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영금(濯纓琴)
KBS-1TV의 천상의 컬렉션에서 탁영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방영하였다. 1490년에 제작하였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현악기라 보물 957호로 지정되었다는 것이다. 길이 160cm, 너비 19cm, 높이 10cm인데 까맣게 옻칠을 했고, 줄 6개가 팽팽히 매어있으며 가운데에 탁영금(濯纓琴)이라 전서로 음각되어 있다고 한다.
거문고는 그 소리가 곧고 장엄하여 헛된 생각을 쫓고 삿된 욕심을 사라지게 한다. 악기이며 놀잇감이고 수양의 도구다. 조선시대에는 거문고를 타지 못하는 선비가 없었다 한다. 선비라 하면 익혀두어야 할 덕목 가운데 하나여서 누구나 탈 줄 알았다. 풍광이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벗들과 어울려 시를 짓고 거문고를 탔다. 양반 댁에는 유물로 더러 남아있다. 전주박물관에 가면 석전 황욱선생이 타던 거문고가 전시되어 있다.
탁영금이 만들어지게 된 데에는 일화가 있다. 김일손이, 어느 집의 문 앞을 지나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대문은 다 부서지고 헐어가지만 거문고의 재료로 손색이 없는 오동나무 문짝이 있었다. 주인에게 물으니 ‘백년쯤 된 문짝으로 이제는 낡아 땔감으로 쓰려한다.’고 했다. 그것을 얻어다 거문고를 만들었다. 지금도 문짝으로 쓸 때의 못 자국이 3개 남아 있다 한다. 하마터면 불에 타 없어질 번한 오동나무가 거문고가 되어 보물로 남았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사소한 일이 뒷날에는 커다란 업적이 되기도 하니 모든 것은 함부로 처리할 일이 아니다.
탁영금에는 자작시가 새겨져 있다. 유가(儒家)의 신비한 뜻을 받들어 약하게 가라앉은 마음을 북돋우고 삼가고 조심하는 마음을 굳건히 하려 한다는 내용이다. 옥강이라는 분의 글도 새겨져있는데 거문고 주인이 틱영 김일손이라는 내용이다. 또 아래 부분에는 학이 새겨져 있는데 이거사라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그렸다 힌디. 고구려 왕산악이 거문고를 타자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일화에 영향을 받아 학을 새긴 것 같다. 이런 명문으로 이 거문고가 탁영 김일손의 작품이라는 것이 확증되었다.
탁영 김일손은 국사시간에 배워 거의 아는 인물이다. 성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사간원, 사헌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엘리트 문관이었다. 유능한 문신에게 주어지는 사가독서(賜暇讀書)에 뽑히기도 한 걸출한 인물이었다. 심성이 대쪽같이 올곧은 선비여서 불의를 참지 못하고 바른말을 하는 선비였다. 사관으로 있을 때 전라감사 이극돈이 세조비 정희왕후 국상 중에 근신하지 못하고 장흥기생과 어울렸다는 사실을 사초에 기록했다. 뒤에 이극돈이 실록청 당상관이 되어 이 사실을 알고 삭제해 달라 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앙심을 품고 복수를 노렸다. 또 스승인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었다. 중국 초나라 의제가 항우에게 나라를 빼앗긴 사실을 애도하는 글이다. 이것은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것을 비난하는 글이라고, 정적 이극돈과 유자광이 연산군에게 고해바쳐 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이게 무오사화다. 처형되는 날 고향 청도의 하천에서는 사흘간 붉은 물이 흘렀다 한다. 사실이 아니겠지만, 백성들이 탁영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는 마음의 표현이었으리라. 그래서 지금도 그 하천을 자계천(紫溪川)이라 한다. 자계천 가에는 자계서원이 있고 그 서원에서는 탁영 김일손 등을 모신다. 중종반정이 일어난 뒤 신원(伸寃)이 되었고 순조 때에는 이조판서의 벼슬을 추증 받았다.
탁영 김일손 선생은 나의 14대 할아버지이시다. 무오사화 뒤에 일족이 남원으로 유배되어 살았다. 신원이 된 뒤에 모두 고향 청도로 돌아갔으나 묘를 지키려는 후손이 남아 전북에 살고 있다. 탁영 할아버지는 아들이 없어 조카 대장(大壯)을 양자로 들여 대를 이었다. 그 할아버지가 전북에서 돌아가셔서 묘가 남원시 보절면에 있다. 경북에 살아야 할 내가 전북사람이 된 것은 이러한 역사적인 우여곡절이 있어서다.
탁영금은 족보에 기록 되었고 삼현세가보에도 나와 있다. 유물로 보존되어 있는 것만 알았지 자세한 것은 몰랐다. 그런데 방송에서 명창 장문희가 발표하여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게 되었다. 만들어진 과정과 보물로 지정된 것 등을 알게 되었다. 후손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국가의 보물을 후손이 경솔히 하다니 고개를 들지 못할 일이다. 국립대구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으니 길이길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뚱땅 뚱기당 떵떵’하고 한번 울려보고 싶어진다.
(2018. 8. 11.) 새만금일보 게재 (2018.8.22.)
*사가독서 : 유망한 문신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을 닦게 하는 제도
*신원 : 죄를 사면하고 본래의 직위를 복원하는 명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