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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얘기가 있다. 상처받은 여자의 원한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상징적인 말이다. 한때 불꽃 같은 사랑을 했던 연인들이 어느 한쪽의 변심으로 관계가 깨지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헤어지고 또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점이다. 어떤 경우 남녀간의 이별과 집착은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배신감과 상처를 남기며 예상치 못한 참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이성 간의 병적인 집착과 질투, 변심으로 인한 ‘치정잔혹극’이 심심찮게 벌어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번에 원주경찰서 중앙지구대 양영용 반장이 전하는 사건 역시 이와 흡사한 사례다. 두 불륜남녀가 헤어지는 과정에서 여성의 지독한 집착과 분노가 빚어낸 내연남 아내 살인사건’에 대한 것이다.
서울 성북경찰서 강력팀에 근무할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양 반장은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잘못된 인연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낳는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매몰차게 돌아선 내연남을 향한 한 여성의 애증과 집착은 그의 부인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끔찍한 방법으로 표출됐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한 여성의 엽기적인 복수극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동시에 한 가정을 풍비박산 내고 말았다.”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2004년 5월 28일. 서울 성북구의 한 연립주택에서 주부 A 씨(당시 37세)가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됐다. 이날 오후 1시께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초등학생 아들이 어머니의 사체를 목격했던 것.
신고를 받고 관할서인 성북경찰서 형사들이 현장에 급파되었다. 연립주택에 도착한 형사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는 사체를 보고 잠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양 반장의 설명. 사체를 본 순간 ‘아! 이럴 수가!’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동안 내가 본 사체 중 몇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끔찍했기 때문이다.”
사체의 상태와 주변 정황으로 볼 때 A 씨가 살해된 시간은 이날 오전으로 추정됐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등교한 후 혼자 집을 보고 있던 A 씨가 누군에게 살해된 것이다.
도대체 누가 왜 이같이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걸까. 그 무렵 서울 고척동과 대림동 등 서남부지역에서는 부녀자 피살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었다. 수사팀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양 반장의 얘기.
첨단 과학수사기법을 동원해서 그 무렵 발생한 살인사건들과 비교해봤지만 이 사건은 그 사건들과는 연관성이 적은 것으로 판단됐다. 집 안에 금품이 그대로 남아 있던 점으로 보아 전형적인 강도살인사건으로 보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철저한 현장감식을 실시했지만 범인을 특징 지을 만한 아무런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우리는 범행수법이 너무나 잔인하다는 점에 주목해 우선 원한에 의한 살인 쪽으로 가닥을 잡고 수사를 진행했다.”
수사팀은 남편을 포함한 A 씨의 주변인물들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특별히 의심스러운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 잠복과 탐문수사, 통신수사 등을 실시하던 형사들은 수사에 착수한 지 10여 일 만에 A 씨의 남편 B 씨와 한때 내연관계를 맺었던 C 씨(당시 39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기에 이른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만 해도 아무도 남편의 내연녀였던 C 씨를 용의선상에 올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남편이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점에서 금전이나 채무관계 등으로 원한을 맺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주변인물들에 대한 탐문 수사를 진행하던 중 감춰져 있던 C 씨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수사 결과 남편과 C 씨의 순탄치 못했던 내연관계가 밝혀지면서 조금씩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C 씨의 행적에 대한 조사 결과 몇 가지 의심스러운 점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사건 당일 오후 C 씨가 서둘러 미국으로 출국한 것이 큰 의문이었다. 사건 며칠 전 피살된 A 씨에게 10여 차례 전화를 걸었던 사실도 파악됐다.
수사 결과 A 씨의 남편 B 씨와 C 씨는 2003년 초 노래방 도우미와 손님의 관계로 연을 맺었다. 놀라운 것은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던 C 씨가 미국 유학까지 마친 인텔리 여성이라는 사실이었다. 다음은 양 반장의 설명.
87년 부산의 한 대학을 졸업한 C 씨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학위를 받은 엘리트 여성이었다. 미모 또한 상당한 C 씨는 89년 미국인과 결혼, 두 명의 자녀까지 낳았다. 하지만 C 씨는 외국인 남편과의 문화적 충돌로 적잖은 갈등을 빚는 등 그다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때문인지 친정이 있는 한국에 수시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C 씨는 영어강사로 틈틈이 일을 했다. 그런데 시간당 수입이 높은 노래방 도우미를 아르바이트 삼아 하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깔끔하고 준수한 외모에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B 씨는 노래방 도우미인 C 씨에게 친절하고 매너 있게 대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손님과 도우미의 사이를 넘어 급속도로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불륜’이라는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이들 사이는 머지않아 삐거덕거리게 된다. 이어지는 양 반장의 얘기.
