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공 부>
3
"흐아아암......"
"파리들어간닷! 입닫엇!"
퉁가리는 나미를 흘낏 처다보고는 뭐라 그러든지 말든지 다시 하품을 하였다.
"흐아아암......"
"너! 내 말을 무시하는 거얏!"
"흐아아암......"
"제발 그 하품소리 좀 그만 내! 짜증나!"
"흐아아암......"
"......투웅가아리이~!"
그제서야 퉁가리는 하품쉬는 것을 그만두었다. 딱 여기까지 나미를 골려주는 것이 딱 좋았다. 여기서 더 나간
다면 아마 검을 휘두르겠지...... 혼자서 분을 삭히려 노력하는 나미를 둔채 퉁가리는 고개를 돌려 젠스를 바라
보았다.
'얼씨구.'
젠스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퉁가리는 고함을 빽 질렀다.
"젠스!"
"네, 넷!"
자이드라 군대에 있을때 몸에 벤 습관이 나타났다. 마치 경례를 하듯이 고개를 빳빳히 들고 손은 이마에 두
었던 것이다. 퉁가리는 실소를 터뜨렸다.
한동안 멍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던 젠스는 자신이 퉁가리의 목소리에 그런 반응을 보인것을 알고 퉁가리를 향
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너무 합니다, 퉁가리님."
"하핫, 하지만 그 꾸벅꾸벅 조는 자세는 뭔가. 아무리 심심해도 말이지. 꾸벅꾸벅 졸면 되나?"
"그, 그건 제가 잘못한 점이지만...... 사람을 이렇게 농락하시니 기분이 좋으신가요?"
"하핫, 그건 두말하면 잔소리지!"
퉁가리는 밝게 웃으며 답했다. 점차 라이샤의 모습을 닮아가는 퉁가리의 모습을 본 젠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퉁가리의 뒤에서 한동안 궁시렁대던 나미가 갑자기 고개를 들며 두 눈을 번쩍였
다. 그와 동시에 퉁가리와 젠스의 얼굴에서도 표정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곧 표정이 나타났다.
그것은 환희였다.
"이얏호!"
나미는 기쁘다는 듯이 그 가벼운 몸을 제자리에서 통통 굴렸다. 퉁가리는 재빨리 갈색검을 챙겼고 젠스도 무
색검을 꺼냈다. 어차피 보이지 않아 꺼냈다는 개념자체가 이상하지만. 기뻐하는 나미를 뒤로 둔채 그들은 기쁘
게 뛰어갔다. 한동안 혼자 방방 뛰던 나미는 젠스와 퉁가리가 자신을 혼자 두고 간 것을 알자 고래고래 고함
을 지르며 나왔다.
"이자식들이! 감히 날 무시해! 나중에 꼭 죽여놓겠다~!!"
나미의 두 눈에선 불이 이는 듯 했다. 하지만 젠스와 퉁가리는 그녀가 소리를 치던 말던 빨리 달려가기에 바
빴다. 하지만 스피드의 여왕 나미였다. 그들은 곧 나미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아앗! 나미님 치사합니다! 또 혼자 처리하실 겁니까!"
"오호호홋! 분하면 나를 따라잡아!"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웃던 나미의 모습은 곧 퉁가리와 젠스의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나미의 스피드만은 그
들이 쫓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젠스와 퉁가리는 최대한의 속도를 내었지만 아마 그들이 도착할때쯤에는 나미
가 다 끝낼지도 모른다.
심심하다며 툴툴대던 나미는 자신들이 숨어있는 깊은 산속으로 다른 존재가 나타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달
려가 자신 혼자 다 때려잡았다. 간혹, 도망간 존재가 발견되어 라이샤나 마이샤가 죽인 적은 있었으나 젠스와
퉁가리는 아직 한번도 잡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깊은 산속에 나타나는 다른 존재는 대부분 마족몬스터였다. 보통 몬스터와 다를바없이 생겼지만 하도 그들을
많이 죽여본 그들은 이제 척보면 보통 몬스턴지 마족몬스턴지 알았다. 가이샤가 그들에게 이런 일만 시켰던
것이다.
