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화 신이 내린 음식
수현이 통증을 느끼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팔을 문댔다. 매니저인 김현수가 수현의 이상 반응을 제일 먼저 알아채고 재빨리 다가갔다.
“수현아. 왜 그래?”
“모르겠어요. 벌레가 쏜 것처럼 팔이 아파요···.”
“어디? 어디 봐봐.”
수현이를 살뜰히 챙기는 김현수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처음에는 아이돌을 미끼로 누군가에게 사기당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뮤즈 엔터테인먼트였다니. 체계가 갖춰진 곳인 만큼 마음이 놓였다. 물론, 아무리 뮤즈 엔터테인먼트라고 해도 아이돌로 성공하는 것은 또 다른 얘기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수현이의 동공이 살짝 풀어지는 것이 보였다.
‘효과가 나타나는군.’
으름덩굴 꿀은 빠르게 흡수되는 것이 특징이다. 침으로 꿀이 주입됐으니 그 효과가 더 빠르게 나타날 터.
이 정도로 효과가 빠르게 나타난다면, 나중에 누군가 흥분 상태로 문제가 되면 으름덩굴 꿀을 응급용으로 써도 될 것 같다.
벌 정령이 다시 내 어깨로 돌아올 때쯤, 눈앞에 글자가 나타났다.
[봉침 제어권을 사용했습니다. (1/3)]
이럴 때는 친절하게 횟수를 안내해준다. 평소에는 어떤 것인지 말해주지도 않고 선택을 강요하면서···. 속으로 투덜거리는 사이 벌 정령이 어깨 위로 돌아와 말했다.
- 주군. 명을 완수했나이다.
벌 정령의 보고에 난 속삭이듯 답했다.
“수고했다. 아직 네 도움이 더 필요할 수 있으니 조금 기다려라.”
- 명, 받들겠나이다.
벌 정령에게 대기를 명하는데, 박현영이 날 돌아보며 물었다.
“수현이 친오빠라고 들었습니다.”
박현영이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가요계를 대표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그의 외모는 수준 이하였다. 고릴라를 닮았달까?
하긴, 박현영이 외모로 뜬 것은 아니었지. 오로지 음악과 춤으로 승부하는 타입이니까.
“예. 임수찬이라고 합니다.”
“박현영이라고 합니다. 수현이가 오빠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박현영의 손을 맞잡으며 미소로 답했다.
“제가 은둔을 좋아해서요.”
“어? 그거 저도 좋아하는데요. 평생 관심을 받고 살아서···.”
박현영이 날 쳐다보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처음에는 그저 수현이의 친오빠라서 인사나 해둘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나와 얼굴을 마주한 순간부터는 박현영의 눈이 살짝 커졌고, 잠깐이지만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 수찬 씨···. 초면에 이런 질문이 실례인 줄 알지만, 혹시 연예계 쪽에서 일해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예?”
얘는 또 왜 이러냐.
“아니, 마스크가···.”
박현영이 굳은 내 표정에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실수했군요.”
“예. 그러신 것 같군요. 전 평범한 사람입니다.”
무덤덤한 나의 말투에 박현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마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는 이내 표정을 바꿔 진지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수현이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몸치가 저렇게 변하다니, 고생하셨겠습니다.”
“하하하. 전 그저 몇 마디 거들었을 뿐입니다. 모든 것은 수현이가 해낸 것이죠. 근성 있더라고요.”
우리 임가의 근성은 모두가 알아주는 편이지. 그 근성으로 나도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내가 박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자, 박현영이 웃으며 내 곁에 섰다.
“수현이 오빠도 오셨는데, 핑크허니의 실력을 보여줘야겠지?”
“예!”
박현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핑크허니의 타이틀곡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묵직한 비트가 심장 박동수에 맞춰 울렸다.
아까도 느꼈지만, 핑크허니의 타이틀곡은 매우 강렬했다. 그만큼 시장에 인상을 심어주기 좋을 것 같다.
비트가 시작을 알렸고, 핑크허니의 리더인 제이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하나, 둘 점프!”
수현이를 비롯한 핑크허니가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칼군무의 시작이었다.
이동현과 김현수가 핑크허니의 안무가 시작되면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뮤즈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인 박현영 앞에서 파이널 점검 전 리허설 하는 느낌이랄까? 연습실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동현과 김현수가 수현이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좋아. 그렇게! 그대로만 해.”
