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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 있는 분들하고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이제 진짜 여름 같은 날씨를 오늘 한번 겪게 하시는데요. 이제 더울 날이 앞으로 더 많은데 이 더위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또 이 자연 만물의 소생함을 함께 누리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이제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 제목 혹시 보셨나요? 네 주보를 보신 분들은 제목을 보셨을 텐데 제목이 지상 교회는 어차피 완전하지 않아.
요즘 최근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3대 종교가 불교, 천주교, 기독교,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이렇게 3대 종교라고 말을 하잖아요. 이 세계의 3대 종교 중에 종교 이탈률이 가장 높은 곳이 어디일까요? 최근 안타깝게도 기독교입니다. 종교 이탈률이라고 하는 게 뭐냐면 한마디로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종교를 버리고 떠난 사람들의 숫자를 이야기하는 거 이 수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뭘 이야기하는 거냐면 내부적으로 불만이 좀 많다. 그래서 그 불만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그런 케이스들이 이 교회 안에 많아진다고 하는 것이죠.
여러분들 주변에도 신앙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교회를 안 다니는 분들이 생각보다 좀 요즘 있으실 겁니다. 근데 그분들하고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분들이 경험한 어떤 교회 내부의 이야기들이 참 부끄럽기도 하고 또 때로는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이야기들, 슬프고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교인들끼리 다툼의 문제가 있기도 하고 물질의 어떤 연관된 상황들 또 오해와 소문들, 또 지도자와의 관계, 또 지도자끼리의 어떤 다툼 그래서 결국 이런 상황 속에 교회를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기독교의 이미지가 굉장히 추락하는 것을 보고 있는데요. 인터넷 상에서 여러분 기독교 목사 뭐라고 비아냥거리면서 말하는지 아시죠? 기독교는 뭐라고 그럴까요? 아는데 안 보셨어요? 너무 은혜로운 삶만 사시는군요.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합니다. 목사는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먹사 집사는 잡사 뭐 이런 식으로 자기들 마음대로 비웃는 듯한 말투로 그렇게 불립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은 연일 지탄받을 만한 일들이 교회 안에서 막 이렇게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일들을 많이 보게 되죠.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 교회라고 하는 집단을 굉장히 보수적이고 그리고 진보를 가로막는 단체 집단이라고까지도 이야기할 정도로 이미지가 그런 식으로 지금 변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교회라고 하는 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서로 분쟁하고 갈등하고 그런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고요. 여러분들이 아마 알고 있는 이 춘천 시내 안에 교회들 가운데도 상처와 아픔이 있는 교회들이 여럿 있을 겁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종교 지도자가 잘못된 어떤 이성적인 관계를 가져서 그것 때문에 큰 문제가 되기도 하고요.
근데 이런 어떤 교회 안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걸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 성경적으로 우리가 배운 걸로 한다면 우리가 잘못한 걸 깨달았을 때는 주님 앞에 회개해야죠. 그런데 자기를 합리화하고 자숙하기는커녕 얼마 지나지 않아도 다시 버젓하게 또 사역을 하거나 또 자기의 어떤 일을 하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참 이 땅의 교회가 불안전하다고 우리가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교회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회에 나는 안 나가라고 해서 안 나가를 거꾸로 하면 뭐예요? 가나안 그래서 가나안 성도가 많아진다는 소리가 가나안 안나가 이게 이제 거꾸로가 이렇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이상 교회에는 머물러 있지 않은 성도라고 자기들은 그래도 성도래요 가나안 성도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워낙 발전돼서 코로나 때 우리 온라인으로 워낙 예배를 많이 드려서 그런지 이제는 더 가난한 성도가 온라인으로만 예배드리는 가난한 성도들이 지금 굉장히 많은 비율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 이런 지금 교회가 굉장히 이런 상황 가운데도 적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이 교회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용기가 없거나 정의감이 없어서 그냥 버티고 견디고만 있을까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빚값으로 사신 교회 그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그곳에서 머물고 그곳에서 정화를 하고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분들이 계시죠.
