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
오도송(悟道頌)
황하서류곤륜정(黃河西流崑崙頂) 平平平平平平平
일월무광대지침(日月無光大地沈) 仄仄平平仄仄平
거연일소회수립(遽然一笑回首立) 仄平仄仄仄仄仄
청산의구백운중(靑山依舊白雲中) 平平仄仄仄仄仄
성철선사<性徹禪師>
황하수 서쪽으로 흘러 곤륜산 정상에 치솟아 올랐으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져 내리도다.
문득 한번 웃고 머리를 돌려서니
청산은 예대로 흰 구름 속에 있구나!
이 오도송(悟道頌)은 해인사(海印寺) 방장(方丈)이었던 성철선사(性徹禪師)의 칠언절구(七言絶句) 평기식(平起式) 게송(偈頌)이다. 압운(押韻)은 상성(上聲) 형통(逈統) 운족(韻族) 정(頂)과 하평성(下平聲) 침통(侵統) 운족(韻族) 침(沈)과 거성(去聲) 운족(韻族)의 중(中)으로 작게(作偈)했다. 게송은 칠언절구(七言絶句)나 근체시(近體詩) 평측운(平仄韻)은 맞추지 않는 게송이다. 선사들의 게송은 평측(平仄) 운통(韻統)과는 거리가 먼 것도 알게 되었다. 평측(平仄) 운통(韻統)에 맞게 작게(作偈) 하는 선사(禪師)들도 많다. 성철선사(性徹禪師)의 열반송(涅槃頌)도 마찬가지다. 열반송을 보면 한평생 남녀를 속였으니, 하늘 넘치는 죄업 수미산만 하다. 산 채로 무간지옥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태양이 붉은, 빛을 토하며 푸른 산에 걸렸구나<生平欺狂男女群 彌天罪業過須彌 活陷阿鼻恨萬端 一輪吐紅掛碧山>다. 열반송도 칠언절구(七言絶句) 측기식(仄起式) 게송이다. 평측(平仄) 운통(韻統) 작법(作法)은 오도송(悟道頌)과 같다. 선사(禪師)의 출가(出家) 시(詩)도 보면 칠언절구(七言絶句) 게송(偈頌)이다. 평측(平仄) 운통(韻統) 맞추어 보니,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頌)과 달리 근체시(近體) 작법(作法)에 가까우나.<平平仄仄平平仄 仄仄平平仄仄平 平平平仄仄仄平 平平仄仄仄平> 승구(承句) 결구(結句) 하삼평(下三平) 하삼측(下三仄)에 걸린 출가송(出家頌)이 됐다, 압운(押韻)도 설(雪)은 입성(入聲) 설통(屑統) 운족(韻族)이고, 노(露)는 거성(去聲) 우통(遇統) 운족(韻族)이고, 진(眞)은 상평성(上平聲) 진(眞) 운목(韻目)이라 압운(押韻)이 세 운족(韻族)에서 작시(作詩)라 근체시(近體詩) 작법(作法)에는 맞지는 않다. 출가송(出家頌)을 게송을 보면 하늘에 넘치는 큰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점의 눈송이요. 바다에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모든 것 다 버리고 초연히 나홀로 걸어가노라,<彌天大業紅爐雪 跨海雄基赫日露 誰人甘死片時夢 超然獨步萬古眞>이다.
