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온의 마음정원 66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수많은 ‘나’들을 경험하며
계엄령이라는, 말도 안되는 내란 시도 때문에 나라가 너무 뒤숭숭합니다. 이러한 암흑과 혼돈 속에서 한 줄기 기쁨과 희망의 빛을 한강 노벨상 수상에서 찾아봅니다. 다음은 한강이 노벨상 축하연에서 발표한 수상소감 중 앞부분입니다.
여덟 살 때의 어느 날을 기억합니다. 주산학원의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맹렬한 기세여서, 이십여 명의 아이들이 현관 처마 아래 모여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습니다. 도로 맞은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보는 듯 그 처마 아래에서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쏟아지는 빗발을 보며,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느끼며 기다리던 찰나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나와 어깨를 맞대고 선 사람들과 건너편의 저 모든 사람들이 '나'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저 비를 보듯 저 사람들 하나하나가 비를 보고 있다. 내가 얼굴에 느끼는 습기를 저들도 감각하고 있다. 그건 수많은 일인칭들을 경험한 경이의 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한순간도 ‘너’인 적이 없습니다. 공감이란 것도 내 안의 체험과 느낌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래서 모든 것은 ‘나’의 오감을 통한 느낌과 체험일 뿐이고요. 그리하여 어느덧 이 세상은 ‘나’로 하나가 되고요.
한강은 문학을 통해, 저는 명상과 수행을 통해 그 경이로운 체험을 이야기합니다.