우리가 그냥 우리 가정으로 한번 생각을 해본다면 우리 가정에 문제가 생겼어요. 그러면 그냥 가출해버리면 되지 그러면 다 가출할 일밖에 안 생기겠죠. 부부싸움 하면 가출해야 되고 엄마 아빠랑 싸우면 엄마 아빠랑 다 두 명 같지 교회를 향한 애정을 가지신 그 소수의 아니 다수의 많은 분들 때문에 지금 이 교회가 그 위기 가운데서도 지금 극복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이렇게 나아가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이 주제의 말씀으로 던진 지상 교회는 완전하지 않아 이 말을 이런 어떤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우리가 그냥 붙인단 말이에요. 교회에서 어떤 문제가 터졌어요? 어떤 교회에서 그러면 상에 세상에서 교회가 그렇지 완전할 수가 있어. 근데 이 말이 맞는 말 같지만 또 어쩌면 우리를 합리화하고 있는 거예요 합리화시키고 있는 거 그래서 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요지도 그 안에 담기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가정도 가정생활을 하다 보면 다툴 때도 있고 좀 어려울 때도 있는데 그럴 때 에이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어디 있어 다 그런 거지 뭐 그냥 포기해 버리고 그냥 가정을 떠나버리고 자녀들 에 자녀들이 부모로서 자녀들을 책임져야 할 그 상황 가운데 부모 중에 온전한 사람이 어딨어 그리고 그냥 자녀 문제를 방치해버린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요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 속에 해결해 주시는 요소들도 있지만 그 과정 속에 우리에게 발견하게 하시고 그것들을 해결하게 하시는 이유와 목적들을 발견하게 하실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우리가 교회로서의 본질을 붙들고 그 문제들을 같이 해결해 나가면서 같이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가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 먼저 교회 교회라는 이미지가 우리에게는 건물이라고 하는 이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간다 그러면 이렇게 건물 교회 다닌다 너희 교회 어디야 뭐 이런 식의 물어보는 이런 말들이 다 건물의 개념의 교회를 이야기를 하는데요. 신약 성경에서의 교회를 보면 에클레시아라고 하는 단어가 114번이나 사용이 됐는데 이 114번의 교회라는 단어 중에 한 번도 건물에 대한 교회를 이야기해 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이 에클레시아는 모임 집회 이런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들이 함께 모이는 모임을 지칭하기 위하여 에클레시아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거 이제 이 정도는 이제 신앙생활 어느 정도 하는 분들이 압니다. 건물만을 우리가 교회라고 이야기하는 거 아니에요 눈에 보이는 거 말고도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이 예배도 교회야 믿는 사람들이 교회야 이런 식의 우리가 이야기들도 많이 하는데요. 물론 주일 예배 와서 함께 예배드리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그 모임 자체를 교회라고 말하는 것도 그것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짜 교회가 우리가 그냥 이렇게 같이 모이는 것이 이 자체가 교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어떤 사람들이 교회를 소개할 때 저 하늘 소망교회는 노유철 목사님이 담임하는 교회야라고도 소개합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약간 그 말 안에 유명한 목사님이 이제 심오하는 교회 저희 교회에 이렇게 소개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그러고 넘어갈 텐데 여러분들이 아는 쟁쟁한 목사님 그 목사님의 이름을 갖다 대면서 저 교회는 그 목사님이 담임하는 교회라고 하는 말을 하는 이유와 목적이 뭐예요?
그 안에는 교회가 목회자 중심으로 설교를 듣는 집단 또는 어떤 선교나 봉사를 하는 집단 정도의 수준으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가 인식화되어져 가고 있는 모습들도 없지 않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의 탄생의 모습을 우리는 잘 이미지화 가지고 있는데 거기서 좀 붙들어야 될 부분들이 있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지내면서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이끌고 다니셨습니다. 근데 그들은 오합지졸이었어요.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다 도망갔습니다. 심지어 비방했어요. 예수님이 너는 나를 그렇게 비방할 것이다라고 말을 했는데 끝까지 그대로 했죠.