젠스와 퉁가리가 헉헉거리며 장소에 도착했을 무렵, 나미가 다 없앴겠지 하며 거의 포기상태이던 젠스와 퉁
가리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나미가 자신이 앞에 있는 마족몬스터를 베지도 않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던 것이었다. 옆에는 마족몬스터의 시신도 보이지 않았다. 즉, 아직 싸움도 시작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아무런 살기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살았네?"
"우왓! 난 이래서 나미 네가 좋아~! 날 위해 이렇게 남겨두다닛~!!"
점점 라이샤화가 되어가는 퉁가리를 보며 나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잘봐, 이녀석은 보통 마족몬스터가 아냐."
그 말을 하고 나미의 모습은 사라졌다. 사라진게 아니라 빠르게 움직인 것이었다. 워낙 빨라 젠스와 퉁가리는
온힘을 다해야 겨우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 나미의 속도가 점점 빨라짐에 놀라던 그들에게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미의 앞에 있던 마족몬스터가 나미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던 것이었다. 나미는 그 마족몬스터
에게 공격을 가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그 마족몬스터도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나미는 멈춰섰다. 그러자 마족몬스터도 멈춰섰다.
"이, 이럴수가......"
"빠르다...... 과연 잡을 수 있을까......."
그러자 나미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물론 못 잡지."
"뭐얏!?"
퉁가리가 발끈하며 외쳤다. 그러자 나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날 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거야?"
"에? 난 마족몬스터를 잡겠다고......"
"으이그, 이 바보야! 넌 라이샤에게 바보짓만 배웠냐?"
"혹시......"
그들의 대화는 신경도 안쓰다가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젠스가 말했다.
"이 마족몬스터는 혹시....... 거울?"
"딩동댕. 역시 저 바보 퉁가리보다는 똑똑하군."
"뭐얏!?"
"어이, 바보는 조용히 해. 이 똑똑한 누님이 설명을 해주지."
퉁가리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은 도저히 예상조차 가지 않았던 것이다. 퉁가리는 입을 다물고 나
미가 하는 말을 들었다.
"에....... 그러니까 이 녀석은 마족몬스터들 중에서도 속성이 거울에 속하는 놈이야."
"속성?"
"그래. 속성. 마족몬스터들에게는 각각 속성이 있는 것 같았어. 예를 들어 맨 처음 우리들의 앞에 나타났던
문신을 막 그린 몬스터들은 아마 속성이 불이었을꺼야."
"불?"
"아마...... 성격을 불같이 만들어 성미급한 것을 나타내겠지. 그리고 몸에 문신이 없던 마족몬스터들, 그들은
아마 속성이 물이겠지. 침착히 빈틈을 노려서 공격하는 것을 봐서도 그렇고."
"말되는데......"
"물론이지.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마족몬스터는 속성이 거울이지. 자신의 앞에 있는 상대와 똑같은 행동
을 취하며 상대가 공격하기 전에는 자신이 공격하지 않는...... 아마 물의 속성이나 불이 속성의 마족몬스터와
같이 다니는 것 같아. 이 녀석이 적에게 혼란을 주고 다른 몬스터가 공격한다......
최상의 콤비가 되겠군."
"흐음...... 그럼 이 녀석을 우리편으로 만들수도 있겠군."
퉁가리의 말에 눈이 똥그래진 나미가 말했다.
"어떻게?"
"간단해. 저 녀석의 습성을 이용하면 되지."
"습성을?"
퉁가리는 능글맞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지금 우리는 저 녀석을 공격하지 않고 다음에 우리가 싸울상대에 저 녀석을 내보내는 거야. 그게 인간이든
마족몬스터든 당황하며 저 녀석을 찌를테고 저 녀석도 상대를 찌르겠지. 그리고 뒷처리는 우리가 하는 거야.
저 녀석은 더 이상의 공격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퉁가리의 말에 나미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나미의 표정을 읽은 퉁가리는 뭐가 기쁜지
자세를 잡으며 바보같이 '하! 하! 하!'하고 웃었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젠스의 말에 사라지고 말았다.
