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거제도 광산(鑛山) 동광채굴권 일본 공사 정탐내용>
자료출처 : 주한 일본공사관기록. / 자료수집 : 고영화(高永和)
▶ 개요 : 구한말 당시 우리나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라로는 일본,청,러시아,프랑스, 영국, 미국 등 6~7개국에 이르렀으며, 그들은 한반도의 이권에 광분하고 있었다. 그 중 한반도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물론 일본 청국이었으나, 특히 서구열강 중, 러시아는 함북 경원과 경성의 광산채굴권 무산 압록강 유역 울릉도의 벌채권을 얻고 서울에 한러 은행을 설립했으며, 장교 하사관을 보내 한국군의 훈련을 담당했다.
특히 거제도는 러시아와 일본이 경쟁하였으나 거제도 동광채굴권은 어찌된 일인지, 영국과 일본이 물밑 작업을 하게 되었다.
1900년 당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열강들과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던 시기에 영국이 거제도 동광채굴권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차지하고자 은밀히 탐문하며, 보고를 하고 있었다. 결국 일본 측에서 거제도 광산을 조사한 후, 경제성이 없음을 알고 난후에야 양국 간의 신경전도 막을 내렸다. 이때 일본공사가 정탐하여 보고한 내용이 아래와 같다.
1. [英國人 巨濟島 銅鑛採掘權 出願, 韓國 政府에 不許措置 要求 件]
往49 /영국인 거제도 동광채굴권 출원, 한국 정부에 불허착취 요구 건.
英國 공사의 비담(秘談)에 의하면, 영국인 아무개가 巨濟島 내의 동광 채굴권을 얻고자 바라고 있지만, 馬山浦 문제 등의 관계상 현재는 좋은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한국 정부에 출원서 제출을 보류하고 있다는 것임. 만일 확실히 위와 같은 광산이 있고 또한 日本人 중 채굴을 희망하는 자가 있다면 혹시 영국인 쪽을 그만두게 하도록 상담할 수도 있음. 이 점 우선 보고드림.
1900년 3월 26일 오후 6시 하야시 공사 林 公使
아오기 대신 靑木 大臣
2. [巨濟島 광산(鑛山)에 관한 件]
1900년 서울, 4월 9일 오후 5시 5분
동경, 아오기 (東京, 靑木)
▶. 각하의 日本語 電文 제15호와 관련, 구리광산의 명칭은 모름. 그러나 巨濟에는 구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음. 본인은 작년 9월에 김태현(金泰絃)이라는 韓國人이 農商工部로부터 그 섬의 구리광산 개발 허가를 받았음을 최근에 알게 되었음. 그리고 10월에 金과 京城에 거주하는 산기당태랑(山崎堂太郞,야마자끼) 사이에 그 광산의 공동 개발을 위한 계약이 체결되었음. 金은 일본인들, 특히 佐佐友房의 동생의 제의로 위의 허가를 취득했음. 본인은 우리가 이 계약으로 개발에 착수할 수 있으나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함. 英國人들을 설득하여 그들의 신청을 철회시키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임. 본인은 마치 야마자끼(山崎)의 요청인 것처럼 하여 帝國 정부가 그 섬에 탐사대를 파견할 것을 제의함. 정부의 결정을 전문으로 통보 바람.
3. [巨濟島의 銅鑛 探査에 관한 件] 거제도 동광 탐사에 관한 건.
1900년 4월 11일 오후 5시, 東京
4월 11일 오후 9시 40분, 수신
서울, 公使
▶. 귀하의 전문 제64호와 관련, 귀하의 제의대로 두 명의 전문가가 그 섬을 탐사하기 위해 4월 20일경 이 곳을 출발할 것임. 그러므로 귀하는 山崎에게 통보할 것.
