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나무 신품종을 키우기 위해 묘포장에 알밤을 심는다. 알밤은 보기도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생각으로 입에 침이 꿀꺽한다. 이런 상황을 학자들은 조건반사라고 하나 보다. 냄새도 못 느끼고 먹어보기도 전에 침이 생기는 반응이다. 기억의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내는 반응이다. 그런데 밤나무 모종 가꾸는 밭을 매던 아주머니들이 하루 일을 마치면 알밤을 한 포대씩 담아간다. 처음에는 무엇인가 궁금해서 알아보니 알밤이다. 싹이 트지 못해 남아있던 알밤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밤이 싹이 트지 않았으면 밤나무 모종이 이렇게 자랄 수가 없었다. 나이가 많은 분에게 들으니 밤은 싹 눈을 키우고도 알밤이 썩지 않는다고 한다. 모종도 처음 뿌리로 영양분 섭취하기까지는 밤알의 영양분을 흡수하지만, 뿌리가 제 기능을 하면 밤알의 영양은 사용하지 않는다. 만약 뿌리에 이상이 생길 경우 다시 밤알 영양을 이용하기 위한 방편인 듯하다. 알밤을 하나 이빨로 으깨어 보았다. 영양분 손실이 없었던 것처럼 수확할 때 그대로다. 역시 알밤도 스스로 장래에 일어날 극한 사태를 대비하는 식물임을 알게 한다.
병아리를 키우면 어미 닭이 없어도 사람이 보모가 되어 어미 닭으로 키워낸다. 병아리는 젖을 먹지 않고 사료에만 의존한다. 사료를 먹을 때까지 굶어 죽지 않고 사는 일이 신기하다. 다른 새들은 어미가 먹이를 반쯤 소화하여 다시 입으로 토해 젖 먹이듯이 새끼에게 먹여 키운다. 대표적인 동물로 비둘기가 새끼를 키우는 방법이 그렇다.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 비둘기는 날콩을 줘도 먹지 못한다. 갓 깨어난 병아리도 모이 먹을 줄을 모른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야 배합사료를 직접 먹고 자랄 수 있는 동물이다. 그동안의 기간에 굶어도 괜찮은 것이 이상했다. 필자가 그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노란 어린 병아리가 사고로 수레에 깔려 죽은 것을 보았다. 병아리는 배 속에 노른자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가 터뜨린 흔적이다. 달걀의 흰자위는 병아리 몸의 얼개를 만들고 노른자위는 병아리가 일주일간 굶어도 견디기 위한 영양분이다. 그래서 달걀로 병아리는 어미의 도움이 없어도 인위적으로 적정 온도만 유지해 주면 키울 수가 있다. 먹이의 별도 제공 없이 일주일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밤나무의 밤알이 자신의 영양을 아끼고 지키는 일과 비슷한 작용이다.
사과 농장에 사과를 수확하려면 매일 10여 명의 일손이 필요했다. 사과를 따다가 상자에 담는 일이다.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는 일은 쉽다. 그러나 상자에 담는 일은 어렵고 경험의 숙달이 필요하다. 숙련된 아주머니는 열 사람의 능력을 발휘한다. 경험이 모자란 사람은 사과를 상자에 담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결과도 불합격이다. 사과 상자는 15개 높이로 창고에 쌓기 때문에 아래에 눌리는 상자는 담은 사과가 눌려 상하지 않게 담아야 한다. 사과를 눌리지 않도록 낮게 담으면 되지만, 상자 수효가 늘어나 창고 보관 비용이 더 많아진다. 당시 사과 창고 보관 비용이 상자당 2천 원이었다. 상자에 사과를 많이 담고도 눌리지 않게 빨리 담는 기술이 필요하다. 옆집의 아주머니가 담은 사과 상자는 윗면이 대패로 민 듯 수평을 이룬다. 그러고도 빨리 담아낸다. 위에 얹는 상자에 눌려 상처 나는 사과가 절대로 없게 담는다. 숙련된 솜씨가 능력을 발휘해 놀라울 정도다. 사과를 상자에 담을 때는 미리 윗면의 높이부터 눈 여김 하면서 담는 기술에 원인이 있다. 두뇌 굴리는 예감이 때를 놓치지 않는 적용 시각의 달인이다. 그러니 아주머니 아들이 어머니 솜씨를 닮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고 생각된다.
상자 안에 사과 담을 때 두 단계 위의 높이는 두 단계 밑에서 선택의 결과를 얻어내야 하는 일이다. 사람의 예상하는 버릇도 한 단계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두 단계 혹은 세 단계라도 예상하는 버릇이 필요하다. 사과 담기 안 되는 사람은 이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결과의 원인을 한 단계만 생각하지 말고 복수 단계를 미리 예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보통 사람들은 귀찮아서 단순하게 생각하기 좋아한다.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려면 이런 보편성을 벗어나야 한다. 상자 깊이에 비교적 작은 알의 사과가 중간에 반드시 한 알이 필요한 공간 공식을 미리 짐작한다. 구구단 공식처럼 자기만의 사과 담는 공식을 생각했기 때문에 달인이다.
알밤이 스스로 영양분을 이용할 줄 알고 만약을 위해 영양분을 아끼는 일과 연관한다. 병아리가 달걀의 노른자를 몽땅 소비하지 않고 배 속에 그대로 가지고 부화하는 이치와 같다. 밤나무 모종이 뿌리에 이상이 오게 되면 그 이상한 상태가 물러갈 때까지 견디기 위해 알밤의 영양분을 아껴 그대로 보관했을 것이다. 그런 일로 밤나무 모종 밭매는 아주머니들은 알밤의 맛을 제대로 느끼며 산다. 밤나무 생태 습성을 아주머니들이 그 고마운 보람을 미리 읽어냈기에 말이다.
기술의 모방은 다 아는 사실이고 주의력까지 이르기는 노력에 달렸다. 그러나 창의력은 기발한 자기 모험이 강요되는 위험성도 갖고 있다. 이것이 다른 사람의 보편성을 벗어나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욕심을 버려야 사랑이 다가오는 이치다. 욕심을 버릴 수 없어 가득 안고 사랑을 부르면 사랑이 먼저 알고 다가오지 않는다. 먼저 베풀고 귀여워하면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모이는 것이 사랑이다. 사찰이 분주하면 사랑이 모이는 서광이고 교회가 비좁게 느껴지는 현상은 사랑의 기운이 가득해지는 보람이다. 세상에는 사랑받음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다만 베풀어 보아야만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 글 : 박용 2022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