸의 어머니가 TV에 나와서 말을 하는데 “그러면 어떻하냐?” 는 것입니다. “지가 좋아서 하는 일을 내가 어떻게 막느냐” 는 식입니다. 이게 어디 어머니의 마음입니까? 이게 어디 부모의 마음입니까?
넷째 과정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버린 과정입니다.
18절 종반절은 “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 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 이것은 가장 심각한 경우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면서도 하나님을 떠나서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 물고기가 물을 떠나 있으면서도 물을 떠난 심각함을 모르는 마음, 새가 날개가 없으면서도 날수있으리라고 생각하는 마음, 이것이 현대의 마음인 것입니다.
다섯째 과정은 감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4장 19절 상반절입니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여섯째 과정은 방탕에 방임하는 과정입니다.
19절 중반을 보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일곱번째 과정은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19절 하반절입니다.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자기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행하는 세대, 도덕이고, 윤리고 없는 세대. 이것이 문제입니다.
도덕이고, 윤리고, 다 내팽겨 칩니다. 이런 것은 오히려 자기의 타락한 삶을 살아가는데 거추장스럽습니다. 마음이 어두워져서 분별을 하지 못합니다. 그냥 되는대로 살아간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둘째로,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이렇게 자꾸 옛사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먼저 우리는 먼저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주님의 보혈로 씻어야 합니다. 찬송가 186장입니다. 다같이 불러 보십시다.
그런데 어느날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놀라운 진리가 마음에 들어옵니다.
20절로 21절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그리스도가 마음에 들어와 있을 때에 경험한 놀라운 변화! 찬송가 208장입니다. 다같이 불러 보십시다.
이것이 본문 4장 23절의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도배도 하고, 새옷으로 갈아입는 것도 귀하겠지만, 하나님 앞에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것보다 더 좋은 준비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탄절과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는 심령으로 새롭게 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관광버스를 타고 여행을 합니다마는 손님이 다 내리는 동안에 버스기사는 버스 안을 깨끗하게 청소합니다.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입니다. 이제 2003년 관광이 다 끝났습니다. 2004년 관광을 준비해야 합니다. 심령을 다 청소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옛 성품이 남아 있습니다. 예전의 더러운 것을 벗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4장 2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우리가 마음을 깨끗이 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채워야 합니다. 의와 진리로 채워야 합니다. 새사람으로 다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43절로 45절을 보면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연말연시 성탄절에 빈방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제가 짧은 글을 하나 적어 보았습니다.
빈방있습니까? 누구신데요? 생명입니다.
죄송합니다. 파멸을 위한 방은 있는데 생명을 위한 방은 없군요.
빈방있습니까? 누구신데요? 진리입니다.
죄송합니다. 거짓을 위한 방은 있는데 진리를 위한 방은 없군요.
빈방있습니까? 누구신데요? 길입니다.
죄송합니다. 낭떠러지를 위한 방은 있는데 길을 위한 방은 없군요.
빈방있습니까? 누구신데요?
겸손입니다. 죄송합니다. 교만을 위한 방은 있는데 겸손을 위한 방은 없군요.
빈방있습니까? 누구신데요? 절제입니다. 죄송합니다. 방종을 위한 방은 있는데 절제를 위한 방은 없군요.
빈방있습니까? 누구신데요? 희생입니다. 죄송합니다. 이득을 위한 방은 있는데 희생을 위한 방은 없군요.
빈방있습니까? 누구신데요? 순교입니다. 죄송합니다. 쾌락을 위한 방은 있는데 순교를 위한 방은 없군요.
빈방있습니까? 누구신데요? 감사입니다. 죄송합니다. 원망을 위한 방은 있는데 감사를 위한 방은 없군요.
빈방있습니까? 누구신데요? 위로하는 마음입니다. 죄송합니다. 위로받을 방은 있는데 위로할 방은 없군요.
빈방있습니까? 누구신데요? 온유입니다. 죄송합니다. 분노를 위한 방은 있는데 온유를 위한 방은 없군요.
빈방있습니까? 누구신데요? 순종입니다. 죄송합니다. 거역을 위한 방은 있는데 순종을 위한 방은 없군요.
빈방있습니까? 누구신데요? 인내입니다. 죄송합니다. 성급을 위한 방은 있는데 인내를 위한 방은 없군요.
오래 전 가이드 포스트지 12월에 이런 실화가 실렸습니다. 어느 작은 시골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연극을 했습니다. 그 중에 월리(Wally ) 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이 아이는 외우는 데에는 젬병인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월리에게는 연극 대사가 가장 짧은 '여관집 주인'역을 맡겼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연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여관집을 두드립니다.
"여기 방이 있습니까?"
월리는
"없소! 여관은 만원이요 딴 곳을 찾으시오"
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주인님. 우리는 멀리서 왔습니다. 아내는 출산할 날이 차고 아이를 낳아야 할 다급한 형편입니다. 어디 허름한 방이라도...."
이때 월 리가 대사를 잊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구르고 있었습니다. 무대 뒤에서 선생님이
"절대로 안돼요. 절대로 안돼요."
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때 월리는 겨우
"안돼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우리는 어디로 가나 이 밤에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슬픈 노래를 부르며 나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월리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마리아! 가지 말아요. 내 방이 남았으니 쉬어 가시오."
물론 각본에도 없는 말입니다만 많은 관람객이 윌리의 말에 감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하실 곳이 마땅치 않아 빈들이나 산에서 노숙을 하시며 밤새워 기도하시던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주님께서 오늘도 여러분마음의 방에 들어가시려고 찾아 오셨다가 되돌아가실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1 주 예수 대문 밖에 기다려 섰으나 단단히 잠가두니 못 들어오시네
나 주를 믿노라고 그 이름 부르나 문 밖에 세워두니 참 나의 수치라
2 문 두드리는 손은 못박힌 손이요 또 가시 면류관은 그 이마 둘렸네
이처럼 기다리심 참 사랑이로다 문 굳게 닫아두니 한없는 내 죄라
3 주 예수 간곡하게 권하는 말씀이 네 죄로 죽은 나를 너 박대할소냐
우리는 이 성탄에, 이 연말에 예수님을 박대한 죄를 먼저 회개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