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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별(死別)
전에 내가 어디에서 이 바람이
이렇게 음험한 포효로 바뀜을 들은 적 있던가?
고집 센 문을 열어놓고,
언덕 아래로 거품 이는 해변을 내려다보며
내가 거기 서있음을 저 바람은 무어라 생각할까?
여름이 지났고 낮이 지났다.
서쪽에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바깥의 삐걱거리는 현관 바닥에서,
낙엽이 똬리를 틀고 일어나 씩씩거리며,
무턱대고 내 무릎을 탁 치더니 빗겨나갔다.
무엇인가 불길한 소리로 보아
틀림없이 나의 비밀이 알려졌음을 알았다.
내가 집에 혼자라는 말이
암만해도 밖에 알려졌는가 보다.
내가 인생에서 혼자라는 말이,
내게 남은 것은 신뿐이라는 말이.
-신재실 옮김-
단상(斷想): 프로스트의 시에서 대개 자연의 사실들이 상징하고 있는 악의 위력은 너무 커서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례의 하나를 출중하지만 흔히 잘못 해석되고 있는 서정시「사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시의 제명 자체가 어떤 소중한 사람을 빼앗긴 사람의 슬픔, 쓸쓸함, 고독을 추정케 한다.
이 시의 세부는 고난의 삶에서 구원의 힘을 빼앗겨 버린 현대인의 처지를 환기시켜 주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는 폭풍과 “거품을 뿜고 있는 해변”으로 상징되는 압도적인 세력에 대항하여 “고집 센 문”을 열고 “현관의 내려앉고 있는 바닥”에 버티고 서 있다. 빛과 여름의 순환적인 후퇴를 틈타서, 사나운 바다, 어두컴컴한 구름 떼, 뱀처럼 음흉한 낙엽들이 연합하여 화자를 공격함으로써 무섭게 위협하며 화자를 조소하고 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들이 화자의 모든 비밀, 즉 그의 고독과 절망을 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비우호적인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감시를 받고 저울질을 당하고 있는, 쓸쓸하고 버림받은 자이다. 그는 정말로 절망의 곤경에 처해 있었지만, 결국 곤경에서 살아남아서 차분하고 냉철한 어조로 자신의 지난 경험을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의미를 되새길만한 시다.
-신재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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