근데 예수님이 부활하고 난 이후에 그들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목숨을 불사르면서까지 오히려 그들은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러 다녔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온전히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 그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것이 공동체가 되면서 고린도에 있는 교회, 고린도 교회, 에베소에 있는 교회, 에베소교회 그 교회가 이름을 우리가 우리 교회 이름 정할 때처럼 모여가지고 우리 교회 이름 뭘로 할까요? 이렇게 정한 게 아니라 그냥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이렇게 모여서 같이 예배를 드리다 보니까 에베소에 이런 공동체가 생겼어요. 에베소교회 이렇게 됐다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의 탄생은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르쳐 주신 것 그리고 그 가르침 가운데 알려주신 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그리고 승천하신 그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우리에게 가장 강조하고 가르쳐주신 핵심이 뭘까요? 사람들이 약간 헷갈려요. 어떤 이들은 사랑이라고도 표현합니다. 근데 우리가 면밀히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어요.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이 말한 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천당의 개념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해석하지 않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상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 인류를 만드시고 이 인류가 타락해가는 과정 속에서 한 민족을 택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계속 만민에게 알려주려고 했는데 그게 어그러졌잖아요. 그런 과정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하게 하시고 회복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자들이 예수님이 그렇게 3년 동안 따라다니는 동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셨거든요. 그런데 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질 못해요. 예수님이 자기가 바로 메시아다 그리스도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들이 생각하는 개념의 메시아 그리스도로 생각합니다.
초창기에 예수님을 선생님 라비라고 생각을 했죠. 그리고 조금 지나니까 예언자 그리고 좀 같이 다니다 보니까 이분이 메시아구나 그리스도구나라고까지 고백을 합니다. 오늘 베드로의 고백처럼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들 생각 하에 메시아로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제자들도 막 흥분하잖아요. 예수님이 드디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한바탕 뒤집어놓고 우리가 드디어 원하는 세상을 살겠구나. 하나님의 나라 마치 자기들이 자유하게 풍성하게 살아가는 삶을 그냥 이 땅에서의 개념 하에서의 그런 삶을 그들은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상상과는 완전히 벗어나게 십자가에 못박혀 아무런 힘없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예상이 깨진 이들은 다 도망갔죠.
근데 예수님이 부활하고 난 이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동안 하셨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드디어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잘못된 내 경험, 내 지식, 우리가 가져왔던 어떤 사고 관념 하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구나 예수님이 말했던 게 이거였구나라고 하는 걸 깨달았어요. 예수님이 가르쳤던 이야기 하나하나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시작됐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이들은 지금까지 자기네들이 살아왔던 가치관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리는 거예요. 그전에는 겁나서 벌벌 떨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부활 사건 이후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신하게 되니까 이 사람들이 확 뒤집어진 겁니다. 그래서 죽음을 불사하며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던 것이 예수님의 명령대로 모여서 기도하라니까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성령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되었죠. 그게 바로 그때 세워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 최초의 교회입니다. 최초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심을 믿었다고 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이요.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 예수님이라고 하는 분을 신뢰했습니다. 신뢰 안 할 수가 없죠. 가는 곳곳마다 막 병자를 일으키고 심지어 죽은 자도 막 살리시고 그걸 눈에서 직접 보는데 예수님을 어떻게 안 믿을 수가 있어요?
그런데 믿는데 그 믿음이 그냥 예수님이라고 하는 존재 자체에 대한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근데 이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 이 땅 가운데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고 이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승천하셨다가 다시 오시게 될 텐데 그때는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신다고 했으니 우리는 이미 시작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면 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풍성한 은혜를 누리면 되는구나 그리고 그 은혜를 이제는 나만 누릴 것이 아니라 증거해야 되겠구나라고 하는 열정이 일어난 겁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가 그 위협 가운데 위기 가운데 일어났지만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을 증거하며 교회들을 막 세우기 시작하는 것이죠.