“잘하고 있어. 수현아.”
속삭이는 그들의 응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수현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으니까.
으름덩굴 꿀 덕분일까? 수현이는 차분한 얼굴로 연습 때와 마찬가지로 잘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동현과 김현수가 수현이가 잘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줬다.
“좋아! 수현이 컨디션 좋네!”
“지금처럼 해. 긴장하지 말고!”
수현이를 바라보며 이동현과 김현수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갔다.
박현영이 그들을 힐끔 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핑크허니의 무대를 매의 눈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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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중반부에 다다르자, 이동현과 김현수가 박현영을 힐끔거렸다. 그들의 반응에 나도 덩달아 박현영을 살짝 쳐다봤다.
박현영은 팔짱을 낀 채 멍하게 핑크허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에 홀린 듯 입을 살짝 벌린 채 실실 웃는 모습이··· 변태 같다.
눈살을 찌푸리는데 이동현과 김현수가 흥분하여 말을 주고받았다.
“됐네. 됐어.”
“사장님의 저 표정 정말 오랜만입니다.”
“후, 저번 2차 파이널 점검 때는 표정이 완전히 굳어있었는데···.”
안도하는 그들의 대화에 나는 다시 한번 박현영을 쳐다봤다.
‘저 표정이 만족하는 표정이라고?’
박현영의 표정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아무리 봐도 고릴라가 흥분한 모습 같단 말이지.
젠장, 저 표정이 만족스러워하는 것이라니 멱살잡이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짜증 나는군.
- 짝짝짝.
어느덧 핑크허니의 곡이 끝났고, 박현영이 리드미컬하게 박수를 치며 재빨리 핑크허니에게 다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와우. 당장 데뷔해도 되겠는데?”
“가, 감사합니다!”
핑크허니가 이구동성으로 답했고, 박현영은 그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추가 조언을 했다.
“제이나는 보폭을 좀 더 넓게 가져가는 게 좋겠어. 너의 긴 다리를 최대한 활용하면 더욱 역동적으로 보일 거야.”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박현영은 제이나 앞에서 핑크허니의 안무를 직접 선보였다.
팔다리를 크게 벌리는 것과 작게 벌리는 차이가 상당했다. 작게 벌리면 비율이 좋지 않은 아이가 춤을 추는 느낌이라면, 박현영의 말대로 자신의 리치를 최대한 활용하게 되면 동작이 커지면서 확실히 역동적으로 보였다.
“라니는 지금도 느낌이 좋은데 귀여움을 더 살리도록 해봐. 톡톡 튀는 느낌으로. 그리고 랩은 더 힘있게 했으면 좋겠네?”
“주리야. 힘든 건 알겠는데, 호흡을 좀 더 차분하게 가져가야 해. 목소리가 떨린다.”
벌의 감각을 가진 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들을 박현영은 세세하게 지목하고 있었다.
역시 썩은 물.
박현영은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현이에게 다가갔다.
“임수현.”
수현이는 사슴 눈망울 같은 동생의 눈에 두려움이 깔렸다. 이동현과 김현수도 마른침을 삼키며 박현영의 입술만 쳐다봤다.
“또 발전했네.”
박현영의 한마디에 수현이의 얼굴에 긴장감이 사라지고 화색이 돌았다.
“가, 감사합니다!”
“저번에도 이렇게 하지 그랬어? 편안하게 하니까 보기 좋네. 지금처럼 비트에 몸을 맡기면 돼.”
“···.”
박현영의 말에 수현이는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들썩였다. 박현영이 수현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분명, 고생을 위로하고 치하하기 위한 것일 텐데, 왜! 내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인가?
“핑크허니, 정말 고생 많았어. 지금 데뷔해도 손색이 없겠어. 다들 잘했어.”
박현영의 말 한마디에 연습실은 울음바다가 됐다.
“왜 울어?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웃으며 말하면서도 박현영의 눈가가 붉어졌다. 썩은 물인 만큼 핑크허니가 지금 어떤 감정일지 제일 잘 알고 있으리라.
이동현과 김현수도 서로 얼싸안고 주먹을 불끈 쥐며 고함을 질렀다.
“됐다! 됐어!”
