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이 되어버린 영생, 주객이 전도된 우리의 신앙을 묻다"
우리는 습관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 고백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며 살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노래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은혜의 본질을 가장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했던 '영성의 사랑'은 어느덧 망각의 저편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를 이생의 안위와 세상적 복이 가득 채우고 말았습니다.
기독교 신학 역사에서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하나님 스스로의 언약’을 되짚어 봅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언약에는 두 가지 층위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당신의 존재를 걸고 스스로 맺으신 영원한 사랑의 언약이며, 다른 하나는 그 영원한 언약이 시공간의 역사 속에 나타난 피조물과의 언약입니다.
진정한 신앙이란 이 두 층위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질서를 무너뜨렸습니다.
우리는 영생의 사랑을 '당연히 따라오는 덤' 정도로 취급하고, 이 땅에서의 사랑과 보상을 '진짜'라고 믿는 기복적 신앙에 함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생의 삶은 영원한 언약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가는 통로이자 과정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단이 목적이 되고 목적이 수단으로 전락한 순간, 우리는 스스로 구원의 좁은 길을 닫아걸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 신앙의 가장 뼈아픈 실책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전부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덤으로 생각합니다. 진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주어야 되는 자기 위안의 신앙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기도응답이 비결의 책들이 그것을 증거합니다.
“제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습니다.”
이 통절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후회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 스스로 세우신 그 태초의 언약 앞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단호한 돌이킴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복이라는 허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걸고 약속하신 그 영원한 영성의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껍데기뿐인 종교적 수사를 걷어내고, 우리 신앙의 두 언약 층위를 바로 세울 때 비로소 닫혔던 구원의 길은 다시 우리 앞에 선명히 드러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