근데 그 과정에서도 자기들만의 생각으로 머물 때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교회가 세워지고 막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날 때에도 이 사람들의 생각에는 유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그러니까 그곳에 머물러 있었어요.
근데 스데반 집사의 순교 이후에 그들이 다 흩어지게 되죠. 근데 흩어져서도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고넬로라고 하는 인물을 통해서 베드로가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하시고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의 문이 열렸다는 사실을 알게 하신 이후에 이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증거되면서 세워진 교회가 바로 안디옥교회입니다.
여러분 지금 초대교회의 지금 이렇게 흐름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제가 이렇게 쑥 훑어주면서 강조점이 뭔지를 한번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십시오. 이들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가르쳐주셨던 하나님의 나라를 이제는 자기의 머릿속의 생각으로 그냥 이렇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의 어떤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예수님이 증거한 하나님의 나라가 명확히 믿어지니까 핍박이 다가와도 자기를 죽이려고 해도 자기가 가진 것을 빼앗겨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들 안에는 소망이 일어났던 거예요. 그 소망은 앞으로 좋아질 거야 이런 개념의 소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면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거야라고 하는 분명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변화된 삶을 살았고 이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람들의 눈에 볼 때는 이상한 겁니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살지 저 사람들은 뭐가 다르지 이해가 안 되니까 그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갖기 시작하는 과정 속에 복음이 그 틈새로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확장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초대교회에 세워진 예루살렘교회, 안디옥교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린도, 데살로니카, 에베소서 빌립보 골로서 다양한 교회들이 있는데 그 교회들도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 교회들 안에도요. 다툼도 있었고요. 그 교회들 안에도 오해도 있었고요. 물질 문제도 일어났고요. 심지어 거짓말해가지고 죽는 사람도 일어났습니다.
근데 중요한 건 그들의 관심사는 교회를 완전하게 세우는 게 관심사가 아니었어요. 우리 교회가 만 명 교회를 만들어야지 이런 개념으로 교회를 세운 게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1년이 지나도록 한 명도 싸우지 않고 한 명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한 명도 상처받지 않는 교회가 되게 해야지 이런 완전한 교회를 그들은 꿈꾸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무엇이냐면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시작됐다라고 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하면 누릴 것인가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누리고, 이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하면 내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것인가 이게 그들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러니까 모일 때마다 그들은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서로 자랑하는 거예요. 서로 간증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영향력들이 더 풍성해져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은혜가 있었다는 것이죠.
여러분 세상에 완전한 교회 아무 문제없는 교회는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교회는 유기체와 같아서요. 태어나고 성장의 과정을 걷고 그 성장의 과정 속에 때로는 병들기도 하고 회복하기도 하고 그 과정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게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입니다. 때로는 교회도 사라지기도 해요. 코로나 이후에 여러분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사라지는지 아십니까?
지금 우리 주변에 수없이 많은 교회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교회는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세우고자 하는 교회는 가능하다는 약간 말의 개념이 어려울 수 있는데 좀 쉽게 오늘 베드로가 고백한 내용을 다시 한 번 기억해 보십시오. 주는 그리스도시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하는 이 믿음의 고백 위에 예수님께서 이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그리고 응보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문이 이기지 못한다고 교회는요. 그런 공동체입니다. 교회는요. 어떠한 세력 설령 죽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이끄시는 교회 공동체는 절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러면 진정한 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 오늘 말씀을 이렇게 저도 책을 읽으면서 연구를 하면서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에 대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도 이 말씀을 좀 더 깊이 보았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교회는 성경 속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설계도를 이렇게 보여주셨는데 우리는 그 내용들을 보고 듣고 아는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경험한 나의 신앙적인 경험 또는 전통 관습 또는 뭐 어떤 우두머리 집단의 생각 그것들이 교회의 메인이 되어버리는 교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 안에 세상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싸움이 일어나고 그 안에 헤게모니가 생기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는 예수님이 디자인하신 줄 믿습니다. 초대교회의 교인들이 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과정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경험하는 그 놀라운 은혜의 삶을 통해서 그들은 경험하게 되니까 그것을 증거할 수밖에 없는 뜨거움이 일어났다는 것이죠.
