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28
부동산 안정이 1순위…2024년 급락 대비해야
거칠게나마 지난 정부의 경제 분야 국정 과제를 요약해본다.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국난 극복, 16대 노무현 정부는 성장동력 회복과 사회안전망 강화, 17대 이명박 정부는 세계 금융위기 대응, 18대 박근혜 정부는 세계 경제 침체기에 대응하는 경기회복, 19대 문재인 정부는 정부주도 성장과 복지 확대를 추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20대 대통령 정부의 경제 국정과제는 무엇이 될 것인가.
먼저 주목해야 할 상황은 다음 대통령 임기(2022~2026년)는 세계적으로 정치·경제·기술 전반에 걸친 시대적 전환이 진행되는 시기라는 점이다. 다음 정부의 대응 여하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신냉전 시대’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헤쳐나가야 할 다음 정부가 직면하게 될 경제 과제는 다음과 같이 예상된다.
우선 고령화·저출산 문제다.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고령화 속도가 다음 정부 동안에 가장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총인구 정점이 2019년 추계에서는 2028년으로 예상됐으나, 2021년 추계에서는 이미 2020년 정점을 지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5세 이상 인구비율은 2021년 16.6%에서 2025년부터는 20%를 넘어선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합계 출산율은 2021년 0.84에서 2026년 0.78, 총부양비율(15~64세의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14세 이하와 65세 이상 인구비율)은 같은 기간 39.7명에서 46.1명으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가팔라짐에 따라 국민연금 재정문제의 심각성은 가중된다. 그런데도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1998년 3%에서 9%로 인상한 이래 23년째 9%에 묶여 있다. 다음 정부에서도 국민의 부담을 높이고 혜택을 낮추고 방향으로 연금개혁을 단행하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에 대한 부담 이전을 가속하고 연금재정의 파탄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할 게 분명하다.
2025년 잠재성장률 1%대 전망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021년 코로나19를 반영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다. 한국경제학회에 발표된 논문(김세직·안재빈)에 따르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5년마다 1%씩 하락하여 2025년에는 1%로 예상됐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연평균 성장률이 2007~2020년간 2.8%에서 2020~2030년간에 1.9%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진 원인은 이미 2018년부터 시작된 경제활동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 투입 저하와 투자 부진 및 총요소생산성의 하락에 있다. 따라서 잠재성장률의 저하를 막는 대책은 기업 투자 환경을 개선하고 총요소 생산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규제 선진화를 포함해 총체적인 구조개혁으로 경제운영의 효율성을 높이지 않는다면, 2025년 잠재성장률 1%는 불가피하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은 부동산 분야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끓어오른 주택가격 안정 문제는 다음 정부에서도 가장 중요한 민생 현안이 될 수밖에 없다. 아파트 가격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각 당 후보들은 다음 정부에서 250만호를 신규 공급하거나 매물로 공급할 것을 공약하고 있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3기 신도시 등 총 105만호의 주택공급계획을 발표하여 추진하고 있으며, 기존 임대주택사업자들의 보유 물량도 6년 또는 8년 임대사업 만기가 도래함에 따라 2024년부터 50만호가 매물로 대거 출현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2024년 또는 2025년부터 주택시장 문제는 공급 물량 압력으로 인해 과도한 하락세가 문제로 대두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수도권과 지방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현상이 시사하는 바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주택가격이 급락할 경우, 금융기관들의 건전성과 가계에 미치는 충격은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
부채 의존 경제서 벗어나야
가계대출은 2016년 4분기 대비 2021년 3분기 사이에 36% 증가했으며, 정부의 국가채무(D1)는 2016년 말 대비 2020년까지 35% 증가했다. 최근 한국은행은 가계와 정부의 부채가 지난 16년간 지속해서 동반 증가하는 거시 경제적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민간 부채 의존도가 높은 상태에서 정부 부문의 부채도 빠르게 증가하면, 정부 재정이 경기변동에 대한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축소되기 때문에 경기 변동성이 커지고 따라서 대외적 충격에 대한 대응역량이 약화하는 위험이 커진다.
