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이수봉
3월 13일(일) 09시 31분에 4호선 과천 정부 청사역 5번 출구를 출발하여 청계산을 향합니다.오늘 함께 하는 동행자는 패노우 위짜추 씨모우 조단스 서류바 까토나등 여섯명이 발걸음을 맞춥니다. 청계산이라는 이름을 지닌 산(山)은 수도권에 3개가 있고 경북 상주에 또 1개가 있습니다. 경북 상주에 있는 청계산은 아직 밟아 보지 못했으나 나머지 3개의 청계산은 여러번 오르 내린 산들입니다. 경기도 양평에 있는 청계산(656m)은 경의 중앙선 전철이 개통 되기 전에는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지금은 국수역에서 산행 들머리가 많은 산호인들의 즐겨 찾는 코스입니다. 동(東)쪽으로는 태백산맥에서 갈라진 광주 산맥에 속하는 용문산(1,157m)의 웅장한 산세가 보입니다. 또 하나는 경기 포천 일동에 자리하고 있는 청계산(849m)으로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들이 산객들의 지친 호흡을 씻어 줍니다. 가을에는 낙엽들이 산을 찾는 나그네의 마음을 한껏 부풀게도 합니다. 주위로는 갈매봉(735m) 귀목봉(1,036m) 강씨봉(830m) 명지산(1,267m)등의 봉우리로 애워 쌓여 천혜의 무공해 낙원이기도 합니다. 산길을 잠시 벗어나서 오지의 맛과 자연 고유의 향을 즐기다 보면 순간적으로 미아 아닌 조난자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경북 상주에 있는 청계산(874m)은 후백제의 견훤의 기상이 서려 있다는 산입니다.
서울 서초 경기 의왕 과천 성남에 걸쳐 있는 청계산(615m)은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양재 방향 원터골 옛골 대공원 청계사 입구를 시작으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산객들이 별로 찾지 않는 한적한 등산로로 접어 듭니다. 호젓하면서도 고즈녁한 분위기가 마음까지 차분하게 잦아 들게 합니다. 매봉을 향하여 거친 숨소리를 벗 삼아 가벼운 몸 놀림으로 시작합니다. 심장의 박동 소리를 느끼며 발목 무릎 허리 양팔 인체에 있는 근육 650여개와 100여개의 모든 관절에 탄력이 붙습니다. 매봉(369.3m)으로 향하는 동안에 생각지도 않은 하얀 쌀눈이 부드럽게 콧등을 스칩니다. 주위에는 우리 일행 뿐으로 산신령도 우리 노객들의 산행을 환영해 주는 느낌입니다. 아직 갈 길은 먼데 벌써 부터 힘들다는 한 녀석의 푸념을 바람에 흘리며 목적지인 이수봉(545m)으로 서둘러 오릅니다. 푸른 용(龍)이 산 허리를 뚫고 하늘로 치 솟았다는 전설의 팻말에는 해서 청룡산(靑龍山)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나무 계단이 조금은 지겹기도 하지만 어느새 이수봉 근처 헬리포트 장에 도착합니다. 각자 준비해 갖고 온 간식들 호박고구마 군밤 영양떡 초코렛 빵등을 따끈한 견과류 차와 함께 마시며 혈당을 끌어 올립니다.
요기를 간단히 하고 이수봉에 오르니 이수(二壽)봉의 의미가 커다란 바위에 새겨 있습니다. 조선 연산군 때의 유학자가 무오사화(戊午史禍,士禍)를 예견하여 이 곳에 은거하여 두번이나 목숨을 건졌다 하여 이수봉이라 했답니다. 무오사화를 사화(史禍)와 사화(士禍) 두 가지로 표기 하듯이 사초(史草) 문제에서 촉발된 유림 신진사류(士類) 선비들을 참혹하게 거세한 사건입니다. 신진 사류 김종직은 성종실록에서 세조가 단종을 폐위시킨 것을 항우가 초나라 의제를 폐위한 것에 비유하여 기록한 조의제문(弔義帝文), 기존 기득권 세력인 훈구파 이극돈이 세조비 국상(國喪) 때 전라 감사로 있으면서 기생과 불미스런 행동을 했다고 사초(史草)에 올린 것이 무오사화의 발단이 되었습니다.이로 인하여 수 많은 신진사류의 유학자들이 능지처참(凌遲處斬)을 당하였으며 심지어는 죽은 자를 다시 죽이는 부관참시(剖棺斬屍)도 자행합니다.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기득권층인 훈구파의 불의와 병폐를 바꾸려는 신진사류와 자신들의 족벌을 지키고 현상 유지를 하려는 훈구파의 갈등이 충돌한 것입니다.
그 당시 최고 권력자인 성종 임금은 권학숭문(勸學崇文)을 우선시 하여 유학자를 비롯한 신진사류를 대거 중용합니다. 반대로 연산군은 학문을 무시하여 학자와 문인들을 극도로 멀리 하였으며, 간언(諫言)이나 충언(忠言)을 싫어 하고 자신을 따르며 추종하는 부류들을 주요 관직에 끌어 들였습니다. 이와 같이 최상의 권력자가 자신의 사상과 이념에 부합되는 인물만으로 국정을 이끌어 간다면 언젠가는 반대 세력의 거센 저항과 반발을 불러옵니다. 백성은 안중에도 없이 서로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며 피비린내 나는 당파 싸움으로 종국에는 나라가 파멸의 늪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요즘에도 지금껏 사용하던 역사 교과서가 오류 투성이로 왜곡 되었으니 바꿔야 한다고 합니다. 대다수 국민들과 역사학자들이 반대하는 의견엔 마이동풍으로 불통으로 일관 합니다. 최고 윗사람의 입맛에 맞게 뜻대로 기술하는 집필진만으로 구성하여 면면을 알수도 없이 만들고 있습니다. 역사의 진실은 하나이며 집권층만의 입맛대로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고 변경한다 하여도 그것이 사실(史實)이 될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는 또 다시 누군가에 의하여 반드시 진실되게 사실(史實)로 바뀌고 말것입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여야를 막론하여 이번 국회의원 후보 낙점과 선정 기준도 명확치 않고 국민의 의중에서 벗어나는 패거리 싸움만을 연출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권력자의 뜻에 반(反)하는 인사들은 모두가 퇴출의 쓴 맛을 안겨 주고 있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일반 대중들 백성들은 그네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장님도 아니며 귀머거리도 아닙니다. 그대들 생각만큼이나 몽매하거나 바보도 아니며 더구나 어리석지도 않습니다. 다만 생활 철학이 다르고 삶의 기준이 다를 뿐입니다. 어쩌면 정치인에게 식상하여 경멸하거나 멀리 하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오백여 년이 흐른 오늘의 정치 현실도 조선왕조 시대와 변함이 없이 똑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는 모습이 민초(民草)의 한 사람으로서 그저 안타깝기만 할뿐입니다. 언제 어느 세월에나 국민을 두려워 하며 백성이 주인이 되는 참다운 민주 국가 사회가 오려는지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수봉(二壽峰)이 아닌 이수봉(利壽峰)이었으면 하는 착잡한 마음을 이수봉에 묻어 두고 서둘러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인 회식 장소로 무디어진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오늘도 산행 후에 들이키는 이 한 잔의 술이 서글픈 한 민족의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거푸 완샷의 쓴 맛을 만끽해 봅니다.
2016년 3월 17일 무 무 최 정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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