4. [巨濟島 동광조사(銅鑛調査)로 기사(技師) 파견(派遣), 카와카미 서기생 동도출장 (川上 書記生 同途 出張) 명령(命令) 요구 件] 往73
巨濟島의 銅鑛 정탐과 관련하여 파견되는 技師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釜山에 있는 카와카미(川上) 書記生을 그 섬에 출장시키는 건은 속히 전보로 직접 명령하시기 바람.
1900년 5월 2일 오후 9시 35분 발신
林 公使
靑木 大臣
5. [巨濟島 銅鑛探査技師派遣 件]거제도 동광탐사 기사 파견 건.
巨濟島에서 동을 탐정하기 위하여 기사를 파견하는 데 대해, 토지의 정황에 정통한 우리나라 사람을 동행시키는 것은 來示한 대로 물론 필요하다고 인정함. 그러나 그곳 거류민 중에 토지의 정황에 정통하고 비밀을 지킬 만한 적당한 자를 찾지 못했으므로 차라리 川上 서기생이 함께 가는 것이 편의하겠다는 데 쌍방이 동의했음. 공사께서 대신에게 上申하여 속히 명령 바람. 기사 일행은 이달 2일 神戶를 출발한 모양임.
1900년 5월 2일 오후 4시 발
5월 2일 오후 5시 10분 접수
노세 영사(能勢 領事)
하야시 공사(林 公使)
6. [巨濟島內 銅鑛所在說] 거제도내 동광 소재 설.
川上 서기생을 巨濟島로 출장시키라는 전훈(電訓,전보)이 대신으로부터 있었음. 그런데 이 섬 안에 동광이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일찍이 들어본 일이 없으므로 이 건에 관해 山崎 또는 金泰鉉에게 동광 소재의 지명을 조사하여 전보하시기 바람.
1900년 5월 3일 오후 5시 58분 발
5월 3일 오후 7시 접수
노세 영사(能勢 領事)
하야시 공사 (林 公使)
7. [巨濟島 銅鑛 件] 거제도 동광 건.
巨濟島의 銅鑛 소재는 관계인도 하등 아는 바가 없음. 다만 동광이 있다는 소문에 따라 金泰鉉이 채굴권을 얻었을 뿐임.
1900년 5월 4일 오전 11시 發 林 公使
能勢 領事
8. [巨濟島 銅鑛探索次 技師派遣 件] 거제도 동광 탐색차 가사파견 건.
어제 기사 2명이 도착. 기상 상태를 보아 川上 서기생과 출발할 예정임. 기사가 외무대신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巨濟島의 동광은 일찍이 英國人이 착수하려 한 일도 있고 그 장소도 명료한 듯한 말투였다고 함. 따라서 探見上 무엇인가 단서라도 될 만한 것이 있으면 공사께서 다시 한번 조사하여 전보해 주시기 바람.
1900년 5월 6일 오후 0시 38분 발
5월 6일 오후 1시 20분 접수
能勢 領事
林 公使
9. [巨濟島 銅鑛 件] 거제도 동광 건.
巨濟島 銅鑛의 所在는 英國人도 알지 못하고 이쪽에서도 어떠한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음.
1900년 5월 7일 오후 2시 10분 發
林 公使
能勢 領事
10. [巨濟島 銅鑛에 관한 件] 거제도 동광에 관한 건.
전부터 內訓이 있었던 巨濟島 銅鑛 탐사를 위해 출장한 기사가 當港에 들러서 말하는 바에 의하면, “이 섬에는 다소의 광산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컨대 희망이 없고, 동광 같은 것은 거의 없다.”고 함. 상세한 것은 우편으로.
1900년 5월 21일 오후 1시 發
5월 21일 오후 5시 接
馬山 領事
林 公使
11. 거제도(巨濟島)의 동광탐검(銅鑛探檢)에 관한 件
機密公第28號/기밀 공 제28호.