특히 한국은 아직 재정 건전성이 양호한 국가라고는 하나,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민간과 정부가 부채 확대에 의존하는 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중대한 국가 과제다.
이 와중에 세계적으로 공급 부족과 에너지 가격 상승, 초과수요 압력에 임금 인상까지 4중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8%로 3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9.6%에 달했으며, 중국의 생산자 물가지수는 11월 12.9% 상승하여 내년에 수출상품의 가격 인상을 통해 세계에 인플레이션을 수출할 가능성이 커졌다.
더욱이 4중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중국과 인도의 성장률 저하 등 세계 경제 성장이 둔화할 위험도 증폭되고 있다. 즉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 압력은 지속하는 한편 성장 둔화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세계 경제가 장기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경우, 다음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 선택 폭은 크게 좁아질 수밖에 없다.
중국 완제품 산업과의 격차 확대
최근 국내 반도체·자동차·조선·가전·2차 전지 등 일부 산업은 글로벌 정상에 있거나 정상그룹에 진입하고 있으나 제조업 전체로는 심각한 상황에 있다. 국내 생산 제조업의 공급수준은 2016년 대비 2021년 9월 말 현재 1% 증가에 그쳤지만 수입품은 33% 늘어났다. 동기간에 최종재에서 국산은 2% 감소한 반면에 수입재는 43% 증가했으며, 중간재에서는 국산이 8% 감소했지만 수입재는 25% 증가했다.
이 양상은 투자 감소와 제조업 양극화로 중소 제조업체들이 경쟁력을 상실해 쇠퇴함으로써 국내 공급사슬이 심각하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제조업 설비투자 규모는 2015년 대비 2020년 8% 감소했으나 반도체 산업을 제외하면 무려 26%가 감소했다.
한편 세계 공산품 수출시장에서 2014년 대비 2019년 중국의 비중은 0.29% 포인트 상승했지만 한국의 비중은 0.3% 포인트 감소해 세계 수출시장에서 중국의 추격에 한국이 밀려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중 의 ‘신냉전’이 기술패권 대립으로 전개됨에 따라 세계적으로 정부 주도 산업 기술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현실도 산업경쟁력 제고가 절실한 또 다른 이유다. 특히 우리나라는 중국 완제품 산업과의 격차를 확대하는 한편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추격하는 과제가 더욱 절실해졌다.
김동원 /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중앙일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답습 안 하려면 …
우리는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정책이 국민의 삶에 얼마나 큰 부담과 고통을 안겨줄 수 있는지 충분히 경험했다. 그런 만큼 다음 정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버거운 시대적 과제로부터 국민의 안녕을 어떻게 지켜줄 것인가에 진지한 고민이 절실히 요청된다.
다음 정부가 직면할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국민의 부담과 편익을 재조정하는 것이며, 선거는 이에 대한 국민의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아무개 후보를 뽑는 이유는 그 후보가 국민에게 약속한 부담과 편익의 조합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후보들이 국민에게 하등의 부담과 고통을 요구하지 않고 ‘100조 뿌리기’ ‘무조건 해결’ 또는 ‘닥치고 정권교체’만 공약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공약(空約)을 공약(公約)하는 것이다.
다음 정부가 세기적 전환기의 시대 과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전략적 전환점에서 악순환 경로에 빠져들게 분명해 보인다. 지난 30년간 일본 경제가 보여준 것과 같은 침체의 길을 답습해서야 되겠는가.
반면에 다음 정부가 지난 정권들이 20년 가까이 외면해 왔던 구조개혁을 단행하여 우리 경제를 선순환 구조로 전환할 경우, 한국경제는 세계 4위의 제조공업국으로 우뚝 서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기 위해서 어떤 개혁을 어떻게 추진할 것이며, 국민에게 어떤 고통 분담을 요구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경쟁하는 대통령 선거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