"문제가 있죠. 문제는 바로 저 거울 속성의 마족몬스터를 어떻게 데려가고 어떻게 데리고 있느냐."
"......"
그들은 엄청난 문제에 도달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고요히 울려퍼지고 있었다. 거대한 천상계안의 작은 집안에 있는 검은 머리의 한 소
년이 도도하게 앉은채 책장을 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엉덩이는 의자에 두고 두 다리는 침대위에 올린채 그 소
년은 책을 읽고 있었다. 소년이 들고 있는 것은 책이라 부르기도 뭣했다. 투명한 유리판 같은 곳 위에 빽빽히
글씨가 적혀져 있었으니까. 유리판은 유연히 굽어지며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책을 보던 소년, 라이샤는 한숨 쉬었다.
"이게 아냐......"
그리고는 유리로 된 책을 덮었다. 천상계에 온지 1개월...... 30일이라는 숫자에 비해 라이샤가 얻은 것은 적었
다. 아니, 거의 없었다. 이곳에 머무르며 그는 온갖 책을 뒤지며 자료를 찾았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
은 찾지 못했다.
라이샤는 의자에 온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이샤녀석도 이럴까...... 아니, 그 녀석은 나보다 머리가 좋으니 지금쯤이면 발전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아...... 피곤하다......'
라이샤는 몽롱히 밀고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잠들고 말았다.
"끌고 갈까?"
"......순순히 끌려오리라 생각해? 저 녀석도 너와 같은 행동을 취할 텐데도?"
"으음...... 그럼 어떻게 한다......"
퉁가리는 자신의 앞에 있는 거대한 마족몬스터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퉁가리가 그 마족몬스터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 몬스터도 퉁가리와 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퉁가리는 앞으로 한발자국 나가 보았다. 그
러자 마족몬스터도 같은 행동으로 발을 내딛었다. 퉁가리는 동료들을 보며 말했다.
"생각보다 간단한데?"
그러면서 퉁가리는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족몬스터도 퉁가리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
족몬스터가 가는 것을 보고 젠스와 나미는 환호성을 질렀고 그들이 왜 그런 환호성을 짓는지 모르는 마족몬스
터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한참 마족몬스터를 끌고 가던 퉁가리가 말했다.
"이 녀석 이름을 뭐라고 하지?"
"이름? 이름이 필요해?"
"이봐...... 그럼 마족몬스터나 이 녀석, 저 녀석으로 부를 생각이야?"
"으음...... 듣고보니 그렇네......"
나미는 턱에 손을 괴고 생각을 하는 듯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옆에 있던 젠스가 그
럴싸한 이름을 말했던 것이다.
"마터. 마족몬스터를 줄여 마터 어때요?"
"마터....... 괜찮은데? 좋아, 넌 이제부터 마터다."
환하게 웃는 나미를 보며 마족몬스터도 제 나름대로의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여기는...... 어디지......
어둠만이 잠식하는 곳인가...... 그 어떤 사물도 보이질 않는군.
'드디어 왔구나.'
어? 당신은 누구지요?
'잘 왔다, 가이샤의 쌍둥의 아들중 맏이인 라이샤우샤 퍼라스.'
어? 어떻게 내 이름을......
'난 전 불의 신 카이셔. 너에게 하나 말해줄 것이 있어 왔다.'
나에게...... 말해줄 것? 굉장히 중요한가요?
'물론. 이것을 모른다면 넌 불의 신이면서 불의 신이 아닌 존재가 될지 모른다. 한달전처럼 말이지.'
그럼...... 그것을 말해주세요.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중요한 것 같으니까요. 가르쳐 주세요.
'그것은 간단하다. 붉은검은 친구이자 적이다. 붉은검을 신뢰하면 그는 친구가 되지만 그것을 신뢰하지 않는
다면 그것은 적이 된다. 내가 할 말은 끝이다.'
자, 잠깐만요. 그렇게 사라지지 말고 더 말해 주세요! 가르쳐 주세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