본건에 관해 지난달 14일자 機密 제2호로 內訓하신 일도 있는 바, 이에 대해 이번에 후쿠오카(福岡)의 광산 감독 서장(鑛山監督署長) 암휴태(黑岩休太郞), 농상무기수(農商務技手) 사가와영차(佐川榮次郞)의 두 사람에게 출장을 명하여 釜山에서 카와카미 서기생(川上 書記生)을 동행시켜 어선으로 巨濟島에 가서 개략 探險을 마친 모양입니다. 이달 18일 當港에 들렀다가 이튿날 19일 當港에서 서북으로 약 3, 40리 떨어진 九龍山의 銅鑛(長崎縣 평민 馬木健三이 채굴 중) 및 龍潭의 금광(馬木健三의 채굴권을 가지고 있으나 지난 1896년 2월의 폭도에 의해 대단한 손해를 입은 이래 그대로 방치하고 있음. 지금은 한인이 이를 채굴함)을 시찰하고 어제 22일 馬山에 돌아와 현재 체재 중에 있습니다. 이제 거제도의 銅鑛을 조사한 결과에 관해 前記 탐검위원으로부터 청취한 내용을 아래에서 말씀드립니다. ( 別紙 도면 참조).
거제도의 광산은 첫째로 천곡(泉谷), 둘째로 묵포(墨浦), 셋째로 구천동(九川洞) 등임. 이 가운데 첫째의 천곡은 오로지 유화철(硫化鐵)로 그 속에 극히 소량의 銅을 함유하나 동분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임. 둘째의 묵포도 역시 주로 유화철로 해안에 운모 철광이 포함된 석영맥(石英脈)을 확인했는데 혹은 金分을 함유했는지도 알 수 없음. 다음으로 셋째의 구천동도 역시 동분이 있음을 확인하지 못함. 다만 석영맥이 있음을 발견할 뿐임. 이 밖에 덕포(德浦)(火山岩의 균열에 폭 1寸 정도의 유화철이 있을 뿐), 대금산(大金山)(석영의 맥이 있을 뿐), 유포(柳浦)(소량의 유화철이 확인되지만 거의 광맥이 아니고 또한 海中이어서 작업 불가능), 문곡(門谷) 및 삼거리(三巨里) 등(이 2개소는 찾아낼 수가 없었음)이 있음. 그러나 요컨대 유화철, 석영 등에 불과함. 한인은 이걸 동으로 誤信하고 있는 것 같으나 기실 무방한 상태로 오히려 충분한 탐검을 한다면 어쩌면 금광을 얻을 가망이 있을지도 알 수 없다고 상상될 정도지만, 요컨대 거제도의 광산은 가망이 없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임.
현재 그 섬에서 채굴에 종사하고 있는 한인은 金泰鉉이란 자가 아니라 밀양의 孫某라는 자임. 同人은 천곡, 묵포 및 덕포의 채굴권을 가진 모양이나,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에 묵포와 덕포는 휴광하고 다만 천곡만을 채굴 중이나 이것조차 채산이 맞지 않는 것으로 보여 마침 탐검위원이 도착한 때에는 휴업 중이었다고 함. 흑암 감리서장은 이대로 상경하여 시찰 내용을 外務大臣에게 具陳할 예정임(이상 요점을 오늘 전보).
이상으로 훈달(訓達)에 기초하여 우선 보고드립니다. 敬具(삼가 말씀 드렸습니다).
1900년 5월 21일
재마산 영사(在馬山 領事) 사카타 시게지(坂田重次郞)印
재경성 특명전권공사 임권조 전(在京城 特命全權公使 林權助 殿)
추신 : 구룡산의 동광, 용담의 금광은 거제도의 광산에 비하여, 다소의 가망이 있다고 합니다
[거제도의 鑛山소유지 略圖]
거제도 광산 소재지 약도,: 죽림포, 삼거리, 거제, 천곡, 문곡, 구천동, 덕포, 대금산, 묵포, 진해만, 남포, 유포, 칠천도, 가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