박현영은 눈가를 소매로 슬쩍 닦으며 이동현과 김현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실장과 김 매니저도 정말 맘고생 많았어. 이대로면 파이널 점검도 문제없겠는걸?”
“사장님. 감사합니다.”
모두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었지만, 연습실에서 풍기는 기운만큼은 더없이 따뜻했다. 그리고 눈앞에 성공 메시지가 나타났다.
[비트에 몸을 맡겨라. 성공!]
[보상으로 15코인이 지급됩니다.]
‘어라? 10코인이 아니라고?’
미션을 성공할 때마다 10코인을 주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가 보다. 기준이 뭐지?
설명해주면 좀 좋아?
투덜거려 보지만, 소용없다. 뭐, 차차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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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 엔터테인먼트 뒷골목에 있는 작은 고깃집.
박현영의 불시 방문에 호평을 받은 핑크허니의 회식 장소였다. 엉겁결에 나도 회식 장소까지 끌려왔다. 특히 라니가 나의 팔을 잡고 놓질 않았다.
“수현 언니의 오빠니까. 오빠라고 해도 되죠? 오빠도 같이 가요.”
이동현 실장도 함께하자고 간곡히 부탁했고, 무엇보다 라니의 애교 섞인 눈웃음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건배!”
“오늘 수현이가 다 했네. 다 했어!”
“맞아요. 수현이 언니 오늘 완전 긴장 안 하던데? 비결이 뭐야? 역시···. 오빠가 있어서인가?”
라니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와 수현이를 번갈아 보자, 수현이가 라니의 팔뚝을 때리며 소리쳤다.
“아, 좀 그만해.”
“아야! 근데 언니. 진짜로 오빠 오니까 춤에 힘도 실리고. 긴장도 하나도 안 하고.”
라니가 능청스럽게 말하자, 제이나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가족의 힘인가?”
제이나의 진지한 말에 나머지 멤버들이 눈을 크게 뜨며 제이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이동현 실장과 김현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제이나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아, 쫌!”
멤버들의 반응에 제이나가 머쓱한 표정으로 고기를 입에 쑤셔 넣었다.
제이나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 것 같다. 매사 진지한 타입. 아무래도 예능프로에 나가긴 힘들 것 같다.
다들 술기운에 얼굴이 붉어진 채 화기애애했지만, 주리는 홀로 물과 상추만 씹으며 고기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군침을 삼키며 말이다.
왜 저래?
“주리 씨, 고기도 좀 드세요.”
상추에 고기를 싸서 건네보지만, 주리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배가 안 고파서요.”
거짓말.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라니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오빠, 살찐다고 저러는 거예요.”
“아, 그래?”
라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지만, 주리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그렇게 격하게 움직이고도 살찔까 봐 걱정이라고?
“좀 드세요. 그러다 쓰러져요.”
내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갑자기 멤버들이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주리야. 너 오늘 아침, 점심으로 뭐 먹었어?”
라니의 물음에 주리가 커다란 눈을 위로 올리며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손가락으로 입술을 톡톡 두드리며, 주리가 오늘 먹은 것들을 읊었다.
“아침에 돼지 목살이랑 김치 그리고 밥, 점심에는 크림파스타와 마늘빵···.”
오늘 먹었던 것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주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살찔까 봐 걱정한다며?’
내가 당황하자, 수현이가 다가와 속삭였다.
“오빠. 주리가 먹는 것을 정말 좋아하거든. 통제가 힘들어서 회사에서 석식 금지령을 내렸어. 대신 아침, 점심은 원하는 대로 먹고.”
“아, 그래?”
그래도 다들 먹고 있는데 못 먹는 것은 고문이다. 칼로리는 적으면서도 공복감을 채울 수 있는 뭔가라도 좀 주면 좋겠는데···.
고민하는 찰나, 눈앞에 메시지가 깜박였다.
[다음 미션을 수신 중입니다···.]
[신이 내린 음식.]
‘응? 뭐야 이건 또···.’
신이 내린 음식이라···. 속으로 되뇌는데 문뜩 뇌리를 스치는 음식이 있었다. 주리에게 지금 딱 필요한 음식 말이다.
“잠깐, 화장실 좀···.”
화장실을 향하는 척하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간 나는 팔로 원을 그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열려라. 참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