C 씨는 갈수록 B 씨에게 과도한 집착을 보였다고 한다. B 씨는 화목한 자신의 가정을 깰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C 씨는 달랐다. B 씨에게 ‘같이 살자’는 요구를 했나보더라. C 씨는 하루에도 수없이 전화를 하고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이에 부담을 느낀 B 씨는 결국 ‘결별’을 통보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에도 C 씨는 B 씨에게 집요하게 연락을 취하며 관계복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C 씨가 B 씨에게 보냈던 문자메시지가 160여 회에 이르고, 직장과 집으로 전화를 건 게 100여 회로 나타났다.”
B 씨와 C 씨의 관계를 알게 된 수사팀은 조금씩 사건의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 B 씨와의 결합을 간절히 원했던 C 씨에게 B 씨의 부인은 가장 큰 걸림돌이었을 터. B 씨에 대한 배신감과 집착에 빠져 있던 C 씨가 B 씨의 아내를 상대로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문제는 C 씨를 범인으로 단정 지을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현장에서는 범행에 사용된 도구는 물론 범인의 지문이나 족적, 머리카락 한 올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수사팀은 C 씨의 범행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단서를 잡기 위해 C 씨의 주변을 다시 한번 샅샅이 훑어나갔다.
이 과정에서 수사팀은 사건 전날 C 씨와 같이 있었다는 조카를 찾아가게 된다. C 씨가 범행 직전에 같이 있던 조카에게 은연중에 범행동기나 어떤 심리적인 동요를 드러냈을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었다.
C 씨의 조카를 본 순간 ‘뭔가 알고 있다’는 감이 오더라. 서너 시간을 붙잡고 설득했다. 조카는 한동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눈물을 흘리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C 씨의 엄마에게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는 거였다. 사건 당일 C 씨가 엄마를 찾아와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한 뒤 허겁지겁 나갔다는 것. 또 C 씨가 범행에 사용한 흉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의 부엌칼을 갖고 가서 범행을 저지른 후 모처의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거였다.”
수사팀은 범행에 사용된 칼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쓰레기 집하장까지 모조리 뒤졌지만 끝내 문제의 칼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이어지는 양 반장의 얘기.
칼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간 우리가 수집한 모든 정황들은 C 씨가 범인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특히 C 씨가 자신의 엄마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또 우리는 C 씨와 B 씨 사이의 더 내밀한 얘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C 씨의 조카가 한 얘기는 이후 조카의 엄마에게 들은 얘기와도 정확히 일치했다. 특히 미국에 도착한 C 씨는 전화로 ‘사건이 어떻게 됐는지’를 물어왔다고 하더라. 수사팀은 모든 정황과 주변인물들의 얘기를 종합해 C 씨가 범인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또 공개할 수는 없지만 범행 전 C 씨가 A 씨에게 전화를 건 통화내용 등을 분석한 결과 역시 범행 정황을 확실히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수사팀은 미국에서 잠적한 C 씨를 인터폴에 수배하는 한편 신병인도를 요청했다. 그리고 얼마 후 범죄인인도조약을 통해 미국 경찰로부터 C 씨의 신병을 넘겨 받았다.
하지만 C 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자신보다 몸무게가 13㎏이나 더 나가고 체격도 훨씬 큰 A 씨를 어떻게 살해했겠느냐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C 씨의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살해혐의로 기소된 C 씨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2006년 3월 항소심 재판부도 원심대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경찰의 수사가 적법하게 이뤄진데다 채택된 간접사실 및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할 수 있고, 피고인이 아닌 제3자에 의한 범행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재판부의 의견이었다.
이 사건은 목격자나 범행에 사용된 흉기 등 직접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경찰의 수사를 어렵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목격자 진술 등 직접증거가 없는 사건에서 유죄의 심증은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위반되지 않는 한 간접증거에 의하게 된다’고 판시, 적절한 수사에 의한 간접증거의 채택을 인정했다.
항소심 판결에 불복한 C 씨는 곧바로 상고를 했으나 2006년 6월 27일 대법원의 상고 기각으로 인해 15년형이 확정됐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