저는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은혜가 풍성하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네 신약 성경에 교회에 대한 여러 가지의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특별히 교회는 유기체 몸으로 비유를 하기도 하고 건물로 비유를 하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의 비유는 너무나도 명확한 교회에 대한 개념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온갖 지체들이 신비하게 연결되어 있죠. 얼마나 복잡한지 모릅니다. 한 군데만 고장 나도 우리 몸은 한순간 무너져버리는 게 우리 몸이지 않습니까?
건물도 마찬가지죠. 건물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우리가 볼 때는 단순한 네모난 그 모양밖에 아니지만 이 안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들어있고 이것들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진정한 교회를 온전히 이해하고 그것을 세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근데 중요한 건 뭐냐면 이것을 세우는 것이 우리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 교회를 세우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믿고 우리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아갈 때 그것은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가장 기본 중에 기본을 이야기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내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여러분 교회는요.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입술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는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그러니까 먼저는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으로 사랑하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다 보여주셨어요. 외로운 자를 찾아가 만나시고, 가장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더 어루만져주시고 가난한 자 병든 자 인생에 가시돋쳐서 뭔가 해결점이 없어진 것 같은 삶을 살아가는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찾아가셨고 만져주셨고 회복케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행하신 행동 하나하나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교회로서의 하나의 모습들임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너희가 사랑을 받았으니 받은 만큼 나누라. 이게 바로 아주 기본적인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먼저 여러분들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네 교회는 이 세상에 교회는 완전할 수 없어라고 하는 말 속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저번에 우리 한 번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마음은 원인에도 육신이 약하다고 하는 신앙적인 부분에서도 약간 합리화하려고 하는 그런 마음처럼 마치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조직 정도 수준으로 이해를 하고 이 교회를 그렇게 그냥 뭔가 문제가 생겨도 별 일 없는 것처럼 그럴 수 있지 뭐 사람 사람끼리 만나는 데 그리고 그냥 지나가버리고 문제의식이 없이 흘러가 버리고 그러다가 교회 안에 문제는 더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하나님이 오늘날 세상을 바라볼 때 가장 관심사가 뭘까요? 대한민국의 유전이 발견됐다더라 그게 관심사일까요? 하나님의 관심사는 자기의 아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중요하게 여겼던 한 영혼 한 영혼에게 관심 있으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이라고 말을 하는데요. 그런 교회라고 말을 하는데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기억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그 일들을 향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계속 찾으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이 시대 가운데 사람들에게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 보여야 할 공동체입니다.
근데 오히려 교회가 더 싸우고 더 다투고 문제가 있고 이러면 사람들이 볼 때 마치 불 끄러 다녀야 할 소방서가 불이 난 것과 똑같은 모습이에요. 소방서가 불나면 사람들이 어디를 의지해요? 그렇죠 교회는 지금 이 시대에 아무런 희망 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됐다고 지금 그 고통, 그 아픔, 그 상처, 그것보다 더 놀라운 은혜가 시작된 것을 발견하면 그것들은 충분히 그냥 넘어설 수 있노라고 내가 이 반석교인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신 그 분명한 의미를 기억하면서 아버지 하나님 주신 그 은혜를 먼저 누리고 그 사랑을 누리고 그 은혜를 우리가 먼저 나눌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완전하지 않아라고 하는 뒤에 합리화시키거나 그 뒤로 숨는 우리가 되지 않기를 원하고요. 연약함이 드러날 때 오히려 주님 우리가 주님 앞에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고 묻고 또 우리가 다시금 갱신하고 새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삼을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