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복음 104절
"그들이 예수께 말하길, "오셔서, 우리 오늘 기도와 금식하게 하소서!
예수께서 말씀하시니라.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는가!
혹은 어찌 내가 타락했다는 것인가?"
"차라리 신랑이 신부 방을 떠날 때에 사람들로 하여금 금식하고 기도하게 하라."
도마복음 104절
"그들이 예수께 말하길, "오셔서, 우리 오늘 기도와 금식하게 하소서!
예수께서 말씀하시니라.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는가!
혹은 어찌 내가 타락했다는 것인가?"
"차라리 신랑이 신부 방을 떠날 때에 사람들로 하여금 금식하고 기도하게 하라."
해석 :
위 내용은 마태복음 9장 14절에서 15절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사실 도마복음 내용의 60%정도는 성경에 그 내용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진리가 뭔지 모르는 목사나 신부님들은 도마복음을 삿된 것으로 치부하면서 보지 못하게 합니다
도마복음이 삿된 경으로 치부가 된다면
기존의 성경도 삿된 경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도마복음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자들은 진리가 뭔지 몰라서, 살인자인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모시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은 본래부터 모양이 없어서, 아무도 본 적이 없고, 그의 음성을 들은 자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이 모양이 있어서 보았고, 선지자들이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자는 외계인입니다.
성경 에스겔 1장을 보면 여호와는 외계인이요.
그가 타고 온 ufo의 구조 및 비행 방법도 다 나옵니다.
아래는 에스겔 1장의 내용을 가지고 만든 동영상이니, 보시면 절로 아실 겁니다.
오늘 배울 도마복음 104절의 핵심은 "신부의 방"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신부의 방"이란 앞으로 남편이 될 사람과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신부의 방을 "진리"(영)의 자리에 비유하여 말을 하는 겁니다
진리의 자리
아버지의 자리는 둘로 존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홀로, 독생으로 존재를 하는 곳입니다.
신부의 방에서 떠날 때란 곧 진리의 곳에서 멀어져서, 육체를 나인 줄 알고 살아가는 욕망의 세상을 말합니다.
사람이 육체를 자기 자신으로 착각하면, 욕망의 마음을 일으키고,
욕망으로 세상을 살다가, 욕망이 지은 죄에 따라서 죽음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욕망의 세상을 사는 것은 진리의 자리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자리에서 멀어진 것을 예수님은 이렇게 비유를 한 적이 있습니다.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줄기는 말라서 죽게 된다.
이 말의 뜻은 “홀로”, “독생”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은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독생”의 자리는 본래부터 모양이 없이 존재를 합니다. 본래부터 모양이 없기에 영원히 죽음이 없습니다.
죽음이 없기에 영원한 생명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홀로”의 곳에서 떨어져 나온 모양이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게 됩니다.
모양이 있는 물을 보면, 물도 “홀로” 존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요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물을 속으로 보면, 물은 산소와 수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은 홀로 존재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산소만 없어져도 물은 사라져 없어집니다.
세상에 그 어떠한 것이든 모양으로 존재를 하는 것은 죽음을 맞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신부의 방에서 즉 진리의 곳에서 멀어졌을 때 기도를 하라는 겁니다.
신부의 방은 둘이가 홀로가 되는 곳이라서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이지만
이곳에서 멀어졌을 때는 육체의 욕망에 지배를 받는 세상이 됩니다.
육체의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예수님은 기도하고 금식을 하라는 겁니다.
전체의 문장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그들이 예수께 말하길, "오셔서, 우리 오늘 기도와 금식하게 하소서!
예수께서 말씀하시니라.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는가!
혹은 어찌 내가 타락했다는 것인가?"
"차라리 신랑이 신부 방을 떠날 때에 사람들로 하여금 금식하고 기도하게 하라.“
풀이 :
진리의 곳, 홀로의 곳은 영원한 곳이며, 온전한 곳입니다.
온전한 곳에는 죽음도 없고, 죄도 없지만, 이곳에서 떨어져 나갔을 때는
육체를 나인 줄 알기에 욕망이 생기고, 욕망이 죄를 낳고 죽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온전한 곳에 있을 때
즉 신부와 신랑이 하나로 있을 때에는 죄가 없어 온전한 곳이므로, 기도를 하거나, 금식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금식이나 기도는 진리의 곳에서 벗어났을 때
진리의 곳에서 벗어났을 때,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나갔을 때, 하는 것이 금식이요 기도입니다.
금식과 기도는 온전하지 못한 곳에서 하는 행위이지
죽음이 없는 온전한 곳에서는 기도나 금식을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내가 온전한 것처럼 너희도 온전하라”
온전한 곳은 절대적 완벽이기에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정말 여호와가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간음한 자는 쳐 죽이라”는 이런 해괴한 것을 주지 않았을 겁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이 아니기에
그가 준 율법에는 문제가 많기에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려고 왔다는 겁니다.
정말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아들인 예수님이 고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들보다도 아버지가 못하다면 그런 자를 하나님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지요.
율법은 진리가 아니기에 예수님이 진리가 아닌
“율법은 모세(,여호와)로부터 나왔고, 진리는 그리스도로부터 나왔다”고 하신 겁니다.
정말 율법이 진리라면, 예수님은 "진리는 율법으로 부터 나왔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잘못된 진리가 아닌 율법을 진리가 되도록 완성을 시켜준 것입니다.
집이 다 무너져 가면, 그 집을 헐어버리고 그 땅에 새로운 집을 짓습니다.
율법이 진리가 아니기에 예수님은 율법이 진리가 되도록 손을 봐준 것입니다.
좋은 이름이
율법을 완성시킨다는 것이지, 나쁜 소리로 말하면 율법은 진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 듣기 좋기 위하여, 율법을 완성시키려고 왔다고 한 것입니다.
정말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면 예수님은 율법을 고칠 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기초적인 것도 모르는 자들이 성경 대학에서 교수를 하니,
그로부터 배출이 된 제자들이 진리가 뭔지 몰라서 예수님이 살인자라고 하는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하나님이라고 전도하는 자들은 죽어서 빛이 없는 곳으로 떨어져서, 성령모독죄를 받아서 이를 갈면서 슬필 울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온전한 곳, 그곳이 바로 신부의 방이요, 아버지가 있는 곳입니다.
온전한 곳으로부터 멀어지면 진리에서 멀어진 것이기에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이지
오로지 홀로, 독생, 으로 존재하는 온전한 곳에서는 금식이나 기도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하면 진리를 깨달으면 기도나 금식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어떠한 것이든 모양으로 존재하는 “홀로, 독생”이 아닌 것은 때가 되면 다 무너져서 없어집니다.
오로지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은 본래부터 모양이 없이 존재하는 신부의 방뿐입니다.
오로지 홀로 존재하는 곳은 “본래부터 모양이 없기”에 예수님이 이것을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진리의 곳을 보여줄 수가 없으니,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서 그곳을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진리를 직접 보여줄 수 있다면, 모양이 있는 진리를 들고 와서 한번만 보여주면 더이상 설명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알았다면
그 나머지는 본인이 직접 그곳을 찾도록 두드리고, 두드려서 문을 열어 직접 보아야만이 진리를 깨닫게 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본래부터 모양이 없는 곳을 본 자는 오직 진리를 깨달은 사람뿐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직접 노력을 해서,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은 너희 안이 있다”, “진리는 너희 안에 있다”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