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v. 알라는 위대하다(Jihad:성전)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운 카놋사의 굴욕으로 젊은 황제 하인리히는 교황에 원한을 가졌고 젊은 교황은
그 후로 계속해서 교황을 궁지에 몰아붙여 결국 교황이 로마에 입성하지도 못하게 만든다. 이에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던 교황 우르바누스2세는 유럽사회를 교황을 중심으로 뭉치게 할 십자군 원정을 클레몽공회의
에서 의결하고 이를 통해 교황청의 입지를 강화하려 한다. 200년 동안 지속되면서 당시 세계의 문명 대
격돌을 야기시킨 사건의 발단 치고는 너무 초라하다. 겨우 한 개인(물론 교황이지만)의 머리 속에서
나온 술책이 십자군 전쟁으로 이어졌다니....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수복하기 위하여 오리엔트 원정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옷위에 붉은 십자가를
덧씌우도록 한데서 십자군이란 명칭을 얻는다. 십자군 전쟁은 총 8차에 거쳐 이루어지는데 제1차 십자군(1096
-1099)이 가장 화려하고 또한 실질적인 성과를 얻는다. 11세기 후반 십자군에 참전한 기독교 세력에는 기라성
같은 인물들(주로 제후들이 주축)이 포진한 반면 이슬람세계는 갑자기 기습을 당해서였는지 통일도 이루어지지
않고 각자 대처하는 바람에 통일된 유능한 통솔자를 지닌 십자군에 맥없이 무너지고 십자군이 소아시아에 상륙
한지 3년만에 결국 예루살렘을 빼앗끼고 중근동 지중해 지역을 모두 빼앗기고 만다.
기독교세력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반세기가량이 지난 후 드디어 이슬람세계에서도 영웅이 나타나 빼앗긴 지역을
수복하고자 하는데 그 중심인물이 살라딘이다. 시오노나나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역마다 영웅의 출현시기가
다른것 같단 말처럼 11세기 말에는 기독교 측에 영웅이 많았고 12세기에는 이슬람측에서 영웅이 등장하다.
살라딘은 우리가 오늘날 많이 들어본 지하드(성전)을 외치면서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누어진 슬람 세력을
통일하여 기독교 세력에 빼앗긴 영토들을 수복하며 결국 하틴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어 예루살렘을 재 탈환
한다. 이 과정에서 2차 십자군이 출정하였으나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물러난다.
이 후로는 교착상태가 이어지면서 3차~8차까지 십자군이 떠나지만 내가 보기엔 큰 의미는 없었던듯 하다.
단지 교착상황을 누구에게 좀 더 유리하게 더 끌었느냐일 뿐. 3차의 십자군의 오늘날 영국의 왕의 전형이
된 리처드의 활약, 제4차 십자군은 오리엔트는 가보지도 못하고 베네치아의 단돌로에 놀아나 같은 그리스도
교 국가인 헝가리를 공격하고 동로마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폴을 공격하여 함락시킨다.
제5차는 프랑스의 왕 필리프가 중심이 되어(교황의 충실한 충복이라고 해야 할까) 이집트 원정을 떠나지만
결국에 실패하고 제6차 십자군은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2세가 두번의 파문을 당하면서 마지못해 출정하여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외교적 전략으로 예루살렘을 수복한다. 그러나 프리드리히2세는 피를 흘리며 싸우지
않고 이슬람교도와 협상을 했다는 이유로 온갖 비난을 받는다. 바보 같이 기독교 교리에 충실한단 명목으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던 프랑스의 필리프 왕은 성인이 되고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예루살렘을 수복한
프리드리히는 파문을 당하는걸 보면 프리드리히2세가 백번은 나아 보이는데 기독교역사의 평가는 다른가
싶다.
200년의 십자군 전쟁은 결국 7차 프랑스왕 필리프가 이집트 원정에서 왕을 비롯한 모든 병사들이
항복하고 포로로 잡히는 대 참사가 일어나고, 당시 십자군의 엘리트 중의 엘리트 집단인 기사집단이
만수로에서 이슬람 세력의 노예용병들에 의해 전멸당함으로서 중근동의 그리스도세력은
십자군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되고 이슬람 세계에서도 십자군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 후 그리스도세력과 우호적인 관계였던 아이유브 왕조는 망하고 노예용병출신이 맘루크 왕조가 들어선후
이들은 몽골에 의해 이슬람 세력이 반이상 점령당한 상태에서 마지막 남은 이집트로의 진격을 격퇴
함으로써 이슬람세계의 지배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들은 그리스도교도인은 마지막 한사람까지
지중해에 쳐 넣어주겠다며 그리스도세력의 일소를 천명하고 그 동안의 강화조약을 헌신짝처럼 버리
고 그리스도 세력을 공격하여 유럽으로부터 더 이상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그리스도 세력은 템플,
병원, 튜턴 기사단을 중심으로 한 기사단의 최후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1291년 실질적인 그리스도세력의
수도 역할을 했던 아코가 함락됨으로써 중근동에서의 그리스도 세력은 완전히 일소되고 1096년 1차
십자군 원정에서 시작된 십자권 전쟁은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십자군 내용만을 써도 한 참되네요. 분량이 제법 되서 그런가 봐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담에
느낀점을 한 번 써볼랍니다.
첫댓글 간단하게 정리를 잘 하셨네요. 모르던 내용인데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