성철선사(性徹禪師)는 근래 선지식(善知識) 중에 세간(世間)에 많이 회자(膾炙)된 선사(禪師)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山是山兮 水是水兮>로 세간(世間)에 이목(耳目)을 끌었던 선지식(善知識)이다. 화옹은 해인사(海印寺)로 출가(出家)해서 행자(行者) 때부터 법회(法會) 때마다 선사(禪師)의 법문(法門)을 들었다. 말씀도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빠르게 법문을 하셔서 귀를 바짝 기울여야 들을 수가 있었다. 그 유명한 백일 법문(百日法門)도 듣고 행자(行者) 생활(生活)을 했다. 요즘 총림에는 이렇게 큰 선지식(善知識)이 없다. 그것이 문제(問題)다. 옛 조사(祖師)들은 불철주야(不撤晝夜) 자기(自己) 내면(內面)을 향해 촌음(寸陰)을 아껴 당금질을 했는데 요즘은 명리(名利) 잡승(雜僧)만 판을 친다. 1964년 청담(靑潭)스님과 성철(性徹)스님의 서원문(誓願文)을 보면 후학(後學) 수행자에게 수행(修行)의 좌표(座標)가 될 것 같아, 게시(揭示)해 본다.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대도를 중흥하며 말세에 정법을 지니고 함양하기 위하여, 삼가 삼보님께 천 번의 절을 하옵고, 다음과 같은 서원을 우러러 발하옵니다. 만약 이 서원을 위배할 때에는 산채로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오직 삼보(三寶)님께서는 특별히 가호(加護)를 내리소서. 이 서원을 원만히 성취케 하여 주소서. 1) 항상 산간벽지의 가람과 난야에 머물고, 도시나 촌락의 사원과 속가에는 머물지 않겠습니다. 2) 항상 옛 부처님과 옛 조사님들이 남기신 가르침과 청규를 모범적으로 힘써 행할 것이며, 일체의 공직과 일체의 집회와 회의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3) 항상 부처님과 조사님들이 남기신 가르침의 앙양에 모든 힘을 다하며, 그밖의 다른 어떠한 일에도 발언하거나 간여하지 않겠습니다.<佛祖의 大道를 中興하고 末世正法을 扶養하기 위하여 삼가 三寶前에 千拜하옵고, 左記 誓願을 仰稟 하오니, 萬若 이 誓願을 違背할 때에는 生陷地獄 가겠습니다.
오직 三寶께옵서는 特히 加護를 주옵소서. 이 誓願을 圓滿成就케 하여 주시옵소서. 1. 恒常 山間僻地의 伽藍과 蘭若에 止住하고 都市 村落의 寺院과 俗家에 駐錫하지 아니하겠습니다. 2. 恒常 古佛 古祖의 遺法과 淸規를 示範 力行하고 一切의 公職과 一切의 集會와 會議에 參與하지 않겠습니다. 3. 恒常 佛祖遺訓의 仰揚에 專力하며 其他 如何한 일에도 發言 또는 干與하지 아니 하겠습니다. 甲辰 九月 十三日 三角山 道詵寺 淸淨道場에서 誓願佛子 靑潭, 誓願佛子 性徹.>
근래(近來) 큰 스님들은 이렇게 뜻이 맞은 도반들과 함께 같은 서원(誓願)을 세우고 용맹정진 수행정진(修行精進) 탁마(琢磨)하였는데 그런 수행가풍(修行家風)이 사라졌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성철선사(性徹禪師)님의 수행(修行) 일화(逸話)는 너무 많다. 선사께서 노후(老後)에 폐염(肺炎)으로 동아대 병원에 입원 중에 원택스님을 급하게 찾았다고 한다. 병원에 당도한 원택(圓澤)스님을 보고 성철스님께서 첫 마디가 “똑” 같다. 고 하셨다. 무슨 말인지 말, 뜻을 알아듣지 못한 원택을 보고 “이놈아, 똑같다 이 말이다. 무엇이 똑같단 말입니까? 성철스님이 제자를 한참 노려보다가 일을 열었다. “옛날 젊었을 때나, 장좌불와(長坐不臥)할 때나, 지금이나 다 똑같다는 말이다. 너는 벽창호를 언제 면할 것이냐? 그 말도 못 알아들어. 쌍놈 아닌가.” 그 때서야 원택스님 스승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성철스님의 늘상 하는 법문이 머리를 스쳤다. “숙면일여(熟眠一如), 오매일여(寤寐一如), 병중일여(病中一如)의 경지를 넘어서야 비로소 안과 밖이 투철해지고(內外明徹) 무심(無心)을 얻어 큰 깨달음을 이룬다.”는 법문 내용을 알아차렸다. 성철선사(性徹禪師)는 입원(入院)해서 병중(病中)에서도 보림수행(保任修行)을 하고 계셨다는 일화다. 선사님의 설법 녹음 파일도 시중에 많이 있어서 더, 이상 소개는 줄일까 합니다. 오늘은 출가송과 오도송과 열반송을 근체시 작법의 압운 운목에 맞춰 반추해 보았다. 여여법당 화옹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